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供上)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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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공상 |
한글표제 | 공상 |
한자표제 | 供上 |
관련어 | 상공(上供), 진상(進上), 진헌(進獻) |
분야 | 경제/재정/전세 |
유형 | 법제·정책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이장우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공상(供上)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7년 2월 21일, 『정조실록』 24년 4월 20일, 『정종실록』 1년 10월 8일, 『태종실록』 17년 10월 26일, 『세종실록』즉위년 8월 15일, 『세조실록』 1년 윤6월 12일, 『정조실록』 24년 4월 20일 |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대전과 중궁전을 제외한 각 전에 갖가지 물품을 공급하는 일.
개설
1425년(세종 7)부터 예조(禮曹)의 건의에 따라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이 대전(大殿)과 중궁전(中宮殿)에 바치는 모든 물품은 ‘진상(進上)’이라 일컫고, 그 나머지 각 전에 바치는 것을 ‘공상’이라 일컫도록 하였다(『세종실록』 7년 2월 21일). 이러한 공상을 위해 보화고(保華庫)·전사시(典祀寺)·공안부(恭安府)·경승부(敬承府)·인수부(仁壽府)·경창부(慶昌府)·덕녕부(德寧府) 등 여러 관사를 설치하여 해당 업무를 담당시켰다. 특히 조선후기가 되면 내자시·내섬시·사도시·사재감·의영고·사포서를 ‘공상육사(供上六司)’라 부르기도 하였다(『정조실록』 24년 4월 20일).
내용
공물이 중앙의 각사(各司)에 상납되는 것이라면, 진상은 오로지 궐내 각사에 밀봉하여 바치는[封進] 것이었다. 명나라에 대한 방물(方物) 또는 공물에 대해서는 오직 진헌(進獻)이라고 하였지만, 왕실에 대한 헌상(獻上)은 진상·공상이라고 하였다. 물론 조관(朝官)이나 인민들의 사적인 진상도 있었지만, 이는 세종 이후 원칙적으로 금지되었다. 그러다가 1425년부터 예조의 건의에 따라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이 대전과 중궁전인 공비전(恭妃殿)에 바치는 모든 물품을 진상이라 일컫고, 그 나머지 각 전에 바치는 것을 공상이라 일컫도록 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한동안 고려의 5고 7궁(五庫七宮)을 왕실의 사고(私庫)로 삼아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되, 조정의 관리가 그 업무를 담당하였다. 그러다가 태조가 왕위에서 물러나자, 뒤를 이은 정종은 보화고를 설치하여 상왕 태조를 위한 공상을 맡도록 하였다(『정종실록』 1년 10월 8일). 1418년(태종 18)부터 각 전에 공상을 담당하는 관사를 다시 정하여 계성전(啓聖殿)·문소전(文昭殿)·혼전(魂殿)의 공상은 전사시에서, 인덕궁(仁德宮)의 공상은 공안부에서, 대전의 공상은 내자시에서, 정비전(靜妣殿)의 공상은 내섬시(內贍寺)에서, 성비전(誠妃殿)·세자전(世子殿)의 공상은 경승부에서 식례에 의하여 진공(進供)하도록 하였다(『태종실록』 17년 10월 26일).
세종 또한 상왕 태종을 위해 순승부(順承府)를 인수부로 바꾸어 상왕전(上王殿)에 소속시켰고, 원경왕후(元敬王后)를 위해서는 경창부(慶昌府)를 새로 설치하여 중궁전에 소속시켰다(『세종실록』즉위년 8월 15일). 세조의 즉위로 상왕이 된 단종을 위해서는 인수부를 덕녕부(德寧府)로 고쳐 공상에 관한 모든 업무를 담당시켰다(『세조실록』 1년 윤6월 12일). 『경국대전』에 따르면, 진상과 공상을 담당한 관사는 공조(工曹)·봉상시(奉常寺)·사옹원(司饔院)·상의원(尙衣院)·내자시·내섬시·사도시(司䆃寺)·사섬시(司贍寺)·제용감(濟用監)·사재감(司宰監)·전설사(典設司)·내수사(內需司)·사온서(司醞署)·의영고(義盈庫)·장흥고(長興庫)·빙고(氷庫)·장원서(掌苑署)·사포서(司圃署)·전생서(典牲暑)·사축서(司畜署) 등이 있었다.
변천
조선후기가 되면 내자시·내섬시·사도시·사재감·의영고·사포서를 공상육사라 부르기도 하였다(『정조실록』 24년 4월 20일). 내자시는 궐내에 공급하는 쌀·밀가루[糆]·술·장(醬)·기름·꿀·채소·과일과 궐내의 각종 잔치와 직조(織造)를 담당하였다. 내섬시는 각 궁(宮)과 각 전에 대한 공상과 2품 이상에게 하사하는 술, 그리고 일본인[倭人]·여진족[野人]에게 공급하는 음식물과 직조 등을 담당하였다. 사도시는 궐내의 창고[御廩] 곡물과 궐내에서 사용하는 간장·된장 등과 같은 물품 등을 담당하였다. 사재감은 어물과 육류·소금·땔나무·왕의 행차 등 각종 의식에 사용되는 횃불 등을 맡았다. 의영고는 기름·꿀·황랍(黃蠟)·해조류와 송이 등의 물품·후추 등을 맡았다. 사포서는 과일나무와 채소를 가꾸는 원포(園圃)와 채소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경국전(朝鮮徑國典)』
- 『경국대전(經國大典)』
- 『만기요람(萬機要覽)』
- 송수환, 『조선 전기 왕실 재정 연구』, 집문당, 2000.
- 田川孝三, 『李朝貢納制の硏究』, 東洋文庫, 1964.
- 이정란, 「고려·조선전기 왕실부의 재정기구적 면모와 운영 방식의 변화」, 『한국사학보』 4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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