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옥(繫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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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역모 및 살인·강도 등의 죄인을 재판을 위해 의금부(義禁府)나 형조의 감옥에 잡아두는 행위.

내용

조선전기에 범죄자를 직접 체포하고 수금할 수 있는 직수아문(直囚衙門)은 병조(兵曹)·형조(刑曹)·한성부(漢城府)·사헌부(司憲府)·승정원(承政院)·장례원(掌隷院)·종부시(宗簿寺)·관찰사(觀察使)·수령(守令) 등이 있었지만 조선후기에는 비변사(備邊司)·의정부(議政府)·포도청(捕盜廳)이 추가되었다. 이밖에 1392년(태조 1) 전옥서(典獄署)가 설치되어 구금된 죄수의 형벌을 관장하였다.

계옥된 죄수는 남녀 구별이 엄격하여 남옥(男獄: 東圜)과 여옥(女獄: 西圜)으로 나누어 수감하였다. 죄수는 옥중에서 수갑(手匣)과 가쇄뉴(枷鎻杻)를 채웠는데, 병들어도 이를 풀어주지 않았다. 또한 그들에게는 의복·식량·의약 등을 제공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이 외부에서 의복과 음식을 제공해 생명을 유지하였다.

이들 직수아문의 감옥에 갇힌 죄수는 사건 조사와 판결을 받기 위해 대기하였는데, 사건 처리가 지체되면 장기간 옥살이를 하였다. 옥중에 있는 동안 죄수에게는 형신(刑訊)이 가해지고 수갑(手匣)·가쇄(枷鎖)가 채워졌기 때문에 판결을 마치기 전에 사망하는 사례가 많았다.

용례

上召承旨 親敎曰 今觀宗親永貞守公事 近來宗親 多有妄行者 故不得已繫獄推之 雖若不合於待宗親之禮 然國家設宗學而敎之者 非欲使之學爲文章也 只欲令攻學業 謹於持身也 比來 宗親妄行者多 而宗簿寺不能檢覈 上則雖以宗親而容恕 然宗簿寺則乃法司也 不可不檢察也 此意 其令宗簿寺知之 永貞守冒濫上言 自請陞堂上 宗簿寺請罪 故有是敎(『중종실록』 11년 5월 21일)

참고문헌

  •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 『육전조례(六典條例)』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