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백졸스님(百拙, 1936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big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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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보
 
{{인물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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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의==
  
백졸(百拙)스님은 인홍스님의 상좌로 석남사에서 출가하였으며 부산 옥천사를 창건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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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한(等閑) 백졸(百拙)스님은 [[인홍스님(仁弘, 1908生, 비구니)|인홍(仁弘)스님]]의 상좌로 석남사에서 출가하였으며 부산 옥천사를 창건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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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 || 부산사범학교 졸업
 
|1956 || 부산사범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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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 || 석남사에서 [[인홍스님(仁弘, 1908生, 비구니)|인홍(仁弘)스님]]을 은사로 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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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 || [http://www.seoknamsa.or.kr/ 석남사]에서 [[인홍스님(仁弘, 1908生, 비구니)|인홍(仁弘)스님]]을 은사로 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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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1981 || 해인사 국일암, 삼선암, 문경 김룡사, 청량사, 홍제암, 성불암, 대성암, 윤필암, 묘적암, 진주 대원사, 남해 용문사, 내원사, 석남사 등 안거 성만
 
|1956~1981 || 해인사 국일암, 삼선암, 문경 김룡사, 청량사, 홍제암, 성불암, 대성암, 윤필암, 묘적암, 진주 대원사, 남해 용문사, 내원사, 석남사 등 안거 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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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 || 통도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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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 || [http://www.tongdosa.or.kr/ 통도사]에서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6088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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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 부산 옥천사 창건, 옥천사 중창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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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 [https://cafe.daum.net/7811744 부산 옥천사] 창건, 옥천사 중창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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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 옥천사 주지
 
|2005 || 옥천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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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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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 [[법기(法起)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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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 [[법기(法起)문중|법기문중(法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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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지침|| 以戒爲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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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지침|| 이계위사(以戒爲師, 계율로써 스승을 삼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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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신조|| 시간 지키기
 
|생활신조|| 시간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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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및 작품|| 住行月報.....玉泉
 
|저서 및 작품|| 住行月報.....玉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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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계제자 || 법열(法悅)・현명(玄明)・도관(道觀)・현소(玄昭)・정혜(淨慧)・공초(空超)・천륜(千輪)・천안(千眼)・정원(淨圓)・정행(淨行)・등원(登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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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법열(法悅)・현명(玄明)・도관(道觀)・현소(玄昭)・정혜(淨慧)・공초(空超)・천륜(千輪)・천안(千眼)・정원(淨圓)・정행(淨行)・등원(登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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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부영(扶榮, 6)→심공(心空, 7)→정자(淨慈, 8)→[[인홍스님(仁弘, 1908生, 비구니)|인홍(仁弘, 9)]]→[[백졸스님(百拙, 1936生, 비구니)|백졸(百拙, 10)]]→법열(法悅, 11), 현명(玄明, 11), 도관(道觀, 11), 현소(玄昭, 11), 팔장(八藏, 11), 정혜(淨慧, 11), 공초(空超, 11), 천륜(千輪, 11), 천안(千眼,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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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1.백졸스님3.jpg|섬네일|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13]]
 
[[File:1.백졸스님3.jpg|섬네일|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13]]
 
[[File:1.백졸스님4.jpg|섬네일|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14]]
 
[[File:1.백졸스님4.jpg|섬네일|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14]]
[[File:1.백졸스님5.jpg|섬네일|[2014년 백졸스님] 사진출처: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4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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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옥천사1.jpg|섬네일|옥천사 경내,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승가연구소, 2023년4월8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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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옥천사2.jpg|섬네일|창건주 밀성(密城, 밀양의 옛 지명) 박씨 청덕화(朴淸德華) 보살을 기리는 유공비,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승가연구소, 2023년4월8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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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옥천사3.jpg|섬네일|옥천사 경내,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승가연구소, 2023년4월8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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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옥천사4.jpg|섬네일|옥천사 경내,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승가연구소, 2023년4월8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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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백졸스님-수정.jpg|섬네일|[백졸스님, 2023년] </br> 사진출처:불광미디어 https://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005]]
  
등한(等閑) 백졸(百拙) 스님은 1936년(병자년) 부산시 중구 중앙동에서 아버지 현광(玄光) 이용수와 어머니 대법선(大法船) 최봉순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며, 이름은 이옥자이시다. 스님은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좋아하였으며 일상에 모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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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한(等閑) 백졸(百拙) 스님은 1936년(병자년) 부산시 중구 중앙동에서 아버지 현광(玄光) 이용수와 어머니 대법선(大法船) 최봉순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며, 이름은 이옥자이다. 스님은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좋아하였으며 일상에 모범적이었다.
 
 
===성철 큰스님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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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성철 성철 큰스님]과의 만남===
 
다음은 인생의 활로를 열어주신 성철 큰스님과의 첫 인연 이야기이다.
 
다음은 인생의 활로를 열어주신 성철 큰스님과의 첫 인연 이야기이다.
1956년 부산사범학교(현재 부산교대)에 다닐 때의 일이다. 당시는 교생실습 기간이었는데, 어머니와 이모님(대혜심)이 매일 오후만 되면 분주하게 어디로 가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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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부산사범학교(현재 부산교대)에 다닐 때의 일이다. 당시는 교생 실습 기간이었는데, 어머니와 이모님(대혜심)이 매일 오후만 되면 분주하게 어디로 가시는 것이었다.
 
스님은 몹시 궁금하여 어디 가시느냐고 여쭈었으나 두 분께서는 “니가 따라올 곳이 아니다.”하시며 곧장 가버리셨다.
 
스님은 몹시 궁금하여 어디 가시느냐고 여쭈었으나 두 분께서는 “니가 따라올 곳이 아니다.”하시며 곧장 가버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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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백졸스님은 “있다고 할 자신도 없고, 없다고 하기에는 증명할 상식이 없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이에 백졸스님은 “있다고 할 자신도 없고, 없다고 하기에는 증명할 상식이 없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다시 큰스님께서 질문하셨다.
 
다시 큰스님께서 질문하셨다.
“등가원리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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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5d2476a 등가원리] 아나?”
 
“예 배웠습니다.”
 
“예 배웠습니다.”
 
스님은 엉겁결에 대답을 하였다. 그러나 실은 교과서에서 공식만 배웠지 어떤 원리로 전개되는지는 잘 몰랐다.
 
