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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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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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개화기 포함)부터 현대까지의 중국 조선어

<중국에서의 조선어 방언분포 과정 및 양상 고찰>(김광수, 김홍매, 2022)에서는 '조선어'를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비롯한 요녕성 일대, 중국 전지역에 분포한 모든 한국어 방언을 총칭하는 술어라 하였는데, 필자는 이에 동의하여 여기에서도 그렇게 정의하도록 하겠다. 동 논문의 내용을 아래에 정리하도록 하겠다.

조선어 방언 분포는 조선인들의 중국 동북으로의 이주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조선인들의 이주 역사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1. 이주 초기(183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이주 초기 조선인들의 이주 노선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경로.png


또한 이주 초기 연도별 재만 조선의 출신은 다음과 같았다.


재만조선인.png


1910년 이전에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지역들에 이주한 조선인은 대부분 함경도와 평안도 출신이었다. 그중에서도 함경북도와 평안북도의 이주민이 제일 많았다. 조선인들 중에는 제주도 출신도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의 주요 방언들이 모두 중국으로 유입되었다고 볼 수는 있으나, 실제로는 동북 방언(정평 이북의 함경도 방언), 동남 방언(주로 경상도에서 쓰이는 방언), 서북 방언(주로 평안도와 자강도에서 쓰이는 방언. 황해도의 멸악산맥 이북 지역과 안악, 은율, 송화, 신천 등 서북 해안 지역의 방언도 서북 방언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중부 방언(경기 방언, 충청도 방언, 황해도 남부의 방언, 강원도 방언의 총칭), 서남 방언(전북의 대부분, 전남의 동부인 구례와 광양 일대, 그리고 전남 서부의 대부분 지역과 전북의 고창 등에서 쓰이는 방언)이 주로 쓰였고, 제주 방언은 그만큼 쓰이지 않았다.


2. 한일합병 이후


1910년 8월, 일본은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때부터 많은 조선인들이 중국 동북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1931년에는 동북의 조선인 인구가 63만 900여 명이었는데 연변지역 4개 현에 40만 9400여 명, 길림, 장춘 지역에 2만 4100여 명, 안동, 통화 지역에 5만 500여 명, 심양, 철령 지역에 9만 7100여 명, 여순-대련 지역에 1700여 명, 북만주에 4만 4400여 명, 기타 지방에 1000여 명이 분포하게 되었다.

이주 조선인의 출신 지역은 함경도, 평안도, 경상도 순서대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함경도 출신 이주민은 주로 북간도에, 평안도와 경상도 출신 이주민은 주로 서간도에 자리를 잡았다.

이 시기 조선어 방언 분포 지역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함경도 방언 지역: 연변 지구, 목단강 지구, 합강지구의 일부 지방(목단강 지구와 인접하여 있는 일부 지방), 통화 지구의 장백 지방

평안도 방언 지역: 단동 지구, 무순 지구, 심양 지구, 영구 지구, 철령 지구, 통화 지구(장백 지방 제외)

경상도 방언 지역: 장춘 지구, 길림 지구, 사평 지구, 송화강 지구(하얼빈 시 포함), 수회 지구, 합강 지구(목단강 지구와 인접하여 있는 일부 지방 제외) (출처: 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언어사>>, 민족출판사, 1995, 678쪽.)


일제는 항일 유격대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집단 부락 정책'을 실시하였다. 1933년 일제는 연변의 연길, 화룡, 왕청, 훈춘 4개 현에 세 차례에 걸쳐 총 92개의 집단 부락을 설치하여 9396호를 수용하려 하였다. (하지만 항일 유격대의 교란과 조선인 이주민들의 반란 등 여러 원인으로 인하여 1934년 10월 말까지 집단 부락을 14개밖에 설치하지 못하였다.) 이걸 넘어 일제는 1938년까지 동북 전체 92개 현에 4230개의 집단 부락을 설치할 계획까지도 세웠다. 당시의 이런 상황은 중국에서 서로 다른 한국어 방언 사용자들의 방언 혼용, 특히 함경도 방언과 경상도 방언의 혼용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즉, 일제가 중국 동북을 강제 점령한 시기가 바로 중국에서 조선어가 정착하여 간 시기였다 할 수 있다.


3. 해방 후 방언 분포


중국에는 해방 후에도 서북 방언, 동북 방언, 중부 방언, 서남 방언, 동남 방언, 제주도 방언의 한국어 방언들이 남았다. 중국과학원민족연구소와 동북3성 조선어문사업협의소조판공실조사의 《조선어간지(朝鮮語簡紙)》(1982)에 의하면 제주도 방언을 제외한 다섯 개의 방언은 중국의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 세 개의 성에서 모두에서 각각 활발히 사용되는 지역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동북 방언은 육진 방언과 그 외 대부분 함경도 지역에서 중부 방언으로 다시 나뉜다.


