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해설문

수원 화성 - 장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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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문 (長安門)
Janganmun Gate
"수원 화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 1794년(정조 18) 창건
  • 6.25전쟁으로 폭격 피해
  • 1975년 복원

화성의 북쪽 정문이다. 장안문이라는 이름은 ‘북쪽으로 서울의 궁궐을 바라보고, 남쪽으로 원침(현륭원)을 바라보아 만년의 편안함을 길이 알리는’ 뜻에서 ‘길이(長), 편안함(安)’을 상징한다고 정조 자신이 풀이했다. 문 앞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을 두고, 좌우에는 적대를 세워 방비를 든든하게 했다. 석축 위에 세운 문루(門樓)는 화성 내에서 가장 웅장하고 높은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 처마 밑에는 다포(多包)라는 화려하고 정교하게 다듬은 부재를 가득 짜서 올렸다.

다포식 건물을 짓기 위해 강원도 출신 승려 목수가 화성으로 와서 일을 했다. 지붕은 네 방향 모서리에 걸린 추녀가 길게 경사를 이루면서 용마루와 만나는 우진각 형태이다. 길고 휘어진 목재를 구하기 힘든 조선시대에는 이런 모양의 지붕은 궁궐의 정문이나 서울의 남대문, 동대문에나 쓰였는데, 장안문도 우진각 지붕으로 지었다.

장안문을 완성하고 정조는 해마다 이 문을 지나 현륭원을 찾았으며, 뒤를 이은 순조, 헌종, 철종, 고종도 이 문으로 화성을 방문하였다. 장안문 바깥에 펼쳐진 넓은 들판 대유평은 화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가꾼 농경지이다. 장안문은 서울의 숭례문, 흥인지문과 함께 조선시대 성문을 대표한다.

영문

Janganmun is the north gate of Hwaseong Fortress. Its name “Jangan (長安)” means “perpetual peace.”

One of the four gates of Hwaseong Fortress, Janganmun was constructed in 1794. It consists of a stone arch, two-story wooden pavilion, and a semi-circular stone wall which helps defend the gate.

As the main thoroughfare of Hwaseong was along a north-south axis, the north and south gates played a comparatively more important role as the main entrance and exit of the fortress. Typically, the main gate of a traditional Korean fortress was the south gate. However, as King Jeongjo would first come upon the north gate when travelling to Hwaseong from the capital, Hwaseong Fortress's north gate is its main gate. When Jeongjo died in 1800, his coffin was escorted through this gate on its way to his tomb site to the south of the fortress.

The wooden pavilion of this gate was destroyed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and was reconstructed in 1975. The gate is large in scale and has a splendid structure. It is even taller than Sungnyemun (National Treasure No. 1), the main gate of the Seoul City Wall.

영문 해설 내용

장안문은 화성의 북쪽 출입문이다. 장안(長安)은 '길이 편안함'을 뜻한다.

화성의 4대문 중 하나인 장안문은 1794년에 세워졌으며, 석조 홍예문, 중층 목조 누각, 석조 옹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성의 주 통행로가 남북 방향으로 났기 때문에, 남문과 북문은 주 통행문으로서 동문과 서문에 비해 좀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국의 전통적인 성곽에서는 보통 남문이 정문으로 쓰였다. 그러나 정조가 화성에 방문할 때 가장 먼저 북문을 지났기 때문에 화성에서는 북문이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1800년 정조가 승하했을 때는 정조의 재궁(시신을 모신 관)이 이 문을 지나 무덤으로 향했다.

장안문의 목조 누각은 한국전쟁 중에 파괴되었다가 1975년에 다시 세워졌다. 장안문은 규모가 크고 화려한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한양도성의 정문인 숭례문(국보 제1호)보다도 높이가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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