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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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세손강서원 |
한글표제 | 세손강서원 |
한자표제 | 世孫講書院 |
상위어 | 정삼품(正三品) 아문(衙門), 세손(世孫) |
관련어 | 강서원(講書院), 세손위종사(世孫衛從司), 세손부(世孫傅), 왕손교부(王孫敎傅), 유선(諭善), 권독(勸讀), 찬독(贊讀), 황태손강서원(皇太孫講書院) |
분야 | 정치/행정/관청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대한제국기 |
집필자 | 신명호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 |
조선시대 왕세손의 교육을 위해 설치한 교육 기관.
개설
조선시대 왕세손의 교육을 담당하던 세손강서원의 직무는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세자시강원과 동일하였다. 이는 세손강서원이 세자시강원과 마찬가지로 차기 왕을 위한 제왕 교육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왕세손의 경우는 강서원이라 하여 명칭상 차이를 두었을 뿐이었다. 이는 마치 왕의 교육을 담당하던 기관을 경연이라 하여 세자의 서연과 구분한 것과 같았다. 세손강서원은 왕세손이 왕세자가 되면 세자시강원으로 바뀌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조선시대 왕세손은 왕의 적장손(嫡長孫)이며 왕세자의 적장자(嫡長子)로서 장차 왕이 될 신분이었다. 이에 따라 조선시대에는 왕세손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후계 교육을 실시하였다. 왕세손은 책봉되기 이전에는 큰손자라는 의미의 원손(元孫)으로 불렸다. 원손이 태어난 후 말하고 걸어 다니기 시작하는 두세 살쯤 되면 원손보양청을 설치하여 보육 및 교육을 담당하게 했다. 그러다가 원손이 왕세손에 책봉되는 전후로 보양청을 세손강서원으로 바꾸었다.
조선시대 세손강서원은 1448년(세종 30), 1649년(인조 27), 1751년(영조 27), 1759년(영조 35), 1829년(순조 29)에 설치되었다. 이때는 단종, 현종, 의소세손, 정조, 헌종 등이 왕세손에 책봉되기 전후 시점이었다. 조선시대 강서원이 처음 설치된 때는 1448년 3월 21일이었다. 당시 원손이던 단종의 세손 책봉이 4월 3일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리 강서원을 설치했다. 강서원에는 종4품의 좌익선(左翊善)과 우익선(右翊善) 각 1명, 종6품의 좌찬독(左贊讀)과 우찬독(右贊讀) 각 1명 등 4명이 배속되었다. 좌익선과 우익선 그리고 좌찬독과 우찬독은 따로 전임 관료를 뽑지 않고 집현전 관리들이 겸직하게 하였다. 이는 당시 집현전 관리들이 최고의 학자일 뿐만 아니라 왕의 경연을 담당하는 등 왕실 교육 전문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당시 강서원과 함께 원손의 호위를 위해 위종사(衛從司)가 설치되었다. 위종사에는 종7품의 좌장사(左長史)와 우장사(右長史) 각 1명 등 총 2명이 배속되었다. 좌상사와 우장사 역시 전임 관료를 뽑지 않고 동반과 서반의 다른 관원으로 겸임하게 하였다.
세종 때 원손 교육을 위한 강서원 및 원손 호위를 위한 위종사에 소속된 관원들은 전부 4품과 5품 그리고 7품의 종품(從品)을 갖고 있었다. 이는 세자시강원의 관료들과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즉, 세자시강원의 관료들은 기본적으로 정품(正品)을 가졌으며, 전임 관료로서 가장 높은 보덕이 3품이기에 강서원의 최고 직위인 좌익선과 우익선을 4품으로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1448년 3월 21일에 설치된 강서원은 2년 4개월 만인 1450년 7월 20일에 단종이 세손에서 왕세자로 책봉되면서 폐지되었다. 이후의 세손시강원은 이때의 세손시강원을 모범으로 하였지만 몇 가지 변화도 있었다. 첫 번째 변화는 인조 때 있었다. 1649년 인조는 세손 현종을 위해 강서원을 설치하였는데, 기본 골격은 세종 때의 세손강서원을 모범으로 하였지만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첫째는 세종 때의 강서원 관원은 집현전의 관원이 겸임했지만, 인조 때의 강서원 관원은 홍문관 관원이 겸임하였다. 이는 집현전이 세조 때 폐지되고 그 대신 홍문관이 성종 때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세손의 칭호를 각하(閣下)로 결정하여 왕의 전하(殿下), 세자의 저하(邸下)라는 칭호와 명확하게 구별하였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세자시강원의 관원이 왕세자 앞에서 자신을 소인(小人)이라 칭하다가 임진왜란 이후부터 신(臣)이라 칭하는 것이 규례가 되었다. 즉 임진왜란 이전에 시강원 관료들은 왕 앞에서 신(臣) 또는 소신(小臣)이라고 본인을 칭하였지만 왕세자 앞에서는 소인이라고 하여 왕과 세자를 구별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이후 세자 앞에서도 신이라고 칭하기 시작한 것인데, 이는 세자가 장차 왕이 될 신분이므로 군신 관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명분론이 커진 결과였다. 이에 비해 강서원 관원들은 세손 앞에서는 소인이라고 자칭하고 세손에 대한 칭호 역시 각하라고 하여 왕세자와 구별하였던 것이다. 이 역시 세손, 왕세자, 왕 사이의 명분과 의리가 중요시 된 조선후기의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조 때의 변화보다 훨씬 큰 변화는 영조 때 있었다. 1750년 의소세손을 위해 영조는 강서원을 설치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세손사(世孫師)와 세손부(世孫傅)를 두었다. 세손사부의 품계는 세자사부의 품계가 정1품이었으므로 그보다 한 단계 낮추어 종1품으로 하였다. 아울러 영조는 의소세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좌익선과 좌찬독을 이전의 겸직에서 전임직으로 바꾸었다.