스님은 엉겁결에 대답을 하였다. 그러나 실은 교과서에서 공식만 배웠지 어떤 원리로 전개되는지는 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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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천삼백배는 앉은 상태에서 하였다. 겨우 삼천배를 마치고 큰스님을 뵈러 가니 “누워서 하지 왜 앉아서 했어? 부산 가시나. 니, 낙제다. 꼬리표 달아라.”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이후 천삼백배는 앉은 상태에서 하였다. 겨우 삼천배를 마치고 큰스님을 뵈러 가니 “누워서 하지 왜 앉아서 했어? 부산 가시나. 니, 낙제다. 꼬리표 달아라.”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스님은 ‘인간 폭탄이 되려는 내가 삼천배도 못해서야 되겠는가?’라는 생각에 매일 백팔배를 하는 동시에 능엄주를 시작하였다. 그 때 성전암에서의 교재는 『선문염송』이었다. 당시는 인쇄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지금과는 비교될 수 없이 열악한 상태라 능엄주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래서 보따리장사 다니는 어떤 할머니께 구전으로 받아 적은 것으로 공부하셨다. 그 할머니도 자신의 손자들에게 과자를 사 주거나 용돈을 주며 읽어달라고 해서 그걸 듣고 외웠다고 한다. 이후로도 스스로 계획을 세워 능엄주 108독을 하였다. 기도를 하는 시간 중에 어떤 친구가 찾아와도 기도가 끝날 때까지는 꼼짝하지 않았다. 성불을 향한 구도의 열정은 갈수록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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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스님은 ‘인간 폭탄이 되려는 내가 삼천배도 못해서야 되겠는가?’라는 생각에 매일 백팔배를 하는 동시에 능엄주를 시작하였다. 그 때 성전암에서의 교재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8703 『선문염송』]이었다. 당시는 인쇄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지금과는 비교될 수 없이 열악한 상태라 능엄주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래서 보따리장사 다니는 어떤 할머니께 구전으로 받아 적은 것으로 공부하셨다. 그 할머니도 자신의 손자들에게 과자를 사 주거나 용돈을 주며 읽어달라고 해서 그걸 듣고 외웠다고 한다. 이후로도 스스로 계획을 세워 능엄주 108독을 하였다. 기도를 하는 시간 중에 어떤 친구가 찾아와도 기도가 끝날 때까지는 꼼짝하지 않았다. 성불을 향한 구도의 열정은 갈수록 높아졌다.
  
 
그 후 스님은 다시 삼천배를 하셨고 비로소 화두를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스님은 다시 삼천배를 하셨고 비로소 화두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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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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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화두를 깨쳐 성불하겠다는 결심을 세운 뒤, 부모님께 일주일 동안 여행 다녀온다는 허락을 얻어 집을 나갔고, 그것이 그대로 출가의 길로 이어졌다. 스님은 큰 방 어간에 가방을 놓고 좌선을 하였는데, 공양 시간을 알리는 목탁 소리도 알아듣지 못하는 절집 문외한이었다. 스님은 그저 화두에만 몰두하였다. 당시 다른 스님들은 행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하러 온 학생으로 생각하기엔 어정쩡한 신분이기에 그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긴 것 같았다.
스님은 화두를 깨쳐 성불하겠다는 결심을 세운 뒤, 부모님께 일주일 동안 여행 다녀온다는 허락을 얻어 집을 나갔고, 그것이 그대로 출가의 길로 이어졌다. 스님은 큰방 어간에 가방을 놓고 좌선을 하였는데, 공양 시간을 알리는 목탁 소리도 알아듣지 못하는 절집 문외한이었다. 스님은 그저 화두에만 몰두하였다. 당시 다른 스님들은 행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하러 온 학생으로 생각하기엔 어정쩡한 신분이기에 그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긴 것 같았다.
 
  
 
처음 목표와는 달리 순식간에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화두 타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집으로 편지를 보내어 조금 더 공부하겠다며 지내다 보니 이럭저럭 석 달이 지나가고 말았다. 스님은 인생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될 것 같았다. 당시 스님에게 출가를 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스님은 대중스님들의 규칙적인 생활, 밤늦게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는 일과를 보고 가족들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가려는 마음에 태백산으로 갔다. 마을에서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스님들처럼 저렇게 일생을 잘 살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자 절집 생활이 공부하기에 유리하다는 판단한 것이다.
 
처음 목표와는 달리 순식간에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화두 타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집으로 편지를 보내어 조금 더 공부하겠다며 지내다 보니 이럭저럭 석 달이 지나가고 말았다. 스님은 인생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될 것 같았다. 당시 스님에게 출가를 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스님은 대중스님들의 규칙적인 생활, 밤늦게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는 일과를 보고 가족들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가려는 마음에 태백산으로 갔다. 마을에서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스님들처럼 저렇게 일생을 잘 살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자 절집 생활이 공부하기에 유리하다는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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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졸스님은 1956년 석남사에서 인홍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당시 홍제사에는 은사인 [[인홍스님(仁弘, 1908生, 비구니)|인홍스님]]을 비롯한 인성, 성우, 철마, 혜춘, 길상, 법희, 향림, 지정, 혜근스님 등 30여분이 계셨다, 그 해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왔었다. 밤이면 대중 스님들은 촛불을 가운데 놓고 두 사람씩 마주 앉아서 주장자를 하나씩 들고 서로 탁마하면서 신나게 정진하였다. 그 때 인홍스님께서는 50세를 넘기지 않고 일대사를 마치리라는 비상한 각오로 불같은 정진을 하셨고 대중스님들의 환희심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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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https://blog.naver.com/bonghwagunchung/222712944574  홍제사]에는 은사인 [[인홍스님(仁弘, 1908生, 비구니)|인홍스님]]을 비롯한 인성, [[성우스님(惺牛, 1918生, 비구니)|성우]], 철마, [[혜춘스님(慧春, 1919生, 비구니)|혜춘]], 길상, [[법희스님(法希, 1930生, 비구니)|법희]], 향림, 지정, [[혜근스님(慧根, 1935生, 비구니)|혜근]]스님 등 30여분이 계셨다, 그 해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왔었다. 밤이면 대중 스님들은 촛불을 가운데 놓고 두 사람씩 마주 앉아서 주장자를 하나씩 들고 서로 탁마하면서 신나게 정진하였다. 그 때 인홍스님께서는 50세를 넘기지 않고 일대사를 마치리라는 비상한 각오로 불같은 정진을 하셨고 대중스님들의 환희심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밤을 새다 배가 고프면 생감자를 깎아 먹던 시절, 인상 깊었던 것은 정처사님의 공양이다. 포행 돌다 보면 아랫마을 정처사가 마루에 떡을 올려놓고 가셨다. 감자와 좁쌀이 주식이었던 시절에 그 공양은 실로 너무나 반가운 것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1950년대는 그렇게 지냈다.
 
