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묵스님(炫默, 1932生, 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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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묵(炫默)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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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현묵(炫默) |
법호 | |
속명 | 박민옥(朴民玉) |
출생 | 1932.03.15. |
출가 | 1951년 |
입적 | |
사찰 | 석남사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1064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현묵(炫默)스님은 참선수행정진에 진력하신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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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 | 강원 춘천 출생 |
1947 | 춘성군 광판국민학교[1] 졸업 |
1951 | 창원 성주사에서 인성(仁成)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52 | 창원 성주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57~2000 | 문경 대승사 윤필암, 문경 김룡사, 양산 내원사, 대구 동화사 양진암, 대구 동화사 부도암, 대구 동화사 내원암, 석남사 등 안거 성만, 석남사 유나[2] 역임 |
1961 |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2004 | 울주 석남사 주석(선덕) |
문중 | 법기(法起)문중 |
수계제자 | 영운(靈雲)·영호(永晧)·대정·일도(一道)·정원(正圓)·일중(一中)·일극·일산(一山)·석우(石牛)·선선·진공·공해(空海)·천망·천림 |
활동 및 공헌
출가
출가하여 승이 됨이 어찌 작은 일이라?
안일을 구함도 아니며
배부르고 따뜻함을 구함도 아니며
명리를 구함도 아님이라.
오직 번뇌를 끊기 위함이며
생사를 벗어나기 위함이며,
부처님 지혜의 명을 잇기 위함이며
삼계를 벗어나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라.
현묵(炫默)스님은 1932년 3월 15일 강원도 춘천시 운교동에서 아버지 박상대와 어머니 충주 지씨 지정숙 사이의 2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이고, 이름은 박민옥이다. 1947년 강원도 춘성군 광판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출가 전까지는 거의 강원도에서 살았다. 1950년 19세에 출가를 결심했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여 그 다음해 가을 창원 성주사로 출가 했다. 은사스님은 강원도 오대산에서 피난을 오신 인성스님이다. 1952년 봄 창원 성주사에서 사미니계, 그해 가을에 보살계를 수지했고, 1961년 3월 29일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당시 창원 성주사 상황
창원 성주사는 대처승이 주지로 있었으나 이름뿐이었고 실제로는 비구니스님들이 절을 관리하며 살았다. 당시 창호, 성연, 인성, 인홍스님, 성우, 법연, 묘정(무착), 묘영, 묘찬, 장호, 현각, 도용, 묘경, 희견, 묘엄스님 등 약 20여 분의 스님들이 함께 수행 정진하고 있었다.
스님들의 수행지도는 당시 안정사 토굴에서 정진하고 계시던 해인사 성철 큰스님께서 해주셨다.
성철스님에게 가르침을 받다
현묵스님은 출가해서 초발심자경문을 배우면서, ‘세상에 이런 기막힌 도리가 있다니! 하시곤 곧바로 화두를 타야겠다고 몸살을 앓으셨다’니, 스님은 분명 전생에 참선수행자였음이 틀림없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평생 초발심자경문을 지고 다닐 거예요. 잠재해 있던 내 불연을 틔워주었으니까요. 초발심자경문을 공부하면서 세상사 모든 것이 내 맘에서 사라졌어요. 오직 ‘화두’하나만 생각났죠.”
현묵스님을 포함해서 세 비구니 스님은 어른스님이 출타한 틈을 타서 허락도 없이 안정사에 계신 성철큰스님을 찾아갔다. 마산에서 출발해 고성까지 일부러 차를 타지 않고 태산같이 느껴졌던 산을 넘어 걸어온 세 어린 수행자에게 성철스님이 물었다. “발도 못 붙이는 기암절벽에 복숭아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내가 너희들에게 그 나무에서 복숭아를 따오라고 하면 따오겠나?” 그러자 세 어린 비구니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 따오겠습니다.”
그러자 큰스님께서 마산 성주사로 돌아가서 절 삼만 배를 하고 오라고 시켰다. 성주사로 돌아간 세 스님은 너무 화두를 받고 싶은 마음이 북받쳐 열흘도 너무 길게 느껴져 일주일 만에 마치고 안정사로 달려갔다. “산을 넘고 걷고 또 걸으면서 화두타러 가던 생각.. 돌아와서 절하던 때의 심정.. 삼만배하고 화두타러 가던 생각.. 또 큰스님에게 화두 받던 그때 그 마음이 꾸준했으면 3년 안 가서 결단났을 겁니다.”