이후 1759년 영조는 세손 정조를 위해 강서원을 설치하면서 좌·우유선(左·右諭善)과 좌·우권독(左·右勸讀)을 더 배치함으로써 세손 교육을 강화하였다. 영조에 의해 좌·우유선의 품계가 정3품에서 종2품까지로 확정됨으로써 세손강서원은 정3품 아문으로 되었다. 이처럼 영조가 강서원을 확대하고 격상시킨 것은 왕실의 위상을 제고하여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고자 한 정치적 목적에서였다. 1762년 윤5월 21일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난 후, 그해 7월 24일에 세손 정조는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강서원은 세자시강원으로 바뀌었다. 영조 때 확립된 세손강서원의 체제는 거의 그대로 『속대전』에 수록되었다.
조직 및 역할
『속대전』에 의하면 세손강서원에는 종1품의 사(師)와 부(傅) 각 1명, 당하 정3품부터 종2품의 좌유선과 우유선 각 1명, 종4품의 좌익선과 우익선 각 1명, 종5품의 좌권독과 우권독 각 1명, 종6품의 좌찬독과 우찬독 각 1명 등 총 10명의 선생님이 배속되었다. 이 중에서 종1품의 사와 부 각 1명은 겸직이었고 그 외 권독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임 관료였다. 이에 따라 세손강서원은 정3품 아문으로 되었다. 이속(吏屬)으로 서리 6명, 사령 6명, 수공(水工) 1명이 있었다. 세손강서원의 관원 중에서 권독은 학행이 뛰어난 재야 학자 중에서 선발하였다. 이는 인조반정 이후 재야의 산림(山林)을 세자시강원의 찬선(贊善), 진선(進善), 자의(諮議) 등 보도직(保導職)으로 불러 쓰던[徵召] 관행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변천
『속대전』에서는 세손강서원의 관원 중에서 종1품의 사와 부 이외의 관원은 전임관이었다. 그러나 『대전통편』에서는 종4품의 우익선과 종6품의 우찬독이 겸직관으로 바뀌었다. 1829년 순조는 세손 헌종을 위해 강서원을 설치했는데, 그때 순조는 종5품의 우권독을 겸직으로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대전회통』에 규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곧 취소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대전회통』에서는 『대전통편』과 마찬가지로 강서원 소속 관원 중에서 종1품의 사와 부 이외에 종4품의 우익선과 종6품의 우찬독은 겸직관이고 그 외는 전임관이었다.
갑오개혁 때 보양청이 시강원과 통합되었다. 하지만 대한제국이 선포된 후 1903년(고종 7) 황태손강서원(皇太孫講書院)으로 다시 독립하였다. 이는 황제 체제에 맞추어 조선시대의 세손시강원을 격상시켜 독립시킨 것이었다. 황태손강서원에는 시·원임 홍문관 학사가 겸하는 일강관(日講官) 2명, 칙임관의 유덕(諭德) 1명, 주임관의 부유덕(副諭德) 1명, 판임관의 찬독(贊讀) 2명과 위종(衛從) 6명이 배속되었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멸망하면서 황태손강서원 역시 사라지고 강서원은 완전히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강학청일기(講學廳日記)』
- 『강서원일록(講書院日錄)』
- 『정조강서원일기(正祖講書院日記)』
- 『시강원지(侍講院志)』
- 『열성조계강책자차제(列聖朝繼講冊子次第)』
- 『書徒(講學日記)』->『서도강학일기(書徒講學日記)』
- 『열성진강책목록(列聖進講冊目錄)』
- 강태훈, 『경연과 제왕교육』, 재동문화사, 1993.
- 김문식·김정호, 『조선의 왕세자 교육』, 김영사, 2003.
- 신명호, 『조선왕실의 자녀교육법: 혜경궁 홍씨, 인수대비, 사주당 이씨에게서 조선시대의 총명하고 어진 자녀 교육법을 배운다』, 시공사, 2005.
- 육수화, 『조선시대 왕실교육』, 민속원, 2008.
- 이기순, 「인조조의 ‘반정공신’ 세력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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