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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11월 20일 (금) 13:4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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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8년 여름 도학 교육자 최부(崔薄)는 명나라에서 귀국한 후 조선 중심의 내러티브 도학교재《금남표해록》을 저술했다.




喪人臣崔溥自濟州漂流。泊甌東。過越南。經燕北。以今六月十四日。到靑坡驛。敬奉傳旨。


상인(喪人)인 신(臣) 금남 최부[1]는 제주(濟州)로부터 표류해서 구동(甌東)에 배를 대고, 월남(越南)을 지나 연북(燕北)을 거쳐,

올 6월 14일에 청파역(靑坡驛)에 도착하여 삼가 전지(傳旨)를 받들어 이번 길의 일지를 편집하여 바치나이다.


I, Ch'oe Pu, while in mourning, went adrift from Cheju, landed east of Ou, and passed from south of Yüeh to north of Yen. On the 14th Day of this Sixth Month I reached Ch’ðngp’a Station

and respectfully received a Royal edict for a diary of the journey. I have compiled it and now submit it.




최부는 부친상을 듣고 제주에서 나주로 향하던 중 표류하여 다음의 경로를 따라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귀국하였다.



이를 3D로 보면 당시 최부 시점의 색다른 느낌을 추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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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는 서사적 논픽션이라는 내러티브 방식으로 당시 사회가 요구했던 윤리적 요소를 딱딱하지 않게 등장인물 간 대화 가운데 전달하였다.


최부는 귀국 여정에서 소재를 잡아 독자들이 도학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에피소드를 구성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당시 기초 도학교재 《소학》의 무미건조함을 대체할 수 있는 도학교재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음사에 빠져있던 최부 종자들 42명이 최부와의 동행 여정에서 감화되어 친도학 성향으로 바뀌는 내용이 나온다. 다음의 시맨틱 데이터는 이를 네트워크 그래프로 보여준다.



이야기 내내 상복을 최부는 상복을 통해 효와 충에 대한 해석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그리고 이야기 전개과정이 조선과 조선인 중심이다. 이는 조선맥락화다. 최부는 조선맥락의 교재를 만들어 중국교재 《소학》과의 차별화를 목적했다.


시맨틱웹(semantic Web)은 컴퓨터를 이용하는 데이터 내러티브다.


1488년 최부가 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서사적 논픽션이라는 내러티브를 이용했다면 2020년 최원재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시맨틱웹이라는 내러티브를 활용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인문학 연구소의 백과사전적 아카이브(Encyclopedic Archives)를 활용했다.


《금남표해록》의 원문과 한글 번역본(동국대 서인범 교수, 박원호 고려대 교수), 영문 번역본(John Meskill)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표해록본문.jpg



《금남표해록》권1

喪人臣崔薄,自濟州漂流, 泊甌東, 過越南, 經燕北,以今六月十四日到靑 坡驛,敬奉. 傳旨, 一行日錄撰集以進.

성화(成化)23년 정미년 가을 9월 17일 홍치(弘治)원년(1488) 무신년 정월 30일 윤 정월 1일 1월 2일 1월 3일 1월 4일 1월 5일 1월 6일 1월 7일 1월 8일 1월 9일 1월 10일 1월 11일 1월 12일 1월 13일 1월 14일 1월 15일 1월 16일 1월 17일 1월 18일 1월 19일 1월 20일 1월 21일 1월 22일 1월 23일 1월 24일 1월 25일 1월 26일 1월 27일 1월 28일 1월 29일 2월 1일 2월 2일 2월 3일 2월 4일

《금남표해록》권2

2월 5일 2월 6일 2월 7일 2월 8일 2월 9일 2월 10일 2월 11일 2월 12일 2월 13일 2월 14일 2월 15일 2월 16일 2월 17일 2월 18일 2월 19일 2월 20일 2월 21일 2월 22일 2월 23일 2월 24일 2월 25일 2월 26일 2월 27일 2월 28일 2월 29일 2월 30일 3월 1일 3월 2일 3월 3일 3월 4일 3월 5일 3월 6일 3월 7일 3월 8일 3월 9일 3월 10일 3월 11일 3월 12일 3월 13일 3월 14일 3월 15일 3월 16일 3월 17일 3월 18일 3월 19일 3월 20일 3월 21일 3월 22일 3월 23일 3월 24일 3월 25일

