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광우스님(光雨, 1926生, 비구니)

bigun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정의

광우(光雨)스님은 비구니 교육과 비구니 역량 결집, 불교계 여성의 대사회적 실천에 앞장선 대한민국의 비구니로 전국비구니회 전신인 '우담바라회' 창립, 서울시립 목동청소년 회관 관장, 조계종 종책자문 위원, 전국비구니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대한민국 최초 비구니명사로 품서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26 경북 선산 출생
1938 경북 직지사에서 정성문스님을 은사로 득도
청담(靑潭)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42 서산 도계에 문수사 창건
1944 경북 상주 남장사 관음강원 대교과[1] 졸업
1956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1958~2009 서울 성북구 삼선동 정각사 창건, 정각사 초대주지
1960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계
1965 전국비구니회 전신 우담바라회 창립
1968 불교 청소년 교화연합회 심사분과 위원장
1969 2월 월간 신행회보 창간 발행
1973 청소년교화연합회 공로상 수상
1976 장학회 기금 마련(보덕, 노주, 상락장학금) 년 20여명 지급
1981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1982 "뇌허학술상" 제정 제9회 수상자 배출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위원 (10여년간 역임)
1986 범민족 올림픽추진 중앙협의회 대의원
1989 서울시립 목동청소년 회관 관장
1990 세계불교도우의회 자문위원
1992 청소년지도육성유공자 대통령 표창장 수상
1995-2003 전국 비구니회 회장
1997년 기초교육개혁 추진 위원회 자문위원
동국대학교발전기금동참 감사장외 다수
1998 스리랑카 사르보다야 SASANA KEERTHI SRI 명예상
인도 보드가야에서 열린 국제삼단대계 계단의 교수아사리에 추대
1999 조계종 종책자문 위원
2000 동국대학교 총 동창회 이사
불교 방송국 이사
생명공양실천본부 이사
2007 대한불교조계종 종단 사상 최초로 비구니 최고 법계인 명사(明師, 비구의 대종사에 해당)에 추대
2019.7.18 정각사에서 입적
문중 계민문중(戒珉)
수행지침 사사무애요익중생(事事無碍饒益衆生)
평등성중무피차(平等性中無彼此)
대원경상절친소(大圓鏡上切親疏)
생활신조 조고각하(照顧脚下)
저서및작품 『법화경완역』(1985), 『회향』
『공덕을 꽃 피우다』
『광우 스님과의 대담 부처님 법대로 살아라』,
『묘법연화경 한글독송본』외다수
상훈 청소년지도육성공로 대통령표창외 다수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정업(正業)·정유(입적)·정현(正現)·정목(正牧)·정주·정묘·정도 ·정수·정범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봉전(奉典, 8)→장홍(壯弘, 9)→보찬(普讚, 10)→성문(性文, 11)광우(光雨, 12)→정업(正業, 13), 정유(正惟, 13), 정현(正賢, 13), 정목(正牧, 13), 정주(頂珠, 13), 정묘(正妙, 13), 정도(正道, 13), 정수(正受, 13), 정등(正燈, 13), 정범(正梵, 13)

활동 및 공헌

출생

광우스님은 1926년 경북 선산 군위에서 부친 이혜봉 스님과 모 김화순 보살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며 이름은 이광우이다.

광우스님은 모녀가 같이 입산을 하였기 때문에 서로 대할 때 어려움이 많았다. 스님의 아버님은혜봉선사로 당시 관음선원 조실로 계셨다.

조실스님은 하나 뿐인 딸을 스님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쓰셨다. 그래서 속명도 광우라 지었고, 출가 후에도 그대로 광우를 법명으로 하였다. 그러면서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남장사로 데려갔다.

광우스님 출가 사찰 남장사

남장사는 상주 최대의 고찰이며 영남의 명승지로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남장사는 725m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노악산의 품에 들어 앉아 있다.

노악산과 남장사를 향해 출발하면 남장사에 미쳐 다다르기 전 길옆에 석장승이 보인다. 얼핏 보아도 이 석장승은 민간신앙의 하나인 남근석을 연상시킨다. 높이는 189cm이며 이중 머리가 조각된 부분이 76cm나 되어 얼굴이 엄청나게 거대하다. 석장승을 지나 들어가노라면 남장사 일주문이 나타난다. 이 일주문의 기둥은 천년된 칡뿌리라고도 하고 싸리나무라고도 한다.

832년(흥덕왕7)에 진감선사 혜소스님이 창건하여 장백사라 하였으며, 1186년(명종16)에 각원스님이 현재의 터에 옮겨짓고 남장사라 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5년(인조13)에 명해스님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 보광전, 영산전과 향로전이 있으며, 부속암자로는 관음전과 중고암이 있다.

남장사는 조계종 산하의 사찰로 상주 사장사(四長寺)의 하나이며, 한국 최초의 범패 보급지이고, 청동비로자나불상(보물 제990호)과 목각 불탱(보물 제922호) 등의 불교 예술의 걸작품 등을 보존하고 있어, 불교 예술의 보고라 일컬을 만하다.