현묵스님은 그 때의 각오를 이렇게 말했다.
[출처] 금강(金剛) 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 (다음카페, https://cafe.daum.net/vajra/Ne7H/328?q=%EC%84%9D%EB%82%A8%EC%82%AC%20%ED%98%84%EB%AC%B5%EC%8A%A4%EB%8B%98 )
당시의 법복
그때는 지금처럼 통일된 법복法服이 없었다. 자운慈雲 율사스님께서 현재의 장삼을 보조국사 장삼이라 하며 입기를 권하였는데, 성철 큰스님께 지도 받는 스님들만 입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화 후에 전국적으로 퍼져서 현재 가사와 더불어 한국 불교 교단의 법복으로 사용되 고 있다. 지금은 생활복이 아니고 예불이나 공양할 때 입는 옷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참선할 때나 공양시간 심지어는 마당에서 비질할 때에도 장삼을 입고 생활하였다.
성주사 청규(淸規)
성주사의 비구니스님들은 성철 큰스님이 일러주신 12가지 청규를 지침으로 삼아 수행했다.
1. 목부주잠상지의(目不注簪裳之儀) 눈으로 여인들의 치장한 모습을 보지 않는다.
2. 이부경진속지담(耳不傾塵俗之談) 귀로 불필요한 세상사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3. 수부제전폐지보(手不提錢幣之寶) 손으로 견물생심 금은빛 돈 등을 잡지 않는다.
4. 기부접견백지루(肌不接絹帛之縷) 몸에다 명주비단 화려한 옷감을 대지 않는다.
5. 신부근단가지시(身不近檀家之施) 스스로 신도들의 청정한 시주를 받지 않는다.
6. 영부과니사지원(影不過尼寺之垣) 자신의 발걸음을 비구니 사찰에 스쳐가지 않는다.
7. 비불후신훈지채(鼻不齅辛葷之采) 코로 맵고 독한 오신채 냄새를 맡지 않는다.
8. 치부설생령지육(齒不齧生靈之內) 입으로 형제자매 중생의 살점을 씹지 않는다.
9. 심부계시비지단(心不繫是非之端) 마음에 오매불망 중생의 시비를 두지 않는다.
10. 의부전역순지기(意不轉逆順之機) 자신의 세운 뜻이 역순의 경계에 동요하지 않는다.
11. 예부간동녀지족(禮不揀童女之足) 예로써 남녀의 차별을 간택하지 않는다.
12. 설부롱타인지구(話不弄他人之咎) 혀로써 장난삼아 타인의 허물을 희롱하지 않는다.
여러 곳에서 참선 정진
현묵스님은 성주사에서 성철 큰스님으로부터 화두를 타고 곧바로 참선 공부를 시작하여 2년 동안 수행을 한 뒤 은사스님이 계신 오대산 지장암으로 갔다. 이때 인홍, 성진, 도용스님과 토굴에서 1년간 정진하고 1954년에 태백산 홍제사로 가서 공부를 했다.
당시 홍제사는 인홍스님이 입승 소임을 맡으면서 비구니 선원으로 사용되었다. 홍제사에서 성우, 묘경, 도용, 법희, 철마스님과 함께 정진했는데 스님은 이때 말 그대로 피나는 공부를 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에 열중하며 수행하고 있을 때 1차 정화가 일어나 동화사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 후 스님은 동화사의 양진암, 부도암, 내원암, 석남사 등으로 선방을 옮겨 다니며 약 10여 년간 운수납자[3] 생활을 했다.
정화 후에는 경북 문경군 윤필암에서 성타, 현오, 도용, 혜근, 대각스님 등과 함께 죽비를 돌려 가면서 약 2년 동안 공부를 했다. 이후에는 김룡사에서 공부를 했는데, 당시는 스님들이 탁발 해온 쌀로 공양을 했고, 쌀이 떨어지면 또 탁발을 하러 나가 얼마간의 양식을 마련한 뒤에 이어서 공부를 하곤 했다.