《금남표해록》권3

3월 26일 3월 27일 3월 28일 3월 29일 4월 1일 4월 2일 4월 3일 4월 4일 4월 5일 4월 6일 4월 7일 4월 8일 4월 9일 4월 10일 4월 11일 4월 12일 4월 13일 4월 14일 4월 15일 4월 16일 4월 17일 4월 18일 4월 19일 4월 20일 4월 21일 4월 22일 4월 23일 4월 24일 4월 25일 4월 26일 4월 27일 4월 28일 4월 29일 4월 30일 5월 1일 5월 2일 5월 3일 5월 4일 5월 5일 5월 6일 5월 7일 5월 8일 5월 9일 5월 10일 5월 11일 5월 12일 5월 13일 5월 14일 5월 15일 5월 16일 5월 17일 5월 18일 5월 19일 5월 20일 5월 21일 5월 22일 5월 23일 5월 24일 5월 25일 5월 26일 5월 27일 5월 28일 5월 29일 6월 1일 6월 2일 6월 3일 6월 4일



도학 교재인 《금남표해록》을 현대식 윤리 교재 『입느냐 벗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각색해보았다.



교육자 최부

《금남표해록》은 역사학계와 문학계에서 주로 연구되어왔다. 그리고 이 책은 명나라 표해를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조선 시대의 많은 표해 기록 중에서 왕명으로 간행이 이루어진 것은 최부의 표해록이 유일하다는 사실을 보아도 그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최부는 그의 문필가로서의 생애보다 사상가이자 교육자로서의 삶에서 더 큰 영향력을 끼쳤다. 금남 최부는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사림관료학자이자 호남 교육계의 원류 중 한 사람이었다.


해남 정씨[2]는 금강동(현 해리)에서 살았는데 해남 정씨와 통혼한 다섯 가문도 모두 금강동에 자리 잡아 이후 금강동은 해남 사족들과 학문의 중심지로 부각된다. 최부는 이곳에 와서 관서재를 열어 많은 후학들을 양성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금남 최부를 해남 인물사의 서막을 연 사람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외손자 유희춘에 의하면, "해남은 본디 바닷가에 치우쳐 있어 옛날에는 문학과 예의(禮儀)도 없었고 거칠고 누추한 고을이었는데, 자신의 외할아버지가 처가인 해남에서 노닐면서 우선 세 제자를 길러냈다"고 했다. 첫째는 진사시에 합격한 어초은(漁樵隱) 윤효정(尹孝貞), 둘째는 조선 중기의 대문호이던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의 숙부인 임우리(林遇利), 셋째는 유희춘 자신과 자신의 형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큰 명성을 얻었던 유성춘(柳成春)의 아버지인 성은(城隱) 유계린(柳桂隣)이었다. 호남을 대표하는 세 가문이 바로 금남의 문하에서 나왔음만 보아도 그의 교육자적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가 짐작할 수 있다. [3] 해남 정씨와 결혼해 해남인이 된 금남 최부는 호남의 4대 학맥 중 한 맥인 최부 학파를 형성하며 해남의 학문 시대를 열었다. 최부는 《소학》이 도학의 교과서로 인식되었던 당시 후학들에게 도학을 가르치던 대표적인 사림의 교육자였다. 최부의 도학적 강직함과 공명정대함은 지지당 송흠과의 일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당대 도학 교육자가 찬술한 최부의 표해록은 교육 서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하다.
  • 최부와 송흠의 청렴


내래이터 최부

최부는 글쓰기에 강했다는 평을 들었다. 1487년 최부가 남긴 서사시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을 보면 그의 역사적, 지리적 지식이 제주의 풍속을 얼마나 잘 설명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은 1653년의 이원진의 《탐라록》에 삽입되어 전해지며, 또 1681년에는 이증도 《남사일록》에 옮겨 놓고 있다. 한 예로 허벅으로 물 긷는 기록 '허벅진 촌 아낙네 물 길러 샘으로 가고(負甁村婦汲泉去)'라는 구절은 15세기에 허벅을 지고 물을 긷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허벅은 물 긷는 용구로서 비교적 먼 거리를 왕래해야 하기 때문에 목이 좁다. 대구덕 안에 허벅을 앉히고, 물이 든 허벅의 입구를 새(茅)로 틀어서 막는다. 돌길이기 때문에 찰랑대는 물이 밖으로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허벅의 구멍을 막는 것이다. 또 허벅은 다른 용도로도 쓰인다. 만일 사돈집에 상(喪)이 났을 때 상가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팥죽을 쑤어갈 때도 허벅은 한몫을 한다. [4] 제주도 연등절에 관한 기록으로 현재 가장 오래된 것도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에 남아있다. 여기에는 15세기 후반 사찰에서 연등이 이루어졌음이 나타난다.[5]


嫌將歲月虛抛擲 세월은 헛되이 버려지기 싫어
照里鞦韆傳自昔 줄다리기와 그네뛰기는 예부터 전해오고
僧刹了無香火時 절에는 향화가 끊이지 않고 피어오르고
騈闐簫鼓燃燈夕 연등 저녁이면 퉁소와 북 소리도 패를 지어 가득하네.

