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禁錮)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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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금고 |
한글표제 | 금고 |
한자표제 | 禁錮 |
관련어 | 장리(贓吏), 장죄(贓罪), 기해장벌(起解贓罰), 관리수재불왕법률(官吏受財不枉法律) |
분야 | 정치/사법/행형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태조~고종 |
집필자 | 차인배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금고(禁錮)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숙종실록』 25년 5월 14일 |
죄과(罪過)로 관리에 임용될 자격을 정지시키는 것.
내용
『한서(漢書)』 「공우전(貢禹傳)」에 따르면 금고(禁錮)는 주로 신분상 상인(商賈)이나 채무노예[贅壻] 및 관료가 사리를 취하는 자[吏坐贓者]는 관리(官吏)가 될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금고는 주로 벼슬할 수 있는 자격을 박탈하는 의미와 관리를 파면시켜 신분을 서인(庶人) 이하로 전락시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금고도 중국과 거의 유사한 의미로 사용하였다. 조선시대 금고는 주로 장리와 역모 및 불경죄인의 당사자 그리고 그 자손의 관직 진출을 제한하는 처벌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금고형은 주로 탐관오리인 장리(贓吏)를 일정한 금고연한(禁錮年限)을 두어 관직의 취임을 금지시켰다.
금고형은 비리 관료 당사자 뿐 아니라 자손의 관직 진출을 제한함으로써 사실상 양반 신분에서 배척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종(世宗)대에 임용제한법(任用制限法)이 마련되었고, 성종(成宗)대에는 장리(贓吏)의 이름을 장부에 기록하여 반드시 그 자손을 금고(禁錮)하여야 한다는 사헌부(司憲府)장령(掌令)박형문(朴衡文)의 건의가 있었다. 이후 『경국대전』 「이전(吏典)」 경관직조(京官職條)에서는 장리(贓吏)의 아들과 손자는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한성부(漢城府)·사헌부(司憲府)·개성부(開城府)·승정원(承政院)·장례원(掌隸院)·사간원(司諫院)·경연(經筵)·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춘추관(春秋館)·지제교(知製敎)·종부시(宗簿寺)·관찰사(觀察使)·도사(都事)·수령직(守令職) 등에 임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여 세종(世宗) 때의 관직 임용 제한 대상보다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한편 역모나 불경죄 및 장리에 대한 처벌은 연좌율을 적용하여 그 자손에 대한 금고를 동시에 부과하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죄수가 사면되면 자손의 금고(禁錮)를 해제하기도 하였다.
용례
引見大臣備局諸臣 左議政崔錫鼎言 禁府罪人閔挺偉李濟冕金重錫 貪贓不法 而混入放釋之中 宜別爲書名 限年禁錮 禁府堂上 亦宜推考 上命限十年禁錮(『숙종실록』 25년 5월 14일)
참고문헌
- 양완철, 「한대(漢代)의 금고(禁錮)에 대(對)한 고찰(考察)」, 『석당논총』5, 1981.
- 김성준, 「조선초기 장리자손(臟吏子孫) 금고법(禁錮法)의 성립」, 『동방학지』44, 1984.
- 李鍾日, 「18·19世紀의 庶蘖疏通運動에 대하여」, 『한국사연구』58,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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