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4-L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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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아의 수난과 함께 한 인물들

학습 주제

수피아여학교가 1937년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되는 과정에서, 교장 유화례와 함께 수피아여학교 수난의 시기를 함께 한 인물들에 대해 알아봅니다. 또한 같은 시기 폐교한 목포영흥학교, 목포정명여학교, 순천 매산학교, 전주기전여학교 등에 대해 살펴보며 역사적으로 신사참배 반대운동이 가지는 기독교 정신과 민족적 저항의 의미와 가치를 탐색합니다.

이야기

1937년, 수피아여학교는 일본 제국의 압력 아래 신사참배를 거부한 이유로 폐교의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유화례는 수피아여학교의 교장으로 재임하며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그녀와 함께 타마자도 이 운동에 동참하며 일본의 압박에 굴하지 않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수피아여학교 뿐만 아니라 함께 세워진 숭일학교, 목포영흥학교, 목포정명여학교, 순천 매산학교, 전주기전여학교 등도 신사참배에 참여하지 않음으로 기독교 정신을 지키고 폐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 속에서 수피아여학교는 일본 제국의 억압에 맞서 싸우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당시 수피아여학교의 교사였던 김명신은 1926년부터 1937년까지 10년 넘게 학교에서 근무하며 활발한 교육활동을 펼쳤습니다. 김아각은 재단 이사장으로서, 김필례는 교감으로서 수피아여학교의 수난의 시기에 함께 했습니다. 신사참배에 반대하며 1937년 수피아여학교는 비록 문을 닫았지만, 그 기독교 정신은 살아 숨쉬어 그 뿌리를 굳건히 남았습니다.

스토리 그래프



참고자료

type resource title description/caption URL
해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김명신 https://nationaltrust.or.kr/bbs/board.php?bo_table=B14&wr_id=86&sca=인물소개
해설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수피아 90년사 http://speer.gen.hs.kr/data_files/images/alumna/90/3.pdf


이야기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