서북 방언은 주로 요녕성 동부에 분포되어 있고, 중부 방언은 주로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 흑룡강성 목단강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동북 방언은 연변의 두만강 연안 동부 지역에 분포되어 있고 동남 방언은 주로 흑룡강성 서북 지역과 서남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중부 방언과 서남 방언은 기타 방언과 함께 각 성 일부 지역들에 분산되어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조선어가 현대 한국어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조선어 표현 형태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한국어의 악센트와 표현 어휘를 기존의 중국 조선어와 결합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중국 사회에 속해 있어 중국어의 영향을 받아 중국어의 어순을 따르거나 중국어와 조선어를 섞어 의사를 전달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것도 중국 조선어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 그 중에서도 청년 세대는 경제가 발달되어 있는 연해 도시로 이주하여 소규모로 분산된 새로운 방언 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어 음운론

전체적인 중국 조선어 음운론 연구가 예상보다 충분하지 않은 관계로 연변 자치구와 요녕성의 조선어에 대한 내용만 실었음을 밝힌다.


중국 요녕성은 중국 조선족이 거주하는 산재 지구로써 평안도 방언과 경상도 방언이 주로 사용되며 방언섬들도 존재한다.


요녕성의 심양시, 무순시, 본계시, 단동시, 반금시, 영구시는 주로 평안도 방언이 사용되며, 철령시, 안산시는 주로 경상도 방언이 사용된다.


1. 모음의 변화

(1) 모음 'ㅏ', 'ㅓ'의 앞모음화: 모음 'ㅣ' 역행 동화

요녕의 모든 지역에서 나타남.


가마 > 가매

처녀 > 체네

부스럼 > 부스레미

두드러기 > 두드레기

할머니 > 할매

할아버지 > 할배

엄마 > 엄매


(2) 모음 'ㅣ'가 'ㅟ'로, 'ㅟ'가 'ㅜ'로 바뀌는 현상

평안도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남. 즉, 심양시, 무순시 등 평안도 방언이 사용되는 지역에서 들을 수 있음.

사마괴 > 사마귀 > 사마구

'사마괴'는 '사마귀'로의 변천하는데, 중세의 'ㅟ'는 이중모음으로써 'ㅜㅣ'로 발음되었다. 당시부터 평안도에서는 앞의 'ㅜ'만 발음되었고, 그것이 현대 방언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방긔'가 '방구'로, '글픠'가 '글푸'로, '바퀴'가 '바쿠'로 발음되는 것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3) 단모음의 이중모음화

여기서 단모음의 이중모음화는 단모음 'ㅐ'가 평안도에서 'ㅏㅣ'로 발음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중세에 단모음 'ㅐ'는 이중모음이었는데, 중세 국어의 흔적이 아직까지 평안도 방언과 평안도 방언에서 유래한 조선어 방언에 남아있다고 볼 수 있겠다.

가이는 가히라.png 괴 고양이.png

개 > 가이

고양이 > 괴 > 과이

새 > 사이

넷 > 너이


(4) 모음 'ㅡ'가 'ㅣ'로 바뀌는 현상

경상도 방언에는 모음 'ㅡ'가 자음 'ㅅ, ㅈ, ㅊ'와 결합될 때 모음 'ㅣ'로 변화하는 현상이 발견된다. 이는 중세 국어에 존재하였던 아래아와 관련된 현상이다. 자음 'ㅅ'와 반치음과 결합된 아래아는 모음 'ㅡ'로 변하고, 그 후 다시 'ㅣ'로 바뀌기도 하였는데, 이는 경상도 방언 등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대부분의 방언에서는 'ㅈ', 'ㅊ'과 결합되었던 아래아가 'ㅣ'로 발음된다. (아래아 > ㅡ > ㅣ) 하지만 평안도 방언 등에서는 어음운론적 특성으로 인해 아래아가 'ㅣ'까지로 변천하지 않고, 'ㅡ'로 남아있다고 한다. (황대화, <력사적 모음 <<·>>(아래아)의 변화에 대하여(2)>, <<중국조선어문>> 1999년 제3호, 1999, 11쪽.)


<경상도 방언에서 유래한 조선어 단어의 발음>

습관 > 십관

부스럼 > 부시럼

가슴 > 가심

즐겁다 > 질겁다

<평안도 방언에서 유래한 조선어 단어의 발음>

기침 > 기츰

짐승 > 즘승

점심 > 점슴

심심하다 > 슴슴하다


(5) 반모음 j의 탈락

이중모음 'ㅕ'와 'ㅠ'가 자음 'ㄴ', 'ㅅ', 'ㅎ'와 결합할 때 반모음 [j]가 탈락하는 현상이다. 이는 평안도 방언에서 발견되는 현상이기 때문에 평안도 출신 이주민의 비율이 높은 심양시, 무순시 등에서 발견된다.

