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혼(慶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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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498년(연산군4)~1568년(선조1) = 71세]. 조선 중기 중종(中宗)~명종(明宗) 때 활동한 문신. 자는 언회(彦晦)이며,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이조참판경세청(慶世淸)의 아들이다. 모재(慕齋)김안국(金安國)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김안국과 경세청은 모두 김종직(金宗直)의 문인(門人)이었다.

중종~인종 시대 활동

1533년(중종28) 36세의 나이로 별시(別試)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예문관(藝文館)검열(檢閱)에 보임되었다. 1534년 퇴계(退溪)이황(李滉)을 천거하였다가 실권자 김안로(金安老)의 미움을 받아서 파면되었다. 그 뒤 1539년(중종34) 병조좌랑으로 승진하면서부터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쳐 의정부(議政府)검상(檢詳)에 이르렀다. 1543년(중종38) 사헌부(司憲府)장령(掌令), 사간원(司諫院)헌납(獻納)을 거쳐서 성균관(成均館)직강(直講)으로 옮겼다. 1544년 사간원사간(司諫)으로 임명되자,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화(禍)를 당한 조광조(趙光祖) 등을 신원(伸寃)할 것을 상소하였다.

1545년(인종1) 사헌부집의(執義)를 거쳐서 1546년 의정부검상·사인(舍人)에 이르렀다. 한동안 벼슬을 버리고, 고향 경기도 여주[驪江]로 돌아가서 한가하게 지냈는데, 생활이 곤궁하고 청빈(淸貧)하기가 가난한 선비와 같았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칭송하였다.

명종 시대의 활동

1547년(명종2) 예빈시(禮賓寺)정(正)을 거쳐 승문원(承文院)판교(判校)로 옮겼고, 1548년 홍문관(弘文館)직제학(直提學)에 임명되었다가 정3품상 통정대부(通政大夫)병조참지(參知)로 승진하였다. 1549년(명종4) 사간원대사간(大司諫)에 임명되었다가, 홍문관부제학(副提學)으로 옮겼는데, 덕망이 높은 노인이라고 하여, 종2품하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승진시키고 논밭과 가옥을 하사하였다. 명종이 특별히 금권(金圈)을 하사하여, 집안의 가보(家寶)로 삼았다.

1550년(명종5) 병조참의를 거쳐, 홍문관부제학·직제학으로 승진하여 춘추관(春秋館)편수관(編修官)을 겸임하며 『중종실록(中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51년(명종6) 예조참의를 거쳐, 청홍도관찰사(淸洪道觀察使: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중 보우(普雨)를 중용하고 선교 양종(禪敎兩宗)의 선과(禪科)를 설치하려고 하자,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 뒤 공조참의, 이조참의, 병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559년(명종14) 우부승지(右副承旨), 좌부승지(左副承旨)를 지내면서 정성껏 왕명을 출납하니, 명종이 특별히 종2품상 가정대부(嘉靖大夫)로 승진시켰다. 1561년(명종16) 장례원(掌隷院)판결사(判決事)가 되었다가 이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미처 사은숙배(謝恩肅拜)도 하지 못한 채 진복창(陳復昌)의 무고(誣告)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서 파면되었다. 그 뒤 1563년(명종18) 5월 오위장(五衛將)이 되었다가, 중추부(中樞府)동지사(同知事)가 되었다. 1568년(선조1) 5월에 죽으니, 나이가 71세였다.

성품과 일화

성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기질(氣質)이 비범하고 덕스러운 기국(器局)이 있었다. 중형(仲兄) 경심(慶深)과 같이 김안국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는데, 김안국은 그의 재능과 행실을 소중히 여기고 앞길이 원대(遠大)할 것을 기대하여 고종 4촌 누이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대체로 밖으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안으로는 주견과 지조를 지니고서 성실과 신의를 바탕으로 청렴함과 검소함을 지켰다. 그러므로 조정에서 30여 년 동안 벼슬하면서 여러 차례의 변고(變故)를 겪었으나 끝까지 자신에게 결점이 없었으므로 무사할 수 있었다.

묘소와 비문

묘소는 경기도 여주(驪州) 양화리(楊和里) 선영(先塋)에 있는데, 윤증(尹拯)이 지은 신도비명(神道碑銘)이 남아있다.

관력, 행적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인종실록(仁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보감(國朝寶鑑)』
  •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 『청음집(淸陰集)』
  • 『소재집(蘇齋集)』
  • 『용주유고(龍洲遺稿)』
  • 『희암집(希菴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