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양산
효양산(孝養山), Hyoyangsan
경기도 이천시의 부발읍에 위치한 산이다(고도:172m). 일명 수양산(首陽山)으로도 불린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효양산은 부의 동쪽 9리 되는 곳에 있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지명유래에 대해 옛날 부모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가 이 산중에 살고 있어 지나는 사람마다 이 산이 대단한 효자를 키워냈다고 하여 효양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동쪽 산록에는 서씨(徐氏) 시조 서신일(徐神逸)묘가 있는데, 이천이란 지명의 기원이 되는 고려 태조의 이섭대천(利涉大川)과 관련된 서목(徐穆)이라는 사람도 바로 효양산에 살던 서씨(徐氏)의 일족이라고 한다. 산중에는 은선사 · 약사암 등의 암자가 있고 동남쪽으로 효산사가 있다. 그리고 효양산 하면 생각나는 것이 금송아지 전설인데, 이 산중에 있다는 금송아지를 찾아 옛날 중국 사신이 이곳으로 오다가 한 선인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되돌아가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이를 바탕으로 몇 해 전부터 효양산 전설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효양산 전설문화축제(孝養山 傳說文化祝祭)=서희문화제(徐熙文化祭)
이천시는 외교 협상가로서 장위공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서희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알리고자 서희 선생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역사 문화 축제를 연다.
글로벌 축제를 지향하며, 우리나라 주변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 상황에 주목해 평화적 소통과 교류에 대한 방법을 찾아보고, ‘외교, 평화, 역사’를 테마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관내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서희 선생의 일대기와 외교적 리더십에 관한 역할극, 토론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꿈을 키우며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 미래 사회를 이끄는 리더로서의 성장하도록 한다.
9월에 개최되는 ‘장위공 서희 문화제’는 위드 코로나 시대에 안전하게 즐길 만한 지속 가능한 모델을 제시하며 온·오프라인을 병행해 사전 예약제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한다.
미래의 주역이 될 학생을 대상으로 장위공 서희 선생의 얼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전국미술대회’, 그리고 10월에는 서희 선생 서거 주기 추모제를 개최한다.
장위공 서희(徐熙) 선생을 되새겨 볼 수 있고, 서신일(徐神逸)선생의 은혜 갚은 사슴과 황금송아지 전설이 있는 효양산의 주요 6개소(물명당, 효양정, 금송아지상, 은선사, 서씨(徐氏)시조 서신일(徐神逸)묘, 금광굴)를 탐방하며, 효양산의 청취를 만끽할 수 있다.
효양산(孝養山) 은혜 갚은 사슴 이야기
「은혜 갚은 사슴이야기」는 전국에 걸쳐 전승되고 있는 설화와 각종 설화집류에 수록된 자료를 보면 약 140여 편에 이른다.
「금강산 선녀 설화」,「선녀와 나무꾼」, 「사슴을 구해 준 총각」 등으로도 불리며
가장 유명한 표제는 「나무꾼과 선녀」라고 할 수 있다.
이 설화는 전승 과정에서 여러 삽화가 덧붙으면서 많은 변이형이 형성된 대표적인 민담이다.
이 변이형은 결말에 따라 두 가지로 대별된다.
① 나무꾼이 하늘에 올라가 선녀를 만나 잘 살았다는 행복한 결말,
② 하늘에 올라갔던 나무꾼이 어머니가 보고 싶어 다시 지상에 내려왔다가 금기를 어겨 수탉이 되었다는 비극적 결말이 그것이다. 이 후 각 지역마다 인물과 사건에 따라 다양한 변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천은 실존 인물과 설화가 결합되어 보다 생동감 있는 「은혜 갚은 사슴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슴 한마리가 황급히 나무꾼에게 달려오더니, 사냥꾼이 쫓아오니 숨겨달라고 애원했다.
사슴의 몸에는 화살이 박혀있었다.
나무꾼은 사슴을 숨겨주고 사냥꾼에게는 사슴이 저쪽으로 갔다고 말해 사냥꾼을 따돌렸다.
은혜 갚은 사슴이야기의 전반부다.
전래동화 ‘ 선녀와 나뭇꾼’에서는 목숨을 구한 사슴이 나무꾼에게 선녀가 목욕하는 연못의 위치를 알려준다.
나뭇꾼은 선녀와 결혼해 아이를 낳지만 선녀는 하늘로 돌아간다.
후에 나무꾼은 다시 사슴의 도움으로 하늘에 올라가 다시 선녀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다.
① 이천의 은혜 갚은 사슴과 서희 이천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의 결말은 이와 다르다. ‘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覺)’ 등의 옛 문헌에도 소개되어 있는 은혜 갚은 사슴 이야기는 역사적 인물들의 일대기와 접목돼 보다 생생하고, 드라마틱하다.
사슴을 구해준 사람의 이름은 서신일이다.
그는 여든이 넘도록 자식이 없었다.
사슴의 목숨을 구해준 날 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났다.
산신령은 서 씨에게 “그대가 구한 사슴은 나의 아들”이라며 “곧 나라의 큰 인물이 될 아이를 얻게 될 것이며
자자손손 크게 번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 달 후 정말로 아들이 태어났다.
천수를 다한 서 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슴이 다시 나타나 상주의 옷자락을 물고 이끌었다.
상주는 사슴이 안내한 곳에 서 씨의 묘를 썼다.
서 씨의 아들은 고려 광종 때 내의령(內議令)을 지낸 정민공
서필(徐弼)이다.
서필은 성품이 곧고 바른 말을 잘하는 사람이어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보면 임금에게라도 간언을 서슴지 않았다.
