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찬스님(妙璨, 1926生, 비구니)
묘찬(妙璨)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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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묘찬(妙璨) |
법호 | |
속명 | 배복순 |
출생 | 1926.09.17. |
출가 | 1949년 |
입적 | 1989.03.05. (세수64세, 법랍41세) |
사찰 | 해인사 국일암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46(치인리 10)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묘찬스님은 『묘법연화경』을 번역하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일평생 진정한 법화행자의 삶을 살았던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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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 | 경남 김해 출생(1926.9.17.) |
1949 | 해인사 국일암에서 장일(長一) 스님을 은사로 출가 |
청담(靑潭)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
인곡(麟谷) 창수(昌洙)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
1954 | 한국 불교 승단 정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
제2회 임시 종회시 종회의원 | |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수료 | |
1989 | 해인사 국일암에서 입적(1989.3.5., 세수 64세, 법랍 41세) |
문중 | 청해(靑海)문중 |
수행지침 | 『법화경』 광선유포 저서 및 작품 : 『나무묘법연화경』 번역 |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 도의(道義)·법장(法杖)·영인(瑩印)·원정(圓靜) |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 정은(正恩, 5)→재희(在喜, 6)→오전(伍田, 7)→장일(長一, 8)→묘찬(妙璨, 9)→도의(道義, 10), 법장(法杖, 10), 영인(瑩印, 10), 원정(圓靜, 10) |
활동 및 공헌
출가
묘찬스님은 1926년 음력 9월 17일 경상남도 김해시 내동 소바우골에서 아버지 배월난과 어머니 김수찬 사이의 2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홍주이며, 이름은 배복순이다.
스님은 부처님의 일대기를 요약한 팔상록을 읽고 발심하여 16세 때 마산 관음사에서 출가하였다. 그러나 가족들의 반대로 세 번씩이나 속가로 내려가야 했고, 잠시 유치원 보모로 일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24세에 하나뿐인 여동생과 함께 해인사 국일암으로 입산하여 장일스님을 은사로, 청담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받았다.
『묘법연화경』과의 인연
묘찬스님은 청담스님의 소개로 성철스님을 만나 뵌 후 큰스님을 법사로 하여 참선지도를 받았다. 1954년 한국불교 승단정화운동에도 적극 동참하였던 묘찬스님은 참선화두에 대해 크게 의문을 일으켰고,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고자 천일기도를 하여 『묘법연화경』을 만났다.
『묘법연화경』을 만난 뒤 스님은 홀로 온갖 마장과 마사를 받으며 경을 수지 독송하였다. 처음에는 조사선인 화두가 늘 마음에 현전되어서 하루에 경을 한 장도 읽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점차 정진하여 『묘법연화경』 전 28품(전부질)을 하루에 50차례 독송하게 되었다. 스님은 묘법연화경을 평생 사만 번에서 오만 번 가량 독송하였는데, 그런 가운데 세 번의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묘찬스님은 1964년 세계평화를 위하여 안진호 스님판 묘법연화경 천 권을 출판하여 법보시를 하였다. 그러자 번역에 잘못된 곳이 있으니 다시 번역을 해달라는 편지가 여러 곳에서 날아들었다. 스님은 그 요청에 답하기로 결심하고 번역할 사람을 찾기 위해 49일 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기도 회향날, 기도에 동참하였던 한 스님이 '묘찬스님이 번역을 하라.'는 현몽을 받았다며 찾아왔다. 이렇게 하여 묘찬스님이 직접 『묘법연화경』을 번역하기 시작한 것이다.
『묘법연화경』 번역
이후에도 『묘법연화경』을 번역하라는 부처님의 현몽과 경계는 계속 되었다. 7년 후 여름, 마침내 『묘법연화경』 첫판이 세상에 선보였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첫 열매였다. 이 경은 이후 수억이 넘는 법공양을 통해 여섯 판까지 발행하였고, 이를 계기로 국내에 서서히 『묘법연화경』이 유포되기 시작하였다.
