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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농공은행의 설립과 운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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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농공은행의 설립 =
  
 
== 학습 주제 ==
 
== 학습 주제 ==
  
박순이 원장이 설립한 충현원의 역사를 살펴보며 한국 최초의 보육 시설과 돌봄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여순사건으로 남편 김생옥을 잃은 뒤에도 아이들을 품고 돌본 그녀의 삶에서 희생과 사랑의 가치를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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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타 다네타로의 「농공은행조례」 공포와 함께 설립된 광주농공은행의 목적과 운영 방식을 살펴봅니다. 이도재와 김성규 등이 설립에 참여했지만 실질적 경영권은 일본인 지배인에게 있었던 구조를 살펴봅니다.
 
 
  
 
== 이야기 ==
 
== 이야기 ==
  
1906년 대한제국의 재정고문으로 와있던 메가타에 의해 농공은행조례가 공포되며 광주에 광주농공은행이 같은 해 8월 설립인가를 받고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대한제국 시기, 광주농공은행은 중요한 경제기관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이 은행의 설립에는 일본인 재정고문 메가타 다네타로의 주도로 만들어진 농공은행조례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은행은 처음에 충장로에 위치했으며,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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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대한제국의 재정고문으로 와있던 메가타에 의해 농공은행조례가 공포되며, 서울에 본점을 둔 한성농공은행을 선두로 전국에 농공은행이 설립되었습니다.  
 
 
        김성규는 광주농공은행과 관련된 인물로, 조선 후기 고창군수와 장성군수를 역임하며 지역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또 다른 관련 인물로는 박하준이 있으며, 그는 은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고, 그의 아들 박용철 역시 중요한 인물로 기록되었습니다.
 
 
 
        용진광산은 최남주에 의해 창립되었으며, 이는 지역 경제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와 동시에 이장우가옥은 정낙교의 손에 의해 설립되었고, 정낙교는 광주농공은행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최원택과 현기봉 또한 광주농공은행과 관련을 맺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특히 최원택은 최남주의 손자이며, 현기봉은 그의 아버지 현준호와 함께 은행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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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광주에도 [[광주농공은행]]이 설립인가를 받고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농공은행은 개간과 관개, 농로 개설, 종자와 가축 구입 등 농업과 공업에 대한 투자를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은행이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인물과 장소들이 얽혀 있는 광주농공은행의 역사는 지역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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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당시, 전라도관찰사인 이도재, 김우진의 부친으로 더 유명한 김성규, [[김형옥]] 등이 설립 위원으로 영입되었습니다. 광주농공은행의 임원은 조선의 인사였지만 실질적인 경영권은 전적으로 모리라는 일본인 지배인에게 있었습니다.
 
   
 
   
 
== 스토리 그래프 ==
 
== 스토리 그래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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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 충현원  || 충현원 안내 || ||http://cb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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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행본 || 광주일백년 || 광주농공은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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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 진일보  || 울 밑에 선 봉선화야 || || https://www.j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5627168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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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광주농공은행 || || http://aks.ai/GC6000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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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 광주일백년 || 고아의 어머니 박순이 원장 || 141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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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 광주역사문화자원스토리텔링 || 충현원 || || http://gjstory.or.kr/sub.html?pid=48&formtype=view&code=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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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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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2024-L027| 광주의 은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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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L142| 광주농공은행의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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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L143| 광주농공은행의 임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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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L144| 전국 최초의 금융조합 광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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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L145| 호남은행 설립과 함께한 인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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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L146| 호남은행장 현준호와 임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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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L147| 호남은행 역사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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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L148| 농공은행으로부터 산업은행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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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L149| 조선저축은행에서 SC제일은행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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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L150| 광주상의, 상업은행 광주지점과 한 지붕 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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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Story]] [[분류:이야기 조각]] [[분류:류현정]]

2025년 10월 1일 (수) 01:11 기준 최신판

광주농공은행의 설립

학습 주제

메가타 다네타로의 「농공은행조례」 공포와 함께 설립된 광주농공은행의 목적과 운영 방식을 살펴봅니다. 이도재와 김성규 등이 설립에 참여했지만 실질적 경영권은 일본인 지배인에게 있었던 구조를 살펴봅니다.

이야기

1906년 대한제국의 재정고문으로 와있던 메가타에 의해 농공은행조례가 공포되며, 서울에 본점을 둔 한성농공은행을 선두로 전국에 농공은행이 설립되었습니다.

같은 해, 광주에도 광주농공은행이 설립인가를 받고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농공은행은 개간과 관개, 농로 개설, 종자와 가축 구입 등 농업과 공업에 대한 투자를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은행이었습니다.

설립 당시, 전라도관찰사인 이도재, 김우진의 부친으로 더 유명한 김성규, 김형옥 등이 설립 위원으로 영입되었습니다. 광주농공은행의 임원은 조선의 인사였지만 실질적인 경영권은 전적으로 모리라는 일본인 지배인에게 있었습니다.

스토리 그래프



참고자료

type resource title description/caption URL
단행본 광주일백년 광주농공은행
해설 디지털광주문화대전 광주농공은행 http://aks.ai/GC60002634


이야기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