사치를 좋아하는 광종이 신하들에게 금으로 만든 술잔을 하나씩 선물했는데, 서필은 받지 않았다.
왕이 사양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신이 비록 재상 자리에 있다고는 하지만 평소 임금님을 잘 보필하지 못한 터에,
이제 금 술잔을 내려 주시니 더욱 황공하고 분수에 넘치는 일입니다.
의복과 그릇의 쓰임에는 각각 구별이 있어야 하고, 사치와 검소한 정도에 따라 나라의 치란(治亂)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만일 신하들이 모두 금 그릇을 쓴다면 임금님께서는 장차어떤 그릇을 쓰시겠습니까?” 라고 대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필은 아들을 셋 두었는데, 둘째 아들 서희는 거란의 80만 대군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단신으로 적장 소손녕(蕭遜寧)을 만나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외교력만으로 나라를 구했다.
소손녕은 고려가 거란의 땅을 침식하고 있으며, 거란과 땅을 접하고 있는데도
바다 건너 송나라를 섬기고 있어 침입했음을 밝혔다.
근본적인 이유가 후자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던 서희는 “우리나라는 곧 고구려의 옛 터전을
이었으므로 고려라 이름하고 평양(平壤)을 도읍으로 삼은 것이다.
만약, 지계(地界)로 논한다면 상국(上國)의 동경(요양遼陽)도 모두 우리 경내에 들어가니 어찌 침식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압록강 안팎도 역시 우리 경내인데 지금은 여진이 그곳에 도거(盜據)해 완악(頑惡)하고 간사한 짓을 하므로
도로의 막히고 어려움이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심하다.
조빙(朝聘)을 통하지 못하게 된 것은 여진 때문이니 만약에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되찾게 하여 성보(城堡)를 쌓고 도로가 통하게 되면 감히 조빙을 닦지 않겠는가”라고 반박, 설득했다.
서희의 언사와 기개를 본 거란은 싸우지 않고 철병했다.
서희는 그 후로도 북진을 개척해 고려의 국방력을 튼튼히 하는데 힘썼다.
서희의 아들 서눌(徐訥) 또한 정종때 높은 관직에 오른 문신이다.
이처럼,3대가 모두 정승의 지위에 올라 크게 이름을 떨치고, 그 후손들이 번창해 이천 서씨 가문의 일대 중흥을 일으켰다.
후손들은 이 모든것이 신일이 사슴을 구해준 은덕이며, 사슴이 잡아준 서신일의 묘자리가 둘도 없는 명당이라고 여겼다.
효양산(孝養山) 이야기 서신일의 묘가 있는 곳은 이천 효양산(孝養山)이다.
200m가 안되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이천 사람들에게 효양산은 ‘우주산’이다.
그만큼 효양산(孝養山)에는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도 많고,보물과 명당도 많다. 가장 잘 알려진 보물은 금송아지다.
중국 황제가 아침에 세수를 하는데 대야에 금송아지가 보였다.
점쟁이는 이 금송아지가 효양산(孝養山)에 있다고 일렀다.
황제는 금송아지를 몰래 가져오라며 신하를 보냈다.
이천 작별리에 다다른 신하는 머리가 하얀 노인에게 효양산(孝養山)이 어디냐고 물었다.
노인은 “이 길을 계속 걸으면 오천 고을이 나오는데, 오천 고을을 지나 억만리를 가서 다시 이천장을 지나가면 억억다리가 있지.
억억다리를 건너면 구만리벌판이 나오는데 그 건너편에 있는 산이 효양산(孝養山)”이라고 말했다.
노인은 덧붙였다.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께서 중국으로 장사를 가셨는데 하도 오지 않으셔서 일곱 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가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못 만났고, 이 지팡이도 원래 두 자가 넘었는데 다 닳아서 손바닥만큼 짧아졌소.”
이 말을 들은 신하는 금송아지를 포기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다.
이 노인은 금송아지를 지키려는 효양산 산신령이며, 금송아지는 아무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효양산(孝養山)에는 이 베틀로 짠 옷을 입으면 사람의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져 하늘을 날게 된다는 ‘금베틀’과
무엇이든 그릇에 담는 대로 가득 찬다는 ‘화수분’도 있다.
이천문화원 이동준 사무국장은 “구만리뜰이나 억억다리 등은 모두 이천에 실제하는 지명으로,
이런 설화들은 이천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보물에 관한 설화가 보물의 효험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쓰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이천의 미래도 사람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이라고 말했다.
보은담은 은혜를 입은 동물이나 사람이 시혜자(施惠者)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주로 동물인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더 극적이며 상징적인 효과도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동물도 은혜를 갚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당연하지 않느냐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고 본다.
은혜 갚은 사슴 이야기로 대표되는 보은설화는 자유민권과 인권의식, 그리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관점에서 이해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야기는 이야기로서 그야말로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도 은혜를 입으면 갚는다는 단순 사고로 접근하는 것이 이해와 분석에 적절할 것이다.
이야기 내용은 과학적인 증명이나 증거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처음 만들었던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인간과 동물,인간과 식물,즉 인간과 자연이 서로 인격적으로 교류하며 소통이 가능한 존재로 인식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소통은 사실 일방적인 측면을 내재하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은유와 상징, 신화로서 자연에게 인간사회를 유지할 구체적인 바람과 욕망을 투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생활이 어려워도 은혜를 베풀며 성실히 살면 현세에 바라는 욕망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대에도 성행하는 기복신앙과 닮아 있으며,사건의 인과와는 상관없이 선행에는 긍정적인 효과가 따라올 것이라는 바람이 나타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천시는 2005년부터 효양산 전설문화축제를 열어 청소년과 시민들이 고장의 전설과 역사를 알리고, 화합하는 자리를 마련해왔다.
