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색채의 우리 말: 표준어와 방언, 그리고 역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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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주제

다양한 색채의 우리 말: 표준어와 방언, 그리고 역사를 찾아서

팀원

-`♥´-최강의 조-`♥´-
2024130722 박현강
2024131620 배혜은 Hyeeun0530
2024131323 송민경 마그네슘
2024130715 엄시우 유월

기획의도

기획배경

조원들 모두 방언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방언을 주제로 위키 페이지를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 나왔다. 한국어 방언들 종류가 다양하며 각각 역사가 매우 길기 때문에 몇 가지를 고르기로 하였고, 기간 역시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하기로 결정하였다.

기획목적

한국어를 통시적으로 탐구, 분석해보는 것이 큰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어는 표준어와 다양한 방언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방언마다 따로 떼어 조사한 것이 아니라 한 방언을 여러 방언들과 언어들 간의 관계 속에서 탐구하였다. 예를 들어, 함경도 방언은 중세 국어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으며, 조선어에 영향을 주었다. 국내 방언 2개(제주어, 육진 방언)와 해외에서 주로 쓰이는 한국어 방언 2개(조선어, 고려말)를 골라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의 기간에 집중하여 탐구해보도록 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동포들이 많이 해외로 이주하게 되었기 때문에 한국어 방언을 간(間)언어적으로 탐구해보기 위하여 기간을 위와 같이 잡았다. 하지만 중간에 중세 국어의 언급도 나오는데, 이는 '일제강점기부터 현재'라는 조사 범위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주제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쓰였던 방언들에는 중세 국어, 그 뿐 아니라 그 이전 한국어의 흔적까지도 남아있을 수 있다. 중세 국어도 언어이기에 중세 국어가 언급되는 것은 '언어들/방언들 간의 연관성'이라는 우리의 주제와 잘 맞고, 그보다도 우리가 방언에 관심을 가지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방언은 우리의 말과 문화의 흐름과 얼을 담고 있는 것이기에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다음은 방언 전시회에서 배혜은 학우가 보고 감명을 받은 글귀들이며, 특히 마지막 글귀가 우리 프로젝트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사투리는 못 참지!> 전시회 링크


KakaoTalk 20240622 195818458.jpg



온톨로지



각 클래스를 누르면 개별 위키페이지, 혹은 관련 웹사이트로 연결된다.


콘텐츠 구조

클래스

클래스 설명 노드
방언 방언들의 종류를 구분하는 클래스이다. 육진방언, 제주방언, 고려말, 조선어
단어 방언과 관련되어 나오는 단어들을 정리하는 클래스이다. 문법, 역사, 교육
인물 방언과 표준어 제정과 관련된 인물들을 정리하는 클래스이다. 주시경
시대&장소 방언과, 표준어가 쓰여져 왔던 시대를 나타내는 클래스이다. 국내, 일제강점기, 해외
언어 언어들을 큰 틀로 구분하는 클래스이다. 표준어, 방언, 한국어, 문화어

관계성(Relation)

  • isPartOf
    • 설명: 어떠한 것이 부분에 속함을 나타내는 노드이다.
      1. 제주방언 → 국내
      2. 육진방언 → 국내
      3. 조선어 → 해외
      4. 고려말 → 해외
      5. 일제강점기 → 역사
      6. 문화어 → 일제강점기
      7. 표준어 → 일제강점기
      8. 문법 → 제주방언
      9. 문법 → 육진방언
      10. 문법 → 조선어
      11. 문법 → 고려말


  • contributor
    • 설명: 언어의 제정에 기여했음을 나타내는 노드이다.
      1. 주시경 → 표준어
  • isUsedIn
    • 설명: 어느 장소에서 사용되는 지를 나타내는 노드이다.
      1. 국내 → 방언
      2. 해외 → 방언
  • isRelatedTo
    • 설명: 어떠한 것이 다른 것과 관련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노드이다.
      1. 교육 → 방언
      2. 방언 → 한국어
      3. 역사 → 한국어

마인드맵

방언마인드맵.png



















마인드맵은 다음과 같다.


국내 방언

제주어

제주어 음운론

제주 방언은 다른 지역 방언과 달리 많은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지리적 조건과 역사적 배경이 독자적 특성을 유지하게 했다. 제주 방언은 특히 음운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1)15세기 한국어의 한글 자모 사용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아래아(•)와 쌍아래아(••)가 남아 있다. 아래아는 [ㅗ]보다 입을 더 크게 벌리고, 혀뿌리를 좀 더 아래로 잡아당겨서 발음하는 후설 저모음이다.

제주에서 사용되는 예로는 'ㄷ•리(다리), ㅍ•ㅅ(팥), ㄷ•ㄱ(닭), ㄷ•ㄹ(달), ㅁ•ㄹ(말)'와 같은 것이 있다. (괄호 안 표준어) 쌍아래아는 《훈민정음》에서 ㅢ와 함께 방언과 아이들이 내는 소리를 표기하기 위해 ㅣ와 아래아를 붙인 ᆝ(이아래아)로 처음 소개되었다. 제주 방언에서는 'ㅇ••답(여덟), ㅇ••슷(여섯), ㅇ••라(여러), ㅇ••ㄹ다(열다), ㅇ••망지다(야무지다)' 처럼 쓰인다.

자음에서도 후두 유성음의 존재에 대한 논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머루'의 제주방언인 '멀위'를 [머뤼]라고 발음해야 하지만 [멀위]로 발음되는 것을 볼 때 2음절의 초성 'ㅇ'은 음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반치음(∆)의 흔적 또한 보인다. 예로는 '아시'(동생), 'ㄱ•새'(가위), '난시'(냉이) 등이 있다.

(2)받침의 'ㅆ'은 'ㅅ'으로 실현

표준어에서 ‘먹었어’는 [머거써]로 발음되지만 제주 방언에서는 [머거서]처럼 발음한다.‘ㅆ’의 받침이 기본형이라면 뒤에 오는 모음어미와 연음되면 당연히 [써]로 발음되어야 하는 환경이다. 그러나 제주 방언에서는 과거시제의 ‘-았/었-’이 결합 한 형태가 ‘갓어[가서]’, ‘잣어[자서]’처럼 실현된다. 따라서 제주 지역의 과거시제 선어말어미는 ‘-앗/엇-’이 된다. 또한 ‘있다’는 ‘이시다, 싯다, 잇다’로 말한다. <제주어 표기법>뿐만 아니라 제주 방언을 표기하는 경우 받침에서 쌍시옷을 거의 쓰지 않는다. 발음이 표기에 영향을 미친 결과이다.

(3)거센소리화와 된소리화

중세국어의 ‘ㅂ’계 어두자음군은 표준어에서는 된소리로 변하는데 제주 방언에서는 거센소리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ㅳㅓㄹ다’는 표준어 ‘떨다’이지만 제주 방언에서는 ‘털다’로 실현되어 ‘추워서 떨고 있어와 같은 표현은 ‘추원 털엄서.’처럼 사용된다. 그 외에도 ‘ㅶㅏㄱ, ㅶㅚ다, ㅳㅟ다’는 표준어에서 는 ‘짝, 쬐다, 뛰다’로 변했지만 제주 방언에서는 ‘착, 초다, 튀다’로 변했다. ‘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제주에서는 ‘씨어머니, 씨아버지’, 쇠붙이의 ‘쇠’는 ‘쒜’ 로 어두에서 특이한 경음화 발음이 나타나기도 한다.

(4)기타

그 외에도 제주 방언은 ‘셋아덜[섿따덜], 지집아이[지집빠이], 팔월[팔뤌]’ 등에서처럼 하나의 앞 음절에 받침이 있고 뒤 음절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단어일 때 앞 음절 종성을 뒤 음절의 초성 자리에 복사하여 발음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또한 제주 방언에서는 ‘ㅅ’불규칙이 실현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짓다, 긋 다, 잇다’와 같은 ‘ㅅ’불규칙 용언은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올 때 ‘지어, 지으니’ 처럼 ‘ㅅ’이 탈락한다. 그러나 제주 방언에서는 ‘짓어, 짓으난/긋어, 긋으난/잇어, 잇으난’으로 활용한다.

