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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8일 (월) 16:05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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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녹사 |
한글표제 | 녹사 |
한자표제 | 錄事 |
관련어 | 서리(書吏), 서리(胥吏), 잡색군(雜色軍), 중인(中人), 유품녹사(有品錄事) |
분야 | 정치/행정/관속 |
유형 | 직역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신라, 고려, 조선 |
왕대 | 신라, 고려, 조선 |
집필자 | 강석화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녹사(錄事)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조실록』 1년 7월 28일 |
조선시대 여러 관청에서 문서 취급과 공문 전달 등의 일을 맡은 이속(吏屬).
개설
중앙 여러 관서에 속하여 문서를 정서하거나 관리하고 공문을 전달하는 등의 일을 수행하였던 서리(書吏)와 중앙 관아인 경아전(京衙前)에 속한 상급 서리(胥吏)를 통칭한다. 본래 조선초기에는 8~9품의 유품(有品) 녹사(錄事)였으나 세조대 이후 상급 서리로 일원화되었다.
담당 직무
녹사는 일정한 시험을 거쳐 등용되는 행정 실무 담당 관리였으며, 본래 품계가 있는 경우에는 녹사가 될 수 없었다. 문관인 동반에 속하는 여러 관청에는 의정부에서, 무관인 서반 관아에는 중추부에서 녹사를 파견하여 근무시켰다. 복무 일수가 514일이면 품계가 올라가며, 사유가 있어 100일간 근무하지 못한 경우와 이유 없이 30일간 근무하지 않은 경우 근무 일수를 삭제하여 파출하되, 추후 복귀하기를 원하면 허락되었다. 품계가 종6품에 도달한 후에는 취재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취재 합격자는 수령직을 제수하였고 불합격자는 서반 체아직으로 삼아 결원이 생길 경우 순서대로 등용하였다.
삼의사(三醫司)·역관(譯官)·율관(律官)·일관(日官)·사자관(寫字官)·산원(算員)·화원(畵員) 등 잡과 출신자 및 전직 관료나 금군(禁軍)과 마찬가지로 도성 내에서 말을 타고 다닐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러나 정식 사족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중인으로 인정되었으며, 서리·제원(諸員)·화원·도류(道流)·서제(書題)·복예(僕隸)·각 고을의 인리(人吏)·일수(日守)·서원(書員)·의생(醫生)·율생(律生)·수릉군(守陵軍)·수묘군(守墓軍)·간수군(看守軍)·단직(壇直)·당직(堂直)·약부(藥夫)·진부(津夫)·수부(水夫)·빙부(氷夫)·원주(院主)·목자(牧子)·장인(匠人)·공천(公賤)·사천(私賤) 등과 함께 잡색군에 속하였다.
변천
녹사라는 명칭은 신라 경덕왕 때 처음 나타나며 봉성사성전(奉聖寺成典)·감은사성전(感恩寺成典)·봉덕사성전(奉德寺成典)·영묘사성전(靈廟寺成典) 등에 속한 관직이었다. 고려 때에는 문하부의 종7품, 정승성(政丞省)의 정9품, 전의시·군기시·혜제고·의제고·보원해전고·오부(五部)·연경궁제거사·왕비부·세자부·제왕자부(諸王子府)의 8∼9품, 도평의사사·삼군도총제부·상서사·영송도감·전목사(典牧司) 등 유품직(流品職)이나 사헌부·예문관에 속한 이속(吏屬)이었다.
조선 건국 후 경력사(經歷司)에 육방(六房) 녹사 6명, 검상조례사(檢詳條例司)에 3명, 상서사(尙瑞司)에 정8품 2명, 봉상시(奉常寺)에 정9품 2명, 훈련관(訓鍊觀)에 정8품 6명, 예빈시(禮賓寺)에 정8품 2명, 선공감(繕工監)에 정8품 2명, 군자감(軍資監)에 정8품 2명, 사수감(司水監)에 정8품 2명, 제용고(濟用庫)에 종9품 2명, 해전고(解典庫)에 종9품 2명, 한성부 5부에 각기 권무(權務) 2명, 서적원(書籍院)에 종9품 2명, 수창궁(壽昌宮) 제거사(提擧司)에 도평의녹사(都評議錄事) 6명, 식목녹사(式目錄事) 6명, 중군(中軍) 녹사 4명, 좌군(左軍) 녹사 4명, 우군(右軍) 녹사 4명, 양현고(養賢庫)에 2명이 배속되었다(『태조실록』 1년 7월 28일). 이외에 필요시 설치되는 각종 도감(都監)에도 실무 관료로 배치되었다. 즉 조선초기의 녹사는 8~9품의 유품 녹사였으나, 세조대 이후 유품 녹사는 모두 폐지되고 녹사는 상급 서리로 일원화되었다.
녹사의 정원은 일정하지 않았으며, 『경국대전』의 규정에 따르면 종친부의 대군과 왕자군에게 각 1인, 의정부의 의정·찬성·참찬에게 각 1인이 배속되었고, 중추부 영사·판사·지사·동지사에게 각 1인, 육조의 판서와 참판에게 각 1인, 오위 장에게 각 1인, 내금위 장에게 2인, 순장(巡將) 2소(所)에 각 2인, 겸사복장(兼司僕將)에게 1인씩 배정되었다.
조선후기에는 직접 배속된 녹사는 오위 장, 내금위 장, 좌·우 순장, 겸사복장을 제외하고 모두 폐지하였다. 『대전통편』의 규정에 따르면 의정부의 의정·찬성·참찬에게 각 1인, 6조에는 각 1인씩 두되 병조와 형조에만 1인씩 추가 배치하였다. 중추부의 영사·의정대신을 거친 판사에게 각 1인, 보국숭록대부 품계를 가진 지사에게 각 1인, 종친부의 대군과 왕자군에게 각 1인, 돈령부 영사에게 1인, 충훈부와 의빈부·기로소에 각 1인씩 배치하였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이종수, 『행정학사전』, 대영문화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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