올해부터는‘서희문화제’로 이름을 바꿔 9월 10일 서희테마파크에서 개최한다.
이천시의회 김하식의원은 “효양산 전설문화축제는 효양산이 있는 부발읍에서 읍단위의 작은 행사로 시작됐다.
읍민들과 초등학생들의 백일장을 치르며 서희선생의 외교능력을 통해 화합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이천은 예로부터 살기 좋은 고장으로,주변 지역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래서
전설과 문화적으로도 발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효양산(孝養山)과 서희선생이라는 인물은
이천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 할 만한 역사,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전 국민이 참여하도록 대상을 확대했다.
앞으로 이천의 문화원형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신일(徐神逸)은 통일신라 말 고려 초의 인물이며, 서씨의 시조이다.
서신일의 묘는 부발읍의 주산이라 할 수 있는 효양산 정상 부분에 있다. 풍수에서는 산 정상에 맺는 혈을 천풍혈(天風穴)이라고 한다. 산 아래에 위치한 일반적인 혈과 다르다하여 괴교혈이라 한다. 혈이 산자락 아래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바람과 물 때문이다. 산보다 낮아야 바람을 타지 않고, 물을 만나야 산맥이 멈추어 기를 모을 수 있다. 산 위는 바람이 많이 불고 물이 모이지 않기 때문에 집터나 묘터로 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산 정상이 분지 지형이면 바람을 타지 않고 또한 물이 모인다. 높은 곳에 있을 따름이지 지리오결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묘 뒤에는 현무봉이 있고 그곳으로부터 용이 내려와 서신일 묘에서 끝나 혈을 맺었다. 묘 앞은 늪지로 엄청난 수량의 물이 존재한다. 산 위지만 배산임수의 지형을 이룬 것이다. 현무봉에서 갈라진 능선은 좌청룡과 우백호가 되어 묘지를 안아주고 있다. 백호 자락의 능선이 약간 솟아 안산을 만들었는데 묘는 그곳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곳에 올라오면 편안한 느낌이 든다.
옛날 책에서는 천풍혈은 맺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맺었다하면 대혈을 맺는다고 적고 있다. 그곳에 집을 짓거나 조상 유골을 모시면 가문을 빛낼 출중한 자손이 나온다고 했다. 서신일 묘가 딱 그런 자리다. 9월에는 효양산 자락에서 서희문화제가 열린다. 가을에 좋은 기를 받을 겸 가족과 함께 다녀오길 바랍니다.
이천서씨는 서신일(徐神逸)(아간대부 정2품)- 서필(徐弼)(내의령 종1품) 서봉(徐逢)(광평시랑평장사 정2품) - 서희(徐熙)(내사령 종1품) - 서눌(徐訥)(문하시중 종1품) 서유걸(徐維傑)(좌복야 정2품) 서유위(徐維偉)(장야서령 정3품) 서주행(徐周行)(달성군) - 서정(徐靖)(판삼사사 종1품) 서존(徐存)(병부상서 정3품)-서균(徐鈞)(우복야 정2품) 서린(徐嶙)(판대부사 정2품) 서석(徐碩)(시랑평장사 정2품)-서원(徐元)(평장사 정2품) 서공(徐恭)(판삼사사 종1품) 서순(徐淳(徐諄)(동지추밀원사 종2품) 서성(徐成)(평장사 정2품) 서염(徐廉)(사복부령 종2품)에 걸쳐 칠대(7 대) 동안 연속 재상직에 임명된 고려 최고 문벌 귀족 가문이다.
통일신라시대 아간대부(정2품)를 지내시고 이천(利川)으로 낙향하여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어느 날 화살을 맞고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구해 주었는데, 꿈속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낮에 당신이 구해준 사슴은 나의 자식으로, 사냥군의 화살에 맞아 죽게 된 것을 다행히 당신의 은덕으로 목숨을 구하게 되었으니, 당신의 자손 대대로 재상(宰相)이 되게 하리라"하고 사라졌다. 이때 이미 나이 80세가 넘었으나 부인의 몸에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고려 초기에 나라의 기틀의 튼튼히 한 서필(徐弼)이다. 