제주어와 오사카 방언 - 통사론을 중심으로

제주어의 통사론에 대하여 할 이야기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에 초점을 두어 서술하고자 한다.

우선 code라는 용어에 대해 정의할 필요가 있다. Code란 2개 이상의 언어가 쓰이는 다중언어 사회에서 쓰이는 하나의 언어 혹은 언어의 변이형을 의미한다. 즉, 한국어의 표준어와 다양한 종류의 방언들 모두 각각 code에 해당한다. 오사카 재일제주인 1세, 2세들이 무의식적으로 일본어(오사카 방언)와 제주어를 섞어 쓰는 것은 code switching이 아니라 code mixing에 해당한다.


일본어에서 'な'는 화자의 감정, 걱정, 바람 등을 표현하며, 화자의 어떤 일에 대한 단정을 나타내거나 주장을 강조한다. 또한 문장 중간에 쓰여, 다음 말을 하기 전에 숨을 고르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일본어와 제주어가 혼용된 발화 속 'な'는 제주어의 종결어미 '-아/어', '-ㅂ서', 연결어미 '-난(니까)', '-ㄴ디(ㄴ데)', 명사, 복수형 접미사, 조사, 접속사 등 매우 다양한 말과 결합한다.

일본 도쿄 방언, 센다이 방언에서는 간투조사로 'ね', 'さ'가 쓰이지만, 오사카 방언에서는 이외에도 'な'가 두드러지게 쓰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琴鍾愛(2005),「日本語方言における談話展開の方法」,東北大學大學院文學研究科博士學位論文) 재일제주인의 대부분은 일본어를 정상적으로 학습한 것이 아니라 생활 현장에서 익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사카의 재일제주인들은 표준어보다도 오사카 방언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들의 발화에 'な'가 많이 혼용되는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제주어에는, 'な'와 비슷한 '게'라는 종결 어미/조사가 있다. '게'는 어미로서 문장의 통사 기능에 관여하기도 하고, 보조사로서 담화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담화 기능의 역할이 통사 기능의 역할보다 더 크다고 한다. '게'는 부가적 문장 요소로, 화자의 감정을 덧붙이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부가 기능을 하는 '게'는 출현 위치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이는 'な'도 마차가지인데, 이러한 유사성 때문에 'な'는 재일제주인의 언어적 부담감을 덜어주는 데 중요했을 것이며, 재일제주인들은 '게'와 'な'가 서로 다른 언어의 어미/조사라고 크게 인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혼용(code mixing)이 나타났을 것이다.


(김보향 (2020), <오사카 지역 제주어 화자의 언어 혼용에 관한 연구 - 제주어 기반 발화의 일본어 ‘な’ 혼용을 중심으로 - >, <<언어학연구>> 제25권 1호, 23-38쪽.)



제주어 사용 현황

언어 체계로서 뚜렷하고 독특한 특징을 가진 제주어는 현재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2010년 12월 16일, 유네스코는 제주 방언을 인도의 코로어와 함께 ‘사라지는 언어’의 5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로 분류됐다. 사라지는 언어는 취약한 언어(Vulnerable language), 분명히 위기에 처한 언어(definitely endangered language), 심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severely endangered language),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 소멸한 언어(extinct language) 등 다섯 단계로 나뉜다. 이 중 4단계는 소멸 직전의 단계로, 노령인구만이 언어를 부분적이고 드물게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주학연구센터 김순자 전문연구위원은 “유네스코가 제주어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로 지정한 것은 제주어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증거”라며 “이는 국제사회가 제주어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보전 대책이 필요함을 역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도에서는 유네스코의 진단 이후 제주어 보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1년 4월 제주특별자치도는 2007년에 제정된 ‘제주어 보전 및 육성 조례’를 개정했고, 조례에 따라 ‘제주어 보전 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또한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출연해 만든 제주어 중점 연구기관 ‘제주학연구센터’에서는 제주어표기법 제정, 제주어 발전 기본계획 등을 수립하고, 관련 학술세미나,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제주도는 제주학연구센터를 제주학연구재단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측은 “제주학연구센터를 재단으로 독립화시켜 소멸위기에 처한 제주어의 전승을 더욱 구체적으로 연구·홍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육진 방언

육진 방언은 동북 방언, 그 중에서도 함경북도 방언에 속하며, 행정 중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다른 방언들과 접촉이 덜해 초창기 근대 국어의 고유한 모습을 비교적 많이 간직하고 있다. 육진 방언은 중세·근대 국어의 음운적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고, 중세·근대 국어의 어휘가 많이 남아 있어 잔재 지역(relic area)의 성격을 드러내는 방언이다. 즉, 한반도에서 가장 고어적인 모습을 보인다.

(곽충구(2005), <육진방언의 음운변화 – 20세기 초로부터 1세기 동안의 변화 - >, <<진단학보>> 100권 2호, 220쪽.) (곽충구(2018), <동북방언과 국어국문학>, <<개신어문연구>> 제43집, 5-42쪽.)


현재 중국 경내에서 사용하는 조선어(하이퍼링크)는 한반도에서 사용하는 한국어와 기원이 같은 언어이다. 중국 조선어는 근대 조선어에 기초하여 발전하였고 한반도 동북 방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조선인들이 압록강과 두만강 연안으로부터 중국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두만강 이북의 룡정은 일찍부터 조선인들의 문화중심지로 되였다. 연변 지역이 조선인들의 문화 중심지가 되면서 한반도의 동북 방언은 중국 조선어의 발전에 더욱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강용택(2021), <연변 함경도방언지역의 음운변화에 대하여>, <<중국조선어문>> 2021년 제2호, 6쪽.)


동북 방언은 함경남도 정평 이북, 낭림산맥 동쪽의 함경도(북의 행정구역 명칭으로는 함경남북도와 량강도) 방언을 일컫는다. 중국 조선족 자치주의 한인들이 말하는 ‘조선어 방언(=연변말)’, 중앙아시아 및 러시아의 한인들이 말하는 ‘고려말’은 동북방언의 변종(variety)이다. 이들은 언어섬(linguistic island)을 이루며 독자적으로 발전하였다. 일종의 immigrant koine로 발전하다가 그중 고려말은 현재 소멸 단계에 놓여 있다. (곽충구(2018), <동북방언과 국어국문학>, <<개신어문연구>> 제43집, 5-42쪽.)


육진 방언의 음운론

1. 모음 체계:

  - 육진 방언은 /ㅟ/, /ㅚ/가 없는 8모음 체계를 유지하고 있음. 
  - /ㅗ/의 저설화와 /ㅜ/의 후설화가 현저하게 나타남.

2. 자음 체계:

  - 자음 중 ‘ㅈ’은 치조음과 경구개음 두 가지 이음을 가짐.
  - 중세 국어처럼 ‘ㅈ’은 ‘ㅅ’, ‘ㄴ’과 자연부류를 이룸.

3. 성조:

  - 함남 단천, 함북 길주, 학성 등 지역에서는 '상승조, 고조, 저조'가 시차적으로 나타남.
  - 다른 지역에서는 고조와 저조가 시차적으로 나타남. 비시차적인 하강조, 고장조, 저장조 등의 운율소가 존재함.

4. 음운 변화:

  - ㄷ구개음화는 현재 그 변화가 진행 중임.
  - 모음 조화 현상이 있습니다: 단어의 첫 음절 모음이 ‘ㅏ, ㅗ, ㅐ’일 때, 말자음이 ‘ㅂ’인 형용사 어간에는 부사형 어미 ‘-아’가 결합됨. (예: 맵-+-아 → [매바], 배우-+-아 → [배와], 바꾸-+-아 → [바꽈], 무셥-+아서 → [무셔바서])
  - 원순모음화
  - 비원순모음화

5. 음절 구조, 어중자음:

  - 노년층의 전통적인 방언 보유자는 /tyV/, /syV/, /nyV/의 음절 구조가 존재함(V=모음). 예: 둏다(좋다), 땨르다(짧다), 디르다(지르다, 찌르다), 샤랑(곳간, 광), 슈갑(장갑), 셔른(서른), 냥심(양심), 념튀(염통), 녁셰(달력) 등
  - 중세국어 시기의 ‘옛이응, 반치음, 순경음비읍’이 ‘ㄱ, ㅅ, ㅂ’으로 반사되어 있음([*]는 재구형, MK는 중세국어형).

