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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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彌鄒忽)

백제 초기의 도읍지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주몽의 두 아들 비류온조가 남쪽으로 내려가 온조는 하남(河南)의 땅을 택하고 비류미추홀에 가서 살았다고 한다. 이 미추홀은 지금의 인천으로, <삼국사기> 기록에 이곳이 바닷가이고 땅이 습하여 물이 짜서 살 수가 없었다고 하고 있는 데서도 그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비류가 도읍을 정한 미추홀은 초기 백제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미추홀의 위치는 일반적으로 지금의 인천광역시로 비정되고 미추홀의 중심 유적으로 믿어지는 것이 문학산성이다. 하지만 문학산성은 백제의 성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백제의 성은 평지에 흙으로 조영하는 평지성이나, 문학산성은 산 정상에 봉우리를 둘러싸는 형태인 포곡식으로 쌓은 석성(石城)이기 때문이다. 즉 지금의 인천광역시 지역에 비류가 정착하였다는 고고학적 근거가 매우 박약하며, 이 때문에 다른 지역을 미추홀로 비정하기도 한다.

미추홀 혹은 매소홀의 어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

우선 ‘매(買)’는 음이 ‘미’로 ‘미(彌)’와 같이 ‘므[水]’의 음차이고, ‘소(召)’는 음이 ‘추(鄒)’와 같이 촉음차(促音借)이며 ‘홀(忽)’은 현재 음이 ‘홀’이나 옛음은 ‘곧, 골’로서 ‘골[城]’을 음차한 것이라 하며 미추홀 혹은 매소홀은 ‘뭇골’ 즉 수성(水城)이라 하였다. 반면에 미추홀 혹은 매소홀의 한자어 대역인 소성(邵城)의 ‘소(邵)’를 확대된 의미 ‘매[野]’의 음차로 보고, ‘홀’은 ‘성(城)’의 훈차인 골로 보며, 추와 소를 사잇소리 ‘ㅅ’으로 보아 ‘맷골’, 즉 ‘거친 들의 고장’이란 의미를 가진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미추홀은 고구려의 영토였을 때에는 매소홀현이라 불렸으며, 이후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한 후에도 계속 매소홀현이라 불리다가 경덕왕 대 소성현으로 개명되었다. 고려 현종(顯宗) 때, 수주(樹州)[현 인천광역시 부평구]의 속현으로 삼았다가 숙종(肅宗)이 경원군(慶源郡)으로 승격시켰다. 인종(仁宗)이 인주(仁州)로 고치고 지주사(知州使)로 삼았으며, 공양왕(恭讓王)이 경원부(慶源府)로 승격시켰다.

조선에 들어서는 태조(太祖)가 다시 인주라고 하였으며, 1414년(태종 14) 인천군으로 고쳤다. 1459년(세조 5년)에 소헌 왕후(昭憲王后)로 인하여 도호부(都護府)로 높였으나, 1698년(숙종 14년)에 다시 현으로 복구시켰다가 1903년(고종 광무 7)에 군으로 고쳤다.


미추홀은 일반적으로 지금의 인천광역시로 비정되나, 미추홀을 다른 지역으로 비정한 예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산 밀두리설(牙山 密頭里說)과 경기도 양주·파주설이다. 아산 밀두리설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미추홀을 ‘금인주(今仁州)’, 위례성을 ‘미상지분(未詳地分)’으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미추홀은 ‘인주(仁州)’, 위례성을 ‘금직산(今稷山)’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에 착안하여 ‘금인주’와 ‘인주’는 서로 다른 지역이며, 『삼국유사』가 가리키는 인주를 충청남도 아산군 인주면에 비정한 것이다.

경기도 양주·파주설은 패하(浿河)를 대동강 수계로 이해하고 미추홀을 매성홀(買省忽)·매초성(買肖城)·육계토성(六溪土城) 등을 근거로 삼아 ‘매소’와 ‘미추’만 음운상 통하는 것이 아니라 양주 고읍의 옛 이름인 ‘매성’ 역시 미추와 음운상 통하는 것으로 미추홀의 위치를 한강 이북인 경기도 양주·파주 일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비류 집단과 온조 집단의 연맹 결성의 원인을 소금 산지의 확보로 이해하여 미추홀의 위치를 인천광역시 서구 공촌동 일대로 추정하는 견해 등이 있다.