이어 손자 서희(徐熙)와 증손자 서눌(徐訥) 서유걸(徐惟傑) 서유위(徐惟偉) 서주행(徐周行), 고손자 서정(徐靖) 서존(徐存),서균(徐鈞) 서린(徐璘), 서원(徐元) 서공(徐恭) 서성(徐成) 서순(徐淳),서숭조,서희찬,서릉(徐稜),서효손,서신계, 서린(徐鱗),서성윤,서념,서원경,서충,서신,서윤,서후상,서윤현 등이 15대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무신란 이후에도 이부판사 서신(徐愼 종1품),봉성군 서약진(徐若珍),좌복야 서효리 (徐孝理 정2품),밀직사사 서무질(徐無疾 종2품),중추원사 서숭조(徐崇祖 종2품),판도판서 서진(徐晉 정3품),승지 서욱(徐勖), 부령 서익(徐翼),문하찬성사 서기준(徐奇俊 종2품),정당문학 서희팔(徐希八 정2품),판내시부사 서춘(徐椿 종2품), 문하시중 서릉(徐稜 종1품),대광내의령 서린(徐鱗 종1품), 판도판서 서적(徐迪), 문하시중 서원경(徐元敬 종1품),문하찬성사 서영(徐穎 종2품),동지밀직사사 서신계(徐臣桂 종2품),승지 서녕(徐寧), 판밀직사 서념(徐恬 종2품),판내부사사 서진(徐璡 종2품) 평장사 서충(徐忠 정2품) 평장사 서윤(徐玧 정2품), 판사재사 서효손(徐孝孫 종2품),진현관대제학 서성윤(徐成允 정2품),밀직사 서원(徐遠 종2품), 추밀원사 서후상(徐後祥 종2품), 평장사 서희찬(徐希贊 정2품),밀직사 서영계(徐永桂 종2품), 밀직사 서천량(徐天亮 종2품), 봉익대부 서윤현(徐允顯 종2품),정당문학 서균형(徐鈞衡 종2품),평장사 서인한(徐仁漢 정2품) ,문하시중 서신(徐信 종1품),병부령 서수(徐秀 정2품) ,예빈사 소윤 서첨(徐詹),병부낭중 서저(徐氐), 판도좌랑 서평(徐坪), 예빈소경 서광(徐珖), 감찰어사 서의(徐義),계성군 서원기(徐原奇) 주부 서면(徐冕), 소감 서정(徐程),사인 서단(徐亶),병부시랑 서장기(徐長己),주부 서경의(徐聲宜),소감 서화흡(徐化洽),축하사절 서조(徐助),예빈시윤 서추(徐諏), 어사중승 서염(徐琰), 집의 서연(徐延),내의시랑 서희적(徐希積),병부상서 서희량(徐希亮 정3품),승지 서령(徐領),생원 서영보(徐永甫),중정대부 서선(徐瑄), 만호 서혼(徐琿),소감 서황(徐晃),통직랑 서중린(徐仲麟),별가 서윤공(徐允公),호조전서 서의(徐議 정3품), 병부시랑 서의(徐誼), 병부시랑 서간(徐諫),소감 서시의(徐時義),판전객시사 서익진(徐益進),감무 서천부(徐天富),태관서령 서공기(徐公騏),전공총랑 서능준(徐能(陵)俊),판내부시사 서정수(徐貞壽),요동진무사 서현(徐顯),사마 서관(徐寬) ,판도찬중 서원절(徐元節),비인현사 서유(徐愈), 성균관진사 서문찬(徐文贊) 주부동정 서무(徐茂),봉례공 서박(徐樸),연산공 서직(徐稷), 전서 서의(徐義 정3품),봉정대부 서호덕(徐好德) 등 15대 대대로 많은 재상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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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자로 서시랑도 서석(徐碩 정2품),박사 서선(徐禪),삼국사기 서안정(徐安貞),국성전교수 서인(徐諲),고려화가 서구방(徐九方),고려음악가 승지 서온(徐溫),고려국사 원묘국사 요세(了世),고려대사 서영관, 고려 효자 서식(徐湜),고려 혁명가 서언(徐彦),낭장 서준명(徐俊明),교위 서유정(徐惟挺),서규(徐規)가 화려한 명맥을 유지했다.
고려 황제국 충신으로 사재승 서숭(徐崧),서대창(徐大昌),서필중(徐必重),진봉사 서방(徐昉),위위경지 태사국사 서웅(徐雄),합문통사사인 서연(徐延),예빈시윤 서찬(徐瓚),사복부령 서염(徐廉),정치도감 좌랑 서호(徐浩),항적 서효관(徐孝寬),내수 서양수(徐良守), 기거사인 서언 (徐彦),생원 서복례(徐復禮),공조전서 서보(徐輔), 직제학 서중보(徐仲輔), 중생원 서희준(徐希俊), 사재감정 서광준(徐光俊),통훈대부 서운(徐暈), 장령 서견(徐甄)은 조선이 건국된 뒤에도 충절을 지켜 끝내 벼슬에 오르지 않아 시흥의 충현서원(忠賢書院)에 제향됐다.
묘는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효양산(孝養山)에 있다.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21(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 166-1에서 거행된다.
고려시대 권문세족은 이천 서씨,인주 이씨,해주 최씨,남양 홍씨가 4대 문벌귀족이다. 조선시대에는 이천서씨에서 분파한 대구 서씨(大丘徐氏) 서성(徐渻 증 영의정) 후손이 3대 정승(서종태(徐宗泰 영의정),서명균(徐命均 좌의정),서지수(徐志修 영의정)),3대 대제학(서유신(徐有臣 대제학),서영보(徐榮輔 대제학),서기순(徐箕淳 대제학))을 최초로 6대 연속과 서명응(徐命膺 대제학),서호수(徐浩修 직제학), 서유구 (徐有榘 대제학) 3대 대학자를 연속 배출하여 조선에서는 서지약봉(徐之藥峰)이요.홍지모당(洪之慕堂) 으로 유명했고, 연리광김(延李光金)와 더불어 대구 서씨,풍산 홍씨,연안 이씨,광산 김씨가 조선 최고 4대 양반 가문으로 꼽힌다. 숙종때 이런 일화가 전한다. 영의정 서종태(徐宗泰)를 비롯한 서씨 성을 가진 참판급 이상 중신이 30여명 이었다. 어느날 조회를 소집한 숙종이 용상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니, 오가는 대신들이 대부분 서씨들이라, “마치 어미 쥐가 새끼쥐를 거느리고 다니는 듯 하다!” 라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숙종의 말씀이었으나, 영의정 서종태(徐宗泰)를 어미쥐로 빗대 그 아래 웅성거리는 서씨대신들의 융성함을 나타내는 기막힌 표현이였다.대구 서씨는 달성 서씨라고도 부른다.