윤필암에 모인 스님들이 열성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큰절 김룡사의 총무스님(대처승)이 식량을 대주어 그제야 양식 걱정 없이 공부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그 후 현묵스님은 양산 내원사 등을 거쳐 1971년부터 지금까지 석남사에 주석하고 있다. 30대 초반부터 약 30여 년간 각 선원의 입승 소임[4] 을 보았던 스님은 현재 후배들에게 죽비[5]를 물려주고 유나 소임을 보면서 철 나러 오는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현묵스님은 개인 신도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예전부터 신도회 법회가 있는 날이면 앞문을 닫고 댓돌의 신발을 치우고 뒷문을 통해 선방으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세속의 반연을 피하고 오직 공부에만 전념하고자 하는 스님의 생활 철학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이든지 처음이 중요
현묵스님은 석남사의 입승 소임을 맡고 처음 몇 년 동안은 초학자들에게 모든 것을 일일이 지도하고 가르쳐 놓으면 2~3회 안거를 난 뒤 양산의 내원사로 가서 공부하는 것이 못내 부러웠다.
스님은 어느 날 인홍스님께 석남사도 초납자들은 그만 받고 고참들만 받아서 공부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여쭈었다. 그때 인홍스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처음이 중요하다. 초발심으로 부처가 되는 법인데, 부처 되는 공부의 시작을 여기서 익혀 가면 그들의 평생 가는 중노릇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무슨 소리냐!” 하고 나무라셨다. 스님은 인홍스님의 말씀을 듣고 석남사에 오는 초심자들에게 더욱 정성을 다해 지도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영운(靈雲)·영호(永晧)·대정·일도(一道)·정원(正圓)·일중(一中)·일극·일산(一山)·석우(石牛)·선선·진공·공해(空海)·천망·천림스님 등이 있다.
석남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824년(헌덕왕 16) 우리 나라에 최초로 선(禪)을 도입한 도의(道義)가 호국기도도량으로 창건한 선찰(禪刹)이다.
창건 당시 화관보탑(華觀寶塔)의 빼어남과 각로자탑(覺路慈塔)의 아름다움이 영남 제일이라고 하여 석남사(碩南寺)라 하였다고 하며, 일설에는 가지산의 별명이 석안산(碩眼山)이기 때문에 석안사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뒤 1674년(현종 15)에 언양현감 강옹(姜甕)의 시주로 탁령(卓靈)·자운(慈雲)·의철(義哲)·태주(泰珠)가 중창하였고, 진혜(振慧)·쌍원(雙遠)·익의(益儀)·성진(性眞)이 단청을 하였으며, 동시에 종과 북 등의 불구(佛具)를 마련하였다. 이어 정우(淨佑)·각일(覺日)·석맹(碩孟) 등이 극락전·청풍당·청운당·청화당·향각(香閣)을 증축하였고, 희철(熙哲)이 명부전을 세웠다.
1803년(순조 3)에는 침허(枕虛)와 수일(守一)이 중수하였고, 1912년에는 우운(友雲)이 중수하였다. 그러나 6·25전쟁 이후에 크게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57년 비구니 인홍(仁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크게 증축하였다. 이 때부터 비구니 수도처로서 각광을 받은 이 절에는 항상 100명이 넘는 비구니들이 엄격한 계율을 준수하면서 수도에 정진하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여 극락전·설선당(說禪堂)·조사전(祖師殿)·심검당(尋劍堂)·침계루(枕溪樓)·정애루(正愛樓)·종루(鐘樓)·무진료(無盡寮)·대방(大房) 등 30여 동이 있다.
이들 가운데 극락전은 1791년(정조 15)에 세운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문화재로는 도의국사의 사리탑으로 전해지는 보물 제369호의 석남사 팔각원당형부도(石南寺八角圓堂形浮屠)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호인 삼층석탑, 조선 초기에 제작된 엄나무구유와 돌구유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824년에 도의가 호국의 염원 아래 15층으로 세운 것이라 하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방치되어 오다가 1973년 스리랑카의 승려가 사리 1과를 봉안하면서 3층으로 개축한 것이다. 이 밖에도 절 입구에 4기의 부도가 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178~183.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520.
- 금강(金剛) 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 (다음카페, https://cafe.daum.net/vajra )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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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묵(炫默)스님 | 본항목 | 현묵스님(炫默, 1932~) | 炫默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현묵스님(炫默,_1932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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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묵(炫默)스님 | 법기문중(法起) | ~의 일원이다 | |
현묵(炫默)스님 | 인성(仁成)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 | |
현묵(炫默)스님 | 창원 성주사 | ~에서 출가하다 | |
현묵(炫默)스님 | 자운(慈雲)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비구니계 |
현묵(炫默)스님 | 안거 | ~을(를) 성만하다 | 문경 대승사 윤필암, 김룡사, 양산 내원사, 대구 동화사 양진암(도학동), 대구 동화사 부도암(도학동), 내원암, 울주 석남사 등 |
지도
- 석남사 :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106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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