최부는 연등날 밤 사찰에서 행해지는 제주도의 연등 풍속을 묘사하였다. 줄다리기와 그네뛰기가 예로부터 전해져 지금도 시행되는 모습에서 세월은 헛되이 버려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듯이, 연등회의 풍속도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말하려 한다. 연등날 저녁이면 절을 찾는 사람들로 향불이 끊이지 않고 피어오르고 퉁소와 북을 동원하여 잔치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하다고 하였다. 절에 모여 향을 공양하고 악기를 동원하여 왁자지껄한 연등날 저녁을 즐기는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이는 백희가무로 온 나라가 잔치 분위기였던 고려시기 연등회의 풍속이 아직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표현해주고 있다. 국가적으로는 상원연등회가 금지된 시기였으나 민간에서는 고려시기의 연등 풍속의 특징을 잃지 않고 북과 퉁소로 흥을 돋우며 사찰에서 놀이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줄다리기와 그네뛰기는 풍작을 기원하는 놀이였다. 그네뛰기는 봄이 되면 여자들이 생산의 의미나 풍작의 주술적 의미를 담고 하던 놀이였다. 고려시대에는 궁중과 상류사회에서 성행하였고 백희가무에서 그네뛰기를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양반층에서 체통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멀리하였으나 민간에서는 평상시에도 즐겼다. 줄다리기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풍작을 기원하는 농경의식이다. 제주도 연등 풍습을 표현한 최부의 시각에서도 연등회가 제천기농(祭天祈農)의 성격을 이어가고 있음이 나타나고 있다.[6]


최부가 지은 시(詩)로는 조선 중기 때 문인 許筠(1569~1618)이 편찬한 《國朝詩刪》에서 〈讀宋史(독송사)〉가 유일하게 전한다.

이 시는 송나라가 오랑캐 나라에게 빼앗기자 삼백 년 사직이 안타깝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허균은 이 시에 대해 평하기를 “슬프면서도 그 감정을 억눌러 씩씩하고 장하지만 기세가 갑자기 꺾여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보게끔 한다”(許筠, 《國朝詩刪》, 悲壯頓挫 令人改觀.)고 했다. 이는 송나라 역사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과 동시에 그가 《東國通鑑》이라는 역사책을 편찬한 사실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라 하겠다. 후일 南龍翼(1628~1692)이 엮은 詩選集인 《箕雅》와 張志淵이 엮은 《大東詩選》에도 같이 전하고 있다. 최부는 그의 시에서도 역사적인 소재를 내러티브로 연출했다. 이를 보면 최부가 주로 역사적인 소재 로 자신의 이념을 전달하려고 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挑燈輟讀便長吁 책 읽다가 등심지 돋우며 길게 탄식하노니
天地間無一丈夫 천지간에 대장부 하나 없었을까
三百年來中國土 삼백 년 이어온 중국땅을
如何付與老鮮 어찌 교활한 선우에게 주었던가




내러티브 교육자 최부

내러티브라는 교육방식 활용해서 그만의 교육철학을 실현하려고 했던 최부의 의지가 《금남표해록》에 나타난다. 《금남표해록》 전체 151일의 일정 중 도학 교육자 최부가 도학을 통한 조선인 교화를 목적으로 전하는 도학정신, 선비정신, 조선정신이 드러나는 63일(41%)동안 최부의 도학 교육자적 면모를 읽을 수 있다.

  • [EBS 세계테마기행] 중국 명대 운하길을 가다 1 ~ 4부

  • 뜻밖의 중국 견문

  • 역사채널e - The history channel e_표해록_#001

  • 최부 표해록 샌드아트

  • 《国宝档案》 20160301 海丝传奇——崔溥和《漂海录》

  • 최부 표해록의 여정을 찾아서

  • 연합아카이브 표해록의 저자 최부

  • 금남 최부 묘소 1

  • 금남 최부 묘소 2

  • 명나라는 조선을 고구려의 후예로 생각했다


우두외양.png
최부의표류와귀국경로.jpg


출처/참고

  1. Choe Bu
  2. 해남과 초계정씨(草溪鄭氏), 해남군민신문, 2015.11.28
  3. 비극적인 삶 마친 조선의 마르코폴로 '최부(崔溥)'처가 따라 해남 행, 어초은 윤효정 등 해남육현 길러내, 표해록, 고전기행문학의 백미이자 15C 말 중국 문물 연구의 보고, 해남신문, 2012.03.19
  4. 허벅을 지고 가는 제주 여인을 그리다, 제민일보, 2011.11.22
  5. 김찬흡 외 옮김, **역주탐라지**(푸른역사, 2002), p.24-25.
  6. 제주도 영등굿의 유래-연등회에서 영등굿으로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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