『삼국사기』 권23, 백제본기 1, 온조왕조에는 “비류는 듣지 않고 그 백성을 나누어 미추홀로 돌아가 살았다. 온조는 한수 남쪽의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열 명의 신하를 보좌로 삼아 국호를 십제라 하였다. …… 비류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안히 살 수 없어서 위례로 돌아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9, 인천도호부 건치연혁조에는 “본래 고구려의 매소홀현이다.(또는 미추홀이라 한다). 신라 경덕왕이 소성(邵城)으로 고치어 율진군(栗津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현종 9년에 수주(樹州)에 붙였고, 숙종 때에 인예왕후(仁睿王后) 이씨의 본관이므로 경원군(慶源郡)으로 승격하였고, 인종이 또 순덕 왕후(順德王后) 이씨의 본관이므로 지인주사(知人州事)로 고치고, 공양왕 2년에 경원부(慶源府)로 승격하였다. 본조(本朝) 태조 원년에 다시 인주(仁州)로 만들었고, 태종 13년에 지금 이름으로 고치어 예에 의하여 군으로 만들었고, 세조 6년에 소헌 왕후의 외가 고을이므로 승격하여 도호부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비류(沸流)

삼국시대 백제의 미추홀에서 일어난 왕족의 건국 시조.


백제 미추홀(彌鄒忽 : 여러 설이 있으나 지금의 인천부근으로 추정됨)에서 일어난 왕족의 시조이다. ≪삼국사기≫에는 온조왕(溫祚)를 시조로 하는 건국설화와 함께 비류가 시조라는 이설도 실려 있다.

이러한 두가지 시조설화가 남게 된 것은 처음 비류는 미추홀에서, 온조왕는 지금의 서울 한강유역에서 따로 지배세력으로 성장하여 두 집단이 각기 자기 시조를 내세운 결과로 이해된다.

한편 ≪삼국사기≫ 등에는 비류집단의 계보는 전하지 않으며, 백제왕들은 모두 온조계보에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비류계 설화가 오늘날까지 남아 전하는 것은 비류를 시조로 하는 집단이 백제 후기까지 계속 존재하였던 때문으로 여겨진다.

‘비류’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고구려 송양국(松讓國)을 비류국이라고도 하고 강(江)의 이름도 비류수라 하고 있으며, 또 각훈(覺訓)의 ≪해동고승전 海東高僧傳≫에서는 비류를 ‘피류(避流)’로, 온조왕를 ‘은조(殷祚)’로 표기하고 있다.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19(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에서 거행된다.


이천서씨서신일(徐神逸)(아간대부 정2품)- 서필(徐弼)(내의령 종1품) 서봉(徐逢)(광평시랑평장사 정2품) - 서희(徐熙)(내사령 종1품) - 서눌(徐訥)(문하시중 종1품) 서유걸(徐維傑)(좌복야 정2품) 서유위(徐維偉)(장야서령 정3품) 서주행(徐周行)(달성군) - 서정(徐靖)(판삼사사 종1품) 서존(徐存)(병부상서 정3품)-서균(徐鈞)(우복야 정2품) 서린(徐嶙)(판대부사 정2품) 서석(徐碩)(시랑평장사 정2품)-서원(徐元)(평장사 정2품) 서공(徐恭)(판삼사사 종1품) 서순(徐淳(徐諄)(동지추밀원사 종2품) 서성(徐成)(평장사 정2품) 서염(徐廉)(사복부령 종2품)에 걸쳐 칠대(7 대) 동안 연속 재상직에 임명된 고려 최고 문벌 귀족 가문이다.

