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도(利仁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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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충청도 공주의 이인역을 중심으로 편성한 역도.

개설

이인도(利仁道)는 조선 세종대에 설치된 뒤 조선후기까지 존속하였다. 다만 세조 연간에 단행된 세 차례의 역제 개편을 거치면서 그 속역에는 변화가 있었다.

내용 및 특징

이인도는 율봉도(栗峰道)·성환도(成歡道)·시흥도(時興道)·연원도(連原道)·금정도(金井道)와 더불어 충청도 지역에 설치된 역도(驛道)이다. 공주를 중심으로 부여-홍산-한산, 서천, 비인~남포 등지로 이어지는 역로, 공주~정산을 연결하는 역로를 관할하였다. 중심 역인 이인역에는 역승(驛丞)이 파견되어 역무를 관장하였는데, 1865년(고종 2)에 편찬된 『대전회통(大典會通)』을 살펴보면 이인도와 금정도의 역승이 찰방(察訪)으로 승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변천

고려의 역도를 계승한 조선 왕조가 역도를 언제부터 개혁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태종과 세종대의 역도 개편의 과정을 거쳐 1457년(세조 3) 9월에는 병조(兵曹)의 수교관문(受敎關文)에 의거하여 이조(吏曹)에서 계(啓)한 바에 따르면 국도(國都) 주변의 경기 여러 역과 강원·충청도의 일부 역을 합속하여 경기좌우도(京畿左右道)·경기충청좌우도(京畿忠淸左右道)·경기충청도(京畿忠淸道)·경기강원도(京畿江原道)의 6도로 나누어 역승을 폐지하고 정역찰방(程驛察訪)을 설치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역도-속역 체제의 개편 과정에서 충청도 지역의 역도는 1460년(세조 6)과 1462년(세조 8)의 역제 개편을 통해 일부 역도가 통합되면서 완성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충청도에는 이인도 외에 율봉도·일신도·연원도·성환도·황강도·증약도·시흥도·금정도 등의 역도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뒤 세조 연간인 1457년에는 시흥도와 금정도를 이인도에 통합하였다. 그러나 1460년에 이인도에 속한 10개 역과 금정도에 속한 12개 역, 시흥도에 소속된 5개 역을 이인도로 통합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이 조치는 그대로 시행되지 않았거나 시행 후 다시 변화를 겪은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1462년의 역제 개편을 통해 충청도의 역도는 이인도·연원도·율봉도·성환도·금정도·시흥도로 개편되었는데, 이때 이인도에는 이인역을 비롯해 유양역(楡楊驛)·용전역(龍田驛)·은산역(銀山驛)·영유역(靈楡驛)·숙홍역(宿鴻驛)·신곡역(新谷驛)·두곡역(豆谷驛)·청화역(菁化驛)·남전역(藍田驛) 등 10개의 속역이 배속되었다.

1808년(순조 8)에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따르면, 이인도에는 이인역·유양역·은산역(恩山驛)·영유역·용전역·숙홍역·남전역·청화역(靑化驛)·두곡역 등 9개의 속역이 있었으며, 3등마 274필, 아전과 군졸 10,466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이에 비해 1865년에 편찬된 『대전회통』에는, 이인도의 속역으로 용전역·은산역·유양역·숙홍역·남전역·청화역·두곡역·신곡역·영유역 등 9개 역이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만기요람(萬機要覽)』
  • 조병로, 『韓國近世 驛制史硏究』, 국학자료원, 2005.
  • 유선호, 「朝鮮初期의 驛路와 直路」, 『역사교육』70,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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