밤을 새다 배가 고프면 생감자를 깎아 먹던 시절, 인상 깊었던 것은 정처사님의 공양이다. 포행 돌다 보면 아랫마을 정처사가 마루에 떡을 올려놓고 가셨다. 감자와 좁쌀이 주식이었던 시절에 그 공양은 실로 너무나 반가운 것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1950년대는 그렇게 지냈다.
  
 
===옥천사 창건===
 
===옥천사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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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제방 선원으로 안거를 다니며 부처님의 6년 고행, 큰스님의 8년 장좌. 그리고 농산행 등의 정진을 동경하던 중 스님은 계곡에 졸졸 물소리 나고 소나무가 울창한 부산 재송동 옥천사에 인연이 닿았다. 2021년 이곳에서 정진 중인 스님은 불교노인대학, 일요 어린이 법회를 30년이 넘도록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제방 선원으로 안거를 다니며 부처님의 6년 고행, 큰스님의 8년 장좌. 그리고 농산행 등의 정진을 동경하던 중스님은 계곡에 졸졸 물소리 나고 소나무가 울창한 부산 재송동 옥천사에 인연이 닿았다. 2021년 이곳에서 정진 중인 스님은 불교노인대학, 일요 어린이 법회를 30년이 넘도록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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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88247 『선관책진』]에서 원오스님이 ‘10년 동안 이연(異緣)이 없었다.’고 말씀한 바와 같이 ‘화두가 성성(惺惺)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스님의 말씀은 세월이 흘렀어도 “오직 한 길로만 가라!”는 큰스님의 말씀을 새기고 있는 여일한 구도자이다.
  
『선관책진』에서 원오스님이 ‘10년 동안 이연(異緣)이 없었다.’고 말씀한 바와 같이 ‘화두가 성성(惺惺)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스님은 말씀은 세월이 흘렀어도 “오직 한 길로만 가라!”는 큰스님의 말씀을 새기고 있는 여일한 구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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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염의 했다는 이 자체만으로도 박사학위 10개 받는 것보다 가치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출가자라면 360도 각도에서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한한 교과 과정이 녹아 있는 부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중생을 위한 교육자가 되어야 합니다.”
 
 
“삭발염의 했다는 이 자체만으로도 박사학위 10개 받는 것보다 가치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출가자라면 360도 각도에서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한한 교과과정이 녹아 있는 부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중생을 위한 교육자가 되어야 합니다.”
 
  
 
출가인이 수행 도량에서 정진, 간경, 운력, 교육하는 일상은 살아 움직이는 산수화가 되어 중생들의 가슴에 큰 선물로 간직된다. 더더욱 대 자유를 추구하는 의지력이 굳다면 빛나는 보석이 아니겠는가?
 
출가인이 수행 도량에서 정진, 간경, 운력, 교육하는 일상은 살아 움직이는 산수화가 되어 중생들의 가슴에 큰 선물로 간직된다. 더더욱 대 자유를 추구하는 의지력이 굳다면 빛나는 보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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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옥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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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7811744 부산 옥천사]==
[[File:1.백졸스님6옥천사.jpg|섬네일|[옥천사 전경] 사진출처:법보신문,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4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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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1.백졸스님6옥천사.jpg|섬네일|[옥천사 전경] </br>사진출처:법보신문,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4775]]
 
 
홈페이지: https://cafe.daum.net/7811744
 
  
 
부산 옥천사는 백졸스님이 1981년 창건하였다. 부산 유수의 산사이자 능엄주 수행도량으로 명성이 높다.
 
부산 옥천사는 백졸스님이 1981년 창건하였다. 부산 유수의 산사이자 능엄주 수행도량으로 명성이 높다.
  
2008년 결사한 ‘하루 30독, 10년 10만독’ 서원행자만도 130여명에 이른다. 옥천사 신도만이 아니다. 다음, 네이버 카페 등에서 활동 중인 네티즌도 옥천선원 정기 프로그램에 참여래 능엄주 철야 108독, 3000배, 참선 정진을 한다.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을 대상으로 능엄주 암송대회를 열러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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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결사한 ‘하루 30독, 10년 10만독’ 서원행자만도 130여명에 이른다. 옥천사 신도만이 아니다. 다음, 네이버 카페 등에서 활동 중인 네티즌도 옥천선원 정기 프로그램에 참여래 능엄주 철야 108독, 3000배, 참선 정진을 한다.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을 대상으로 능엄주 암송대회를 열어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 출처 : 법보신문,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4775
 
* 출처 : 법보신문,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4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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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 408~414.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 408~414.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151.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151.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p 161~163.
+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p 161~163. 365, 371.
* 법보신문, 부산 옥천사 주지 백졸 스님 [끝]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4775
+
*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62) (2001년) https://www.joongang.co.kr/article/4123012#home
*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62) https://www.joongang.co.kr/article/4123012#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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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신문, ‘성철 법향’ 번져가는 도심지 대가람 (2012년)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19015
* 동아일보, 스님이 가장 아끼는 물건이 ‘윤회금지 작품’?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60714/79196880/1
+
* 법보신문, 부산 옥천사 주지 백졸 스님 [끝] (2014년)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4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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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스님이 가장 아끼는 물건이 ‘윤회금지 작품’(2016년)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60714/791968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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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무소유 스님에게도 ‘아끼는 보물’이 있다 (2016년)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71502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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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모든 생명 연결됐다는 불교원리 되새기면 상처주는 일 안할 것” (2017년) https://m.khan.co.kr/culture/religion/article/201705022058015#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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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보신문, 부산 옥천사, 능엄주 10년 수행결사 회향 한다 (2018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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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신문, [승가결사체를 만나다] 해운대구 천초작은도서관 (2021년)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1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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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광미디어, [근현대 스님 되돌아보기] 백졸(百拙) 스님 (2023년) https://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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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졸스님(百拙, 1936生, 비구니)|백졸스님(百拙)]] || [[자운성우(慈雲盛祐)|자운스님(慈雲)]]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비구니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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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졸스님(百拙, 1936生, 비구니)|백졸스님(百拙)]] || [[안거]] || ~을(를) 성만하다 || 합천 해인사 국일암, 합천 해인사 삼선암, 문경 김룡사, 봉화 청량사, 합천 해인사 홍제암, 양산 내원사 성불암, 부산 범어사 대성암(청룡동), 문경 대승사 윤필암, 문경 대승사 묘적암, 진주 대원사, 남해 용문사, 양산 내원사, 울주 석남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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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사'''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재송동 138-4, 1123-5
 
