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수(朴岐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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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92년(정조 16)~1847년(헌종 13) = 56세]. 조선 후기 순조~헌종 때 활동한 문신. 행직(行職)은 이조 판서(判書)이다. 자는 봉래(鳳來)이다.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할아버지는 형조 판서박준원(朴準源)이며, 아버지는 이조 판서박종경(朴宗慶)인데, 큰아버지 호조 판서박종보(朴宗輔)에게 입양되었다. 생모 대구서씨(大丘徐氏)는 서광수(徐廣修)의 딸이고, 양모 덕수이씨(德水李氏)는 군수(郡守)이술모(李述模)의 딸이다. 그의 고모인 수빈 박씨(綏嬪朴氏)은 순조의 생모이므로 순조와는 고종 사촌간이다. 부인 임천조씨(林川趙氏)는 조학춘(趙學春)의 딸이다. 종조부인 성리학자 박윤원(朴胤源)의 문인이다.

순조 시대 활동

1810년(순조 10) 사마시(司馬試)의 생원(生員)진사(進士) 두 시험에 모두 합격하고, 1817년(순조 17) 정시(庭試)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설서(說書)가 되었다. 그 뒤 여러 벼슬을 역임하고, 1821년(순조 21) 홍문관(弘文館)부교리(副校理)가 되었다. 1824년(순조 24) 3월 이조 참의(參議)가 되고, 1827년(순조 27) 7월 성균관(成均館)대사성(大司成)이 되었으며, 8월에 예방(禮房) 승지(承旨)가 되었다. 1828년(순조 28) 사옹원(司饔院)제조(提調)가 되었다. 1830년(순조 30) 도승지(都承旨)가 되었다가 그 해 11월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가 되었다. 1832년(순조 32) 8월 이조 참판(參判)이 되었고, 1833년(순조 33) 8월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가 되었다.

헌종 시대 활동

1835년(헌종 1) 예조 판서가 되었다가 6월 공조 판서가 되었다. 1836년(헌종 2) 광주유수(廣州留守)가 되었고, 1837년(헌종 3) 5월 다시 예조 판서가 되었다. 1838년(헌종 4) 4월 병조 판서가 되었다. 1839년(헌종 5) 4월 하순에 형조 판서가 되었다가 일주일 만에 함경도감사(咸鏡道監司)가 되었다. 1842년(헌종 8) 12월 의정부(議政府) 좌참찬(左參贊)이 되고, 1843년(헌종 9) 7월 다시 병조 판서가 되었다. 1844년(헌종 10) 2월 다시 공조 판서가 되고, 4월에 다시 의정부 좌참찬이 되었으며, 6월에 이조 판서가 되었다. 1845년(헌종 11) 1월 예조 판서가 되고, 6월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이 되었다. 1846년(헌종 12) 행 돈녕부 판사가 되고, 8월에 다시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이어 의금부(義禁府)판사(判事)가 되었는데, 그 해 11월 1일에 파직되었다가 11월 20일에 다시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1847년(헌종 13) 1월 다시 병조 판서가 되었는데, 그 해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 『순조실록(純祖實錄)』
  • 『헌종실록(憲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매산집(梅山集)』
  • 『운석유고(雲石遺稿)』
  • 『임하필기(林下筆記)』
  • 『진신보(搢紳譜)』
  • 『반남박씨세보(潘南朴氏世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