육진방언1.png 육진방언2.png

6. 육진의 회령 등 일부 지역은 서북 방언과 같은 음운 현상을 보임. 즉, /tyV>tV/가 일반적이고, 'ㅈ'은 치조음으로 통일. 예: 돟다(좋다), 따르다(짧다), 낭심(양심) 등


위 특징들을 통해 육진 방언이 보수적인 음운 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중세 국어와 유사한 음운 현상을 다수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곽충구(2018), <동북방언과 국어국문학>, <<개신어문연구>> 제43집, 5-42쪽.)


육진 방언과 고려말 - 통사론을 중심으로

19세기 중후반 연해주로 이주한 최초의 한인들은 함경북도 북부 두만강 유역의 육진 지역 주민들이었다. 이후 육진 지역 외 함경북도 남쪽의 길주, 명천 등의 한인들도 연해주로 이주하게 되어 연해주 지역에서는 육진 방언 외에도 길주, 명천 방언 등 여러 방언이 섞여 쓰이게 되었다. 하지만 여러 방언들 중 특히 육진 방언이 고려말(하이퍼링크)이라는 방언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음은 부정할 수 없다. 형태적 측면에서 육진 방언과 고려말은 유사성을 띠고 있어 고려말이 육진 방언에서부터 분화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말에서 육진 방언과 동일하거나 비슷한 격조사와 종결 어미가 많이 쓰인다.


해당 소주제에서는 육진 방언과 고려말을 통사론적으로 비교·분석하고자 한다.


주격 조사의 경우, 육진 방언에서는 '이'가 사용되거나 생략되기도 한다. 고려말도 마찬가지이고, 한국어 표준말에 나타나는 조사 '는'이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육진 방언과 고려말에서 주로 '르'라는 목적격 조사가 사용되나, 육진 방언에서는 '우'라는 목적격 조사가 사용되기도 한다.


육진방언, 고려말 2.png


육진 방언에서는 여격 조사로 'ㄹ/르', '게', '게르'가 사용된다. 고려말에서는 여격 조사로 '르', '게루', '인데루'가 사용된다.


육진 방언과 고려말에서 관형격 조사는 생략되기도 하고, 모음으로 끝난 경우에는 '이', 자음으로 끝난 경우에는 '가'가 사용된다.


육진 방언과 고려말에서는 '방향'을 나타내는 도구격 조사에 '르', '으르/을르', '우르', '으루/을루' 등의 다양한 형태가 나타난다. 아래의 a, b는 육진방언, c, d, e는 고려말 예문이다.


육진방언, 고려말 3.png


상대방 높임 표현의 경우, 육진방언에서는 '서'가 주로 사용되고, 고려말에서는 '소'가 사용된다. 또한, '합쇼'체에 해당하는 존대의 서술형 종결 어미의 경우, 육진 방언에서는 '다'가 사용되고, 고려말에서는 '꾸마'가 사용된다. 예를 들어, '내리다(나에요)'와 '내꾸마(나에요)'와 같이 나타난다.


20세기 초 연해주 한인들이 사용했던 육진방언, 다른 함경도방언과의 접촉으로 인한 육진방언의 분화,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 이후의 고려말 정착 등으로 귀결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모국어와 러시아어 간의 접촉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래는 “한국인을 위한 철자 교과서”에 실린 육진방언 자료이다.

육진방언, 고려말 1.png

연해주의 육진 방언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러시아어와 접촉했고, 초창기에 완전히 낯선 언어인 러시아어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어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고려말은 육진 방언을 중심으로 여러 방언적 요소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코이네'로, 오랫동안 러시아어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한인들의 러시아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러시아어에 동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고려말과 러시아어 간의 상호 작용을 통하여 고려말은 러시아어에 동화되어 갔다는 것이다.


(이경희(2020), <중앙아시아 고려말의 형태-어휘적 분석 : 방언과 러시아어와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한국시베리아연구>>, 제24집 2호, 199-223쪽.)


육진 방언은 위에 언급되었듯 주로 북한에서 쓰였고, 쓰이는 방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분단이라는 현실적 장벽으로 인하여 연구가 더딜 수밖에 없다. 육진 방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고려말의 연구는 분단으로 인해 실증 자료를 구할 수 없는 육진 방언 연구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육진 방언의 통사론 - 중국 조선족 자치주 육진 방언을 중심으로

이 탐구를 통해 한반도의 육진 방언과 중국 조선어 간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을 듯하여, 조선족의 육진 방언에 대한 논문을 골라 읽게 되었다.


육진 방언 화자들은 대우할 대상을 ‘이샹’, ‘등렬’, ‘기하’(또는 기해)로 구분하며, 이는 연령, 항렬, 성별과 같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명령법은 각 등급에 따라 사용되며, 이샹에게는 하압소체, 등렬에게는 하오체, 기하에게는 해라체가 사용된다. 청자는 이에 따라 ‘예’, ‘냥, 양’, ‘옹, 엉, 응’으로 답한다.

육진방언통사론1.png 육진방언통사론2.png


조선족 자치구에서 쓰이는 육진 방언의 어미는 여러 유형으로 분류해볼 수 있다.

 - 육진 본래의 어미.
  예: '-습구마', '-슴둥' 등. '-습구마'는 원래 '-는구마'에 '-습-'이 결합되어 '-습는구마'가 된 뒤 '-는-'이 탈락하여 형성된 것. '-슴둥'은 원래 연결 어미 '-는동'에 역시 '-습-'이 결합되어 '-습는둥'이 된 다음 '-는-'이 탈락하여 형성된 것.
 - '-습-'과 '-이-'가 개입된 어미.
   예: '-습네다'
 - 반말이나 하오체 어미 앞에 '-습-'이 개입된 어미.
   예: '-습디', '-습느', '-습소', '-습다메', '-습더라메' 등
 - 통사 구성이 어미화한 것.
   예: '-댸니리' 등
 - Zㅏㅂ.png이 개입된 융합형 어미.
   예: '-댸니와'


(곽충구(2014), <육진방언의 종결어미와 청자높임법 - 중국 조선족자치주 육진방언을 중심으로>, <<방언학>> 20권, 195-233쪽.)

표준어

표준어 제정

한국어의 표준 규정은 크게 한국의 표준어와 북한의 문화어가 있다.

태극기와 인공기.jpg


한국의 표준어와 북한의 문화어는 규범에서 다소 차이가 있으나, 모두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당시의 서울 방언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jpg

조선 건국 이래로 서울이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서울 지역의 언어가 공통어의 역할을 했고, 이것이 표준어로 규범화된 것은 일제강점기이다. 그러나 이것은 맞춤법에 대한 규정이지 어떤 어휘나 문법을 표준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1930년대에 조선어학회는 조선어(한국어) 보급을 위해서는 표준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 1933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시하였는데, 이때의 표준어 규정의 대원칙은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였다. 그리고 1935년부터 표준어 어휘 사정 관련 작업에 착수했는데 그 결과물은 1936년에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으로 결실을 맺었으며, 9457개 단어에 대해 표준어, 준말, 비표준어, 한자어 등으로 분류하였다.

사정 원칙에 있어서도 “서울말로써 으뜸을 삼되, 가장 널리 쓰이고 어법에 맞는 시골말도 적당히 참작하여 취하였다.”고 하였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



조선어학회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제대로 된 국어사전을 편찬해 어휘의 완전한 규범화를 꾀했으나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관련자가 전부 일제 경찰에 잡혀가 무산되었다.


한글학회 변천과정

표준어 정립에 큰 공을 세운 한글학회가 어떠한 변천과정을 가졌는지를 나타내는 타임라인이다.


표준어와 방언의 관계

표준어와 방언.jpg











한국어에서 표준어와 방언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표준어는 일반적으로 서울과 그 주변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공식적인 교육, 방송, 출판 등 공공 영역에서 사용된다. 이는 의사소통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전국적으로 이해 가능한 언어를 제공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다.