* '''옥천사'''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재송동 138-4, 1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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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비구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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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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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비구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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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각스님(大覺, 1914生, 비구니) | 대각스님(大覺, 1914년생)]] || [[법운스님(法雲, 1937生, 비구니) | 법운스님(法雲, 1937년생)]] || [[성진스님(性眞, 1896生, 비구니) | 성진스님(性眞, 1896년생)]] || [[정명스님(淨明, 1940生, 비구니) | 정명스님(淨明, 1940년생)]] || [[현성스님(賢星, 1945生, 비구니) | 현성스님(賢星, 1945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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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스님(大愚, 1949生, 비구니) | 대우스님(大愚, 1949년생)]] || [[법일스님(法一, 1904生, 비구니) | 법일스님(法一, 1904년생)]] || [[성타스님(性陀, 1934生, 비구니) | 성타스님(性陀, 1934년생)]] || [[정목스님(正牧, 1960生, 비구니) | 정목스님(正牧, 1960년생)]] || [[현정스님(玄定, 1948生, 비구니) | 현정스님(玄定, 194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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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행스님(大行, 1926生, 비구니) | 대행스님(大行, 1926년생)]] || [[법전스님(法典, 1945生, 비구니) | 법전스님(法典, 1945년생)]] || [[성현스님(聖賢, 1927生, 비구니) | 성현스님(聖賢, 1927년생)]] || [[정성스님(定星, 1940生, 비구니) | 정성스님(定星, 1940년생)]] || [[현진스님(玄眞, 1937生, 비구니) | 현진스님(玄眞, 1937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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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현스님(大玄, 1916生, 비구니) | 대현스님(大玄, 1916년생)]] || [[법종스님(法宗, 1945生, 비구니) | 법종스님(法宗, 1945년생)]] || [[세등스님(世燈, 1926生, 비구니) | 세등스님(世燈, 1926년생)]] || [[정수스님(貞守, 1939生, 비구니) | 정수스님(貞守, 1939년생)]] || [[현찬스님(賢讚, 1934生, 비구니) | 현찬스님(賢讚, 1934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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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현스님(大玄, 1957生, 비구니) | 대현스님(大玄, 1957년생)]] || [[법진스님(法眞, 1942生, 비구니) | 법진스님(法眞, 1942년생)]] || [[소림스님(昭林, 1937生, 비구니) | 소림스님(昭林, 1937년생)]] || [[정수스님(淨洙, 1941生, 비구니) | 정수스님(淨洙, 1941년생)]] || [[현행스님(賢行, 1928生, 비구니) | 현행스님(賢行, 192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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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스님(德修, 1922生, 비구니) | 덕수스님(德修, 1922년생)]] || [[법천스님(法泉, 1944生, 비구니) | 법천스님(法泉, 1944년생)]] || [[수옥스님(守玉, 1902生, 비구니) | 수옥스님(守玉, 1902년생)]] || [[정심스님(定心, 1918生, 비구니) | 정심스님(定心, 1918년생)]] || [[혜경스님(慧鏡, 1924生, 비구니) | 혜경스님(慧鏡, 1924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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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운스님(德雲, 1942生, 비구니) | 덕운스님(德雲, 1942년생)]] || [[법형스님(法衡, 1921生, 비구니) | 법형스님(法衡, 1921년생)]] || [[수인스님(守仁, 1779生, 비구니) | 수인스님(守仁, 1779년생)]] || [[정심스님(正心, 1925生, 비구니) | 정심스님(正心, 1925년생)]] || [[혜광스님(慧光, 1940生, 비구니) | 혜광스님(慧光, 1940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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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광스님(度光, 1952生, 비구니) | 도광스님(度光, 1952년생)]] || [[법홍스님(法弘, 1943生, 비구니) | 법홍스님(法弘, 1943년생)]] || [[수인스님(守仁, 1899生, 비구니) | 수인스님(守仁, 1899년생)]] || [[정안스님(正眼, 1950生, 비구니) | 정안스님(正眼, 1950년생)]] || [[혜근스님(慧根, 1935生, 비구니) | 혜근스님(慧根, 1935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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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문스님(道門, 1942生, 비구니) | 도문스님(道門, 1942년생)]] || [[법희스님(法喜, 1887生, 비구니) | 법희스님(法喜, 1887년생)]] || [[수진스님(守珍, 1916生, 비구니) | 수진스님(守珍, 1916년생)]]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스님(淨岸, 1951년생)]] || [[혜돈스님(慧頓, 1949生, 비구니) | 혜돈스님(慧頓, 1949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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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상스님(道常, 1937生, 비구니) | 도상스님(道常, 1937년생)]] || [[법희스님(法希, 1930生, 비구니) | 법희스님(法希, 1930년생)]] || [[수진스님(修眞, 1950生, 비구니) | 수진스님(修眞, 1950년생)]] || [[정운스님(淨雲, 1954生, 비구니) | 정운스님(淨雲, 1954년생)]] || [[혜등스님(慧燈, 1946生, 비구니) | 혜등스님(慧燈, 1946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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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성스님(道成, 1922生, 비구니) | 도성스님(道成, 1922년생)]] || [[법희스님(法熺, 1952生, 비구니) | 법희스님(法熺, 1952년생)]] || [[수현스님(修賢, 1940生, 비구니) | 수현스님(修賢, 1940년생)]] || [[정원스님(正圓, 1939生, 비구니) | 정원스님(正圓, 1939년생)]] || [[혜명스님(慧明, 1917生, 비구니) | 혜명스님(慧明, 1917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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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연스님(道鍊, 1911生, 비구니) | 도연스님(道鍊, 1911년생)]] || [[보각스님(普覺, 1904生, 비구니) | 보각스님(普覺, 1904년생)]] || [[수현스님(修賢, 1941生, 비구니) | 수현스님(修賢, 1941년생)]] || [[정인스님(正忍, 1946生, 비구니) | 정인스님(正忍, 1946년생)]] || [[혜문스님(慧門, 1930生, 비구니) | 혜문스님(慧門, 1930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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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원스님(道圓, 1904生, 비구니) | 도원스님(道圓, 1904년생)]] || [[보각스님(寶覺, 1938生, 비구니) | 보각스님(寶覺, 1938년생)]] || [[수환스님(修還, 1950生, 비구니) | 수환스님(修還, 1950년생)]] || [[정일스님(淨日, 1934生, 비구니) | 정일스님(淨日, 1934년생)]] || [[혜소스님(慧沼, 1931生, 비구니) | 혜소스님(慧沼, 193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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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준스님(道準, 1900生, 비구니) | 도준스님(道準, 1900년생)]] || [[보명스님(寶明, 1946生, 비구니) | 보명스님(寶明, 1946년생)]] || [[순희스님(順姬, 1917生, 비구니) | 순희스님(順姬, 1917년생)]] || [[정행스님(淨行, 1902生, 비구니) | 정행스님(淨行, 1902년생)]] || [[혜안스님(慧眼, 1912生, 비구니) | 혜안스님(慧眼, 1912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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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헌스님(度憲, 1939生, 비구니) | 도헌스님(度憲, 1939년생)]] || [[보명스님(寶明, 1954生, 비구니) | 보명스님(寶明, 1954년생)]] || [[신전스님(信典, 1934生, 비구니) | 신전스님(信典, 1934년생)]] || [[정화스님(淨華, 1922生, 비구니) | 정화스님(淨華, 1922년생)]] || [[혜안스님(慧眼, 1923生, 비구니) | 혜안스님(慧眼, 1923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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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훈스님(道勳, 1933生, 비구니) | 도훈스님(道勳, 1933년생)]] || [[보문스님(普門, 1938生, 비구니) | 보문스님(普門, 1938년생)]] || [[연호스님(蓮湖, 1930生, 비구니) | 연호스님(蓮湖, 1930년생)]] || [[정화스님(貞和, 1923生, 비구니) | 정화스님(貞和, 1923년생)]] || [[혜옥스님(慧玉, 1901生, 비구니) | 혜옥스님(慧玉, 190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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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근스님(東根, 1951生, 비구니) | 동근스님(東根, 1951년생)]] || [[보선스님(普善, 1946生, 비구니) | 보선스님(普善, 1946년생)]] || [[영수스님(暎修, 1941生, 비구니) | 영수스님(暎修, 1941년생)]] || [[종수스님(宗秀, 1922生, 비구니) | 종수스님(宗秀, 1922년생)]] || [[혜운스님(慧雲, 1911生, 비구니) | 혜운스님(慧雲, 191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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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스님(東城, 1913生, 비구니) | 동성스님(東城, 1913년생)]] || [[보영스님(普暎, 1937生, 