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추부(中樞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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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 당상관 가운데 맡은 일이 없는 자를 소속시켜 대우하던 서반(西班)의 정1품 관서.

개설

서추(西樞) 또는 홍추(鴻樞)·추부(樞府)·추성(樞省) 등으로도 불렀다. 1466년(세조 12) 이전의 중추원(中樞院)을 중추부로 개칭하였다. 특별한 맡은 일이 없는 문·무 당상관을 소속시켜 대우하던 관서이다. 서반의 정1품 관서이며, 청사는 한성부 서부 적선방(積善坊), 오늘날의 종로구 세종로 일대에 위치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무백관의 관제를 정할 때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중추원을 설치하였다. 당시 중추원은 계복(啓復) 및 왕명 출납과 병기(兵機)·군정(軍政)·숙위(宿衛)·경비(警備) 등과 인사 등을 관장하도록 규정되었다. 정2품 판사(判事) 1명과 종2품의 사(使) 1명, 지사(知事) 2명, 동지사(同知事) 4명, 첨서(僉書) 1명, 부사(副使) 6명, 학사(學士) 1명, 상의원사(商議院事) 3명 및 정3품의 도승지(都承旨) 1명, 좌승지 1명, 우승지 1명, 좌부승지 1명, 우부승지 1명과 정7품의 당후관(堂後官) 2명 등을 두었다. 이들 가운데 판사와 사 이하 학사까지의 관직자는 건국 초 국정 운영을 주도하던 도평의사사에 참여하면서 국정의 논의 및 결정을 주도하였다.

이후 관제 개편 과정에서 중추원의 기능은 약해졌다. 1393년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가 설치되어 군사권을 장악하면서 중추원의 기능이 약화되었다. 이어 1400년(정종 2) 관제 개편 때 중추원과 의흥삼군부를 합해 삼군부를 만들고, 별도로 승정원을 설치해 왕명 출납 기능을 옮기면서 중추원은 혁파되었다. 한편 1403년(태종 3) 삼군부 아래에 도총제와 총제·동지총제·첨총제 등을 둔 도총제부를 두어 군사를 통솔하도록 하였는데, 1432년(세종 14) 3월 삼군도총제부가 군정을 관할하는 일이 없어 이름과 실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지되고 대신하여 중추원이 다시 설치되었다(『세종실록』 14년 3월 16일).

중추원은 이후 1466년 1월 관제 개정 시 중추부로 개편되면서, 영원사(領院事)를 영사(領事)로, 판원사(判院事)를 판사로, 지원사(知院事)를 지사로, 동지원사(同知院事)를 동지사로, 첨지원사(僉知院事)를 첨지사(僉知事)로 개칭하여 『경국대전』에 규정되었다.

조직 및 역할

직제는 『경국대전』에 따르면, 정1품 영사 1명, 종1품 판사 2명, 정2품 지사 6명, 종2품 동지사 7명, 정3품 당상관인 첨지사 8명, 종4품 경력 1명, 종5품 도사 1명 등으로 규정되었다. 이속으로는 서리 5명과 서사(書寫) 1명, 고지기 1명, 사령 8명, 군사 5명 등이 배정되었다.

중추부는 문무 당상관으로서 맡은 관직이 없는 자를 우대하기 위해 만든 관서이므로, 특별한 역할이나 임무는 없었다. 다만 중추부 소속 당상관은 돌아가며 상참(常參)에 참석하도록 규정되기도 하였다.

변천

영조대 편찬된 『속대전』에서는 동지사 1명이 증원되었는데, 증원된 1명은 첨지사 3명과 함께 위장(衛將)체아직(遞兒職)으로 삼도록 하였다. 아울러 『속대전』에는 영사 등의 제수에 대한 규정 등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먼저 의정(議政)으로서 면직된 자는 중추부 관직에 제수하되, 만약 영사와 판사가 모두 정원이 찼을 때는 판사를 추가하여 제수하도록 하였다. 또한 지사와 동지사, 첨지사에는 의관과 역관도 제수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다만 그 임기를 30개월로 제한하였다. 또한 노인직으로서 품계를 올려 동지사와 첨지사에 제수된 자는 임기를 3개월로 하도록 규정되었다.

이후 정조대 편찬된 『대전통편』에서는 대신이 아닌 자는 영사에 임명할 수 없도록 규정하였고, 이조·예조·병조 판서를 역임하지 않은 자는 판사에 임명할 수 없도록 하였다. 또 노인직으로 정2품 품계인 자헌대부를 받은 자는 문·무·음관을 막론하고 4품의 실직을 지내지 않으면 지사에 임명할 수 없게 하였다.

고종대 편찬된 『대전회통』에서는 종5품 도사가 2명이 증원되어 모두 3명의 정원으로 규정되었다. 이 밖에도 100세 이상이 된 자가 있으면 동지사에 정원 외로 자리를 마련하여 추천해서 임명하도록 하였다. 지사나 동지사, 첨지사 등에 정원 외로 제수한 사람은 임기를 1개월로 하고 기간이 지나면 파직하도록 하였다. 또 관상감 소속의 기술관도 역관이나 의관과 같이 추천해서 제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다시 중추원으로 개칭되었으며, 관사도 적선방에서 경복궁 영추문(迎秋門) 밖에 있는 대루원(待漏院)으로 옮겨졌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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