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서(官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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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원이 소속되어 근무한 중앙과 지방의 관청.

개설

관서(官署)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고려시대 말의 관제를 계승하여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문하부(門下府) 이하 100여 개의 중앙 관청과, 경기좌도·동북면 등 7도(道) 2면(面)을 두고 그 아래에 계림부윤부·전주부윤부 이하 300여 개의 군현을 두면서 비롯되었다. 이후 근대적 관제로 개편되는 조선시대 말까지, 국정 운영·관제 정비·재정 절감·변란·반란 등의 이유로 여러 번에 걸쳐 관서가 혁파·신설·통합·승강·개칭되고 군현이 통합·승강되는 등의 변천을 겪으면서 운영되었다.

태종 때는 개국 이래의 정2품 이상 아문의 합의체인 도평의사사가 중심이 된 관서 체제에서 의정부·육조가 중심이 된 관서 체제로 이행되었고, 그 뒤 세종 및 세조 연간에 대대적인 정비를 거쳐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법제화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비변사·오군영·선혜청 등을 비롯한 여러 정치·군사·재정 관련 관서가 추가로 설치되고, 여러 정3품 이하 관서가 강등·혁파되면서 운영되는 가운데 비변사가 국정 운영의 중심에 자리하였다. 『경국대전』에는 의정부·중추부 이하 100여 개의 중앙 관서와 8도·329군현·74진 등 450여 개의 지방 관서가 편제되었는데, 이후 1746년(영조 22)에 편찬된 『속대전(續大典)』에는 113개의 중앙 관서와 460여 개의 지방 관서가, 1785년(정조 9)에 간행된 『대전통편(大典通編)』에는 111개의 중앙 관서와 540여 개의 지방 관서가 편제되었다. 그 뒤 1865년(고종 2)에 편찬된 『대전회통(大典會通)』에 따르면 111개의 중앙 관서와 490여 개의 지방 관서로 조정되었는데, 이후에는 큰 변동 없이 조선시대 말까지 운영되었다. 1894년(고종 31)과 1895년 이른바 갑오개혁 과정에 대대적인 관서의 변화를 거쳤다.

내용 및 특징

“무릇 직함은 먼저 계(階)를 쓰고, 다음에 사(司)를 쓰고, 그다음에 직(職)을 쓴다[凡職銜 先階 次司 次職].”라는 『경국대전』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관원이 받는 사령장인 고신(告身)에는 성명과 품계, 관서, 관직이 적혀있었다. 예컨대 1596년(선조 29)에 부호군과 관찰사에 제수된 박홍로(朴弘老)의 경우 고신에,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 ‘통정대부수[전라도]관찰사(通政大夫守[全羅道]觀察使)’라고 기록되어 있다. 먼저 계에 해당하는 ‘절충장군·통정대부’를, 다음으로 관계가 관직보다 높거나 낮을 때에 기재하는 ‘행·수’를, 그 다음에 사에 해당하는 ‘용양위·전라도’를, 마지막으로 직에 해당하는 ‘부호군·관찰사’를 순차대로 기록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사(司)에 해당하는 용양위·전라도가 바로 부호군이자 관찰사인 박홍로가 소속되어 근무한 관서를 가리킨다.

조선 개국과 함께 관서가 성립될 때 중앙 관서는 정1품아문~종9품아문이 망라되고, 지방 군현은 그 읍격(邑格)이 종2품 부윤부(府尹府), 종4품 지군수관(知郡守官), 종5품 현령관(縣令官), 종6품 감무관(監務官)은 상정되었지만, 대도호부사관(大都護府使官)·목사관(牧使官)·도호부사관(都護府使官)은 3품관으로 통용되다가 1466년(세조 12)과 1431년(세종 13)에 모든 정7품~종9품의 참하(參下) 아문이 정5품~종6품 참상(參上) 아문으로 승격되거나 혁거되고 대도호부사관·목사관이 정3품관 도호부사관이 종3품관으로 상정되면서 정립된 뒤 조선시대 말까지 계승되었다. 『경국대전』에는 모든 관서가 크게 중앙 관서와 지방 관서로 구분되었으며, 중앙 관서는 그 관서의 지위 및 기능에 따라, 지방 관서는 읍격·군현별로 각각 표 1과 같이 순서대로 적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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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5년(성종 16)에 『경국대전』이 반포된 뒤에는 이러한 관서의 분류가 그대로 계승되었다. 다만 국정 운영, 정치제도의 정비, 국방 등의 이유로 조선시대 말까지 약간의 변천을 거쳤다. 비변사(備邊司)·선혜청(宣惠廳)·규장각(奎章閣)·훈련도감(訓鍊都監)·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 등 20여 개의 관서가 문·무반 정1품~정3품 당상아문으로 설치되고, 종2품 이하 관서인 오위(五衛)·사재감(司宰監) 등 20여 개 관서가 정3품 당상아문~종6품아문으로 강등되거나 혁파되었다. 또 외관인 수원유수부(水原留守府)·광주유수부(廣州留守府)·강화유수부(江華留守府)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이 정2품~정3품 당상 아문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 후기에 설치·승강·혁거된 주요 중앙 관서는 표 2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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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조선시대의 관서는 1392년(태조 1) 개국과 함께 고려시대 말의 관제를 계승하여 중앙에 100여 개, 지방에 300여 개의 관서를 설치하여 중앙과 지방을 각각 통치하면서 정착되었다. 이때 중앙에 둔 관서에는, 도평의사사·문하부·삼사(三司)·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중추원(中樞院)·경연(經筵)·사헌부(司憲府)·개성부(開城府)·이조(吏曹)·병조(兵曹)·호조(戶曹)·예조(禮曹)·형조(刑曹)·공조(工曹)·상서사(尙瑞司)·성균관(成均館)·합문(閤門)·서운관(書雲觀)·경흥부(敬興府)·서적원(書籍院)·수창궁(壽昌宮) 제거사(提擧司)·율학(律學)·산학(算學)·대청관(大淸觀)·도호팔위(都護八衛)·도부외(都府外)·내시부(內侍府) 등과 봉상시(奉常寺)를 비롯한 여러 시(寺), 전중감(殿重監)을 비롯한 여러 감(監), 사선서(司膳署)를 비롯한 각종 서(署), 요물고(料物庫)를 비롯한 여러 고(庫), 풍저창(豊儲倉)을 비롯한 각종 창(倉), 의흥친군좌위(義興親軍左衛)를 비롯한 십위(十衛) 등이 있다. 지방에는 7도 2면과 계림부윤부·평양부윤부 이하 2대도호부·16목·24도호부·82군·161현 및 10여 첨절제사진(僉節制使鎭)과 만호진(萬戶鎭) 등을 두었다. 태종대 몇 차례 관제 개편 결과 육조의 기능이 강화되었고, 돈녕부·의빈부 등이 설립되면서 이른바 예우 아문이 증치되었다.

