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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2:37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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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조석곡전급상식의 |
한글표제 | 조석곡전급상식의 |
한자표제 | 朝夕哭奠及上食儀 |
상위어 | 국장(國葬) |
관련어 | 반교서(頒敎書), 성빈(成殯) |
분야 | 왕실/왕실의례/흉례 |
유형 | 의식·행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박현숙 |
시행시기 | 성빈(成殯) 후 |
시행기관 | 빈전혼전도감(殯殿魂殿都監) |
시행장소 | 빈전(殯殿)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조석곡전급상식의(朝夕哭奠及上食儀)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오례 흉례 의식 조석곡전 급 상식의 |
아침, 저녁으로 곡을 하며 전(奠)을 올리고, 아침, 저녁 식사 때 음식을 올리는 의례.
개설
왕이 죽은 후 시신(屍身)의 염습(斂襲)이 끝나고 5개월 동안 왕의 관(棺)인 재궁(梓宮)을 모셔 두는 빈전(殯殿)이 설치되면, 새로운 왕이 후계를 이어 교서를 반포하는 반교서(頒敎書)를 행하고 즉위한다. 재궁을 능(陵)에 안장(安葬)하기 전까지 아침, 저녁으로 곡(哭)을 하며 전을 올리고, 끼니때가 되면 음식을 올린다. 본 의례를 행하기 전에 육신(肉身)에서 떠난 혼(魂)이 의지할 수 있도록 만든 혼백(魂帛)을 위한 영좌(靈座) 설치하고, 석전(夕奠)이 끝나면 혼백을 함에 담아 영침(靈寢)에 모신다.
절차 및 내용
국장(國葬) 때 빈전이 이루어지면 행한다. 의식은 날이 밝기 전과 잠들기 전에 곡을 하고 전을 올리며, 식사 시간이 되면 음식을 올리는 절차이다. 국장 기간의 예찬(禮饌)은 봉상시(奉常寺), 내섬시(內贍寺), 내자시(內資寺)에서 3일씩 돌아가면서 준비한다. 조전(朝奠)은 해가 뜨면, 석전은 해가 지면 올린다. 아침, 저녁 식사 때가 되면 상식(上食)을 올린다. 전에 올리는 음식은 유밀과(油蜜菓), 실과(實果), 면(麵), 병(餠), 탕(湯)이고, 상식은 평상시 음식과 동일하게 차리지만 고기반찬은 올리지 않는다. 대전관(代奠官)은 종친 중에 2품 이상의 관원이 맡는다. 왕비나 왕대비의 상인 내상(內喪)인 경우 전은 상식(尙食)이 올리고, 대야와 머리빗은 내명부의 여관(女官)인 상침(尙寢)이 놓고, 혼백함은 상궁(尙宮)이 모신다.
조전은 날이 밝기 전에 액정서(掖庭署)에서 빈전의 지게문 밖에 왕의 자리와 대군이하 왕자의 자리를 설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해가 뜨면 유사(攸司)가 올린 예찬을 내시(內侍)가 영좌 앞에 진설하고, 향로(香爐), 향합(香盒), 초[燭]를 설치한다. 내시가 대야와 머리빗 등의 도구를 영침 곁에 설치하고 혼백함을 받들고 나와 영좌에 모신다.
왕이 지팡이를 짚고 들어가 자리에 나아가 꿇어 앉아 엎드려 곡을 하면 대군 이하 왕자는 지팡이를 놓고 들어와 곡을 한다. 대전관이 손을 씻고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 향안 앞에 북향하여 무릎을 꿇고 앉는다. 향을 3번 올리고, 술을 3잔 연속하여 올린 후 엎드렸다가 일어나 물러간다. 왕이 곡을 하여 지극히 슬퍼하는 마음을 표하면 대군 이하도 지극히 슬퍼하는 마음을 표한다. 왕이 시묘살이를 위해 임시로 지은 여차(廬次)로 돌아오면 대군 이하도 돌아간다.
석전과 상식의 절차는 조전을 올릴 때와 같다. 석전을 마치면 혼백함을 영침에 모신다.
이 기간에는 슬픈 마음이 들면 아무 때나 곡을 할 수 있다(『세종실록』 오례 흉례 의식 조석곡전 급 상식의). 이상의 조석곡전급상식의의 절차는 조선시대 내내 큰 변화 없이 지속되었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 안희재, 「조선시대 국상의례 연구-국왕국장을 중심으로」, 국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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