비구니) | 보영스님(普暎, 1937년생)]] || [[영운스님(靈雲, 1946生, 비구니) | 영운스님(靈雲, 1946년생)]] || [[종수스님(鍾修, 1922生, 비구니) | 종수스님(鍾修, 1922년생)]] || [[혜원스님(慧圓, 851生, 비구니) | 혜원스님(慧圓, 85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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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현스님(東玄, 1945生, 비구니) | 동현스님(東玄, 1945년생)]] || [[보원스님(普願, 1944生, 비구니) | 보원스님(普願, 1944년생)]] || [[영원스님(盈圓, 1949生, 비구니) | 영원스님(盈圓, 1949년생)]] || [[종식스님(宗植, 1944生, 비구니) | 종식스님(宗植, 1944년생)]] || [[혜은스님(慧隱, 1937生, 비구니) | 혜은스님(慧隱, 1937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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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희스님(東熙, 1945生, 비구니) | 동희스님(東熙, 1945년생)]] || [[보인스님(寶仁, 1924生, 비구니) | 보인스님(寶仁, 1924년생)]] || [[영춘스님(永春, 1894生, 비구니) | 영춘스님(永春, 1894년생)]] || [[종실스님(宗實, 1951生, 비구니) | 종실스님(宗實, 1951년생)]] || [[혜일스님(慧日, 1919生, 비구니) | 혜일스님(慧日, 1919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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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선스님(萬善, 1883生, 비구니) | 만선스님(萬善, 1883년생)]] || [[보현스님(普賢, 1934生, 비구니) | 보현스님(普賢, 1934년생)]] || [[예순스님(禮順, 1587生, 비구니) | 예순스님(禮順, 1587년생)]] || [[지광스님(志光, 1934生, 비구니) | 지광스님(志光, 1934년생)]] || [[혜일스님(慧日, 1947生, 비구니) | 혜일스님(慧日, 1947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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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선스님(萬善, 1906生, 비구니) | 만선스님(萬善, 1906년생)]] || [[보화스님(普和, 1933生, 비구니) | 보화스님(普和, 1933년생)]] || [[운달스님(雲達, 1942生, 비구니) | 운달스님(雲達, 1942년생)]] || [[지명스님(智明, 1921生, 비구니) | 지명스님(智明, 1921년생)]] || [[혜전스님(慧田, 1929生, 비구니) | 혜전스님(慧田, 1929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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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선스님(萬善, 996生, 비구니) | 만선스님(萬善, 996년생)]] || [[본각스님(本覺, 1952生, 비구니) | 본각스님(本覺, 1952년생)]] || [[원오스님(圓悟, 1933生, 비구니) | 원오스님(圓悟, 1933년생)]] || [[지문스님(志門, 1958生, 비구니) | 지문스님(志門, 1958년생)]] || [[혜종스님(慧宗, 1930生, 비구니) | 혜종스님(慧宗, 1930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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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성스님(萬性, 1897生, 비구니) | 만성스님(萬性, 1897년생)]] || [[본공스님(本空, 1907生, 비구니) | 본공스님(本空, 1907년생)]] || [[원표스님(圓表, 1951生, 비구니) | 원표스님(圓表, 1951년생)]] || [[지성스님(志性, 1939生, 비구니) | 지성스님(志性, 1939년생)]] || [[혜주스님(慧珠, 1925生, 비구니) | 혜주스님(慧珠, 1925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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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길스님(明吉, 1931生, 비구니) | 명길스님(明吉, 1931년생)]] ||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년생)]] || [[월혜스님(月慧, 1895生, 비구니) | 월혜스님(月慧, 1895년생)]] || [[지순스님(芝順, 1913生, 비구니) | 지순스님(芝順, 1913년생)]] || [[혜준스님(慧俊, 1935生, 비구니) | 혜준스님(慧俊, 1935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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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륜스님(明倫, 1937生, 비구니) | 명륜스님(明倫, 1937년생)]] || [[불필스님(不必, 1937生, 비구니) | 불필스님(不必, 1937년생)]] || [[육년스님(六年, 1906生, 비구니) | 육년스님(六年, 1906년생)]] || [[지연스님(知衍, 1947生, 비구니) | 지연스님(知衍, 1947년생)]] || [[혜춘스님(慧春, 1919生, 비구니) | 혜춘스님(慧春, 1919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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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스님(眀星, 1931生, 비구니) | 명성스님(眀星, 1931년생)]] || [[상근스님(祥根, 1872生, 비구니) | 상근스님(祥根, 1872년생)]]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스님(六文, 1946년생)]] || [[지오스님(智悟, 1955生, 비구니) | 지오스님(智悟, 1955년생)]] || [[혜해스님(慧海, 1921生, 비구니) | 혜해스님(慧海, 192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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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수스님(明洙, 1925生, 비구니) | 명수스님(明洙, 1925년생)]] || [[상덕스님(常德, 1951生, 비구니) | 상덕스님(常德, 1951년생)]] || [[윤호스님(輪浩, 1907生, 비구니) | 윤호스님(輪浩, 1907년생)]] || [[지우스님(至牛, 1935生, 비구니) | 지우스님(至牛, 1935년생)]] || [[회선스님(會善, 1926生, 비구니) | 회선스님(會善, 1926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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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심스님(明心, 1947生, 비구니) | 명심스님(明心, 1947년생)]] || [[상덕스님(常德, 1952生, 비구니) | 상덕스님(常德, 1952년생)]] || [[은영스님(恩榮, 1910生, 비구니) | 은영스님(恩榮, 1910년생)]] || [[지원스님(知元, 1931生, 비구니) | 지원스님(知元, 1931년생)]] || [[효성스님(曉星, 1898生, 비구니) | 효성스님(曉星, 189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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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안스님(明岸, 1941生, 비구니) | 명안스님(明岸, 1941년생)]] || [[상덕스님(尙悳, 1925生, 비구니) | 상덕스님(尙悳, 1925년생)]] || [[응민스님(應旼, 1923生, 비구니) | 응민스님(應旼, 1923년생)]] || [[지원스님(智圓, 1938生, 비구니) | 지원스님(智圓, 1938년생)]] || [[효성스님(曉惺, 1927生, 비구니) | 효성스님(曉惺, 1927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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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오스님(明悟, 1916生, 비구니) | 명오스님(明悟, 1916년생)]] || [[상락스님(常樂, 1928生, 비구니) | 상락스님(常樂, 1928년생)]] || [[인성스님(仁成, 1901生, 비구니) | 인성스님(仁成, 1901년생)]] || [[지원스님(智願, 1942生, 비구니) | 지원스님(智願, 1942년생)]] || [[효성스님(曉星, 1948生, 비구니) | 효성스님(曉星, 194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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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완스님(明完, 1937生, 비구니) | 명완스님(明完, 1937년생)]] || [[상륜스님(相侖, 1929生, 비구니) | 상륜스님(相侖, 1929년생)]] || [[인완스님(仁完, 1930生, 비구니) | 인완스님(仁完, 1930년생)]] || [[지인스님(智因, 1937生, 비구니) | 지인스님(智因, 1937년생)]] || [[효천스님(曉天, 1941生, 비구니) | 효천스님(曉天, 194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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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주스님(明珠, 1904生, 비구니) | 명주스님(明珠, 1904년생)]] || [[상원스님(相源, 1939生, 비구니) | 상원스님(相源, 1939년생)]] || [[인정스님(仁貞, 1899生, 비구니) | 인정스님(仁貞, 1899년생)]] || [[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 | 지행스님(智行, 1941년생)]] || [[효탄스님(曉呑, 1955生, 비구니) | 효탄스님(曉呑, 1955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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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철스님(明哲, 1939生, 비구니) | 명철스님(明哲, 1939년생)]] || [[상조스님(常照, 1951生, 비구니) | 상조스님(常照, 1951년생)]] || [[인허스님(印虛, 1911生, 비구니) | 인허스님(印虛, 1911년생)]] || [[지향스님(智向, 1941生, 비구니) | 지향스님(智向, 1941년생)]] || [[희선스님(喜善, 1929生, 비구니) | 희선스님(喜善, 1929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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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각스님(妙覺, 1928生, 비구니) | 묘각스님(妙覺, 1928년생)]] || [[상훈스님(常熏, 1944生, 비구니) | 상훈스님(常熏, 1944년생)]] || [[인홍스님(仁弘, 1908生, 비구니) | 인홍스님(仁弘, 1908년생)]] || [[지현스님(智玄, 1916生, 비구니) | 지현스님(智玄, 1916년생)]] || [[희원스님(喜圓, 1951生, 비구니) | 희원스님(喜圓, 195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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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각스님(妙覺, 1942生, 비구니) | 묘각스님(妙覺, 1942년생)]] || [[서용스님(瑞庸, 1948生, 비구니) | 서용스님(瑞庸, 1948년생)]] || [[인화스님(忍和, 1912生, 비구니) | 인화스님(忍和, 1912년생)]] || [[지현스님(智賢, 1933生, 비구니) | 지현스님(智賢, 1933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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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7일 (화) 21:29 기준 최신판