대구달성 서씨(달성 서씨 대구 서씨)(大丘達城徐氏)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주행(徐周行 달성군)-서한(徐閈 군기소윤 종3품.차관)-서신(徐愼 이부판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무질(徐無疾 밀직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진(徐晉 판도판서 정3품.장관)-서기준(徐奇俊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영(徐穎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균형(徐鈞衡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 서익진(徐益進 판전객시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침(徐沈 조봉대부 정3품.장관) 서의(徐義 호조전서 정3품.장관) 이다
연산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직(徐稷 연성군(連城君))-서준영(徐俊英 연성군(連城君))- 서보(徐寶 연성군(連城君) 으로 이어진다.
부여 서씨 계보는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춘(徐椿 판내부사사 정2품.부총리 재상) 서박(徐樸 봉례공) 으로 이어진다.
남양당성 서씨 (남양 서씨 당성 서씨) 계보는 서간(徐趕 태사.남양군. 종1품. 국무총리 재상)-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적(徐迪남양군)으로 이어진다.
중화 서씨(中華徐氏) 계보는 단군조선 여수기(余守己)-번한조선(番韓朝鮮) 서우여(徐于餘)-고조선(古朝鮮) 소호(少昊), 고도(皋陶), 백익(伯益)의 아들 약목(若木)-서국(徐國)에 30세 서구왕(駒王=徐駒王), 32세 서언왕(徐偃王)-진나라 재상 서복(徐福)-삼국시대(三國時代) 서선(徐宣),서유자(徐孺子; 徐穉) 서서(徐庶), 오(吳) 나라에는 서성(徐盛),부여 동명왕(東明王),백제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신라 서두라(徐豆羅)- 남송(南宋) 서희(徐煕), 서도(徐道), 서도(徐度), 서숙향(徐叔嚮), 서중융(徐仲融), 서문백(徐文伯), 서사백(徐嗣伯)- 북제(北齊) 서지재(徐之才), 서임경(徐林卿), 서동경(徐同卿)- 원위(元魏) 서건(徐謇), 서웅(徐雄)- 수 나라 서민제(徐敏齊) -.명나라 말기 호족 서수휘(徐壽輝)청나라- 지리학자 서하객(徐震客),대학자 서광계(徐光啓)
목차
가족
가족 관계
- 본인: 서신일(徐神逸 정2품 아간대부(阿干大夫))
- 부인 : 합천 홍씨(陜川洪氏) 홍찬(洪贊)의 딸
- 아들 : 서필(徐弼)(종1품 내의령)
- 며느리 : 평양 황씨(平壤黃氏)
- 손자 : 서염(徐廉)
- 손자 : 서희(徐熙)(종1품 내사령)
- 증손자: 서눌(徐訥) 종1품 문하시중門下侍中)
- 고손녀: 원목왕후 서씨(元穆王后 徐氏)
- 고손자: 서수(徐琇 종1품 문하시중 봉 희양대군)
- 고고손자: 서장기(徐長己 정4품 병부시랑兵部侍郞)
- 고고손자: 서준방(徐俊邦 정3품 형부상서(刑部尙書). 평당 서씨(平當徐氏) 시조)
- 증손자: 서유걸(徐惟傑)(정2품 좌복야)
- 고손자: 서정(徐靖) (정2품 평장사.종1품 판삼사사)
- 고고손자:서균(徐鈞 판장작감사.검교상서우복야.좌복야(尙書左僕射). 정 2품. 부총리)
- 고고고손자: 서원(徐元)(정2품 평장사)
- 원손자:서린(徐鱗 병부상서(兵部尙書).대광내의령 종1품)
- 아들 : 서수(徐秀 병부령(兵部令).종 2품.부총리)
- 손자: 서희준(徐希俊 중생원(中生員). 정 3품. 고려충신. 장관)
- 증손자 : 서운(徐暈 통훈대부 부선공부정(夫繕工副正).도승지(都承旨). 정 2품. 고려 명신.청와대비서실장)
- 고손자 ; 서호(徐顥(灝) 통훈대부 남원부사(南原府使).이조참판(吏曹參判).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정 2품. 전남도지사.서울시장.장관)
- 고고손자 : 서효리(徐孝理.예롱공(豫聾公). 통훈대부(通政大夫). 정 3품. 차관)
- 고고손자 : 서효주(徐孝宙.수롱공(隨聾公) 무공랑별제(務功郞別提) 정 7품)
- 고고손자 : 서효환(徐孝寰.점롱공(漸聾公) 이조판서(吏曹判書). 정 2품. 장관)
- 고고손자 : 서효당(徐孝堂.익롱공(益聾公) 전생서승(典牲署丞 종육품아문(從六品衙門)으로 옥(獄) 에 수감된 죄수(罪囚)를 관장).이조판서(吏曹判書). 정 2품. 조선 충신). 정2품.장관)
- 고고고손자 : 서지(徐祉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공조판서(工曹判書).함경도관찰사(觀察使).이조판서(吏曹判書).병조판서(兵曹判書).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정2품 서울시장.장관)
- 고고고손자 : 서우(徐祐 충순위병절교위(忠順衛秉節校尉).종2품.육군참모총장)
- 고고고고손자 : 서연(徐演 참봉(參奉).종 8품)-이천서씨(利川徐氏) 병부상서공(兵部尙書公)파 강호문중(江湖公派))
- 고고고고손자 : 서옥(徐沃 무안현감(縣監). 군수.이천서씨(利川徐氏) 병부상서공파(兵部尙書公派)송정공파(松亭公派))
- 고고고손자: 서상(徐祥)
- 고손자 ; 서호(徐顥(灝) 통훈대부 남원부사(南原府使).이조참판(吏曹參判).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정 2품. 전남도지사.서울시장.장관)
- 증손자 : 서운(徐暈 통훈대부 부선공부정(夫繕工副正).도승지(都承旨). 정 2품. 고려 명신.청와대비서실장)
- 손자 : 서광준(사재감정.정 3품.장관.기은(箕隱). 고려충신)
- 손자: 서희준(徐希俊 중생원(中生員). 정 3품. 고려충신. 장관)
- 아들 : 서수(徐秀 병부령(兵部令).종 2품.부총리)
- 원손자:서린(徐鱗 병부상서(兵部尙書).대광내의령 종1품)
- 고고고손자: 서영관(穎觀) (헌화사 대사)
- 고고고손자: 서공(徐恭) (정2품 평장사.종1품 판삼사사)
- 고고고손자: 서순(徐淳(徐諄) (종2품 동지추밀원사)
- 고고고고손자: 서저(徐氐 병부낭중. 종 3품. 차관급)
- 고고고고손자: 서평(徐坪 판도좌랑)
- 고고고고손자: 서광(徐珖-예빈소경))
- 고고고고고손자: 서의(徐義 감찰어사.정 3품.장관)