반면, 방언은 특정 지역에서 사용되는 독특한 언어 변형을 의미한다. 한국의 각 지역마다 고유한 방언이 존재하며, 이는 그 지역의 문화적, 역사적 특성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경상도 방언, 전라도 방언, 제주도 방언 등 다양한 방언들이 존재한다. 이들 방언은 발음, 어휘, 문법에서 표준어와 차이를 보이며, 같은 한국어 사용자끼리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방언은 지역 주민들 사이의 정체성과 연대감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현대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많은 방언이 사라져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표준어 사용이 더 익숙해지면서 방언을 사용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방언을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방언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지역 축제나 문화 행사에서 방언을 활용하여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홍보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한국어의 언어적 다양성을 유지하고, 지역 문화를 존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어의 표준어와 방언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표준어는 전국적인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방언은 한국의 언어적 풍부함과 지역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두 언어 변형 모두를 존중하고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외 방언

고려말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자신들의 모국어를 고려말이라고 부른다.러시아 혁명 전 연해주의 한인 신문,잡지,교과서는 '대한국'또는 '한국','한인'이라는 말을 썼지만 러시아 혁명 후가되는 1920년대부터는 '고려','고려인','고려말'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였다.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애국계몽운동시기가 끝나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혁명이 전개되면서 '고려'라는 말이 등장한 것이다.이주 후에는 조선,고려라는 말을 함께 썼으나 구소련의 해체 이후 공식적으로 고려,고려인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였다.고려말,고려음식.고렷법(한민족의 전통 예법이나 관습),고렷글(한국어로 쓰인 글),고렷사람/고렷사름(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사는 한인),고려촌(한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등은 한인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의 역사

소련 극동지역의 고려인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거주지를 재배치하려는 계획은 1937년 이전에도 여러 차례 시도되었다. 소련은 1927년에 포시에트와 우수리스크 거주 고려인들을 내륙지방으로 이주시키려고 하였고, 1928년에는 블라디보스톡 고려인들을 하바롭스크로 이주시킬 계획이 있었으나 성사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에 블라디보스톡 고려인들은 하바롭스크로 이주하였고 일부는 만주로 그리고 일부는 조선 땅으로 이주해 버렸다.1931년에 만주 지역이 일본의 침략을 받기 시작하면서 극동 정세는 소련에 불리하게 작용하기 시작하였다. 소련 중앙정치 무대에서는 1934년의 레닌그라드 당제1서기이던 키로프의 암살 사건을 계기로 1930년대의 대숙청이 전개되었다. 숙청대상에는 소련 정권수립에 기여했던 혁명원로들도 포함되었고, 공산당 간부들도 다수 해당되었다. 이러한 정치탄압의 노선 상에 고려인 공산당 간부들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1937년 강제이주가 실행되기 직전에 극동 지역의 고려인 간부들이 당국의 보안기관에 의하여 체포되었고 그 수는 2,000~2,500명으로 짐작될 뿐 정확한 수치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1937년에 접어들면서 극동 지역의 일부 고려인들 속에서는 강제이주에 대한 소문이 돌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소문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해 8월 21일에 모스크바에서 결정이 되고 9월부터 신속하게 실행되어야 하는 강제이주 집행이 실제로 이루어 질 때까지 고려인들은 평상시의 생활을 할 뿐이었다. 대략 실행 3~7일 전에 통고되고 이주열차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혼란과 어려움이 고려인 사회에서 나타났다.소련 중앙 당국의 결정에 따라 먼저 국경 지대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이 강제이주 열차에 올랐다. 이어서 당국은 9월 28일자 ‘고려인들을 극동주에서 이주시키는 결정’을 하달함으로써 극동주의 나머지 지역에 거주하던 모든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완벽하게 강제이주시키게 되었다.

(1)20세기 초 고려말의 역사

당시의 고려말을 분석해보면 대체로 육진 방언의 특징을 보여주지만 비육진 함경도 방언도 보인다.이것은 연해주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대체로 육진 지역 출신인이고 또 그 외의 함북 출신인들이 있었음을 
일러주는 것이다.가령,육진방언은 어느 환경에서나 구개음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그러나 함북방언에서는 형태소 내부에서 구개음화가 이루어졌고 '명사+주격조사'의 환경에서는 구개음화가 이루어지지 않 
았다.

(2)20세기 초~1937년까지의 고려말의 역사

이 시기는 자료가 많지 않아서 고려말의 실제 모습과 그 변화 과정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다만 이주민의 변동을 통해서 짐작해볼 수 있다.
20세기 초에는 이주민의 수효가 급증한다.20세기 전후한 시기의 함북 육진 지방에는 대략 10만 명 내외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다.1906년에는 34,399명이었던 것이 국권 상실 이후에는 54,076명,1914년에 는 64,309명, 1923년 106,817명,1927년에는 170,000여 명에 이르렀다.이를 보아 20세기 초 이후에는 함경도는 물론 함경도 이외의 지역인들이 대거 이주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이로써 육진방언은 점차 위 축되고 고려말은 점차 새로운 방향으로 개신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또 러시아 공민이 되기 위해 러시아어 교육을 받고 또 러시아 정교에 관심을 두는 시기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모국어를 학습할 수 있는 시기로 변화하였다.마을마다 소학교가 들어섬으로써 교육기히가 확대되었다.상대적으로 비육진 방언 화자들은 육진 방언권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딤으로써 고려말은 육진을 제외한 함경도 지역의 방언으로 점차 변화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3)현대까지의 고려말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이르러 소련의 개혁 개방과 뒤이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로 중앙아시아 한인들의 언어인 고려말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다.고려말이 함북방언의 한 변종이라는 점,모국어 사용이 연령에 비례하여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중앙아시아 한인들의 공용어는 서울이나 평양말이 아닌 현지 고려말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등이 담긴 글들이 발표되었다.젊은 사람들은 러시아어를 사용해도 친족 명칭은 러시아어식으로 '마마mama' '빠빠papa'라 한다.아래에 <현대 고려말 사용 현황>에 자세히 나와있듯이,고려말은 점점 쇠퇴하고 있다.

고려말 전사 및 표기법

(발음기호를 텍스트로 표현할 수 없기에 사진을 이용하여 나타냈다.) 전사법.jpg

(3)운율적 요소에 대한 전사

장음을 동반한느 상승조,하강조,저장조는 동일모음을 반복하여 전사하였다.음운론적으로는 2mora정도의 길이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인데 어떤 예들은 중부 방언의 노년층에서 들을 수 있는 음장보다도 길어 2음절로 간주할 수 있는 예들이 있다.

예를 들어서

대애지(돼지),쇄애지(송아지)

표현적 장음은 [:],[::}으로 전사한다.

(1)고려말의 어휘적 특징

어휘는 동북방언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지만 어휘량은 매우 적다.고려말로 나타낼 수 없는 사물의 명칭이나 개념은 러시아어 어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이주 후 언어정책적인 측면에서 창조적으로 고려말을 갈고 다듬어 부려 쓴다거나 또 새말을 만들어 쓰는 일이 없었으므로 고려말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거의 정체된 상태에 머물게 되었다.때문에 이주후에 나타난 새로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나 과학 기술 용어는 모두 러시아어를 쓰게 되었다.그러나 고려말 어휘가 있기는 하지만 일상적으로 러시아어를 쓰기 떄문에 습관적으로 러시아어 어휘를 쓰는 경우도 많다.