묘찬스님은 『묘법연화경』 이외의 다른 경전도 조금씩 번역을 하였다. 그런데 점차 몸이 아프기 시작 하더니 급기야 죽음을 준비할 정도로 병이 악화되었다. 스님은 『묘법연화경』에 대한 믿음으로 『묘법연화경』을 모시는 곳에서 입적하려고 전라도 장성에 계신 묘련스님(맨발스님)의 법화회상으로 거처를 옮겼다. 극심한 고통을 견뎌가며 도착해보니 묘련스님은 마침 출타 중이셨다. 묘찬스님은 누워 신음하며 병고에 시달렸는데, 일주일 후 묘련스님이 묘각스님과 함께 돌아오셨다.
묘련스님은 아픈 묘찬스님을 보고 진심어린 위로를 하는 한편 지난번에 번역한 응석사판 『묘법연화경』이 대체로 잘 되었지만 몇 군데 고쳐야 할 부분이 있고 또 게송 부분에 이상한 점이 있다며 재번역을 부탁하셨다. 그제서야 묘찬스님은 아픈 몸을 이끌고 맨발스님 회상까지 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새롭게 번역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시작할 결심을 하자 신기하게도 몸이 점점 회복되었다. 스님은 51세 되던 해에 진주에서 『묘법연화경』 재번역에 착수하였다.
스님은 오직 부처님의 뜻을 받들고 좇으며 한 치의 어긋남도 없게 하기 위해 첫 번역판이나 국내외 다른 번역판은 전혀 참고하지 않고, 오직 구마라습이 번역한 『묘법연화경』 원본만 참고하였다.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한 번역작업은 13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한문을 한글로 옮기는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스님은 글자 하나, 문장 하나마다 사리에 밝은 지혜인 관(觀)을 통하여 실상에 비쳐지는 것을 살피고 모든 것이 진실로 부처님의 뜻에 맞도록 표현해냈다. 부처님 뜻에 가장 근접한 번역을 하기 위해 모든 정성과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스님의 상좌스님과 신도들은 『묘법연화경』 번역과 널리 알리기 위해 자신들의 손가락과 발가락 20여 가락을 연비하였다. 묘찬스님은 『지장경』과 『장수멸죄경』 등도 번역하여 출판하였다.
오직 한 길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받들고 일체 중생을 위하여 『묘법연화경』 널리 알리는 일에 뜻을 두었던 묘찬스님은 부처님의 사도로서 완벽한 『묘법연화경』 번역과 유포에 평생을 바쳤다.
남북무혈 평화통일(南北無血 平和統一)
세계평화 불국토화(世界平和 佛國土化)
묘법화경 광선유포(妙法華經 廣宣流布)
일체중생 즉신성불(一切衆生 卽身成佛)
- 간행물 : 묘법연화경(각권 대·중·소, 삼보각), 묘법연화경 세트 (3권, 위음왕), 성불로 가는 법화경 (중명), 묘법연화경 (2권, 위음왕), 나무(남무묘법연화경 (보림사)
입적
스님은 일생의 간절한 소원을 마음에 품고 1989년 음력 3월 5일 세수 64세, 법랍 41세로 해인사 국일암에서 입적하였다.
수계제자
묘찬스님의 수계제자로는 도의(道義)·법장(法杖)·영인(瑩印)·원정(圓靜)스님 등이 있다.
참고문헌 등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67~70.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144.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p. 333, 335.
- 석묘찬 대법사님의 묘법연화경 번역불사에 관한 이야기(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oomuaoo/222785427267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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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찬(妙璨)스님 | 본항목 | 묘찬스님(妙璨, 1926~1989) | 妙璨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묘찬스님(妙璨,_1926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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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찬스님(妙璨) | 청해문중(靑海) | ~의 일원이다 | |
묘찬스님(妙璨) | 장일스님(長一) | ~의 수계제자이다 | |
묘찬스님(妙璨) | 해인사 국일암 | ~에서 출가하다 | |
묘찬스님(妙璨) | 청담스님(靑潭)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
묘찬스님(妙璨) | 인곡스님(仁谷)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비구니계 |
묘찬스님(妙璨) | 묘법연화경 | ~을(를) 추진하다 | 번역, 출판, 보급 |
묘찬스님(妙璨) | 나무묘법연화경 | ~을(를) 추진하다 | 번역, 출판, 보급 |
지도
- 해인사 국일암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46(치인리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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