무신란 이후에도 이부판사 서신(徐愼 종1품),봉성군 서약진(徐若珍),좌복야 서효리 (徐孝理 정2품),밀직사사 서무질(徐無疾 종2품),중추원사 서숭조(徐崇祖 종2품),판도판서 서진(徐晉 정3품),승지 서욱(徐勖), 부령 서익(徐翼),문하찬성사 서기준(徐奇俊 종2품),정당문학 서희팔(徐希八 정2품),판내시부사 서춘(徐椿 종2품), 문하시중 서릉(徐稜 종1품),대광내의령 서린(徐鱗 종1품), 판도판서 서적(徐迪), 문하시중 서원경(徐元敬 종1품),문하찬성사 서영(徐穎 종2품),동지밀직사사 서신계(徐臣桂 종2품),승지 서녕(徐寧), 판밀직사 서념(徐恬 종2품),판내부사사 서진(徐璡 종2품) 평장사 서충(徐忠 정2품) 평장사 서윤(徐玧 정2품), 판사재사 서효손(徐孝孫 종2품),진현관대제학 서성윤(徐成允 정2품),밀직사 서원(徐遠 종2품), 추밀원사 서후상(徐後祥 종2품), 평장사 서희찬(徐希贊 정2품),밀직사 서영계(徐永桂 종2품), 밀직사 서천량(徐天亮 종2품), 봉익대부 서윤현(徐允顯 종2품),정당문학 서균형(徐鈞衡 종2품),평장사 서인한(徐仁漢 정2품) ,문하시중 서신(徐信 종1품),병부령 서수(徐秀 정2품) ,예빈사 소윤 서첨(徐詹),병부낭중 서저(徐氐), 판도좌랑 서평(徐坪), 예빈소경 서광(徐珖), 감찰어사 서의(徐義),계성군 서원기(徐原奇) 주부 서면(徐冕), 소감 서정(徐程),사인 서단(徐亶),병부시랑 서장기(徐長己),주부 서경의(徐聲宜),소감 서화흡(徐化洽),축하사절 서조(徐助),예빈시윤 서추(徐諏), 어사중승 서염(徐琰), 집의 서연(徐延),내의시랑 서희적(徐希積),병부상서 서희량(徐希亮 정3품),승지 서령(徐領),생원 서영보(徐永甫),중정대부 서선(徐瑄), 만호 서혼(徐琿),소감 서황(徐晃),통직랑 서중린(徐仲麟),별가 서윤공(徐允公),호조전서 서의(徐議 정3품), 병부시랑 서의(徐誼), 병부시랑 서간(徐諫),소감 서시의(徐時義),판전객시사 서익진(徐益進),감무 서천부(徐天富),태관서령 서공기(徐公騏),전공총랑 서능준(徐能(陵)俊),판내부시사 서정수(徐貞壽),요동진무사 서현(徐顯),사마 서관(徐寬) ,판도찬중 서원절(徐元節),비인현사 서유(徐愈), 성균관진사 서문찬(徐文贊) 주부동정 서무(徐茂),봉례공 서박(徐樸),연산공 서직(徐稷), 전서 서의(徐義 정3품),봉정대부 서호덕(徐好德) 등 15대 대대로 많은 재상을 배출하였다.

상장군 서보(徐甫 상서우복야.정2품),서유(徐裕),서균한(徐均漢),서민경(徐敏敬),서찬(徐贊),서돈경(徐敦敬),서정희(徐廷希),서홍찬(徐洪贊),서인조(徐仁朝),상호군 서응려(徐應呂),대장군 서후(徐厚),서희(徐曦),서준(徐俊),대호군 서찬(徐贊),장군 서지(徐趾),서칭(徐贊),서정(徐挺),서광순(徐光純),서금광(徐金光) ,중낭장 서긍(徐肯),서찬(徐贊),서정(徐靖),서오(徐敖),시중랑 서문한(徐文漢),호장 서필중(徐必中),서전금(徐田金),서순인(徐純仁),서복(徐福),서자번(徐自蕃) 등이 이름을 드높였다.

대학자로 서시랑도 서석(徐碩 정2품),박사 서선(徐禪),삼국사기 서안정(徐安貞),국성전교수 서인(徐諲),고려화가 서구방(徐九方),고려음악가 승지 서온(徐溫),고려국사 원묘국사 요세(了世),고려대사 서영관, 고려 효자 서식(徐湜),고려 혁명가 서언(徐彦),낭장 서준명(徐俊明),교위 서유정(徐惟挺),서규(徐規)가 화려한 명맥을 유지했다.

