안막

North Korea Humanities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 24-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김성수(KNU2024))이 작성했습니다.




안막(安漠)
안막.jpg
출처 : 舞踊家崔承喜孃 無產藝術家와結婚」, 『조선일보』, 1931.05.05. 04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한글명 안막 한자명 安漠 영문명 An Mak 가나명 이칭 안추백(安萩白)
성별 남성 생년 1910년 몰년 ????년 출신지 대한제국 경기도 안성군 고삼면 전공 노어노문학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안막인물(安漠, 본명: 안필승, 본명 한자: 安弼承, 1910년 4월 18일~몰년(1945년 월북 이후 1958년경? 숙청 이래 행방 묘연) 미상)은 1945년 을유 해방 직후 월북 이래 북의 평론가로 활약했던, 카프 동맹 계열의 정치인이었다.[1] 본은 죽산(竹山)이고, 대한제국 경기 안성 생이다.[2] 월북 소설가 안회남(安懷南, 1909년~?)의 6촌 재종아우(再從弟)가 된다.[3] 개명(改名)하기 이전의 이름은 안필승(安弼承)이며, 후일 안막(安漠)으로 개명했고, 필명(筆名)은 안추백(安萩白)이다.[4]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의 본명은 안필승(安弼承)이었으나, 일본의 무용가 이시이 바쿠(石井 漠)의 이름을 따서 스스로 이름을 막(漠)으로 개명했다.[5]


생애


출생과 유학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

경기도 안성 출생으로, 본(관향)은 죽산이다.[6] 우리나라가 일본에 합병된 1910년 당시 서삼면(西三面) 남강리(南江里)에 속했던 고삼저수지(당시는 고삼저수지가 없었다) 가에서 태어났다.[7]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영민함을 보인 그는 1920년대 안성을 떠나 경성제2고보에 진학했다가 다시 일본에 유학하여 와세다대학기관 노문과(露文科)에 입학했다.[8] 1929년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었고,[9] 정치적 이상주의와 문학적 낭만이 풍미했던 그 시절 비참한 민족의 현실을 타개할 현실적 수단과 그 실천 방안을 치열하게 모색했던 일단의 소장파 문인들과 교우하면서 그 반제국주의와 접목된 계급투쟁이라는 급진적 사상을 접했다.[10]


귀국 후 카프 활동과 결혼

귀국 후 임화(林和)·김남천(金南天) 등과 함께 카프단체(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소장파를 형성,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했다.[11] 1930년대 초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손꼽히는 이론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카프 시절의 평론으로는 〈프로 예술의 형식문제 -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의 길로〉(1930)서적, 〈조선 프로예술가가 당면한 긴급한 임무〉(1930), 〈창작방법문제의 재토의를 위하여〉(1933)가 있다.[12] 그의 첫 평론 《프로 예술의 형식문제-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의 길로》(1930)는, 프롤레타리아 사실주의를 이론적으로 정초(定礎)함으로써 소장파들이 볼셰비키적 대중화론을 내걸고 카프의 방향전환을 수행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13] 같은 일본 유학파이며 소장파인 임화, 김남천과 더불어 김기진을 비판하는 내용의 평론을 썼다.[14] 그리고 사회주의 계열의 문예운동가이던 최승일, 박영희의 소개로 최승희인물와 만나 1931년 결혼했다. 최승일은 최승희의 오빠이다.[15]


카프 해체 이후

1930년대 중반 카프가 해체되고 투옥된 이후에는 두드러지는 활동이 거의 없었으며[16] 1945년 초 안막은 북경에서 최승희의 일을 도와 동방무용연구소를 관리하고 운영하던 중, 조선독립동맹 본부가 있던 연안으로 떠날 결심을 하고 북경을 탈출했는데, 연안에서 조선독립동맹의 간부들이었던 김두봉, 무정, 최창익, 김창만, 허정숙 등과 친분을 쌓았고, 1945년 9월 가족을 북경에 둔 채 연안에 있던 조선독립동맹 동지들과 함께 평양으로 떠났다.[17]


월북 이후

북한에 정착한 그는 북조선문화선전성기관 제1부상을 역임했다.[18] 우리나라로 치면 문화부차관 쯤 되는 요직이다.[19] 또한 1955년에 평양의 조선작가동맹에서 펴낸 엔솔로지 형식의 『서정시선집』에 그의 글이 수록되는 등 북에서의 정치적 문학적인 정착이 적어도 월북 초기에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였다.[20] 게다가, 1956년 6월 모스크바 볼쇼이극장 무용과에 유학했던 안성희의 모란봉극장 귀국공연도 성황리에 치러졌고(<도판 2> 오른쪽 참조), 아내가 운영하던 무용연구소가 진즉에 국립으로 격상된 데 더해 최승희 자신도 이 무렵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피선되는 등 이들 부부의 인생에서 최고의 절정기를 맞이하기도 했다.[21]