정의

등한(等閑) 백졸(百拙)스님은 인홍(仁弘)스님의 상좌로 석남사에서 출가하였으며 부산 옥천사를 창건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36 부산 중구 출생
1956 부산사범학교 졸업
1956 석남사에서 인홍(仁弘)스님을 은사로 출가
1956~1981 해인사 국일암, 삼선암, 문경 김룡사, 청량사, 홍제암, 성불암, 대성암, 윤필암, 묘적암, 진주 대원사, 남해 용문사, 내원사, 석남사 등 안거 성만
1959 통도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81 부산 옥천사 창건, 옥천사 중창불사
2005 옥천사 주지
문중 법기문중(法起)
수행지침 이계위사(以戒爲師, 계율로써 스승을 삼으라.)
생활신조 시간 지키기
저서 및 작품 住行月報.....玉泉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법열(法悅)・현명(玄明)・도관(道觀)・현소(玄昭)・정혜(淨慧)・공초(空超)・천륜(千輪)・천안(千眼)・정원(淨圓)・정행(淨行)・등원(登元)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부영(扶榮, 6)→심공(心空, 7)→정자(淨慈, 8)→인홍(仁弘, 9)백졸(百拙, 10)→법열(法悅, 11), 현명(玄明, 11), 도관(道觀, 11), 현소(玄昭, 11), 팔장(八藏, 11), 정혜(淨慧, 11), 공초(空超, 11), 천륜(千輪, 11), 천안(千眼, 11)