다음은 고려말 어휘의 예시이다. 끼생게:더부살이 낼래리:말을 마구 해대는 사람 수수깨애기:수수께끼 오마벨:불가사리 지정거리다:투정하다

(2)고려말의 통사적 특징

(논문,도서관 책,답사를 통해서 고려말의 통사론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였지만 통사론에 대한 자료는 찾지 못했고 아래의 내용이 전부이다..ㅠ)
통사적으로는 이중목적어 구문의 쓰임이 빈번하다는 점과 부정 부사 '아이(<아니)', '못'(모음 또는 'ㅎ'으로 시작하는 용언 앞에서는 '모')이 놓이는 위치가 특이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부정 부사는 합성어의 어기 사이에 놓이고 또 보조 용언의 앞에 놓인다.예를 들어서 떠 못 나오(떠나지 못하오),먹어 못 보오(못 먹어 보오).그리고 'ㄹ(또는 ㄴ) 것 같다' 구문은 의존명사 '것'이 없이 쓰이는데 이는 동북방언이나 고려말이 가진 보편적 특징이다.예를 들어서 안개 길 가툴하다(안개가 낄 것 같다).

고려말의 음운론

(1)고려말의 음성 특징

러시아어의 간섭으로 'ㄹㄹ'을 러시아어 유음 'Л[l]로, 'ㄹ'을 'Р[r]'로 조음하는 경향이 있다.또 어두 'ㅅ'를 [z]나 [c=ts]로 발음하기도 한다.[w]를 [v]로 조음하는 것도 러시아어의 영향이다.그리고 '지'를 '즈'와 '주'의 중간음 정도로 발음하기도 한다.예를 들어서 나주다(나지다,없던 것이 새로 나타나다),가주다(가지다),-주(-지,부정어미) 등.

(2)고려말의 음운 체계

'죄'는 자음 뒤에서는 원순성이 약화되어 있다.예를 들어서 쇠고기를 쇠고기와 세고기 사이로 발음하는 것이다.그러다 어두 위치에서는 이중모음 [we]로 나타난다.예를 들어서 외국을 웨국으로,왼쪽을 웬짝이라고 발음하는 것이다.또 '쇠'를 '쇄'로 발음하기도 하는데 이는 육진방언의 영향이다.육진방언에서는 대체로 'ㅚ'가 'ㅙ'로 변화하였다.

(3)고려말의 음운 현상

 1.구개음화
 형태소 내부의 ㄷ(ㅌ) 구개음화는 완료되었다.그러나 아래 예처럼 특이하게도 비구개음화형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육진방언의 영향이다.
 예:피 한고티두(피 한 방울도),빗고티(빗방울),물고치(물방울),오좀고치(오줌방울),다티다(다치다)

 한편,형태소 경계(굴절)에서의 ㄷ구개음화는 원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나 몇 예가 보인다.'빋','곧',젙'은 그 주격형(또는 서술격 조사 '-이-' 결합형)이 언제나 [비디],[고디],[저티]로 실현된다.그러나 
 특이하게도 '낟'은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서 /낮/으로 교체된다.즉,부사격 조사 '-으르' 앞에서도 /낮/으로 교체되어 교체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예:낮으로 빼엡더마.그전에 싹 낮으로 베에.낮을르 빼서 싹 묶어서 이래 조배기로 햇놧스 음.그 담에 그담에는 마술게다두 실어딜이그.뱃단으 싹 낮을르 삐문,다른 걸르 무스거 빼에.그전이 직금 와서 깜빠이나 잇는두.(뜻:낫으로 베더군요.그전에 싹 낫으로 베어.낫으로 베어서 싹 묶어서 이렇게 15단씩 무지를 지어 놓았지.그 다음에 그 다음에는 말 수레 따위로 실어들이고 볏단을.싹 낫으로 베면,다른 걸로 뭘 베어(=낫 외에는 벼를 벨 것이 없었다는 말).그전이,지금 와서 콤바인이나 있는지.)
 2.모음 역행 동화
 'ㅣ' 모음역행동화는 수의적이기는 하나 활발한 편이다.예:사람-이->사림이, 아츰-이->아침이,총각이->총객이. 피동화주가 /ㅜ/, /ㅗ/일 때 '이'모음역행동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죽이구>쥑이구, 꿀도둑이->꿀도됙이(땅강아지),다로기>다뢰기,목도기>목되기(목침).
 3.음운 탈락
 /ㅣ/나 활음 /y/앞에서 /ㄴ/이 탈락하는 현상은 수의적이다.예:단치 구냐아(구냥+-으),구야이(구멍이).
 /ㄷ/이나 /ㅈ/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의 /ㄹ/ 탈락은 수의적이다.예:살던~사던.살지~사지/
 4.활용 어간의 말음이 /ㄴ,ㅁ/이고 뒤에 장애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결합되면 대체로 경음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예:아르 안구[앙구] 잇엇지.

현대 고려말 사용 현황

현재의 고려말은 그 기반에 육진 방언적 요소가 잔존해 있는데 보수적인 육진방언의 음운특징은 함북방언의 영향으로 함북방언의 음운특징을 갖게 되었다.그러나 고려말은 하나의 독립된 언어로 발전하여 공용어로 쓰이는 단계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했고,또 러시아어라는 전혀 이질적인 언어와 접촉해 옴으로써 자신의 안에 러시아어적인 요소를 지속적으로 축적해왔고 급기야는 그 러시아어에 압도되어 사멸할 위기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koine라 하기도 어렵다.

koine:한 언어에 속한 여러 지역방언들이 상호 접촉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마련되면서, 어느 한 방언을 근간으로 하고 ㅇ기에 다른 방언적 요소들이 뒤섞인 것.

강제 이주 이전에 연해주에서 언어습득기를 보낸 사람들 즉,80대 중반 이상은 대체로 모방언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체로 70세 이하는 koine형태의 방언을 구사하며, 그 이후에(대체로 80년대 이후) 출생한 사람들은 거의 고려말을 구사하지 못한다.

1960년대에 이르러 한인공동체(집단농장)를 벗어나 도시로 진출하면서 고려말의 위상은 흔들리게 되었다.공동체에 남은 한인들은 주로 모국어를 썼지만 공동체를 벗어난 고려인들의 고려말은 가정방언(family dialect)의 형태로 남게 되었다.즉.밖에서는 지배언어(dominant language)이자 민족 간의 공용어인 러시아어를 쓰고 집에서는 고려말을 쓰게 된 것이다.게다가 새로운 정치,경제,경제,문화 또는 과학 기술 관련 어휘들이 모두 러시아어로 되어 있으니 불가불 러시아어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이 결과 집거지역이든 산거지역이든 지금은 대략 80세 이상의 노인층만이 고려말을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이들 노년층은 이중언어자이거나 현지 이민족의 언어까지 구사할 수 있는 다중언어자이다.이 노인층은 자신들끼리 만나 어울리거나 또는 단오와 같은 명절에 한인끼리 만나 대화를 나눌때만 고려말을 쓴다.가정에서는 러시아어와 고려말을 뒤섞어 쓰는 경우도 혹간 있지만 젊은 세대가 고려말을 모르니 러시아어를 쓸 수 밖에 없다.70대는 어느 정도 듣고 이해할 수는 있지만 고려말이 매우 서툴다.러시아어와 초보적인 고려말 어휘를 뒤섞어 쓰는 경향이 있고 러시아어 조음 습관에 젖어 있어 발음이 명료하지 않다.한인 집거지역에서 사는 이들은 도시에서 사는 이들보다 사정이 좀 낫다.이렇게 된 까닭은 80대 이상의 세대는 이주와 정착 및 독소전쟁의 와중에서 한인들만의 지역 공동체 안에서 모국어를 쓰고 자랐지만 70대 이하는 대체로 1950년대의 안정된 사회 환경에서 러시아어로 공부하고 새로운 사회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본국과의 접촉도 없는 데다가 한국어 교육마저 일찍이 폐지되었고 또 사회가 발전하면 그에 따라 관련 어휘도 증가하여야 하나 그 자리를 러시아어가 메운 까닭에 고려말은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이주 초기에는 모국어로 쓴 문학 관련 출판물도 나왔고 고려일보 <레닌기치>와 같은 신문이 지금까지 간행되고 있지만 이것이 고려말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동력은 되지 못하였다.

레닌기치 사진.jpg

그래도 여전히 고려말의 흔적이 남아있는 지역이 있다.카자흐스탄과 탈디쿠르간이다. 지도에 보라색으로 표시를 하였다.


  •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은 약 130여 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이다.각 민족은 자신의 민족어를 구사하기도 하나 민족 간의 대화에서는 러시아어를 쓴다.구소련이 해체된 후 카자흐어가 공용어로 지정되면서 카자흐어도 많이 쓰인다.