- 고고고고고손자: 서녕(영)(徐寧 진주부사(晉州副使).좌승지(左承旨)정3품.장관)
- 고고고고고손자: 서온(徐溫.승지.정 3품.장관)
- 고고고고고고손자: 서염(徐恬 태관서령 겸 직문한서太官署令兼直文翰署 문하시랑평장사.정 2품. 부수상)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진(徐璡 판내부사사(判內府寺事). 정 3품. 장관)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충(徐忠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종 2품.부총리)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윤(徐玧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정 2품. 부총리)
- 고고고고고고손자: 서염(徐恬 태관서령 겸 직문한서太官署令兼直文翰署 문하시랑평장사.정 2품. 부수상)
- 고고고고고손자: 서의(徐義 감찰어사.정 3품.장관)
- 고고고손자: 서성(徐成) (정2품 평장사)
- 고고고손자: 서염(徐廉) (종2품 사복부령)
- 고고고손자: 서원(徐元)(정2품 평장사)
- 고고손자:서균(徐鈞 판장작감사.검교상서우복야.좌복야(尙書左僕射). 정 2품. 부총리)
- 고손자: 서정(徐靖) (정2품 평장사.종1품 판삼사사)
- 고고손자: 서존(徐存) (정3품 병부상서 태원군)
- 고고고손자: 서청습(徐淸習) (금오위별장 동정(金吾衛別將同正).판전의시사(判典醫寺事 종2품)
- 고고고고손자:서효리(徐孝理) 문림랑(文林郞) 태창서승(太倉署丞). 좌복야(尙書左僕射).정 2품)
- 고고고고고손자:서찬(徐贊) 백주지사 중현대부(中顯大夫).감문위 대호군(대장군).정당문학(政當文學.종 2품)
- 고고고고고고손자:서희팔(徐希八) 흥위위 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 부제학.정당문학(政當文學)
- 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춘(徐椿 부여서씨파(扶餘徐氏派 대종) .판내부사사((判內府寺事). 정 2품)
- 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릉(서능)(徐稜 장성서씨파(長城徐氏派)=이천서씨(利川徐氏) 절효공파(節孝公派)).문하시중(門下侍中). 종 1품)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준(徐俊 대장군(大將軍). 종 3품.차관. 공신)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민경(徐敏敬 상장군(上將軍). 정 3품. 장관)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정희(徐廷希 상장군(上將軍). 정 3품.장관)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 서홍찬(徐洪贊 상장군(上將軍). 정 3품.장관)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인조(徐仁朝 상장군(上將軍). 정 3품.장관)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원절(徐元節 판도찬중. 차관)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영계(徐永桂 밀직사(密直使).종 2품. 부총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천량(徐天亮 밀직사(密直使).정 2품. 부총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식(徐湜 진안감무(晉安監務). 시장)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천량(徐天亮 밀직사(密直使).정 2품. 부총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영계(徐永桂 밀직사(密直使).종 2품. 부총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원절(徐元節 판도찬중. 차관)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인조(徐仁朝 상장군(上將軍). 정 3품.장관)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 서홍찬(徐洪贊 상장군(上將軍). 정 3품.장관)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정희(徐廷希 상장군(上將軍). 정 3품.장관)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민경(徐敏敬 상장군(上將軍). 정 3품. 장관)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준(徐俊 대장군(大將軍). 종 3품.차관. 공신)
- 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박(徐樸(부여서씨(扶餘徐氏) 봉례공파(奉禮公派))
- 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적(徐迪 판도판서. 정3품.남양(당성)서씨파(南陽((唐城)徐氏派)
- 원손자: 서원길(교리공(校理公))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직(徐稷(연산서씨파(連山徐氏派)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준영(徐俊英 연성군(連城君)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보(徐寶) 연성군(連城君)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의민(徐義敏 참군(參軍))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종수(徐宗秀 현감(縣監))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의민(徐義敏 참군(參軍))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보(徐寶) 연성군(連城君)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준영(徐俊英 연성군(連城君)