고려 황제국 충신으로 사재승 서숭(徐崧),서대창(徐大昌),서필중(徐必重),진봉사 서방(徐昉),위위경지 태사국사 서웅(徐雄),합문통사사인 서연(徐延),예빈시윤 서찬(徐瓚),사복부령 서염(徐廉),정치도감 좌랑 서호(徐浩),항적 서효관(徐孝寬),내수 서양수(徐良守), 기거사인 서언 (徐彦),생원 서복례(徐復禮),공조전서 서보(徐輔), 직제학 서중보(徐仲輔), 중생원 서희준(徐希俊), 사재감정 서광준(徐光俊),통훈대부 서운(徐暈), 장령 서견(徐甄)은 조선이 건국된 뒤에도 충절을 지켜 끝내 벼슬에 오르지 않아 시흥의 충현서원(忠賢書院)에 제향됐다.

대구달성 서씨(달성 서씨 대구 서씨)(大丘達城徐氏)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주행(徐周行 달성군)-서한(徐閈 군기소윤 종3품.차관)-서신(徐愼 이부판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무질(徐無疾 밀직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진(徐晉 판도판서 정3품.장관)-서기준(徐奇俊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영(徐穎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균형(徐鈞衡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 서익진(徐益進 판전객시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침(徐沈 조봉대부 정3품.장관) 서의(徐義 호조전서 정3품.장관) 이다

연산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직(徐稷 연성군)-서준영(徐俊英 연성군)- 서보(徐寶 연성군(連城君) 으로 이어진다.

부여 서씨 계보는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춘(徐椿 판내부사사 정2품.부총리 재상) 서박(徐樸 봉례공) 으로 이어진다.

남양당성 서씨 (남양 서씨 당성 서씨) 계보는 서간(徐趕 태사.남양군. 종1품. 국무총리 재상)-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적(徐迪남양군)으로 이어진다.

 중화 서씨(中華徐氏) 계보는 단군조선 여수기(余守己)-번한조선(番韓朝鮮) 서우여(徐于餘)-고조선(古朝鮮) 소호(少昊), 고도(皋陶), 백익(伯益)의 아들 약목(若木)-서국(徐國)에 30세 서구왕(駒王=徐駒王), 32세 서언왕(徐偃王)-진나라 재상 서복(徐福)-삼국시대(三國時代) 서선(徐宣),서유자(徐孺子; 徐穉) 서서(徐庶), 오(吳) 나라에는 서성(徐盛),부여 동명왕(東明王),백제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신라 서두라(徐豆羅)- 남송(南宋) 서희(徐煕), 서도(徐道), 서도(徐度), 서숙향(徐叔嚮), 서중융(徐仲融), 서문백(徐文伯), 서사백(徐嗣伯)- 북제(北齊) 서지재(徐之才), 서임경(徐林卿), 서동경(徐同卿)- 원위(元魏) 서건(徐謇), 서웅(徐雄)- 수 나라 서민제(徐敏齊) -원나라 말기 호족 서수휘(徐壽輝)청나라- 지리학자 서하객(徐震客),대학자 서광계(徐光啓)


서씨일가연합회 [[1]]


문학산에서 건국한 비류 백제(文鶴山-建國-沸流百濟)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전해지는 백제 건국 신화에 대한 설화. 비류온조왕은 각각 미추홀과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였다. 하지만 비류가 도읍을 정한 미추홀은 비류는 땅이 기름지지 못하고 메말라 살기에 적당치 않았다. 비류비류국을 세웠으나 13년 만에 멸망하여 십제에 병합되었다.


한성백제문화제(漢城百濟文化祭)

서울특별시 송파구에서 한성백제 문화를 주제로 매년 9월~10월 초에 개최하는 축제

매년 9월 말~10월 초 한성백제 시대의 도읍지였던 서울 송파구에서 개최되는 문화 축제로 1994년 제1회가 열렸다. 현재 송파구 지역은 기원전 18년부터 475년까지 약 500년간 한성백제 수도의 역할을 해 왔다. 때문에 송파에서는 백제의 다양한 유물과 유적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풍납토성(사적 제11호), 몽촌토성(사적 제297호), 석촌동 고분군(사적 제243호) 등이 있다.