고려 명종 16년(1186년)에 남장사로 개칭하였고, 경내에는 1797년(정조 21년)에 창건된 관음선원이 있는데, 한국 최고의 목각 후불탱(보물 제 923호)을 보존하고 있다.

스님의 어린 시절 아버지 혜봉스님의 영향

스님은 어릴 적부터 혼자 자랐기 때문인지 유난히 장난 끼가 많았다. 어느 날 참선하는 스님들 가운데 조는 스님이 있어 장난 끼가 많았던 스님은 그 스님의 턱 밑에 손가락을 세우면서 큰스님을 보다가 큰스님의 엄하신 눈빛에 겁이 나서 물러났다. 그것을 본 혜봉 스님께서는 몹시 노하셔서 스님을 불러 야단치시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기가 죽기는 커녕, 호기심 많은 아이의 눈에 아무것도 안 하고 죽은 듯이 앉아만 있는 참선 스님들이 못내 궁금하여 질문을 하였다.

 광우스님-“스님들은 왜 그렇게 돌아 앉아 있어요?”
            이에 큰스님께서 광우스님에게 말씀하셨다.
 큰 스님- (문득 언성을 조금 높여)
        “광우야?
 광우스님- “네”
 큰 스님-“대답하는 그놈이 무엇이냐?”
           대답하는 그놈이 무엇인고? 찾는 순간
 큰 스님-“모르겠느냐?”
 광우스님-“모르겠습니다.”
 큰 스님-“스님들은 바로 그것을 찾고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중생을 대기설법으로 이끌어 주셨듯이 큰 스님도 어린 딸에게 쉬우면서 적당한 화두를 주었다. 이러한 물음을 받고부터 광우스님은 가지고 갔던 교과서 공부도 시들해지고 스님들처럼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대답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하여 하루는 큰 방에 들어가기를 청하여 맨 끝자리에 앉았다. 그리곤‘도대체 대답하는 이 것이 무엇일까?’하는 의문 속에 있다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이렇게 선교를 겸하신 혜봉 선사께 참선의 요지에 대한 말씀을 듣고는 환희심 일어나 발심하여 출가를 하게 되셨다.

출가와 수학

1938년 스님이 15세 되던 해 직지사에서 성문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고, 상주 남장사 관음강원에서 비구니 수옥(守玉)스님께 사사하여 대교과를 마치고 혜봉 선사 밑에서 다년간 『법화경』『선문염송』을 배우다가 포교와 교육에 뜻을 품고 동국대 불교학과로 진학하여 최초의 비구니 학사가 되니, 한국 최초의 비구니 철학사가 탄생된 것이다.

금룡스님에게 전강 받음

스님이 수행 교화를 시작한지 20여 년을 바라볼 즈음, 부산 소림사에서 10년간『법화경』산림 중 구하스님께 최초로 입실된 소림사 회주이신 금룡(金龍)스님께서 비구니도 법맥이 있어야 한다 하며 광우스님을 법상좌로 맞아 비구니의 법맥을 잇도록 하였다.

이때 내려 주신 법호가‘태허(太虛)’이며 금룡스님께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걸림이 없는 허공으로 원융무애한 근본자리에서 법맥을 이으라."는 말씀을 받았다.

선산 도계에 문수사를 창건

1942년에는 선산 도계에 문수사를 창건하였으며 스님께서 주석하는 7년 동안에 유생촌의 선비들을 모두 불교에 귀의하게 하였다. 스님이 포교에 뜻을 두게 된 이유는 6·25전쟁 때 피난길에 스쳐 지나간 각양각색의 계층 사람들을 접하면서 이 세대와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불교 포교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기 때문이었다.

성북구 삼성동 정각사 창건

스님이 동국대에 재학 중이던 시절 기독교는 개방이 되어 누구나 쉽게 교회에 가서 교리를 들을 수 있는 데 반해, 불교는 법회를 여는 절이 극히 드물어 쉽게 그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스님은 포교에 대한 뜻을 굳히게 되었던 것이다.

1958년‘누구라도 믿을 수 있는 불교, 누구라도 행할 수 있는 불교, 누구라도 전할 수 있는 불교’라는 기치 아래 대학 졸업 후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지금의 정각사를 창건했으며 곧바로 일요법회와 어린이법회·학생법회·청년법회(일반법회)를 개설하였다.

그 후 정각사는 상좌 정목 스님이 2009년 제2대 주지로 취임하여 광우스님이 40년간 구매해 둔 주변 가옥의 담을 허물고 리모델링하여 하는 등 사찰 면모를 일신하였다. 정목 스님은 도량 전체를 재정비·중창하여 2023년 현재 600평 규모의 가람으로 일구어 놓았다.

