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초(胡椒)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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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호초 |
한글표제 | 호초 |
한자표제 | 胡椒 |
대역어 | 후추 |
관련어 | 부초(浮椒) |
분야 | 생활·풍속/식생활/음식 |
유형 | 식재료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주영하 |
생산지 | 인도, 인도네시아 |
수확시기 | 수입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호초(胡椒)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종실록』 6년 8월 11일, 『성종실록』 19년 6월 15일, 『성종실록』 22년 5월 28일 |
음식의 양념으로 쓰는 후추나무의 열매.
개설
후추는 한반도에서 재배되지 않는 향신료이다. 고려 때부터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서 들여왔다. 조선초기에는 일본의 대마도 섬에서 많은 후추를 진상하였다. 조선초기만 해도 음식에 들어가는 식재료보다는 약재로 더 많이 쓰였다. 특히 여름에 기운을 북돋우는 약재로서 등급에 따라 관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조선중기 이후에 점차 육고기의 양념으로 자주 쓰였다.
원산지 및 유통
후추의 원산지는 인도이다. 기원전 100년쯤에 힌두교를 믿던 인도인들이 인도네시아 자와 섬에 정착하면서 자와 섬에서도 후추가 재배되기 시작했다. 고려 창왕(昌王)대에는 유구국 중산왕(中山王)이 그 지방의 산물 가운데 하나로 후추 300근을 바쳤다고 한다.
조선초기에 인도네시아에서 온 진언상(陳彦祥)이란 인물이 있었는데, 후추 상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에서는 조봉대부(朝奉大夫) 서운부정(書雲副正)을 제수하였다(『태종실록』 6년 8월 11일). 일본의 대마도에서는 수시로 후추·정향·백단향 따위를 보내면서 삼베와 비단은 물론이고 쌀·범종·불경 등을 요구하였다. 그들이 조선왕실에 보낸 물품 중 대부분은 자신들의 토산품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 구한 것들이었다(『성종실록』 19년 6월 15일). 이때 조선은 성리학을 내세워 상업을 아주 낮게 본 데서 후추 무역에 대한 관심이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후추는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한 향신료나 약재는 아니었다.
연원 및 용도
조선초기 전순의(全循義)가 집필한 『산가요록(山家要錄)』의 조리법 230가지 중에서 오로지 ‘치장’이란 음식에만 후추가 들어갔다. 후추는 조선초기만 해도 음식에 들어가는 식재료보다는 약재로 더 많이 쓰였다. 『동의보감(東醫寶鑑)』「탕액편(湯液編)」에서는 “성질은 몹시 따뜻하며 맛은 맵고 독이 없으며 기를 내리고 속을 따뜻하게 하며 담을 삭이고 장부의 풍과 냉을 없애며 곽란과 명치 밑에 냉이 있어 아픈 것과 몸을 차고 습하게 함으로써 생기는 병인 냉리(冷痢)를 낫게 한다. 또한 모든 생선과 고기 그리고 버섯 독을 풀어 준다. 원산지는 남방이며 생김새는 우엉 씨와 비슷하며 양념으로 쓴다. 양지 쪽으로 향하여 자란 것이 후추인데 가루 내어 약으로 쓰며 일명 부초(浮椒)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이로 인해 여름에 더위를 물리치려 차가운 것을 많이 먹었을 때 후추가 약으로 쓰였다.
이런 사정은 『성종실록』에 자세하게 나온다. 성종은 글을 내려서 신하들에게 나누어 줄 후추의 양을 정해 주었다. “여름에 쓸 약 후추를 나누어 주는데, 의정부(議政府)의 삼정승(三政丞)과 영돈녕(領敦寧) 이상의 관원에게는 각기 6두(斗)씩 주고, 의정부와 육조(六曹)의 2품 이상 관원과 한성부(漢城府)의 당상관(堂上官)과 도총관(都摠管)과 충훈부(忠勳府)와 중추부(中樞府)의 2품 이상 관원과 대사헌(大司憲)과 돈녕부(敦寧府)의 2품 이상 관원과 예문관(藝文館)의 2품 당상관에게는 각기 4두씩 주고, 승정원(承政院)의 당상관과 대사간(大司諫)과 육조의 당상관과 부제학(副提學)과 중추부의 당상관과 여러 위(衛)의 장수와 홍문관(弘文館)의 주서(注書)에게는 각기 3두씩 주고, 사헌부(司憲府)·사간원(司諫院)·예문관 관원에게는 각기 2두씩 주고, 종친(宗親) 1품에게는 각기 6두씩 주고, 의빈부(儀賓府)의 1품에게는 6두를, 2품에게는 4두를 주도록 하라.”(『성종실록』 22년 5월 28일)
조선중기에 집필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서는 후추의 사용이 증가하여 95조목의 조리법 중에서 후추가 들어간 것이 무려 26회나 된다. 한글 필사본인 『음식디미방』에서는 후추를 ‘호쵸’라고 적었다. 후추는 주로 고기와 생선을 주재료로 한 데서 쓰였다. 그 횟수나 양도 많은 것으로 보아 17세기가 되면 고기와 생선의 비린내를 잡는 데 후추가 천초, 생강과 함께 매우 효과적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후추는 음식에 들어가는 양념으로 쓰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계속해서 약재로 이용되었다. 왕실의 잔칫상에도 올랐던 이숙(梨熟)은 후추 알갱이를 배에 박아서 뜨거운 물에 우려낸 음료수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동의보감(東醫寶鑑)』
- 『산가요록(山家要錄)』
-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 『자경전진작정례의궤(慈慶殿進爵整禮儀軌)』
- 조흥국, 「조선왕조 초기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마자파힛 왕국 간 접촉」, 『동아연구』55권 , 2008.
- 주영하, 「한 사대부 집안이 보여준 다채로운 식재료의 인류학」, 『선비의 멋 규방의 맛: 고문서로 읽는 조선의 음식문화』, 글항아리, 2012.
- 주영하, 「한국 향신료의 역사」, 『향신료의 지구사』, 휴머니스트,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