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위령(宮闈令)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조선시대 국가 제향(祭享)에서 왕비나 세자빈의 신주(神主)를 출납하던 제관(祭官).

개설

궁위령(宮闈令)은 조선시대 종묘의 제향, 국상(國喪), 천릉(遷陵), 부묘(祔廟), 존호가상(尊號加上) 등의 의례에서 왕비의 신주를 출납하던 관원이었다. 내시부 소속 환관이 임명되었다.

담당 직무

궁위령의 직무는 왕비, 혹은 세자빈 등 왕실의 내상(內喪) 및 이들에 대한 제향, 종묘의 제향 등에서 왕비 혹은 세자빈의 신주를 받들어 좌(座)에 모시고 푸른 모시인 청저건(靑紵巾)으로 덮어두며, 의식이 끝나면 이를 감실(龕室)로 모시는 것이었다. 흉례 의식 중 혼전우제의(魂殿虞祭儀)와 졸곡제의(卒哭祭儀)에서는 영악(靈幄)을 깨끗하게 털고, 왕보다 먼저 왕비가 승하했을 경우 왕후의 신좌를 왕의 영좌 동쪽에 설치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왕비의 신주를 부묘할 때, 영녕전으로 옮겨 봉안할 때 궁위령은 신주를 꺼내어 의식을 행한 후 감실에 모시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존호를 가상할 때에도 신주의 출납을 담당하였으며, 천릉을 할 때에는 왕후의 지방(紙榜)을 출납하는 것이 궁위령의 직무였다.

변천

1421년(세종 3)에 고려시대부터 종묘의 녹관(祿官)을 궁위령으로 삼았던 것을 당제(唐制) 및 송나라의 선례를 참고로 하여 내시부 환관을 궁위령으로 임명하는 것으로 바꾸었다(『세종실록』3년 12월 11일). 종묘의 왕 친제에는 2명의 궁위령이 제향에 참여하며, 삭망전(朔望奠)에는 1명이 참여하였다. 궁위령의 선발은 제관으로 차출하여 사헌부에 보고하던 것이 내시부에서 명단을 올리면 낙점하는 것으로 변화하였다(『정조실록』 10년 2월 14일).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한우근 외 역;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인문연구실 편, 『(역주)경국대전: 주석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