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순스님(妙洵, 1946生, 비구니)
묘순(妙洵)스님 | |
---|---|
법명 | 묘순(妙洵) |
법호 | 연담(蓮潭) |
속명 | 박성희(朴性姬) |
출생 | 1946.01.01. |
출가 | 1963년 |
입적 | |
사찰 | 삼선포교원(삼선불학승가대학원)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선동3가 255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연담(蓮潭) 묘순(妙洵)스님은 삼선승가대학을 개설해 최초의 통학 강원으로 교육과 포교의 장을 열은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으로 승가교육의 체계화를 선도한 삼선불학승가대학원장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
1946 | 충남 예산 출생 |
1963 | 충남 개심사에서 법준(法俊)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63 | 개심사에서 의산(義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68 | 용인 화운사 강원 졸업 |
1974 |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화운사 대은스님으로부터 전강, 법호 ‘연담’ 하사, 화운사 강사 |
1977 | 수선 안거 이래 3하안거 성만 |
1978 | 삼선승가대학 개설 강주 |
2014 | 삼선승가대학 폐교, 삼선불학승가대학원 개설 |
2022 | 현재 삼선불학승가대학원장 |
문중 | 육화문중(六和) |
생활신조 | 원융화합(圓融和合) 언행일치(言行一致) |
수계제자 | 대원(大源)·동곡(東谷)·진상(眞常) |
활동 및 공헌
출생
연담(蓮潭) 묘순(妙洵)스님은 1946년 1월 1일 충남 예산군 봉산면 마교리에서 아버지 박정화와 어머니 권수례 사이의 1남 3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이며, 이름은 박성희이다.
출가와 공부
1963년 충남 개심사로 출가한 묘순스님은 법준스님을 은사로, 의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한 후 경기도 용인군에 있는 화운사에 방부를 들였다. 화운사승가대에 입학해서 『치문』과 『사집』을 배우면서 조사스님들의 행적과 수행하시는 모습을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만나며 수행자로서 마음과 행동양식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를 알았다.
그 후 사교반에 올라가서 『능엄경』의 구성요인을 알고 감탄을 했으며, 『화엄경』의 ‘일체유심조(一切 唯心造)’의 경구를 보고 기쁨과 환희심으로 심신이 밝아짐을 느꼈다.
금석문의 대가인 서예가 임창순(任昌淳) 선생에게 사사
1968년 화운사 승가대학을 졸업한 스님은 자유롭게 걸망을 지고 선방에 가려고 하다가 우연히 금석문의 대가인 서예가 임창순(任昌淳) 선생을 만남으로써 파고다 공원 옆에 있는 ‘태동고전연구소’에서 『사서삼경』을 배우게 되었다.
임창순(1914~1999) 선생은 금석학의 대가로 전국 각지의 비문 등 금석문을 해석·판독했고, 『한국금석집성』(1984)을 펴낸 분이다. 특히 단양적성비 판독은 학계에 큰 공헌을 한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1971~1988년 문화재위원, 1989년과 1995년에는 문화재위원장을 지냈다.
또한 서예가로서도 명성이 높아 서예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한학자이며 금석학자인 청명(靑溟) 임창순 선생은 한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로서 금석문, 서예, 그림, 서지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연구 활동을 했으며, 사회운동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다. 임창순 선생은 5·16군사정변 이후 대학에서 쫓겨나 재야에서 ‘우리 문화의 뿌리 찾기’를 위하여 1963년 서울 종로구에 ‘태동고전연구소’를 설립해 한학 강좌를 시작했다. 바로 그즈음 묘순스님과 인연이 닿아 그곳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던 것이다.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다
묘순스님은 1974년 충북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하였다. 묘순스님은 평소 중국의 대문호인 임어당(林語堂)의 글을 좋아해서 즐겨 읽었으며, 『승만경』과 『화엄경』을 자주 접하였다. 이렇게 자유롭게 공부하고 있을 때 돌아가신 대은 큰스님께서 강사를 맡으라고 적극 권하셨다. 대은 큰스님은 선과 교를 겸하고, 누구에게나 자비로우며 용심과 하심을 잘 하셨으므로 큰스님을 뵈면서 많은 감화를 받았다.
