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근도(沙斤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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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경상도 함양의 사근역(沙斤驛)을 중심으로 설치한 역도.

개설

사근도(沙斤道)는 1423년(세종 5)에 황산도(黃山道)와 성현도(省峴道)를 설치하면서 개편한 경상도 지역의 역도(驛道)로, 고려시대의 산남도(山南道)를 계승, 재편한 것으로 보인다.

내용 및 특징

사근도는 안기도(安奇道)·장수도(長水道)·유곡도(幽谷道)·김천도(金泉道)·성현도(省峴道)·황산도(黃山道)·소촌도(召村道)·자여도(自如道)·송라도(松羅道)·창락도(昌樂道) 등과 더불어 경상도 지역에 설치된 역도이다. 함양(咸陽)-산청(山淸)-단성(丹城)-진주(晋州)-하동(河東)-남해(南海)와 산청-삼가(三嘉) 등으로 이어지는 역로(驛路)를 관할했는데, 사근도의 속역은 모두 소로(小路)에 속하였다.

변천

고려의 역도를 계승한 조선 왕조가 언제부터 역도를 개혁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태조실록』에 따르면, 1396년(태조 5) 7월에 고려시대의 5도(道) 양계(兩界)를 개편하면서 서북면의 군현을 개정하고, 1398년(태조 7)에는 동북 지방의 역을 정비, 신설하면서 함경도 지역의 역도를 개편하였다. 그 뒤 1423년(세종 5) 7월에는 경상도 지역에 황산도와 성현도를 설치하고 역승(驛丞)을 파견하였다. 그리하여 세종대에는 조선시대의 기본적인 역도 체제를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사근도는 금양(金陽)·권빈(勸賓)·유린(有隣)·삼가신역(三嘉新驛)·무촌(茂村)·성기(星奇)·성초(省草)·초계신역(草溪新驛)·함양신역(咸陽新驛)·안음신역(安陰新驛)·신안(新安)·단계신역(丹溪新驛)·전곡(戩彀)·신번신역(新繁新驛)·소남(召南) 등 15개 속역으로 편성되었다. 『세조실록』에 따르면, 1460년(세조 6)에는 경상도의 역로를 6개로 개편하면서 김천도를 사근도로 통합하여 그 속역 16개를 사근도에서 관할하게 하였다. 그 뒤 1462년(세조 8)에 편찬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당시 경상도의 역도는 11개로 확정되었고, 사근도에는 삼가의 유린, 진주의 안간(安澗), 안음의 임수(臨水), 함양의 사근(沙斤)·제한(蹄閑), 산음의 정곡(正谷), 단성(丹城)의 신안, 의령의 신흥(新興), 진주의 정수(正守), 하동의 횡보(橫浦)·마전(馬田)·율원(栗元), 단성의 벽계(碧溪), 진주의 소남(小南)·평사(平沙) 등 15개의 속역이 소속되었다. 한편 영조대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사근도에는 15개의 속역과 역리(驛吏) 1,819명, 역노(驛奴) 632명, 역비(驛婢) 236명, 역마 137필이 배속되어 있었다. 1833년(순조 33)에 편찬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를 바탕으로 사근도의 속역별 역리·일수(日守)·역노의 입역 실태와 신공을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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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근도는 1896년(고종 33) 1월 18일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그림> 사근도 속역 분포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여지도서(輿地圖書)』
  •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 조병로, 『韓國近世 驛制史硏究』, 국학자료원, 2005.
  • 유선호, 「朝鮮初期의 驛路와 直路」, 『역사교육』70,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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