  • 탈디쿠르간

탈디쿠르간에는 6,000여 명의 한인들이 거주하지만 이민족과 함께 사는 까닭으로 일상적으로는 러시아어를 쓴다.구술자는 50대의 아들.딸 및 30대의 손녀와 한집에 사는데 가족간의 대화는 러시아어로 이루어진다.50대의 자녀들은 간단한 한인 음식,친족명칭 등을 알 뿐이다.이들은 초보적인 고려말만 구사할 수 있다.

이 영상을 보면 고려방언을 방언 클래스에 넣기로 한 우리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해외방언이라 더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고려인들이 노래를 부르고 성묘를 지내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매우 흡사하다.시간과 성묘를 지내는 공간은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부모님들을 공경하는 마음,차례를 지내는 마음가짐도 똑같으며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해야 했던 사실은 한국 사람이었던 사람들의 과거에 대해 이해할 수 있고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성을 보여준다.

조선어

일제강점기(개화기 포함)부터 현대까지의 중국 조선어

<중국에서의 조선어 방언분포 과정 및 양상 고찰>(김광수, 김홍매, 2022)에서는 '조선어'를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비롯한 요녕성 일대, 중국 전지역에 분포한 모든 한국어 방언을 총칭하는 술어라 하였는데, 필자는 이에 동의하여 여기에서도 그렇게 정의하도록 하겠다. 동 논문의 내용을 아래에 정리하도록 하겠다.

조선어 방언 분포는 조선인들의 중국 동북으로의 이주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조선인들의 이주 역사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1. 이주 초기(183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이주 초기 조선인들의 이주 노선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경로.png


또한 이주 초기 연도별 재만 조선의 출신은 다음과 같았다.


재만조선인.png


1910년 이전에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지역들에 이주한 조선인은 대부분 함경도와 평안도 출신이었다. 그중에서도 함경북도와 평안북도의 이주민이 제일 많았다. 조선인들 중에는 제주도 출신도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의 주요 방언들이 모두 중국으로 유입되었다고 볼 수는 있으나, 실제로는 동북 방언(정평 이북의 함경도 방언), 동남 방언(주로 경상도에서 쓰이는 방언), 서북 방언(주로 평안도와 자강도에서 쓰이는 방언. 황해도의 멸악산맥 이북 지역과 안악, 은율, 송화, 신천 등 서북 해안 지역의 방언도 서북 방언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중부 방언(경기 방언, 충청도 방언, 황해도 남부의 방언, 강원도 방언의 총칭), 서남 방언(전북의 대부분, 전남의 동부인 구례와 광양 일대, 그리고 전남 서부의 대부분 지역과 전북의 고창 등에서 쓰이는 방언)이 주로 쓰였고, 제주 방언은 그만큼 쓰이지 않았다.


2. 한일합병 이후


1910년 8월, 일본은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때부터 많은 조선인들이 중국 동북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1931년에는 동북의 조선인 인구가 63만 900여 명이었는데 연변지역 4개 현에 40만 9400여 명, 길림, 장춘 지역에 2만 4100여 명, 안동, 통화 지역에 5만 500여 명, 심양, 철령 지역에 9만 7100여 명, 여순-대련 지역에 1700여 명, 북만주에 4만 4400여 명, 기타 지방에 1000여 명이 분포하게 되었다.

이주 조선인의 출신 지역은 함경도, 평안도, 경상도 순서대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함경도 출신 이주민은 주로 북간도에, 평안도와 경상도 출신 이주민은 주로 서간도에 자리를 잡았다.

이 시기 조선어 방언 분포 지역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함경도 방언 지역: 연변 지구, 목단강 지구, 합강지구의 일부 지방(목단강 지구와 인접하여 있는 일부 지방), 통화 지구의 장백 지방

평안도 방언 지역: 단동 지구, 무순 지구, 심양 지구, 영구 지구, 철령 지구, 통화 지구(장백 지방 제외)

경상도 방언 지역: 장춘 지구, 길림 지구, 사평 지구, 송화강 지구(하얼빈 시 포함), 수회 지구, 합강 지구(목단강 지구와 인접하여 있는 일부 지방 제외) (출처: 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언어사>>, 민족출판사, 1995, 678쪽.)


일제는 항일 유격대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집단 부락 정책'을 실시하였다. 1933년 일제는 연변의 연길, 화룡, 왕청, 훈춘 4개 현에 세 차례에 걸쳐 총 92개의 집단 부락을 설치하여 9396호를 수용하려 하였다. (하지만 항일 유격대의 교란과 조선인 이주민들의 반란 등 여러 원인으로 인하여 1934년 10월 말까지 집단 부락을 14개밖에 설치하지 못하였다.) 이걸 넘어 일제는 1938년까지 동북 전체 92개 현에 4230개의 집단 부락을 설치할 계획까지도 세웠다. 당시의 이런 상황은 중국에서 서로 다른 한국어 방언 사용자들의 방언 혼용, 특히 함경도 방언과 경상도 방언의 혼용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즉, 일제가 중국 동북을 강제 점령한 시기가 바로 중국에서 조선어가 정착하여 간 시기였다 할 수 있다.


3. 해방 후 방언 분포


중국에는 해방 후에도 서북 방언, 동북 방언, 중부 방언, 서남 방언, 동남 방언, 제주도 방언의 한국어 방언들이 남았다. 중국과학원민족연구소와 동북3성 조선어문사업협의소조판공실조사의 《조선어간지(朝鮮語簡紙)》(1982)에 의하면 제주도 방언을 제외한 다섯 개의 방언은 중국의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 세 개의 성에서 모두에서 각각 활발히 사용되는 지역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동북 방언은 육진 방언과 그 외 대부분 함경도 지역에서 중부 방언으로 다시 나뉜다.


서북 방언은 주로 요녕성 동부에 분포되어 있고, 중부 방언은 주로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 흑룡강성 목단강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동북 방언은 연변의 두만강 연안 동부 지역에 분포되어 있고 동남 방언은 주로 흑룡강성 서북 지역과 서남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중부 방언과 서남 방언은 기타 방언과 함께 각 성 일부 지역들에 분산되어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조선어가 현대 한국어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조선어 표현 형태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한국어의 악센트와 표현 어휘를 기존의 중국 조선어와 결합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중국 사회에 속해 있어 중국어의 영향을 받아 중국어의 어순을 따르거나 중국어와 조선어를 섞어 의사를 전달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것도 중국 조선어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 그 중에서도 청년 세대는 경제가 발달되어 있는 연해 도시로 이주하여 소규모로 분산된 새로운 방언 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어 음운론

전체적인 중국 조선어 음운론 연구가 예상보다 충분하지 않은 관계로 연변 자치구와 요녕성의 조선어에 대한 내용만 실었음을 밝힌다.


중국 요녕성은 중국 조선족이 거주하는 산재 지구로써 평안도 방언과 경상도 방언이 주로 사용되며 방언섬들도 존재한다.


요녕성의 심양시, 무순시, 본계시, 단동시, 반금시, 영구시는 주로 평안도 방언이 사용되며, 철령시, 안산시는 주로 경상도 방언이 사용된다.


1. 모음의 변화

(1) 모음 'ㅏ', 'ㅓ'의 앞모음화: 모음 'ㅣ' 역행 동화

요녕의 모든 지역에서 나타남.


가마 > 가매

처녀 > 체네

부스럼 > 부스레미

두드러기 > 두드레기

할머니 > 할매

할아버지 > 할배

엄마 > 엄매


(2) 모음 'ㅣ'가 'ㅟ'로, 'ㅟ'가 'ㅜ'로 바뀌는 현상

평안도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남. 즉, 심양시, 무순시 등 평안도 방언이 사용되는 지역에서 들을 수 있음.