한성백제문화제에서는 백제의 문화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대표적으로 한성백제혼불 채화식, 전통놀이 및 문화체험, 도전! 한성백제박사, 한성백제 어울마당, 한성백제 성곽돌기, 역사문화거리행렬 등이 진행된다.

백제고분제(동명제)(百濟古墳齊)

백제고분제는 백제초기 건국 온조왕부터 개로왕까지 493년에 이르는 고도 위례성의 찬란한 문화와 예술을 꽃피운 백제전기왕들의 신령께 제를 드리는 행사로 석촌동 백제초기 적석총(사적 제243호)에서 개최한다.

숭렬전(崇烈殿)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있는 온조왕의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 1972년 5월 4일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온조왕묘(溫祚王廟)

경기도 광주시와 충청남도 직산군에 있는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을 제향하기 위해 세운 사당.

백제를 세워 국민을 계몽하고 교화한 온조왕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현재 두 곳에 있다. 한 곳은 충청남도 직산에 중건된 것이고, 한 곳은 경기도 광주의 남한산성 안에 있는 것으로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고려 때 세운 것으로 전한다

백제문화제(百濟文化祭)

백제의 왕도(王都),충청남도 공주시와 부여군에서 개최되는 역사문화축제> 68년을 이어온 백제문화제는 고대 동아시아의 문화강국이었던 백제의 전통성에 근거하여 백제의 수도였던 충청남도 공주시와 부여군에서 1955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역사재현형 축제이다. 또한 2015년7월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백제의 후예들과 관광객들이 만들어가는 세계적인 역사문화축제로 나아가고 있다.

삼충제(三忠祭)

매년 10월에 열리는 백제문화제 때 이곳에서 삼충제(三忠祭)

백제 말의 세 충신인 성충(成忠), 흥수(興首), 계백(階伯)에게 올리는 제사. 매년 충남 부여와 공주에서 개최되는 백제 문화제 중의 하나이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5호. 소재지 : 충남(忠南) 부여군(扶餘郡) 부여읍(扶餘邑) 쌍북리(雙北里) 40-1번지. 백제(百濟)의 충신이었던 성충(成忠)ㆍ흥수(興首)ㆍ계백(階伯)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서씨 시조 서신일 추향대제(徐氏 始祖 徐神逸 秋享大祭)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19(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 166-1에서 거행된다.

장위공 서희문화제(徐熙文化祭)

이천시는 외교 협상가로서 장위공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서희(徐熙)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알리고자 서희 선생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역사 문화 축제를 연다.

글로벌 축제를 지향하며, 우리나라 주변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 상황에 주목해 평화적 소통과 교류에 대한 방법을 찾아보고, ‘외교, 평화, 역사’를 테마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관내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서희(徐熙) 선생의 일대기와 외교적 리더십에 관한 역할극, 토론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꿈을 키우며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 미래 사회를 이끄는 리더로서의 성장하도록 한다.

9월에 개최되는 ‘장위공 서희(徐熙) 문화제’는 위드 코로나 시대에 안전하게 즐길 만한 지속 가능한 모델을 제시하며 온·오프라인을 병행해 사전 예약제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한다.

미래의 주역이 될 학생을 대상으로 장위공 서희 선생의 얼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전국미술대회’, 그리고 10월에는 서희(徐熙) 선생 서거 주기 추모제를 개최한다.

대전 효문화 뿌리축제(大田 孝文化 祝祭)

대전효문화뿌리축제는 천혜 자연환경 속에 위치한 뿌리공원, 한국족보박물관, 효문화마을, 효문화진흥원을 아우르는 효문화 인프라를 기반으로 효의 가치와 의미를 경험하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보고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축제이다. 전국에 어르신과 청소년, 그리고 3대가 모두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되어 전국에 효 실천 문화 확산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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