용인 화운사 강사
큰스님의 적극적인 가르침과 은덕에 힘입어서 중강을 맡고 있던 중에 대은스님께 전강을 받고 1974년 용인 화운사 강사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강사생활을 시작하였다.
학인들과 같이 경전을 공부하다 보니 5년이란 시간도 짧기만 했다. 그러나 건강이 극도로 악화 되어 강의를 그만두고 쉬고 있을 무렵, 어느 날 새마을 교육을 받다가(70년대는 스님들도 새마을 교육을 받았음) 지금의 삼선포교원 원장인 지광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최초의 통학강원으로 교육과 포교의 장을 열다
형편상 강원에 갈 수 없는 학인스님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자는 지광스님의 말을 듣고 뜻을 모아 1978년 삼선승가대학을 개설하고 강주로 취임을 하여 오늘의 비구니 통학 강원인 삼선승가대학(대지 300평, 연건평 407평)을 이룩한 것이다.
통학 강원으로 널리 알려진 삼선승가대학은 1978년 9월 1일 의정부 약수암에서 지광스님과 강사 묘순스님의 원력을 바탕으로 상주 강원에 가지 못하는 스님들의 바람이 한뜻을 이루어 최초의 통학강원인 ‘주림(珠林)강원’으로 개원하였다.
1979년 강원의 자립과 통학의 편리성을 위하여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으로 이전하면서 ‘삼선강원’으로 개명하고, 포교원을 개원하여 도심 교육과 포교의 장을 함께 열게 되었다.
1982년 첫 졸업생 7명을 배출한 이래 총 150여 명이 졸업한 삼선승가대학은 참선수행으로 강원에 갈 시기를 놓친 스님들이나 전통강원에서 이력 과정을 마치지 못한 스님들, 혹은 시대에 부응하여 동국대학교 등 일반대학을 다니는 학인 중에 내전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스님들에게 공부의 기회를 주고 있다.
처음 개원했을 때는 신도나 학인스님에게 합창, 찬불가 등 전통적인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획기적인 방법으로 교육을 실시했다. 현재는 내전과 꽃꽂이, 지공예, 불교와 여성, 수화동아리(강원 연합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음), 컴퓨터 교육 등 시대에 걸맞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94년 개혁종단 출범 이후 승가교육 제도가 차차 틀을 갖추고 종단 교육 방침이 대중생활을 통한 일상습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착되면서 2014년 문을 닫게 됐다. 출가자 감소로 학인 수가 줄어든 것도 이유다.”
2014년 삼선불학승가대학원 개설
폐교의 소식을 들은 졸업 동문들의 요청으로 2014년 삼선불학승가대학원을 개설한 것이다.
현대화와 세속화를 제대로 구분
묘순스님은 ‘부처님의 정법을 바르게 전하며 처음 발심한 마음이 퇴전하지 않고 수행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고 이끌어주는 것이 먼저 배운 사람의 자세’라고 말한다.
요즈음 후학들이 불교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현대화와 세속화를 제대로 구분 못할 뿐만 아니라 승가의 좋은 전통을 외면하고 속인에 가깝게 행동하며, 언행일치가 잘 안 되고 있는 점을 못내 아쉬워하는 것이다. 스님은 또 후학들에게 ‘승려 한 사람 한 사람이 움직이는 포교사이므로 수행자의 근본사상에 입각해서 행동하며 용모와 복장도 단정해야 하고, 우리가 경전을 많이 알고 배운다 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생명력 없는 불교가 되므로 작은 것이라도 행 할 때라야 진정한 수행자가 된다.’고 당부한다.
‘수행자는 한 가지 원을 꼭 세워서 그 길로 열심히 정진한다면 바로 부처님의 제자’라고 힘주어 강조하는 스님은 오늘을 살아가는 올 곧은 수행자의 참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2년 현재 삼선불학승가대학원장으로 있다. 묘순스님의 상좌로 대원(大源)·동곡(東谷)·진상(眞常)스님이 있다.