사마괴 > 사마귀 > 사마구

'사마괴'는 '사마귀'로의 변천하는데, 중세의 'ㅟ'는 이중모음으로써 'ㅜㅣ'로 발음되었다. 당시부터 평안도에서는 앞의 'ㅜ'만 발음되었고, 그것이 현대 방언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방긔'가 '방구'로, '글픠'가 '글푸'로, '바퀴'가 '바쿠'로 발음되는 것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3) 단모음의 이중모음화

여기서 단모음의 이중모음화는 단모음 'ㅐ'가 평안도에서 'ㅏㅣ'로 발음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중세에 단모음 'ㅐ'는 이중모음이었는데, 중세 국어의 흔적이 아직까지 평안도 방언과 평안도 방언에서 유래한 조선어 방언에 남아있다고 볼 수 있겠다.

가이는 가히라.png 괴 고양이.png

개 > 가이

고양이 > 괴 > 과이

새 > 사이

넷 > 너이


(4) 모음 'ㅡ'가 'ㅣ'로 바뀌는 현상

경상도 방언에는 모음 'ㅡ'가 자음 'ㅅ, ㅈ, ㅊ'와 결합될 때 모음 'ㅣ'로 변화하는 현상이 발견된다. 이는 중세 국어에 존재하였던 아래아와 관련된 현상이다. 자음 'ㅅ'와 반치음과 결합된 아래아는 모음 'ㅡ'로 변하고, 그 후 다시 'ㅣ'로 바뀌기도 하였는데, 이는 경상도 방언 등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대부분의 방언에서는 'ㅈ', 'ㅊ'과 결합되었던 아래아가 'ㅣ'로 발음된다. (아래아 > ㅡ > ㅣ) 하지만 평안도 방언 등에서는 어음운론적 특성으로 인해 아래아가 'ㅣ'까지로 변천하지 않고, 'ㅡ'로 남아있다고 한다. (황대화, <력사적 모음 <<·>>(아래아)의 변화에 대하여(2)>, <<중국조선어문>> 1999년 제3호, 1999, 11쪽.)


<경상도 방언에서 유래한 조선어 단어의 발음>

습관 > 십관

부스럼 > 부시럼

가슴 > 가심

즐겁다 > 질겁다

<평안도 방언에서 유래한 조선어 단어의 발음>

기침 > 기츰

짐승 > 즘승

점심 > 점슴

심심하다 > 슴슴하다


(5) 반모음 j의 탈락

이중모음 'ㅕ'와 'ㅠ'가 자음 'ㄴ', 'ㅅ', 'ㅎ'와 결합할 때 반모음 [j]가 탈락하는 현상이다. 이는 평안도 방언에서 발견되는 현상이기 때문에 평안도 출신 이주민의 비율이 높은 심양시, 무순시 등에서 발견된다.

숭늉 > 숭눙

흉년 > 훙넌

흉측하다 > 훙축하다

양념 > 양넘

훌륭하다 > 훌룽하다


(6) 이중모음 'ㅢ'의 분화 - 경상도


2. 자음의 변화


(1) 대부분의 요녕 지역에서는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음.

니불

니마

령감 > 넝감

리혼 > 니혼


(2) 구개음화가 적용되지 않는 현상

구개음화란 치음 'ㄷ', 'ㅌ'이 모음 'ㅣ'나 반모음 [j]로 시작하는 모음을 만날 때 구개음 'ㅈ', 'ㅊ'으로 변화하는 현상이다.

평안도에서는 치음이 구개음으로 변화하지 않고 원 상태를 유지한다.

당마 (장마)

지나다 (디나다)

가물티 (가물치)

가티 (같이[가치])

짠디 (짠지)


경상도나 함경도에서는 혀뿌리소리 [ㄱ, ㅋ, ㄲ]가 구개음 [ㅈ, ㅊ]로 변화하는 현상이 특징적이다.

김치 > 짐치

길들이다 > 질들이다

길다 > 질다


(강용택(2019), <료녕지역 조선어의 음운특징에 대하여>, <<중국조선어문>> 2019년 제6호, 30-33쪽.)


다음은 연변 함경도 방언 지역 조선어의 음운 변화 현상이다.

1. 모음의 음운변화


  - 원순모음화: 양순음 /m, p, ph, p’/에 후행하는 모음 /ɨ/가 /u/로 교체됨.
    예시: 기뿌다(기쁘다), 예뿌다(예쁘다), 서글푸다(서글프다), 주룸살(주름살), 무룹(무릎), 고룸(고름), 나뿌다(나쁘다)


  - 비원순모음화: 연변 함경도 지역에서는 전설음에 단모음 원순모음이 없는 경우가 많아 /u/가 /i/로 변하는 현상이 관찰됨.
    예시: 고치(고추), 국시(국수), 디비(두부), 칩다(춥다)


  - 이중모음의 단모음화: /wi/가 /i/로 단모음화됨.
    예시: 방기(방귀), 기저기(기저귀), 바키(바퀴)


  - 움라우트: /i/나 /y/를 동화주로 하여 그 앞에 있는 [+back] 모음인 /ɨ, ə, a, u, o/가 [-back] 모음인 /i, e, ɛ, wi, we/로 발음됨. 이 현상은 동화주와 피동화주 사이에 [-cor] 자질의 자음이 존재해야 이루어지는 일종의 역행 동화이다.
    예시: 놀랜다(놀란다), 매끼다(맡기다), 쌔미(쌈), 메기다(먹이다), 구데기(구더기), 뻬낀다(벗긴다)


  - 모음축약: 형태소와 형태소가 결합할 때 두 모음이 합쳐져 이중모음이나 이중모음의 간음인 단모음으로 변하여 두 음절이 한 음절로 바뀌는 현상.
    예시: 봐라(보아라), 해놔라(해놓아라), 쏴서(쏘아서), 마세라(마셔라), 비베라(비벼라)


  - 고모음화: [-high] 자질을 가진 모음이 [+high] 자질을 가진 모음으로 바뀌는 현상으로, /o/→/u/, /ə/→/ɨ/로 변화함.
    예시: 먹꾸(먹고), 실제루(실제로), 쓰구(쓰고), 모시구(모시고), 다스(다섯), 여스(여섯)


  - 저모음화: 고모음이 중모음이나 저모음으로, 중모음이 저모음으로 변하는 현상. /u/→/o/, /ə/→/a/, /e/→/ɛ/, /i/→/e/로 변함.
    예시: 오좀(오줌), 거마리(거머리), 택(턱), 글페(글피)


2. 자음의 음운변화


  - 경음화: 어두 자음의 경음화 그리고 형태소 간에 두 자음이 연결될 때 무성 자음의 경음화가 있음.
    예시: 꾸기다(구기다), 까꿀루(거꾸로), 끔(금), 싸위(사위), 씨원하다(시원하다), 빼쫍따(비좁다), 쪼꼼(조금)


  - 구개음화: /i/나 /y/에 선행하는 비구개음인 /k, k’, kh, t’, th, h/가 /i/나 /y/의 영향을 받아 구개음으로 변하는 현상. /k/→/tʂ/, /t/→/tʂ/로 변함.
    예시: 지슴매다(김매다), 질다(길다), 시라지(시래기), 집따(깁다), 질(길), 짐치(김치)


  - 자음 탈락: 형태소 내에서 자음이 탈락하는 현상.
    예시: 고애(고양이), 새일(생일), 부에(부엉이), 코이(콩이), 따이(땅이)


  - 중간 자음 유지: 고어형 중간 자음 /-p-/, /-k-/, /-s-/이 유지되는 현상.
    예시: 가분데(가운데), 버버리(벙어리), 새비(새우), 서분하다(서운하다), 맹글다(만들다), 벌거지(벌레), 얼구다(얼리다), 과실(과일), 가새(가위), 지슴(김)


  - 자음 첨가: 형태소 내와 형태소 배합 관계에서 자음이 첨가되는 현상. /-r-/의 첨가가 많이 일어남.
    예시: 길르고(기르고), 흘르다(흐르다), 문질르다(문지르다), 빨르다(빠르다)


위와 같은 음운 변화는 한반도의 함경도 방언과 비슷한 특징을 보이면서도, 함경도 방언에서 분화된 연변의 조선어 자체의 음운적 특징도 가지고 있음.


