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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자(親子)를 비롯하여 종친 및 문무백관들이 착용하는 관복(官服)으로, 상중(喪中)에는 담제의(禫祭儀)를 지낼 때 입는 검은색의 [[단령(團領)]]. | 친자(親子)를 비롯하여 종친 및 문무백관들이 착용하는 관복(官服)으로, 상중(喪中)에는 담제의(禫祭儀)를 지낼 때 입는 검은색의 [[단령(團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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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0:47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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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흑단령 |
한글표제 | 흑단령 |
한자표제 | 黑團領 |
상위어 | 길복(吉服) |
하위어 | 무양적색흑단령(無揚赤色黑團領), 백단령(白團領), 아청단령(鴉靑團領) |
관련어 | 담제(禫祭), 담제의(禫祭儀), 무문흑단령(無紋黑團領), 흑의(黑衣) |
분야 | 생활·풍속/의생활/의복 |
유형 | 의복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이민주 |
용도 | 길복(吉服), 복(服), 상복(喪服), 시복(緦服)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흑단령(黑團領)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인조실록』 4년 3월 23일, 『인조실록』 16년 6월 26일, 『효종실록』 2년 6월 14일, 『숙종실록』 2년 3월 8일, 『숙종실록』 29년 1월 12일 |
친자(親子)를 비롯하여 종친 및 문무백관들이 착용하는 관복(官服)으로, 상중(喪中)에는 담제의(禫祭儀)를 지낼 때 입는 검은색의 단령(團領).
개설
흑단령은 상복(常服)·시복(時服)으로 입는 검은색의 단령이다. 그러나 상중에는 담제의를 지내기 전에 종친 및 문무백관들이 갈아입는 옷으로 때에 따라 흑의(黑衣)라고도 불렀다. 상중이나 제사를 지낼 때 입는 흑단령은 무늬가 없는 무문흑단령(無紋黑團領)으로 중국에서는 소복(素服)이라고 하였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길복(吉服)으로 여겼으며, 상중에 중국 칙사를 맞이하거나 제복(祭服)으로 입을 때에는 흉배를 제거하였다.
상복(喪服)으로서의 흑단령을 입을 때에는 무문흑단령·오사모(烏紗帽)·흑각대(黑角帶)를 두르지만 상복이나 시복으로서의 흑단령을 입을 때에는 유문흑단령(有紋黑團領)·오사모·품대(品帶)를 갖춤으로써 상복과 구별된다.
연원 및 변천
왕세자를 비롯하여 친자 및 종친과 문무백관 등이 흑단령을 입고 담제(禫祭)에 제사를 지내는데, 왕세자는 무양적색흑의(無揚赤色黑衣)이며, 친자 및 종친과 문무백관들과 내시(內侍)·사알(司謁)·사약(司鑰)·서방색(書房色)·반감(飯監)은 단령의 흑의를 입고 여기에 오사모·흑각대를 띤다. 만약 내상(內喪)이 먼저 있으면 15개월 만에 담제를 지내는데 이때에도 왕세자는 무양적색흑의를 입고, 아헌관(亞獻官) 이하 여러 집사(執事)들도 흑의를 입는다.
흑의는 순길(純吉)한 옷이 아니며, 복을 벗을 때에는 예의와 인정에 맞아야 하므로 1626년(인조 4) 졸곡 후 왕세자는 대왕대비에게 진현할 때 무양적색흑의에 익선관·오각대를 하였다(『인조실록』 4년 3월 23일). 그러나 변란을 겪는 동안에는 제향할 때 융복을 입고 예를 행해 왔으나, 1638년(인조 16) 변란 후 예조(禮曹)가 흑단령을 쓰도록 청하였다(『인조실록』 16년 6월 26일). 이 후 1652년(효종 2) 부묘하는 날 백관의 복색에 대해 의논하였는데, 『국조오례의』「부묘의(祔廟儀)」를 상고해보니 전하께서는 면복(冕服)을 갖추고 문무백관은 조복(朝服)을 갖추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난리를 겪은 뒤로 사대부의 집에 가지고 있던 조복 등 물품이 전부 없어지고 부묘할 날짜가 멀지 않기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흑단령을 착용하고 예를 행하기로 의정하여(『효종실록』 2년 6월 14일), 1676년(숙종 2) 인선왕후를 태묘에 부할 때 종친과 문무백관은 흑단령·오사모·품대를 갖추어서 동가(動駕)를 지내는 제사를 행하고, 제사를 마치면 백관은 그대로 흑단령을 입고 망묘례를 행하였다(『숙종실록』 2년 3월 8일). 이는 1703년(숙종 29) 『오례의』를 상고하여 아헌관(亞獻官) 이하는 담제 후부터 재기(再朞)까지 길복을 입는다는 글에 따른 것이다(『숙종실록』 29년 1월 12일).
형태
흑단령은 목둘레가 둥근 검은 색의 옷으로 담제에 입을 때에는 무늬가 없다. 그 형태는 옷깃이 둥글고[圓領] 소매가 넓다[闊袖].
용도
흑단령은 담제를 지낼 때 입으며, 상복(常服)·시복(時服)으로도 입는다. 『오례의』에는 흑단령을 상복이라고도 하고 시복이라고도 하는데, 1610년(광해 2) 당시의 세상 사람들은 흑단령을 시복이라 하고 홍단령(紅團領)을 상복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1611년(광해 3) 2품 이상의 관원이 입는 복식을 아뢰면서 상복은 흑단령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바로잡았다. 그 후 흑단령은 부묘하는 날, 시호를 더하는 날, 정월 초하루와 동짓날 모이는 의식, 상제(祥祭) 이후부터 삭망제(朔望祭) 때 혼궁(魂宮)과 묘소(墓所)의 헌관(獻官) 이하가 착용하였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국립안동대학교박물관, 『길짐승흉배와 함께하는 17세기의 무관 옷 이야기』, 2005.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