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상복(迓祥服)"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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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0:54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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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아상복 |
한글표제 | 아상복 |
한자표제 | 迓祥服 |
관련어 | 여기복(女妓服), 흥청악(興淸樂) |
분야 | 생활·풍속/의생활/의복 |
유형 | 의복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김소현 |
용도 | 여기복(女妓服) |
시기 | 조선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아상복(迓祥服)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연산군일기』 11년 2월 13일, 『연산군일기』 11년 1월 4일, 『연산군일기』 12년 3월 18일, 『연산군일기』 11년 1월 18일 |
연산군 때에 가무(歌舞)와 기악(伎樂)에 능한 기녀로 구성한 흥청악(興淸樂)이 입는 옷.
개설
연산군 때에 가무와 기악에 능한 악공과 기녀들로 광희악(廣熙樂)·운평악(運平樂)·흥청악(興淸樂)의 삼악(三樂)을 구성하였다. 그 가운데 흥청악이 입는 옷을 아상복이라고 했는데, 5색 저사(紵絲)로 만들었다. 때로는 초(綃)로 만들기도 했다. 운평악도 면주(綿紬)로 된 아상복을 입는 경우가 있어서 운평악 중 경운평(京運平)은 아상복을, 외운평(外運平)은 붉게 단장한 옷에 꽃을 꽂았다.
연원 및 변천
연산군 때에 가무와 기악에 능한 악공과 기녀들로 광희악·운평악·흥청악의 삼악을 구성하였다. 연산군이 새로운 이름을 많이 만들었는데, 악공(樂工)을 광희(廣熙)라 일컫고, 기녀(妓女)를 운평(運平)이라 일컬어서 승급하면 가흥청(假興淸)이 되고, 또 승급하면 흥청이라 했다. 운평으로 들어오는 자를 속홍(續紅), 입는 옷은 아상복(迓祥服), 거처하는 곳을 연방원(聯芳院)이라 부르며, 원각사(圓覺寺)를 국(局)으로 삼았다고 한다. 흥청악과 운평악은 재주와 기술에 따라 등급을 매겨서 9품부터 5품까지로 나누었다. 품마다 각각 정품 5등급과 종품 5등급을 갖추고, 여러 차례 통을 받은 자는 각 품으로 나누어 두고 쌀과 면포로 정·종을 분간하여 봉록을 주었다. 광희악으로 여러 차례 통을 받은 자는 그 재주와 기술에 따라 정·종을 분간하여 봉록을 더 주었다(『연산군일기』 11년 2월 13일).
삼악 가운데 흥청악이 입는 옷을 아상복이라고 했다. 5색 저사로 만들었으며, 화금도다익(畫金都多益)으로 장식했다. 새로 간택된 흥청악의 경우 아상복을 가지고 들어오게 했고, 운평악도 면주로 된 아상복을 입게 될 경우 각자가 준비하도록 하였다. 포염사(布染司)를 두어 아상복 만드는 것을 감독, 제조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형태
아상복의 구체적인 형태는 알 수 없다. 정전(正殿)에서 예연(禮宴)을 행할 때 기녀의 차림은 모두 머리에 수화(首花)·칠보잠(七寶簪)·금채[金釵]를 장식하고 단장(丹粧)에 보로(甫老)를 입고 홍대(紅帶)를 매며, 백말군(白袜裙)을 입고 단혜아(段鞋兒)를 신는다. 단장은 깃이 둥글고 앞이 짧고 뒤가 긴 포로서 겨드랑이 아래에 트임이 있는 옷이다. 운평악의 표의(表衣)는 아상복의 만듦새와 같고, 가선[緣]을 두르도록 했으므로(『연산군일기』 11년 1월 4일)(『연산군일기』 12년 3월 18일), 단장을 기본으로 하여 선을 대고 장식을 더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상복의 제도를 문자로 나타내서는 알기 어렵고, 모양을 그려 주해(註解)를 달면 알기 쉽겠다고 하여 그림을 그리고 접(貼)을 만들어서 장악원(掌樂院)에 두도록 했다(『연산군일기』 11년 1월 18일)는 기록으로 보아 특별한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
용도
진연(進宴), 회례연(會禮宴), 진풍정(進豊呈) 등의 궁중 연향과 국왕의 행차에 연주하고 춤추는 데 입는 옷으로 흥청악과 운평악이 입었다.
참고문헌
-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악학궤범(樂學軌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해동야언(海東野言)』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