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서(司膳署)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조선초기에 왕의 식사인 내선(內膳)을 공상(供上)하는 일을 관장한 관아.

개설

조선초기에 왕의 식사인 내선을 공상하는 일을 관장하는 사선서(司膳署)가 설치되었다. 1466년(세조 12)에 사선시(司膳寺)로 이름을 고쳤고, 뒤에 사옹원(司饔院)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내선의 내(內)는 대궐·조정·궁중을 뜻하며, 선(膳)은 반찬을 뜻하여, 내선은 왕이 드시는 음식을 의미한다. 조선초기에 궁중의 내선 공상을 관장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1466년에 사선시로 이름을 고쳤고, 뒤에 사옹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직 및 역할

관원은 영(令, 종5품) 1명, 승(丞, 종6품) 2명, 직장(直長, 종7품) 2명, 식의(食醫, 정9품) 2명, 사리(司吏) 2명인데, 임시로 맡아보는 사무인 권무(權務)로서 거관하였다.

1392년(태조 1) 신정관제(新定官制)로 설치한 요물고(料物庫)는 내선의 미곡(米穀)을 수납·지출하는 일을 맡은 관아로 관원이 사(使, 종5품) 1명, 부사(副使, 종6품) 1명, 주부(注簿, 종8품) 2명이다(『태조실록』 1년 7월 28일).

변천

1392년(태조 1)에 설치하였고, 1410년(태종 10)에는 내선 공상뿐 아니라 각전(各殿)의 입번 차비(入番差備)에 대한 공판(供辦)의 책임을 맡았다. 1412년(태종 12)에는 사선서 관제를 6품 서승(署丞)을 주부(注簿)로 고치고, 이를 부직장(副直長)이라 칭하였다(『태종실록』 12년 1월 18일). 1460년(세조 6)에 사선서에 도관서를 합속하여, 내선 공상과 미곡 공상 업무가 합해졌다(『세조실록』 6년 2월 7일). 1466년(세조 12)에 대대적인 관제 개혁이 단행되었는데, 도관서(導官署)를 혁파하여 사선시로 합속했다(『세조실록』 12년 1월 15일). 1467년(세조 13) 4월 사선서를 사옹원에 합속하면서 도관서를 다시 설치하였다.

1485년(성종 16)에 완성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사도시(司䆃寺)로 명칭이 바뀌었다. 관원으로 제조(提調: 정3품) 1명, 정(正: 정3품) 1명, 부정(副正: 종3품) 1명, 첨정(僉正: 종4품) 1명, 주부(主簿: 종6품) 1명, 직장(直長: 종7품) 1명을 두었다. 그리고 이속으로 서원(書員) 8명, 고직(庫直) 3명, 군사 1명을 두었다. 『속대전(續大典)』에서는 정과 승(丞)을 감하고, 『대전회통(大典會通)』에서는 직장을 감하고 봉사(奉事)를 증치하였다. 이 사도시는 1882년(고종 19)에 폐지하였다.

참고문헌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
  • 『속대전(續大典)』
  • 송수환, 『조선전기 왕실재정연구』, 집문당, 2002.
  • 한우근 외 역, 『譯註 經國大典-註釋篇』,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5.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