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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2024-C326|5.18사적지 제1호, 전남대학교 정문]] | ||
| + | ** [[E2024-C341|5.18사적지 제13호, 용감한 시민들의 저항 배고픈 다리 일대]] | ||
| + | ** [[E2024-C344|5.18사적지 제16호, 죽음의 행진이 시작된 곳 농성광장 격전지]] | ||
| + | ** [[E2024-C327|5.18사적지 제2호, 광주역 광장]] | ||
| + | ** [[E2024-C328|5.18사적지 제3호, 옛 시외버스공용터미널 일대]] | ||
| + | ** [[E2024-C228|전남대학교의 민주화운동]] | ||
| + | ** [[E2024-C329|5.18사적지 제4호, 항쟁의 거리 금남로]] | ||
== 주석 == | == 주석 == | ||
2025년 12월 24일 (수) 18:29 기준 최신판
전남대학교의 민주화운동
이야기
전남대학교는 1970~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거점 중 하나였다. 유신체제에 저항하며 벌어진 함성지 사건은 1972년 김남주와 이강 등 전남대 학생들이 주도하여 유신을 비판하는 유인물 《함성지》을 제작·배포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10월유신 체제에 대한 대학가의 반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고, 인권변호사 홍남순도 이에 연루되어 있었다.
1978년에는 송기숙 교수를 중심으로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이 이루어지며, 대학 자율성과 학문 자유를 외친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전국 대학가에 파장을 일으켰고, 이후 전남대에서는 6.29학원민주화 시위가 확산되었다. 해당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의 교육지표 기념 조형물이 전남대학교 교정에 세워졌다.
1979년에는 학생 감시 기관으로 지목된 학생상담지도관실에 항의하기 위한 전남대학교 학생지도실 방화사건도 발생하였다. 이처럼 전남대학교는 지식인과 학생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학원민주화운동의 주요 무대였으며, 여러 사건과 인물을 통해 한국 민주화의 흐름을 이끌어 나갔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