활동 및 공헌

출생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10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13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14
옥천사 경내,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승가연구소, 2023년4월8일 촬영
창건주 밀성(密城, 밀양의 옛 지명) 박씨 청덕화(朴淸德華) 보살을 기리는 유공비,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승가연구소, 2023년4월8일 촬영
옥천사 경내,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승가연구소, 2023년4월8일 촬영
옥천사 경내,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승가연구소, 2023년4월8일 촬영
[백졸스님, 2023년]
사진출처:불광미디어 https://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005

등한(等閑) 백졸(百拙) 스님은 1936년(병자년) 부산시 중구 중앙동에서 아버지 현광(玄光) 이용수와 어머니 대법선(大法船) 최봉순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며, 이름은 이옥자이다. 스님은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좋아하였으며 일상에 모범적이었다.

성철 큰스님과의 만남

다음은 인생의 활로를 열어주신 성철 큰스님과의 첫 인연 이야기이다. 1956년 부산사범학교(현재 부산교대)에 다닐 때의 일이다. 당시는 교생 실습 기간이었는데, 어머니와 이모님(대혜심)이 매일 오후만 되면 분주하게 어디로 가시는 것이었다. 스님은 몹시 궁금하여 어디 가시느냐고 여쭈었으나 두 분께서는 “니가 따라올 곳이 아니다.”하시며 곧장 가버리셨다.

이에 스님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 결국 어머니와 이모님을 따라 나서게 되었는데 이모님은 “굉장히 무서운 큰스님이 계시니 뵙자마자 3배를 올려라.”며 신신당부를 하셨다. 큰방에 들어가니 40~50여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예를 갖추고 자리에 앉자 이모님이 큰스님께 “저 애는 세상에 대해 의심을 많이 품고 사는데, 큰스님께서 좋은 법문을 들려주십시오.”하고 청을 올렸다. 큰스님께서는 이미 불연을 알아보셨는지 어머님을 향해 “내가 법문하면 니 딸 하나 빼앗길 텐데......” 하셨다. 그러나 당시 아무도 그 뜻을 알아채지 못했다.

스님은 꿈이 많았다. 의사가 되어 자선사업도 하고 싶고, 사범대를 다니고 있으니 페스탈로치와 같은 선생님도 되고 싶고, 또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런 속에서 스님은 늘 마음의 갈등이 많았다.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일까?’ ‘다양한 인생행로에서 내가 가야할 길은 과연 무엇인가?’ 고민이 가득했던 스님은 큰스님을 뵌 순간 망설임 없이 여쭈었다. “스님, 인생행로가 많은데 왜 스님이 되셨으며 스님이 되어서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온 대중이 궁금해하면서도 감히 여쭙지 못한 것을 의기 발랄하고 거침없는 나이 어린 학생이 당돌하게 묻자 대중은 사뭇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큰스님께서는 “별 가시나 다 봤네. 니 영혼이 있다 생각하나? 없다 생각하나?”하며 오히려 반문하셨다. 이에 백졸스님은 “있다고 할 자신도 없고, 없다고 하기에는 증명할 상식이 없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다시 큰스님께서 질문하셨다. “등가원리 아나?” “예 배웠습니다.” 스님은 엉겁결에 대답을 하였다. 그러나 실은 교과서에서 공식만 배웠지 어떤 원리로 전개되는지는 잘 몰랐다. “그래, 그럼 에너지가 질량이 되고 질량이 에너지 되는 거 아나? 그리고 원자폭탄이 되는 거 아나?” 죄는 듯한 질문이 연속되자 스님은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스님의 이런 속내는 아랑곳없이 큰스님은 등가원리, 색즉시공, 불생불멸로 법문을 펼쳐 나가셨다.

백졸스님은 큰스님을 뵙기 전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늘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가르치는 이론들이 저 순진한 아이들에게 과연 행복의 열쇠가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배운 학문이 삶을 사는데 황금 열쇠가 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와 갈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큰스님을 친견한 이후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유난히 빛나던 큰스님의 눈빛이 떠올랐다. 큰스님을 친견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스님은 가르침에 깊이 빠져 들어가 스님은 이윽고 ‘나도 성불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런 결심이 선 후 큰스님을 친견하고는 여쭈었다. “성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등록금을 내라.” “그럼 등록금을 내겠습니다.” 백졸스님의 대답에 큰스님은 “한국 은행권 가지고는 안 돼.”라고 답하셨다.

그러던 중 큰스님께서 떠나실 때가 되었다. “스님, 저도 따라가고 싶습니다.” “니는 가시나라서 안 된다”는 것이었다. “스님, 그럼 성전환 수술하면 갈 수 있습니까?” “그럼 되지!” 큰스님은 이 말씀만 남기신 채 파계사 성전암으로 떠나셨다.

그리고 스님은 일상으로 돌아와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주, 마산에서 큰스님을 친견하는 학생들이 있어 겨울방학 때 그들과 같이 성전암에 가게 되었다. 큰스님을 뵙고 난 후 화두를 타고 싶은 욕심에 “절하게 해 주십시오.”하고 허락을 구하였다. 안 된다는 큰스님을 쫓아다니기를 4시간, 결국 허락이 떨어져 절을 시작하였으나 한 번도 제대로 절해 본 적이 없는 스님은 고성염불을 하기 시작했고, 천칠배하고 나서는 도저히 더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삼천 배에서 한 번이라도 모자라면 다시 해야 한다는데....’ 스님은 도저히 중단하기는 싫었다. 어떻게 해야 되나 궁리하던 중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앉아서 절하지 말라는 말은 없었지!’ 이후 천삼백배는 앉은 상태에서 하였다. 겨우 삼천배를 마치고 큰스님을 뵈러 가니 “누워서 하지 왜 앉아서 했어? 부산 가시나. 니, 낙제다. 꼬리표 달아라.”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스님은 ‘인간 폭탄이 되려는 내가 삼천배도 못해서야 되겠는가?’라는 생각에 매일 백팔배를 하는 동시에 능엄주를 시작하였다. 그 때 성전암에서의 교재는 『선문염송』이었다. 당시는 인쇄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지금과는 비교될 수 없이 열악한 상태라 능엄주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래서 보따리장사 다니는 어떤 할머니께 구전으로 받아 적은 것으로 공부하셨다. 그 할머니도 자신의 손자들에게 과자를 사 주거나 용돈을 주며 읽어달라고 해서 그걸 듣고 외웠다고 한다. 이후로도 스스로 계획을 세워 능엄주 108독을 하였다. 기도를 하는 시간 중에 어떤 친구가 찾아와도 기도가 끝날 때까지는 꼼짝하지 않았다. 성불을 향한 구도의 열정은 갈수록 높아졌다.