- 고고고고고고손자:서희팔(徐希八) 흥위위 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 부제학.정당문학(政當文學)
- 고고고고고손자:서찬(徐贊) 백주지사 중현대부(中顯大夫).감문위 대호군(대장군).정당문학(政當文學.종 2품)
- 고고고고손자:서효리(徐孝理) 문림랑(文林郞) 태창서승(太倉署丞). 좌복야(尙書左僕射).정 2품)
- 고고고손자: 서청습(徐淸習) (금오위별장 동정(金吾衛別將同正).판전의시사(判典醫寺事 종2품)
- 증손자: 서유위(徐惟偉)(정3품 장야서령)
- 고손자: 서면(徐冕 정4품 주부)
- 고고손자: 서린(徐嶙) (정2품 판대부사)
- 고고고손자: 서찬(徐瓚 (정4품 장령)
- 고고고고손자: 서인(徐諲 교수(학자)
- 고고고고고손자: 서욱(徐勖 정3품 승지)
- 고고고고고고손자: 서효손(徐孝孫 판사재사 종 2품.부수상)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유(徐愈 정2품 예조판서(禮曹判書).이성군(利城君).양경공파(良敬公派)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사천(徐思川)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양근(徐楊根)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경흥(徐敬興.정3품 목사(牧使)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미수(徐眉壽.사직(司直). 정5품.국장)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석손(徐碩孫. 모의당공(慕義堂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세호(徐世豪. 연순교위(衛尉)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희안(徐希顔. 사용공(司勇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세호(徐世豪. 연순교위(衛尉)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석손(徐碩孫. 모의당공(慕義堂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미수(徐眉壽.사직(司直). 정5품.국장)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진(徐晋 정3품 사재감정 교리공파(校理公派))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유(徐愈 정2품 예조판서(禮曹判書).이성군(利城君).양경공파(良敬公派)
- 고고고고고고손자: 서효손(徐孝孫 판사재사 종 2품.부수상)
- 고고고고고손자: 서욱(徐勖 정3품 승지)
- 고고고고손자: 서인(徐諲 교수(학자)
- 고고고손자: 서찬(徐瓚 (정4품 장령)
- 고고손자: 서린(徐嶙) (정2품 판대부사)
- 고손자: 서면(徐冕 정4품 주부)
- 증손자: 서주행(徐周行)(달성군)
- 고손자: 서한(徐閈) (정4품 군기소윤)
- 고고고손자: 서신(徐愼 정2품 이부판사)
- 고고고고손자: 서무질(徐無疾 종2품 밀직사)
- 고고고고고손자: 서진(徐晉 정3품 판도판서)
- 고고고고고고손자: 서기준(徐奇俊 정2품 문하시중찬성사)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영(徐穎 정2품 문하시중찬성사)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균형(徐鈞衡 종2품 정당문학)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익진(徐益進 종2품 판전객시사)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영(徐穎 정2품 문하시중찬성사)
- 고고고고고고손자: 서기준(徐奇俊 정2품 문하시중찬성사)
- 고고고고고손자: 서진(徐晉 정3품 판도판서)
- 고고고고손자: 서무질(徐無疾 종2품 밀직사)
- 고고고손자: 서신(徐愼 정2품 이부판사)
- 고손자: 서한(徐閈) (정4품 군기소윤)
- 증손자: 서눌(徐訥) 종1품 문하시중門下侍中)
- 손자 : 서영(徐英)
- 동생 : 서신통(徐新通)
- 조카 : 서목(徐穆)(종1품 문하시중.이천백)
[[2]]
서씨일가연합회 서일연(徐氏一家聯合會) 서용관 회장 서씨 시조 서신일 묘소 참배 [[3]]
달성서씨 서진 시조묘소 참배 [[4]]
대구서씨 서한 시조묘소 참배 [[5]]
연산서씨시조 서준영 시조묘소 참배 [[6]]
이천서씨 대종회 [[7]]
서씨 분파
몽어(夢漁) 서문중(徐文重) 서상공(徐相公)이 대구 서씨 보(大丘 徐氏 譜 – 1702년간) 서문에 이르기를 서씨(徐氏)는 애당초 두 관적(貫籍)이 없었는데 뒤에 8파로 나뉘었으니 이천(利川) 달성(達城) 대구(大丘) 장성(長城) 연산(連山) 남평(南平) 부여(扶餘) 평당(平當) 남양(南陽) 당성(唐城)이 이것이다. 그 분파된 이유인즉 문헌에 증거가 없어 알 수는 없으나 대개 이천(利川)의 선조는 아간공(阿干公) 서신일(徐神逸)이요. 대구(大丘)의 선조는 서한(徐閈)이요. 달성(達城)의 선조는 서진(徐晋)이요. 장성(長城)의 선조는 서능(徐稜 문하시중.종1품)이요. 연산(連山)의 선조는 서보(徐寶 연성군)요. 남평(南平)의 선조는 서린(徐鱗 대광내의령.종1품)이요. 부여(扶餘)의 선조는 서수손(徐秀孫)이요. 평당(平當)의 선조는 서준방(徐俊邦 형부상서.정3품)이요. 남양 서씨(南陽 徐氏)의 선조는 서간(徐趕)이요. 당성 서씨(唐城 徐氏)의 선조는 서득부(徐得富)이니 계파를 따져 보면 모든 서씨(徐氏)가 다 이천(利川)에서 나왔고 나머지 7관(七貫)은 곧 이천(利川)의 별파라 했다. 또 의성(義城) 김씨(金氏)의 족보를 보니 서씨(徐氏)의 선조(先祖)는 기자(箕子)로부터 나왔고 신라말년(新羅末年)의 서신일(徐神逸)이 있었고 고려초에 서목(徐穆)이 있었으니 이천서씨(利川徐氏)는 그 후손이요. 대구(大丘),봉성(峯城),남양(南陽),당성(唐城)이 이천에서 다 같이 나뉘었으니 서신일(徐神逸)의 후손이라 한다. 동국의 서씨(徐氏)는 모두 아간(阿干)을 선조로 함에 의심이 없고 또 몽어(夢漁) 서문중(徐文重)의 박식원견으로 반드시 고증을 거쳐서 그 족보 끝에 썼을 것으로 생각되어 우리 서씨(徐氏)가 타족(他族)과 다른 점이다.
