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급랍친향종묘의(四時及臘親享宗廟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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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및 납일(臘日)에 종묘(宗廟)에서 왕이 친향(親享)하는 의례.

개설

조선시대의 국가 오례(五禮) 중 길례(吉禮)에 속하며, 국가 제사 체계 중 등급이 가장 높은 대사(大祀)에 해당하였다. 음력 1월인 맹춘(孟春)·음력 4월인 맹하(孟夏)·음력 7월인 맹추(孟秋)·음력 10월인 맹동(孟冬)의 상순(上旬) 및 동지 후 세 번째 미일(未日)인 납일(臘日)에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에서 왕이 직접 지냈던 제사이다. 왕이 신위에 첫 번째 잔을 올리는 초헌관(初獻官)을, 왕세자가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관(亞獻官)을, 영의정(領議政)이 마지막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관(終獻官)을 담당하였다.

연원 및 변천

중국 당(唐)『개원례(開元禮)』의 황제시향어태묘(皇帝時享於太廟)에서부터 관련 의례가 확인된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고려사(高麗史)』의 사맹월급랍친향의(四孟月及臘親享儀)에 처음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1451년(문종 1)에 편찬한 『세종실록』「오례」에 사시급랍친향종묘의(四時及臘親享宗廟儀)가 처음으로 나타나고, 이후 성종대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정조대 『국조오례통편(國朝五禮通編)』과 『춘관통고(春官通考)』, 대한제국 시기의 『대한예전(大韓禮典)』 등 역대 전례서에 이 의주가 모두 수록되어 있다. 특히 대한제국 시기에는 모든 의례가 황제국의 위격으로 바뀜에 따라 조선시대와 다른 명칭의 변화가 있었으나 기본적인 의식 절차는 『국조오례의』를 벗어나지 않았다.

절차 및 내용

의식은 향사(享祀) 전 왕의 7일간의 재계(齋戒)로 시작한다. 왕은 4일 동안 별전(別殿)에서 산재(散齋)하고, 3일 중 2일은 정전(正殿)에서, 1일은 재궁(齋宮)에서 치재(致齋)한다. 산재는 제관(祭官)이 치제에 앞서 몸을 깨끗이 하고 행동을 삼가는 것으로, 일상 업무는 정상적으로 수행했으며 정침에서 잤다. 치재는 산재 이후 제사가 끝날 때까지 재계하는 것으로, 치제 기간에는 전적으로 제사에 관련된 일에만 전념하였다.

향사 3일 전에는 진설(陳設)을 한다. 의례에 쓰는 장막 따위를 관장하는 전설사(典設司)는 왕이 잠깐 머물러 쉴 수 있는 소차(小次)를 묘(廟)의 조계(阼階) 동쪽에 서향으로 설치한다. 시신(侍臣)·왕세자·모든 향관 및 종친, 배향관의 임시 거처인 차(次)를 각각의 위치와 방향에 맞게 설치한다.

향사 2일 전에 종묘의 관리를 맡은 묘사(廟司)는 소속 인원을 거느리고 묘(廟)의 안팎을 청소하고, 전설사는 음식을 준비할 찬만(饌幔)을 설치하며, 음악을 담당한 전악(典樂)은 사당 섬돌 위에 등가(登歌)헌가(軒架)를 설치한다. 향사 1일 전, 집례(執禮)는 왕의 판위(版位), 복주(福酒)를 마시는 자리인 음복위(飮福位) 등을 설치한다. 찬자(贊者)는 아헌관(亞獻官), 종헌관(終獻官) 및 여러 제관의 자리를 각각 방향과 위치에 맞게 설치한다.

향사 당일의 행사 시작 전, 궁위령(宮闈令)은 소속 인원을 거느리고 종묘 각 실(室)의 문을 열어 휘장, 돗자리를 정돈하고, 궤(几)를 평상시 의식대로 설치한다. 전사관(典祀官)과 묘사는 소속 인원을 거느리고 축판(祝版), 폐비(幣篚), 향로·향합·촛대, 제기 등을 규정대로 진설한다.

향사 1일 전에는 왕이 거가출궁(車駕出宮) 즉 종묘의 재궁으로 행차하고, 희생과 제기를 살펴야 할 사람들은 희생을 살핀 뒤 희생을 잡고, 각종 제사 음식을 담을 찬구(饌具) 등을 살피는 성생기(省牲器)를 행한다.

향사 당일에는 축시(丑時) 5각 전부터 준비를 하여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왕이 신관례(晨祼禮)를 하고, 이어서 왕과 왕후의 신위(神位)에게 폐백을 올리는 전폐(奠幣) 의식을 거행한다. 1각은 약 15분이다.

다음으로 신을 위해 제물을 바치는 절차인 궤식(饋食)을 행한다. 먼저 소·양·돼지를 삶았던 가마솥인 확(鑊)에서 떠올려 정(鼎)에 담아 제수를 점검하는 장소에 친 휘장인 찬만(饌幔) 안에 진설한다. 이어서 궤식의 하위 의식으로 소·양·돼지를 생갑(牲匣)에 담아 각 실에 올리는 진찬(進饌) 의식을 거행하고, 다음으로 왕과 왕세자, 영의정이 각각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초헌(初獻),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아헌(亞獻), 마지막 술잔을 올리는 종헌(終獻) 의식을 거행한다.

이후 왕이 음복위로 나아와 희생 고기인 조육(胙肉)을 받아 나누고, 술을 받아 마시는 음복 의식을 거행한다. 다음으로 모든 대축(大祝)이 변(籩)·두(豆) 1개씩을 조금 옮겨 놓는 철변두(徹籩豆) 의식을 행한 다음 왕은 재궁으로 돌아가고, 아헌관이 망예위로 나아가 축판과 폐백을 구덩이에 묻는 것을 바라본다. 헌관과 모든 제관이 절하는 자리인 배위(拜位)로 돌아와 네 번 절하고 물러난다. 왕이 궁궐로 돌아오면, 마지막에 의식을 거행한 왕에게 신하들이 칭하(稱賀)하는 의식을 한다.

이러한 의식의 큰 틀은 『세종실록』「오례」부터 『대한예전』까지 세부적인 변화가 조금 있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의식 절차는 큰 변화 없이 지속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국조오례통편(國朝五禮通編)』
  • 『춘관통고(春官通考)』
  • 『대한예전(大韓禮典)』
  • 『대당개원례(大唐開元禮)』
  • 김문식·한형주·이현진·심재우·이민주, 『조선의 국가 제사』,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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