삼선 포교원
성북구 동소문로26마길 40에 있는 종교시설이자 교육기관이다. 승려 지광이 서울에서 통학하던 학인을 위해 의정부에 있던 강원을 서울 삼선교 사거리로 옮겨 1979년 3월 1일 강원(삼선승가대학)과 함께 삼선포교원을 함께 개원하였다. 1983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고, 매년 1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94년에는 종단개혁 당시 비구니 개혁모임인 ‘정혜도량’이 삼선포교원에서 출범하였다. 삼선승가대학은 여승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였으나 2014년 졸업생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이 과정에서 졸업 동문들이 삼선승가대학의 학맥을 잇고 도심 속 교육도량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힘썼고, 같은 해 3월 조계종교육원으로 인가받아 개방형 전문교육기관인 삼선불학승가대학원으로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 출처: 성북마을 아카이브 https://archive.sb.go.kr/isbcc/home/u/story/view/1929.do;jsessionid=A329AD982C20E949E3554766B688D8B1
서울 성북구에 자리한 삼선포교원 건물은 불교 건축사에서 의미 깊은 건물이다. 탑파 형식으로 지어진 최초의 도심포교당으로 기록되어 있는 외관 외에 내부의 기도와 수행 공간, 정원 등지에도 불자들의 눈길을 끄는 현대미술 작품이 다수 장엄돼 있다.
이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 故 김인태 선생이 제작한 2편의 관세음보살 浮彫이다. 김인태 선생은 이름없는 명인이었다. 박물관에서 진품의 보호를 위해 복제품을 제작할 일이 있으면 그가 곧 출동하여 모양과 색은 물론 유물에 담긴 실선 하나 하나까지 옛 장인의 숨결을 담아 재현해냈다. 삼선포교원 지광 스님은 포교원 건물의 설계를 신영훈 문화재 전문의원에게 의뢰하며 법당의 아미타본존불을 외호할 탱화의 제작을 의뢰 했다. 이에 신 위원은 내용으로나 외형으로나 혁신적인 불사를 펼칠 도심포교당의 법당에 걸맞게 전통적인 탱화보다 현대성과 실험성이 강한 새 조형물의 제작을 권유했다.
그렇게 해서 화려한 아름다운 보다는 시공을 초월한 정서과 비장미가 깃든, 3백여분의 관세음 보살이 거닐고 있는 관세음보살 부조가 탄생하게 됐다. 탑으로 표현된 부처님 주위를 갖가지 포즈와 표정을 지닌 수백분의 관세음 보살님이 외호하는 모습은 대형 탑파 형식으로 세워진 삼선포교원의 이미지와도 중첩돼 삼선포교원 불자들에게 늘 자부심을 심어주고 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178-181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137
- 현대불교, 20세기에 탄생한 분황사탑형 법당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8596 (2014.2.16.)
- 법보신문, 삼선불학승가대학원 비구니 10명에 첫 장학’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6440 (2015.04)
- 법보신문, ‘삼선불학승가대학원장 묘순 스님’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1026 (2016.02 )
- 법보신문, 삼선불학승가대학원장 묘순 스님 출가 60년 발자취 ‘사진집’ 발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13406 (2020.12)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
묘순(妙洵)스님 | 본항목 | 묘순스님(妙洵, 1946~) | 妙洵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묘순스님(妙洵,_1946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
묘순(妙洵)스님 | 육화문중(六和) | ~의 일원이다 | |
묘순(妙洵)스님 | 법준(法俊)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 | |
묘순(妙洵)스님 | 서산 개심사 | ~에서 출가하다 | |
묘순(妙洵)스님 | 의산(義山)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
묘순(妙洵)스님 | 석암(昔岩)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비구니계 |
묘순(妙洵)스님 | 명사(明師)품계 | ~의 스님이다 | 20211021 품서 |
묘순(妙洵)스님 | 서울 삼선포교원(동선동3가) | ~을(를) 설립(건립)하다 | 삼선승가대학 |
묘순(妙洵)스님 | 안거 | ~을(를) 성만하다 | 수선 안거 |
지도
- 삼선포교원(삼선불학승가대학) :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선동3가 255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