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옹(朴世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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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493년(성종 24)~1541년(중종 36) = 49세]. 조선 중기 중종 때에 활동한 문신. 행직(行職)은 이조 참의(參議)이다. 자는 경운(景雲)이다. 본관은 함양(咸陽)인데, 아버지는 성균관(成均館)생원(生員)박중검(朴仲儉)이고, 어머니 전의이씨(全義李氏)는 부사(府使)이관식(李寬植)의 딸이다.

중종 시대 활동

1519년(중종 14) 사마시(司馬試)의 생원과 진사(進仕) 두 과에 모두 합격하였다. 1525년(중종 20)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부정자(副正字)에 임명되었다. 그 뒤에 사관(史官)의 재목으로 천거되어 예문관(藝文館) 검열(檢閱)에 제수되고, 봉교(奉敎)를 거쳐 성균관 전적(典籍)이 되었으며, 1530년(중종 25)에 사간원(司諫院)정언(正言)이 되었다. 1531년(중종 26)에 홍문관(弘文館)부수찬(副修撰)이 되고, 다시 사간원 정언이 되었다. 그 뒤 홍문관 수찬(修撰)으로 승진하고, 예조 좌랑(佐郞)을 거쳐 병조 좌랑(佐郞)을 지냈다. 1536년(중종 31) 부친상을 마치고,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문학(文學)이 되었다가 사헌부(司憲府)지평(持平)이 되었고, 이듬해에 사헌부 장령(掌令)으로 승진하였다. 의정부(議政府) 검상(檢詳)과 사인(舍人)을 역임하였고, 홍문관 응교(應敎)를 거쳐 사간원 사간(司諫)에 임명되었다. 1538년(중종 33)에 홍문관 전한(典翰)이 되었고, 그 뒤에 직제학(直提學)으로 승진하였다. 1539년(중종 34)에 당상의 품계(品階)에 오르면서 예조 참의가 되었고, 사은사(謝恩使)로서 명(明)나라 북경(北京)에 다녀왔다. 1540년(중종 35)에 병조 참의를 거쳐 이조 참의가 되었다. 1541년(중종 36) 4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성품과 일화

박세옹은 성품이 질박하고 정직하며 외모를 꾸미려 하지 않았으며 부지런히 생업에 종사하고 검소하게 자신을 단속하며 욕심이 없이 스스로 지조를 지키고 성색(聲色)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고관(高官)이 되어서는 자신의 밭을 종가(宗家)에 붙여 제사에 쓰도록 하니, 듣는 자가 어질다고 하였다.

묘소와 비문

묘소는 경기도 양주(楊州) 신혈리(神穴里)에 있다. 홍섬(洪暹)이 묘갈명(墓碣銘)을 지었다. 부인 남양홍씨(南陽洪氏)는 홍세필(洪世弼)의 딸인데, 3남을 두었다. 1자는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박정립(朴挺立)이고, 2자는 예빈시(禮賓寺) 봉사(奉事)박명립(朴名立)이고 3자는 박유립(朴柔立)이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정덕14년기묘식사마방목(正德十四年己卯式司馬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