그 후 스님은 다시 삼천배를 하셨고 비로소 화두를 받을 수 있었다. 백졸스님은 ‘화두를 깨치면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으나 화두를 놓치면 살아도 송장과 같다.’는 큰스님의 말씀을 새기며 수선 정진에 매진하였다. 이러한 큰스님의 가르침은 훗날 스님의 출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출가

스님은 화두를 깨쳐 성불하겠다는 결심을 세운 뒤, 부모님께 일주일 동안 여행 다녀온다는 허락을 얻어 집을 나갔고, 그것이 그대로 출가의 길로 이어졌다. 스님은 큰 방 어간에 가방을 놓고 좌선을 하였는데, 공양 시간을 알리는 목탁 소리도 알아듣지 못하는 절집 문외한이었다. 스님은 그저 화두에만 몰두하였다. 당시 다른 스님들은 행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하러 온 학생으로 생각하기엔 어정쩡한 신분이기에 그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긴 것 같았다.

처음 목표와는 달리 순식간에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화두 타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집으로 편지를 보내어 조금 더 공부하겠다며 지내다 보니 이럭저럭 석 달이 지나가고 말았다. 스님은 인생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될 것 같았다. 당시 스님에게 출가를 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스님은 대중스님들의 규칙적인 생활, 밤늦게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는 일과를 보고 가족들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가려는 마음에 태백산으로 갔다. 마을에서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스님들처럼 저렇게 일생을 잘 살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자 절집 생활이 공부하기에 유리하다는 판단한 것이다. 백졸스님은 1956년 석남사에서 인홍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당시 홍제사에는 은사인 인홍스님을 비롯한 인성, 성우, 철마, 혜춘, 길상, 법희, 향림, 지정, 혜근스님 등 30여분이 계셨다, 그 해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왔었다. 밤이면 대중 스님들은 촛불을 가운데 놓고 두 사람씩 마주 앉아서 주장자를 하나씩 들고 서로 탁마하면서 신나게 정진하였다. 그 때 인홍스님께서는 50세를 넘기지 않고 일대사를 마치리라는 비상한 각오로 불같은 정진을 하셨고 대중스님들의 환희심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밤을 새다 배가 고프면 생감자를 깎아 먹던 시절, 인상 깊었던 것은 정처사님의 공양이다. 포행 돌다 보면 아랫마을 정처사가 마루에 떡을 올려놓고 가셨다. 감자와 좁쌀이 주식이었던 시절에 그 공양은 실로 너무나 반가운 것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1950년대는 그렇게 지냈다.

옥천사 창건

이렇게 제방 선원으로 안거를 다니며 부처님의 6년 고행, 큰스님의 8년 장좌. 그리고 농산행 등의 정진을 동경하던 중 스님은 계곡에 졸졸 물소리 나고 소나무가 울창한 부산 재송동 옥천사에 인연이 닿았다. 2021년 이곳에서 정진 중인 스님은 불교노인대학, 일요 어린이 법회를 30년이 넘도록 운영하고 있다.

『선관책진』에서 원오스님이 ‘10년 동안 이연(異緣)이 없었다.’고 말씀한 바와 같이 ‘화두가 성성(惺惺)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스님의 말씀은 세월이 흘렀어도 “오직 한 길로만 가라!”는 큰스님의 말씀을 새기고 있는 여일한 구도자이다.

“삭발염의 했다는 이 자체만으로도 박사학위 10개 받는 것보다 가치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출가자라면 360도 각도에서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한한 교과 과정이 녹아 있는 부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중생을 위한 교육자가 되어야 합니다.”

출가인이 수행 도량에서 정진, 간경, 운력, 교육하는 일상은 살아 움직이는 산수화가 되어 중생들의 가슴에 큰 선물로 간직된다. 더더욱 대 자유를 추구하는 의지력이 굳다면 빛나는 보석이 아니겠는가?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 멋인데 개혁(편리)의 미명 아래 전통이 허물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 아프다.'는 스님은 오늘도 부처님께서 내려주신 편지(원오심요)를 깊이 읽는 도반이 많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스님의 수계 제자로 법열(法悅)·현명(玄明)·도관(道觀)·현소(玄昭)·정혜(淨慧)·공초(空超)·천륜(千輪)·천안(千眼)·정원(淨圓)·정행(淨行)·등원(登元)스님 등이 있다.


부산 옥천사

[옥천사 전경]
사진출처:법보신문,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4775

부산 옥천사는 백졸스님이 1981년 창건하였다. 부산 유수의 산사이자 능엄주 수행도량으로 명성이 높다.

2008년 결사한 ‘하루 30독, 10년 10만독’ 서원행자만도 130여명에 이른다. 옥천사 신도만이 아니다. 다음, 네이버 카페 등에서 활동 중인 네티즌도 옥천선원 정기 프로그램에 참여래 능엄주 철야 108독, 3000배, 참선 정진을 한다.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을 대상으로 능엄주 암송대회를 열어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백졸(百拙)스님 본항목 백졸스님(百拙, 1936~) 百拙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백졸스님(百拙,_1936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백졸스님(百拙) 법기문중(法起) ~의 일원이다
백졸스님(百拙) 인홍스님(仁弘) ~의 수계제자이다
백졸스님(百拙) 울산울주 석남사 ~에서 출가하다
백졸스님(百拙) 자운스님(慈雲)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비구니계
백졸스님(百拙) 부산 옥천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백졸스님(百拙) 안거 ~을(를) 성만하다 합천 해인사 국일암, 합천 해인사 삼선암, 문경 김룡사, 봉화 청량사, 합천 해인사 홍제암, 양산 내원사 성불암, 부산 범어사 대성암(청룡동), 문경 대승사 윤필암, 문경 대승사 묘적암, 진주 대원사, 남해 용문사, 양산 내원사, 울주 석남사 등

지도

  • 옥천사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재송동 138-4, 1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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