숙청

1958년 소설가 한설야 제거에 대한 사전 작업으로 카프 계열 문학 인사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질 때 서만일, 윤두헌과 함께 부르주아 평론가로 몰려 숙청당해 곧 사망했다고 전해진다.[22] 자세한 사망 경위나 사망 년도는 알려진 바가 없다.[23] 그가 숙청당하고 최승희도 근신조치와 함께 연금되었을 뿐 아니라 최승희무용연구소 또한 국립무용단으로 개칭되었다.[24] 반동에 스파이행위를 했다는 죄목이 제시되기는 했으나 공산당내 정치투쟁에서 밀려난 것이 주된 이유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25]





연구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론

식민지 시대 안막은 임화, 김남천 등과 함께 카프의 제2차 방향 전환을 주도했고,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을 둘러싼 논쟁의 계기를 마련하는 등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26] 1930년 3월 발표한 첫 평론 「프로예술의 형식문제」(『조선지광』, 1930. 3)에서 8월 「조선프로예술가의 당면의 긴급한 임무」(『중외일보』, 1930년 8월 16일~22일)까지의 글에서 안막은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론을 바탕으로 하여 예술운동의 볼세비키화를 역설했다.[27] 카프의 볼셰비키화 단계에서 발표된「프로예술의 형식문제: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의 길로」에서 프로문학의 창작방법론으로서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론을 내세웠는데, 이것은 프로문학의 창작방법에 대한 최초의 이론적 정초라는 의미를 지닌다.[28] 안막이 주장한 볼세비키화론은 당파성의 확립과 그를 통한 대중성의 확보라는 당대 문예운동 볼세비키화의 핵심을 담고 있었다.[29]


사회주의 리얼리즘론

안막에 의해 주창되고 권환에 의해 구체화된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은 당의 정치적 임무에 지나치게 도식적, 기계적으로 결합시키고 있었던 점과 1931년 카프 제1차 검거 선풍으로 인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 논의로 전환되었다.[30] 1933년 안막은 「창작방법문제의 재토의를 위하여」(『동아일보』, 1933년 11월 29일~12월 7일)에서 1930년에 주창했던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창작방법론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 창작방법론 도입을 주창했다.[31] 1933년 이후 창작의 질식을 초래한 볼셰비키적 창작방법론에 대한 자기 비판이 제기되자, 추백이라는 필명으로「창작방법문제의 재토의를 위하여」를 발표하여 새로운 창작방법론으로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소개한다.[32] 백철이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이란 용어를 처음 소개했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조선적 적용’론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안막의 이 평문 이후 김남천, 안함광, 권환, 한효, 김두용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33]


북한 문예운동

1945년 8월 15일 중국 북경에서 해방을 맞은 안막은 9월 초 평양으로 들어가 북한 문예운동의 핵심에서 활동했는데, 1946년 3월 25일 북조선예술총련맹 상임위원회 부위원으로, 1946년 10월 13~14일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부위원장으로, 1951년 3월 10일 조선문학예술총동맹 검사위원 위원장으로, 1953년 9월 26~27일 제1차 전국작가예술가대회에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1956년 10월 14~16일 제2차 조선작가대회에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조선작가동맹 중앙상무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34] 북한에서 활동하던 기간 안막은 ‘민족문학’이나 ‘고상한 사실주의’ 등의 사회주의 문학 건설을 위한 문예 활동을 펼쳤다.[35] 현재까지 남한의 연구에서는 안막이 북한에서 ‘14편의 시와 4편의 평론’만을 남겼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위에서 보듯 실제로 북한에서 활동하던 기간 동안 안막은 그보다 더 많은 「만리장성」 등의 시와 「조선문학과 예술의 기본임무」 등의 여러 평론을 남겼다.[36]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안막 Person: 최승희 A hasSpouse B
Person: 안막 Institution: 와세다대학 A graduates B
Person: 안막 Institution: 북조선문화선전성 A worksAt B
Person: 안막 Group: 카프 A isMemberOf B
Book: 〈프로 예술의 형식문제 -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의 길로〉(1930) Person: 안막 A creator B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주석


  1. 안막』"online,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2. 안막』"online,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3. 안막』"online,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4. 안막』"online,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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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안막』"online,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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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김한영, 「31(2). 안막(安漠), 안성 출신 좌파 지식인의 삶과 역정」, 『안성신문』online, 안성신문사, 작성일: 2006년 06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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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김한영, 「31(2). 안막(安漠), 안성 출신 좌파 지식인의 삶과 역정」, 『안성신문』online, 안성신문사, 작성일: 2006년 06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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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권영민, "안막 (安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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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권영민, "안막 (安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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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안막 [An Mak]", 디렉토리 서비스, 『20세기북한문화예술사전』online, 북한대학원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