(강용택(2021), <연변 함경도방언지역의 음운변화에 대하여>, <<중국조선어문>> 2021년 제2호, 7-13쪽.)


조선어 통사론과 어휘

해방 전 중국 조선어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격조사와 보조사

-여격조사 '에게/의게'

우선 근대어 여격조사 '에게'와 '의게'가 공존하였고, '의게'의 변종 '으게'가 1940년대까지 쓰였다.


조선어2.png


-속격조사 '의'

여격 '에게'의 뜻을 지니기도 하였고(ㄱ), 주술적 결합으로 이루어진 확대 성분에서도 쓰여 주격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였고(ㄴ), 위격 '에'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ㄷ).


조선어3.png


-공동격조사 '와'

여러 단어가 나열될 때 마지막 단어에도 공동격조사를 붙였다. 만주 시인집을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을 찾을 수 있다.


"거기서 새로운 言語를 배웟고 새로운 行動을 배윗고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世界와 새로운 肉體와를 어덧나니"


(2) 용언 어미

현대에서 쓰이지 않는 용언 어미들이 당시에 사용되었다.


조선어.png


또한 현대어에서는 어미 '-던'과 '-든'이 구별되지만 광복 이전 중국 조선어에서는 구별 없이 쓰인 경우들이 많았다.


조선어4.png


(김동소, 최희수, 이은규(1994), <중국 조선족 언어 연구: 제1편 중국 조선어 역사 개황>, <<한국전통문화연구>>, 대구가톨릭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79-186쪽.)



해방 후 중국 조선어 문법과 어휘에서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어미의 쓰임 중 존칭 선어말어미 '-시-'의 사용이 적어졌고 이와 함께 존대 계칭의 어미나 조사들도 적게 쓰이고 있다.

문화 대혁명 이후 청소년들의 구두어에서 쓰이는 종결 어미 '-기시오'는 새로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예: 빨리 가기시오 = 빨리 갑시다, 보기시오 = 봅시다, 주기시오 = 줍시다, 우리도 남기시오 = 남읍시다

위 예문들에서 볼 수 있듯 '-기시오'는 권유의 뜻을 가진다. 이 어미는 대등 계칭의 권유형 종결 어미 '-기오' 사시에 존칭 선어말어미 '-시-'를 끼워 넣은 형태로, 존경해야 할 대상에게 어떤 행동을 권고할 때 쓰인다. 새로운 권유형 어미 '-기시오'의 출현으로 인해 존대 계칭의 권유형 어미 '-ㅂ시다'가 구두어에서 더 적게 쓰인다.

또한 보조적 동사 '에 관하여(관한)', '에 대하여(대한)', '에 의하여(의한)', '에 있어서(있어서의)' 등이 매우 활발히 쓰인다.

예: "전당의 사업의 집중점을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에 옮긴데 관한 보고를 하였다", "그는 혁명에 대하여 동지에 대하여 추호의 미안한 일을 하지 않았다"

해방 후 중국 조선어 어휘 구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대량의 중국어 어휘가 차용되었다. 중국의 한자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자, 중국어 차용어를 제한하고 그릇된 한자어 남용을 극복하기 위해 어휘 사정 위원회가 구성되어 언어 규범화를 강화하고자 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어 차용어는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새로운 한자어의 발생, 한국어 방언 어휘의 사용, 새로운 단어의 발생 등도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김동소, 최희수, 이은규(1994), <중국 조선족 언어 연구: 제1편 중국 조선어 역사 개황>, <<한국전통문화연구>>, 대구가톨릭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5-197쪽.)


방언 교육 및 보존 방안

2005년 1월 27일 제정된 국어기본법 제4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제1항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변화하는 언어 사용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국민의 국어능력의 향상과 지역어의 보전 등 국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이렇게 법 조항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국가도 방언 보존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방언이 처음에는 국어정책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방언은 학문적 관심의 대상일 뿐 정책적인 접근은 거의 이루어 지지 않았다. 이런 방언이 관심 받게 된 것은 2000년대 이후 였다. 영화, 드라마와 같은 대중매체에서 나오는 방언의 비중이 증가하게 되고 그 무렵 사회 분위기는 방언을 긍정적으로 보는 추세 였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방언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는 지방자치단체도 나타나고 있다. 가장 활발한 것은 제주도이다. 2007년 「제주어 보전 및 육성 조례」를 만들었는데 제주어보전육성위원회 설치, 제주어 주간 지정, 제주어연구소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2011년에는 진주시의회에서도 「진주 지역언어 보전 및 육성에 관한 조례안」이 상정되었다. 그렇지만 시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후 결정하자는 제안에 따라 통과가 되지 않고 보류되었다. 방언에 관한 조항이 국어기본법에 들어가 있고 제주도처럼 조례를 만든 경우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정책적으로 방언과 관련된 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제주도를 제외하면 지방자치단체들은 사투리 경연 대회 등에 소규모의 예산을 지원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을 뿐 그 지역의 방언을 보존하고 활용하려고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지는 못했다.



국립 국어원에서도 방언 보존에 대해서 큰 노력을 하였다. 국립 국어원에서는 방언이 그대로 소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방언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여 방언에 대한 관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고 2012년에 두 가지 사업을 새롭게 시작하였다. 「지역 언어문화 축제」 사업과 「지역어 상품 공모전」 사업이다. 이 두 사업에서 공통적으로 의도한 것은 방언이 활용되는 좋은 모델을 만들 어 지방자치단체에 알림으로써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를 활용하도록 하여 방언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이었다. 새로운 곳을 방문한 관광객은 관광을 온 만큼 그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된다. 그것은 아무래도 지역적인 특색이 있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방언 또한 관광객을 위한 상품 혹은 홍보물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런 취지로 두 가지 사업이 추진되었다.

출처

김보향 (2020), <오사카 지역 제주어 화자의 언어 혼용에 관한 연구 - 제주어 기반 발화의 일본어 ‘な’ 혼용을 중심으로 - >, <<언어학연구>> 제25권 1호, 23-38쪽.

곽충구(2005), '육진방언의 음운변화 – 20세기 초로부터 1세기 동안의 변화 - ', "진단학보" 100권 2호, 220쪽.

곽충구(2018), '동북방언과 국어국문학', "개신어문연구" 제43집, 5-42쪽.강용택(2021), '연변 함경도방언지역의 음운변화에 대하여', "중국조선어문" 2021년 제2호, 6쪽.곽충구(2018),

'동북방언과 국어국문학', "개신어문연구" 제43집, 5-42쪽.이경희 (2020),

<중앙아시아 고려말의 형태-어휘적 분석 : 방언과 러시아어와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한국시베리아연구>>, 제24집 2호, 199-223쪽.

곽충구(2014), <육진방언의 종결어미와 청자높임법 - 중국 조선족자치주 육진방언을 중심으로>, <<방언학>> 20권, 195-233쪽.강용택(2019),

<료녕지역 조선어의 음운특징에 대하여>, <<중국조선어문>> 2019년 제6호, 30-33쪽.김광수, 김홍매(2022),

<중국에서의 조선어 방언분포 과정 및 양상 고찰>, 61-75쪽.강용택(2021), <연변 함경도방언지역의 음운변화에 대하여>, 

<<중국조선어문>> 2021년 제2호, 7-13쪽.김동소, 최희수, 이은규(1994),

<중국 조선족 언어 연구: 제1편 중국 조선어 역사 개황>, <<한국전통문화연구>>,
대구가톨릭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79-186쪽, 195-197쪽.

(황대화, <력사적 모음 <<·>>(아래아)의 변화에 대하여(2)>, <<중국조선어문>> 1999년 제3호, 1999, 11쪽.)

(琴鍾愛(2005),

「日本語方言における談話展開の方法」,東北大學大學院文學研究科博士學位論文)

서적:중앙아시아 이주 한인의 고려말(곽충구,김수현) 21쪽-43쪽

중앙아시아 고려말의 형태-어휘적 분석 : 방언과 러시아어와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이경희(2020) 35쪽-56쪽

기여

  • : 제주어 음운론, 방언 보존 방안
  • Hyeeun0530: 제주어 나머지, 육진 방언 전체, 조선어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