1742년 이천 서씨(利川徐氏) 문중에서 간행된 족보인 《임술보》(壬戌譜) 서문에는 “무릇 나뭇가지가 천이라도 뿌리는 하나요, 물 갈래가 백이라도 근원은 하나이니 우리나라에 달성(達城), 대구(大丘), 부여(扶餘), 평당(平當), 장성(長城), 연안(延安), 전주(全州), 남평(南平), 남양(南陽), 당성(唐城)의 서씨(徐氏)중에 누가 아간공(阿干公)을 조상으로 해서 나뉜 자가 아니랴. 아간(阿干)공의 줄거리는 이천(利川)이다”라고 쓰여 있어, 부여 서씨(扶餘徐氏)가 이천서씨(利川徐氏)의 한 갈래임을 밝히고 있다.
이천 서씨(利川徐氏)의 족보 「계미보癸未譜(1763년)」 서문에 보면, 우리나라 서씨(徐氏)는 3관(貫)이 저명한데, 이천조(利川祖)는 아간(阿干) 서신일(徐神逸)이고 부여조(扶餘祖)는 백제의 온조왕(溫祚)이며, 달성조(達成祖)는 소윤(少尹) 서한(徐閈)이라고 했다. 이천 서씨(利川徐氏), 달성 서씨(達城徐氏), 부여 서씨(扶餘徐氏)는 아간대부 서신일(阿干大夫 徐神逸)의 후손이라고 참찬(參贊)을 지낸 달성인 서명응(達城人 徐命膺)이 썼다.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효양산)에 묘소와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서신일(徐神逸)의 음덕(陰德)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
서신일(徐神逸)은 이천(利川) 사람으로, 고려(高麗) 초에 개성(開城) 교외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산에 갔을 때, 사슴이 뛰어왔다. 가만히 보니, 사슴이 화살을 맞고 있었다. 그는 살을 뽑아주고, 사삼을 숨겨 주었다.
얼마 후 사냥꾼이 와서 사슴 간 곳을 물을 때, 다른 곳을 가리켜 주어 사슴을 살려 주었다. 그날 밤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당신이 오늘 살려 준 사슴은 내 아들이오. 당신 때문에 내 아들이 살았으니, 대단히 고맙다고 하며, 당신의 자손들은 대대로 재상(宰相)이 될 것이라 하고는 사라졌다.
그 후 서신일(徐神逸)은 나이 80에 아들 서필(徐弼)을 낳았다. 서필(徐弼)은 명상(名相)이었고, 서필(徐弼)의 아들 서희(徐熙)는 요(遼) 나라의 동경유수 소손녕(蕭遜寧)과 봉산군(蓬山郡)에서 만나 담판하여 요(遼)의 공격을 막아 냄으로써 유명하였고, 서희(徐熙)의 아들 서눌(徐訥)은 고려 8대 왕 현종(顯宗)의 장인(丈人)이 되었다. 그는 현종(顯宗), 9대 덕종(德宗), 10대 정종(靖宗) 등 3대의 명상(名相)으로 후에 정종(靖宗) 묘정(廟廷)에 배향(配享)되는 등 역대로 내려오며 이름을 날렸다.
서공(徐恭)은 서희(徐熙)의 현손(玄孫)으로, 18대 의종(毅宗) 때 서경에 같이 가 문무관과 함께 활쏘기를 할 때 서경 사람은 잘 맞추었으나, 종신(從臣) 중에는 한 사람도 맞추지 못하여 왕이 매우 불쾌하게 여기었을 때 서공(徐恭)이 두 번 맞추어 왕을 기쁘게 하였다.
그 후 서공(徐恭)은 양계병마사(兩界兵馬使)를 두 번 지냈고, 재상(宰相)이 된 후에도 더욱 겸손하였다. 그 중에도 경박(輕薄)한 문사(文士)들을 질시하였고, 무인(武人)을 예로 대우해 주었다. 의종(毅宗) 때 정중부(鄭仲夫)가 문신을 살해할 때 중방(重房)에서 순검군(巡檢軍) 22명을 보내어 그의 집을 호위해 준 일도 있었다.
이와 같이 서씨(徐氏) 집안은 고려 초기부터 혁혁한 집안으로 내려왔다. 모두 사슴을 살려 준 은덕(隱德)이라 한다. -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 -
효양산 전설문화축제(孝養山 傳說文化祝祭)
장위공 서희(徐熙) 선생을 되새겨 볼 수 있고, 서신일(徐神逸)선생의 은혜 갚은 사슴과 황금송아지 전설이 있는 효양산의 주요 6개소(물명당, 효양정, 금송아지상, 은선사, 서씨(徐氏)시조 서신일(徐神逸)묘, 금광굴)를 탐방하며, 효양산의 청취를 만끽할 수 있다. 서희문화제(徐熙文化祭)로 명칭 변경
서씨 시조 서신일 추향대제(徐氏 始祖 徐神逸 秋享大祭)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19(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 166-1에서 거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