이후 『경국대전』이 편찬된 1485년(성종 16)까지 국정 운영과 제도 정비를 이유로, 또는 민호(民戶) 증가로 인한 읍호의 승강, 진관체제(鎭管體制)의 실시와 변진의 방어 강화 등을 연유로 여러 차례 변천을 겪었다. 중앙 관서의 경우, 도평의사사와 순위부 등이 의정부(議政府)의금부(義禁府) 등으로 개칭·개편되었고, 삼사 등이 혁거되었다. 또 예문춘추관이 예문관(藝文館)춘추관(春秋館)으로 분립되었으며, 상서사 등이 상서원(尙瑞院) 등으로 개칭되었다. 그뿐 아니라 육조(六曹)가 정3품아문에서 정2품아문으로 승격되었으며, 돈녕부(敦寧府)·종친부(宗親府)·의빈부(儀賓府)·홍문관(弘文館) 등이 새로이 설치되는 등의 변화를 거쳐 100여 개의 관서로 정립되었다.

지방 관서는 동북면과 서북면이 각각 함경도와 평안도로, 지군사관과 감무관이 군수관(郡守官)과 현감관(縣監官)으로 각각 개칭되면서 8도의 명칭과 외관의 명칭이 정착되었다. 또한 부윤부 이하가 대대적으로 승강·치폐되고, 독립된 병영·수영과 정직(正職)에 있는 무반이 제수되는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가 설치되었으며, 첨절제사와 만호관이 증치되었다. 그에 따라 8도·4부윤부·4대도호부·20목·44도호부·34현령·141현감관과 25찰방역, 7병마절도사영·9수군절도사영·12첨절제사진·63만호진 등 총 460여 개의 관서로 정비되었다.

이때 정립된 관서는 이후 『대전통편』 단계에 도성 및 경기 지방의 방어 강화, 재정 운영과 관련된 군영·유수부·관서의 증치 등으로 인해 조정을 거치게 되었다. 비변사·선혜청·수원유수부·훈련도감·규장각 등과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영종진첨절제사(永宗鎭僉節制使)·화량진동첨절제사(花梁鎭同僉節制使) 등이 설치되고, 충익부(忠翊府)·종부시(宗簿寺)·풍덕군(豊德郡) 등이 혁거되면서 중앙 관서와 지방 관서의 수가 각각 111개와 540여 개로 변경되었다. 다시 『대전회통』이 간행된 1865년까지, 111개의 중앙 관서와 490여 개의 지방 관서로 조정되었다. 그 뒤 1894년 갑오개혁에 수반된 근대식 관제 개혁에 따라 중앙 관서는 10여 부문의 정무를 담당하는 의정부와 그 부속 관서 및 20여 분야의 왕실 사무를 관장하는 궁내부와 그 부속 관서로, 지방 관서는 23부 438군으로 개편되었다. 갑오개혁 때 설치된 주요 관서는 표 3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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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반윤홍, 『조선시대 비변사 연구』, 경인문화사, 2003.
  • 양진석 편, 『최승희 서울대 명예교수 소장 조선시대 고문서』 3(영인본 1), 다운샘, 2007.
  • 이수건, 『조선시대 지방행정사』, 민음사, 1989.
  • 최효식, 『조선후기 군제사연구』, 신서원, 1995.
  • 한충희, 『조선초기의 정치제도와 정치』, 계명대학교출판부, 2006.
  • 한충희, 「중앙 정치 기구의 정비」, 『세종문화사대계』 3,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1.
  • 한충희, 「조선초기 관아구조연구」, 『계명사학』 13, 2002.
  • 한충희,「정치구조의 정비와 정치기구」, 『한국사』 23, 국사편찬위원회, 2003.
  • 한충희, 「조선초기 도제와 군현제정비 연구」, 『계명사학』1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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