숭늉 > 숭눙

흉년 > 훙넌

흉측하다 > 훙축하다

양념 > 양넘

훌륭하다 > 훌룽하다


(6) 이중모음 'ㅢ'의 분화 - 경상도


2. 자음의 변화


(1) 대부분의 요녕 지역에서는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음.

니불

니마

령감 > 넝감

리혼 > 니혼


(2) 구개음화가 적용되지 않는 현상

구개음화란 치음 'ㄷ', 'ㅌ'이 모음 'ㅣ'나 반모음 [j]로 시작하는 모음을 만날 때 구개음 'ㅈ', 'ㅊ'으로 변화하는 현상이다.

평안도에서는 치음이 구개음으로 변화하지 않고 원 상태를 유지한다.

당마 (장마)

지나다 (디나다)

가물티 (가물치)

가티 (같이[가치])

짠디 (짠지)


경상도나 함경도에서는 혀뿌리소리 [ㄱ, ㅋ, ㄲ]가 구개음 [ㅈ, ㅊ]로 변화하는 현상이 특징적이다.

김치 > 짐치

길들이다 > 질들이다

길다 > 질다


(강용택(2019), <료녕지역 조선어의 음운특징에 대하여>, <<중국조선어문>> 2019년 제6호, 30-33쪽.)


다음은 연변 함경도 방언 지역 조선어의 음운 변화 현상이다.

1. 모음의 음운변화


  - 원순모음화: 양순음 /m, p, ph, p’/에 후행하는 모음 /ɨ/가 /u/로 교체됨.
    예시: 기뿌다(기쁘다), 예뿌다(예쁘다), 서글푸다(서글프다), 주룸살(주름살), 무룹(무릎), 고룸(고름), 나뿌다(나쁘다)


  - 비원순모음화: 연변 함경도 지역에서는 전설음에 단모음 원순모음이 없는 경우가 많아 /u/가 /i/로 변하는 현상이 관찰됨.
    예시: 고치(고추), 국시(국수), 디비(두부), 칩다(춥다)


  - 이중모음의 단모음화: /wi/가 /i/로 단모음화됨.
    예시: 방기(방귀), 기저기(기저귀), 바키(바퀴)


  - 움라우트: /i/나 /y/를 동화주로 하여 그 앞에 있는 [+back] 모음인 /ɨ, ə, a, u, o/가 [-back] 모음인 /i, e, ɛ, wi, we/로 발음됨. 이 현상은 동화주와 피동화주 사이에 [-cor] 자질의 자음이 존재해야 이루어지는 일종의 역행 동화이다.
    예시: 놀랜다(놀란다), 매끼다(맡기다), 쌔미(쌈), 메기다(먹이다), 구데기(구더기), 뻬낀다(벗긴다)


  - 모음축약: 형태소와 형태소가 결합할 때 두 모음이 합쳐져 이중모음이나 이중모음의 간음인 단모음으로 변하여 두 음절이 한 음절로 바뀌는 현상.
    예시: 봐라(보아라), 해놔라(해놓아라), 쏴서(쏘아서), 마세라(마셔라), 비베라(비벼라)


  - 고모음화: [-high] 자질을 가진 모음이 [+high] 자질을 가진 모음으로 바뀌는 현상으로, /o/→/u/, /ə/→/ɨ/로 변화함.
    예시: 먹꾸(먹고), 실제루(실제로), 쓰구(쓰고), 모시구(모시고), 다스(다섯), 여스(여섯)


  - 저모음화: 고모음이 중모음이나 저모음으로, 중모음이 저모음으로 변하는 현상. /u/→/o/, /ə/→/a/, /e/→/ɛ/, /i/→/e/로 변함.
    예시: 오좀(오줌), 거마리(거머리), 택(턱), 글페(글피)


2. 자음의 음운변화


  - 경음화: 어두 자음의 경음화 그리고 형태소 간에 두 자음이 연결될 때 무성 자음의 경음화가 있음.
    예시: 꾸기다(구기다), 까꿀루(거꾸로), 끔(금), 싸위(사위), 씨원하다(시원하다), 빼쫍따(비좁다), 쪼꼼(조금)


