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윤선도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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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윤선도 유적
Historic Site Related to Yun Seon-do, Haenam
해남군, (재)마한문화연구원, 『해남 윤선도유적』, (재)마한문화연구원, 2016.
대표명칭 해남 윤선도 유적
영문명칭 Historic Site Related to Yun Seon-do, Haenam
한자 海南 尹善道 遺蹟
주소 해남군 현산면 구시리 산 181
지정번호 사적 제432호
지정일 2001년 8월 17일
분류 유적건조물/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육상유물산포지/역사유물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49,402㎡
웹사이트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해설문

국문

해남 윤선도 유적은 금쇄동(金鎖洞)과 금쇄동 안에 있는 현산고성을 가리킨다. 고산 윤선도가 54세 되던 해인 인조 16년(1640)에 황금 자물쇠로 잠긴 상자인 금쇄석궤(金鎖石櫃)를 얻는 꿈을 꾼 후 며칠 지나지 않아 꿈속에서 보았던 이곳을 찾아서 금쇄동이라 이름 지었다.

금쇄동은 넓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조성한 거대한 원림(園林)*이다. 윤선도는 수정동, 금쇄동, 문소동을 조성하고 10여 년간 세상을 피해 숨어 살면서 「금쇄동기」, 「금쇄동집고」, 「산중신곡」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또한 주변의 명소 22곳에 이름을 붙여 금쇄동의 아름다운 경치를 소개했다.

2015년 금쇄동 유적을 부분적으로 발굴하고 조사하여 교의재, 회심당, 휘수정 등 주요 건물의 규모와 성격을 밝혀 냈다. 금쇄동을 둘러싼 현산고성은 고려 시대에 쌓은 것으로 드러났으며, 동문, 서문, 북문 등 문터 세 곳이 확인되었다.

윤선도는 현종 12년(1671)에 완도 보길도 낙서재에서 85세로 생을 마감한 뒤 이곳 금쇄동에 묻혔다.

  • 원림: 경치 좋은 곳에 정자와 폭포 등을 만들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꾸민 정원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