사찰 포교지인 <신행불교>를 창간

스님의 이런 선각자 정신은 1961년 최초의 사찰 포교지인 <신행불교>를 창간하기 이른다. <신행불교>는 처음에는 월간으로 발행되었는데 불교 잡지와 신문 등 문서포교지가 많이 등장한 90년대 중반부터 계간지로 발간되고 있다.

이 밖에도 장학회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사찰 인근지역(성북구)독거 노인에 대한 관심과 후원도 잊지 않고 있다.

여러 소임을 맡다

또한 스님은 운문사 강원 학장과 1989년부터 1995년까지 7년 동안 서울 시립 목동청소년회관 관장을 역임하였고, 전국 비구니회의 최초 조직인 <우담바라회>창립에 산파역을 수행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생 동안 포교에 전념하셨다.

전국비구니회관을 건립

또한 여성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인 만큼 여성들을 제도하는데 좋은 여건을 가진 비구니스님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비구니회관 건립에 진력을 다하여 2003년 8월 19일 전국비구니회관을 건립 개관하여 7천여 비구니 스님들의 숙원사업이 마침내 빛을 보게 되었다.

1995년 전국비구니회 회장

1995년 전국비구니회 회장에 취임한 이래 어려운 불사를 진두지휘한 광우스님은 이 자리에서“숙원불사였던 비구니회관 회향의 자리가 마련되니 만감이 교차하고 감개가 무량하다. 앞으로 복지사회 구현을 위해 비구니회관이 어린이, 청소년, 여성교화는 물론 수행, 교육, 포교, 복지가 함께 이뤄지는 실천도량으로 거듭날 것을 서원한다.”고 소감을 피력하였다.

전국비구니회관은 1985년 건립추진을 결의한 이래 지난 1998년 기공식을 가졌으며, 99년 착공해 3년만인 2002년 완공했다. 대지 1천2백40평, 건평 2천5백60평에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로 대법당(만불전)과 교육관, 대강당, 강의실, 불교문화실, 도서관 등을 갖추고 있는 전국 비구니회관은 이후 비구니 스님과 여성 불자들에 대한 교육, 포교, 복지사업은 물론 청소년, 장애인, 지역민 등을 위한 사회복지 및 문화사업을 펴칠 요람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정각사 장학회

이 밖에도 광우스님은 1975년 정각사 장학회를 마련하여 매년 18명의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고, 또한 청소년 교화연합회 심사분과위원장으로 재직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청소년지도 육성공로로 1992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으며, 불교진흥과 불교학술의 발전을 위해‘뇌허 학술상’을 제정, 지금까지 15명의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수상

한편‘생명나눔실천’의 이사 등 교내에 두루 공헌해 온 지대한 공로가 인정되어 1998년 스리랑카 사르보다야가 제정한 외국 성직자 5명에게 헌정하는 공로상‘싸싸나 키르띠스리’명예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스님의 은사 성문스님께서 불명(佛名)에 기인한 가르침은“광은 지혜이고, 우는 비이며 중생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이다. 또 비는 모두에게 골고루 베푼다는 의미도 품고 있다. 대지가 정말 가물고 목마를 때 내리는 비는 단비이다. 중생이 삶의 지혜를 갈망할 때 해갈시켜 줄 수 있는 비를 뿌리는 빛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이로운 비유 속에 깊은 뜻을 담은 가르침은 스님의 78년여의 생에 언제나 사명감으로 마음속에 부딪치고 있다.

저서

스님의 저서로는『신행법요집』편역, 『묘법화경완역』(1985), 『회향』,[http://www.yes24.com/Product/Goods/41123032 『공덕을 꽃 피우다』, 『광우 스님과의 대담 부처님 법대로 살아라』,『묘법화경완역 한글독송본』등이 있다.

입적

광우스님은 2019년 7월 18일 입적(법랍 80세, 세수 95세)하였으며, 수계제자로는 정업(正業)·정유·정현(正現)·정목(正牧)·정묘·정도스님 등이 10여명이있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광우(光雨)스님 본항목 광우(光雨, 1926~2019) 光雨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광우스님(光雨,_1926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광우스님(光雨) 계민문중(戒珉) ~의 일원이다
광우스님(光雨) 성문스님(性文) ~의 수계제자이다
광우스님(光雨) 김천 직지사 ~에서 출가하다
광우스님(光雨) 청담스님(靑潭)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광우스님(光雨) 자운스님(慈雲)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광우스님(光雨) 남장사 관음강원 ~에서 수학하다 대교과
광우스님(光雨) 명사법계(明師法階) ~을(를) 품수하다
광우스님(光雨) 서울 정각사 ~에서 주석하다
광우스님(光雨) 서울 정각사 ~을(를) 창건하다
광우스님(光雨) 계단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구족계단 비구니 증사(별소계단 존증아사리, 전계사)
광우스님(光雨) 서울 정각사 ~에서 입적하다

지도

  • 정각사 :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1가 277-8



다른 비구니 스님

지식관계망




주석

  1. 강원에서 〈화엄경〉과 선에 대한 주요문헌을 공부하는 단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