  - 구개음화: /i/나 /y/에 선행하는 비구개음인 /k, k’, kh, t’, th, h/가 /i/나 /y/의 영향을 받아 구개음으로 변하는 현상. /k/→/tʂ/, /t/→/tʂ/로 변함.
    예시: 지슴매다(김매다), 질다(길다), 시라지(시래기), 집따(깁다), 질(길), 짐치(김치)


  - 자음 탈락: 형태소 내에서 자음이 탈락하는 현상.
    예시: 고애(고양이), 새일(생일), 부에(부엉이), 코이(콩이), 따이(땅이)


  - 중간 자음 유지: 고어형 중간 자음 /-p-/, /-k-/, /-s-/이 유지되는 현상.
    예시: 가분데(가운데), 버버리(벙어리), 새비(새우), 서분하다(서운하다), 맹글다(만들다), 벌거지(벌레), 얼구다(얼리다), 과실(과일), 가새(가위), 지슴(김)


  - 자음 첨가: 형태소 내와 형태소 배합 관계에서 자음이 첨가되는 현상. /-r-/의 첨가가 많이 일어남.
    예시: 길르고(기르고), 흘르다(흐르다), 문질르다(문지르다), 빨르다(빠르다)


위와 같은 음운 변화는 한반도의 함경도 방언과 비슷한 특징을 보이면서도, 함경도 방언에서 분화된 연변의 조선어 자체의 음운적 특징도 가지고 있음.


(강용택(2021), <연변 함경도방언지역의 음운변화에 대하여>, <<중국조선어문>> 2021년 제2호, 7-13쪽.)


조선어 통사론과 어휘

해방 전 중국 조선어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격조사와 보조사

-여격조사 '에게/의게'

우선 근대어 여격조사 '에게'와 '의게'가 공존하였고, '의게'의 변종 '으게'가 1940년대까지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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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격조사 '의'

여격 '에게'의 뜻을 지니기도 하였고(ㄱ), 주술적 결합으로 이루어진 확대 성분에서도 쓰여 주격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였고(ㄴ), 위격 '에'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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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격조사 '와'

여러 단어가 나열될 때 마지막 단어에도 공동격조사를 붙였다. 만주 시인집을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을 찾을 수 있다.


"거기서 새로운 言語를 배웟고 새로운 行動을 배윗고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世界와 새로운 肉體와를 어덧나니"


(2) 용언 어미

현대에서 쓰이지 않는 용언 어미들이 당시에 사용되었다.


조선어.png


또한 현대어에서는 어미 '-던'과 '-든'이 구별되지만 광복 이전 중국 조선어에서는 구별 없이 쓰인 경우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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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소, 최희수, 이은규(1994), <중국 조선족 언어 연구: 제1편 중국 조선어 역사 개황>, <<한국전통문화연구>>, 대구가톨릭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79-186쪽.)



해방 후 중국 조선어 문법과 어휘에서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어미의 쓰임 중 존칭 선어말어미 '-시-'의 사용이 적어졌고 이와 함께 존대 계칭의 어미나 조사들도 적게 쓰이고 있다.

문화 대혁명 이후 청소년들의 구두어에서 쓰이는 종결 어미 '-기시오'는 새로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예: 빨리 가기시오 = 빨리 갑시다, 보기시오 = 봅시다, 주기시오 = 줍시다, 우리도 남기시오 = 남읍시다

위 예문들에서 볼 수 있듯 '-기시오'는 권유의 뜻을 가진다. 이 어미는 대등 계칭의 권유형 종결 어미 '-기오' 사시에 존칭 선어말어미 '-시-'를 끼워 넣은 형태로, 존경해야 할 대상에게 어떤 행동을 권고할 때 쓰인다. 새로운 권유형 어미 '-기시오'의 출현으로 인해 존대 계칭의 권유형 어미 '-ㅂ시다'가 구두어에서 더 적게 쓰인다.

또한 보조적 동사 '에 관하여(관한)', '에 대하여(대한)', '에 의하여(의한)', '에 있어서(있어서의)' 등이 매우 활발히 쓰인다.

예: "전당의 사업의 집중점을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에 옮긴데 관한 보고를 하였다", "그는 혁명에 대하여 동지에 대하여 추호의 미안한 일을 하지 않았다"

해방 후 중국 조선어 어휘 구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대량의 중국어 어휘가 차용되었다. 중국의 한자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자, 중국어 차용어를 제한하고 그릇된 한자어 남용을 극복하기 위해 어휘 사정 위원회가 구성되어 언어 규범화를 강화하고자 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어 차용어는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새로운 한자어의 발생, 한국어 방언 어휘의 사용, 새로운 단어의 발생 등도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김동소, 최희수, 이은규(1994), <중국 조선족 언어 연구: 제1편 중국 조선어 역사 개황>, <<한국전통문화연구>>, 대구가톨릭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5-1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