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환도(成歡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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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충청도 직산의 성환역을 중심으로 설치한 역도.

개설

성환도(成歡道)는 세종대에 역도-속역 체계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충청도 직산의 성환역을 중심으로 설치한 역도(驛道)로,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에 폐지되었다. 관련 사료가 부족해 조선시대 전기의 운영 실태는 알 수 없으나, 1872년(고종 9)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誌)』를 통해 조선시대 후기의 운영 상황은 대략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

내용 및 특징

성환도는 율봉도(栗峰道)·연원도(連原道)·시흥도(時興道)·이인도(利仁道)·금정도(金井道) 등과 더불어 충청도 지역에 설치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성환도에는 성환역을 비롯해 신은역(新恩驛)·김제역(金蹄驛)·장명역(長命驛)·영춘역(迎春驛)·일신역(日新驛)·광정역(廣程驛)·경천역(敬天驛)·평천역(平川驛)·금사역(金沙驛)·단평역(丹平驛)·유구역(惟鳩驛) 등 12개 속역이 소속되었다. 성환(成歡)-천안(天安)-공주(公州)-여산(礪山)으로 이어지는 역로와, 공주와 연기(燕岐)·예산(禮山), 천안과 목천(木川)을 잇는 역로를 관할하였으며, 중심 역인 성환역에는 찰방(察訪)이 파견되어 역무를 주관하였다.

변천

고려의 역도를 계승한 조선 왕조가 언제부터 역도를 개혁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태종과 세종대를 거치며 지속적으로 역도를 개편하였다. 그 뒤 1457년(세조 3) 9월에는 경기도의 여러 역과 강원도 및 충청도의 일부 역을 합속하여 경기좌도·경기우도·경기충청좌도·경기충청우도·경기충청도·경기강원도 등 6개 역도로 나누고, 역승(驛丞)을 폐지하고 정역찰방(程驛察訪)을 설치하였다. 이후 1460년(세조 6)과 1462년(세조 8)의 역제 개편을 통해 역도를 완성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성환도는 신은·김제·연춘(延春)·장명 등 4개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 그 뒤 세조 연간인 1460년에는 성환도에 속한 직산현(稙山縣)의 성환역, 천안군(天安郡)의 신은역·김제역, 목천현(木川縣)의 연춘역, 청주(淸州)의 장명역과, 일신도(日新道)에 속한 공주(公州)의 일신역·광정역·유구역(唯鳩驛)·단평역·경천역, 연산현(連山縣)의 평천역과, 증약도(增若道)에 소속된 옥천군(沃川郡)의 증약역(增若驛)·가화역(加禾驛)·토화역(土禾驛)·순양역(順陽驛)·화인역(化仁驛), 회덕현(懷德縣)의 전민역(田民驛), 영동현(永同縣)의 회동역(會同驛), 보은현(報恩縣)의 원암역(原巖驛)·함림역(含林驛), 황간현(黃澗縣)의 신흥역(新興驛)과, 율봉도에 속한 연기현(燕岐縣)의 금사역 등 총 22개 역을 합하여 성환도라 하였다(『세조실록』 6년 2월 5일).

1462년에는 이를 다시 고쳐 성환역·신은역·김제역·장명역·영춘역·일신역·광정역·경천역·평천역·금사역·단평역·유구역(惟鳩驛)을 성환도에 배속시켰다(『세조실록』 8년 8월 5일).

한편 1808년(순조 8)에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따르면 성환도에는 김제역·광정역·일신역·경천역·유구역·단평역·평천역·영춘역·장명역·금사역 등 10개의 속역이 있었고, 마필은 모두 3등으로 478필, 아전과 군졸은 8,704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1872년(고종 9)에 편찬된 『호남읍지』를 바탕으로 성환도의 마호와 마위전을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대동여지도」에 표기한 속역 분포는 다음 <그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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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환도는 1896년 1월 18일,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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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만기요람(萬機要覽)』
  • 『호남읍지(湖南邑誌)』
  • 조병로, 『韓國近世 驛制史硏究』, 국학자료원, 2005.
  • 유선호, 「朝鮮初期의 驛路와 直路」, 『역사교육』70,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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