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스님(性樹, 1948生, 비구니)
성수(性樹)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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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성수(性樹) |
법호 | 백련화(白蓮華) |
속명 | 박원순(朴元順) |
출생 | 1948.08.15. |
출가 | 1981년 |
입적 | |
사찰 | 유선사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남복리 2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백련화(白蓮華) 성수(性樹)스님은 전북 정읍 유선사를 약사여래 도량으로 중창하여 많은 환자들이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도운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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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 강원 원주 출생 |
원주 신림국민학교 졸업 | |
1981 | 동학사 미타암에서 지관(智觀)스님을 은사로 출가 해인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정읍 유선사 폐사지에서 관음기도 3년, 약사기도 3년, 지장기도 3년으로 가피 입음 |
1984 | 부산 대성암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86 | 유선사 주지 취임 해인사 삼선암 3안거, 월정사 지장암 1안거 성만 |
1988 | 유선사 중창 불사 |
2000 | 가람 수호와 장애인 복지사업으로 포교 |
2004 | 유선사 주지 |
2020 | 유선사 주석 |
문중 | 삼현문중(三賢) |
수행지침 | 어떤 고난과 장애가 오더라도 부처님 법을 믿고 따라야 한다. |
생활신조 | 기도정진 |
상훈 | 시장 표창(자연보호)외 다수 |
수계제자 | 성하·덕하·선우·선각·선명·선묵·선효·선엽 |
활동 및 공헌
출생
[[파일: 273-02.jpg|섬네일|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600
백련화(白蓮華) 성수(性樹)스님은 1948년 8월 15일 강원도 원주시 원동에서 아버지 박기호와 어머니 안만용 사이의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이며, 이름은 박원순이다. 어느 날 높은 산에 솟아나는 맑은 우물 속에서 흰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나오시더니 금은보화를 주면서 잘 간직하라고 당부하는 태몽을 아버지가 꾸신 이후 스님이 태어났다. 이미 두 아들을 둔 뒤 얻은 귀한 딸이라 집안에서는 왕비를 낳은 것이라며 기뻐했다. 특히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계시던 아버지는 한걸음에 달려와 미역국을 손수 끓여서 어머니에게 드릴 만큼 매우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남달리 신심이 깊어 여러 큰스님들을 시봉하고 사셨다. 스님은 어머니의 깊고 진중한 불심의 영향을 받은 데다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다닌 덕분에 부처님과 스님들을 스스럼없이 좋아하게 되었다.
강원도 원주 신림면의 신림국민학교를 졸업한 스님은 어머니를 따라 큰스님들을 찾아다니며 시봉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수 기도를 하면서 ‘이 세상이 아무리 크고 넓어도 눈썹이 빠져 부서진 티끌만 하며, 눈썹이 빠져 부서진 티끌만 하여도 이 넓은 세상이 그 안에 들어 있다.’는 큰 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다. 법문을 들을 때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없었는데, 기도를 하다가 어느 순간 그 뜻을 이해하게 되어 큰스님께 참회하며 자신이 이해한 바를 말씀드렸다.
그러자 큰스님께서는 “그래, 너는 스님이 되면 고을을 불국토를 이루리라. 때가 되면 스님이 되어야지.” 하시며 기특하게 여기셨다. 하지만 이처럼 불사 시주를 하고 기도를 하며 지내면서도 출가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전생의 인연이 무르익었던 것일까. 33세 되던 해에 깊은 불연을 느끼고 발심에 발심을 거듭하여 출가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출가
스님은 1981년 동학사 미타암에서 지관스님을 은사로 삭발염의를 하였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84년에는 부산 대성암에서 자운화상을 계사로 하여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그 후 수선 안거를 통한 참선 수행을 시작하여 세수 39세 되던 해인 1986년 해인사 삼선암에서 3안거, 월정사 지장암에서 안거를 성만하였다.
정읍 유선사 주지 소임
1981년 스님이 기도 정진을 하던 중에 우연히 들른 절이 있는데, 그 일이 인연이 되어 몇 년 뒤에 직접 절을 맡게 되었다. 그 절이 지금의 유선사이다. 선운사 말사인 정읍 유선사는 폐사로서 버려진 절이나 마찬가지였다. 1986년 당시 39세였던 스님이 주지로 처음 부임해 왔을 때 유선사는 15평의 함석집과 요사채, 8평의 법당이 절의 전부였다. 절의 행색이 너무나 낡고 초라하여 당장이라도 불사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스님의 수중에는 돈 한 푼이 없었다. 게다가 형편이 몹시 어려워 날마다 굶기를 밥 먹듯이 해야 했다.
성수스님이 부처님을 새롭게 모시려는 원력을 세운 것은 천일기도를 마치고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기도와 만행으로 정진할 때였다. 불사를 할 때가 되었다는 뜻인지 가져갈 것도 없는 가난한 유선사에 도둑이 들어 부처님의 복장을 훼손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그 소식을 들은 스님은 한걸음에 달려와 기도를 시작하였다.
‘부처님의 제자에게 어찌 명산대찰이 따로 있고 도통하는 곳이 따로 있단 말인가?’
유선사 중창
이렇게 생각한 스님은 오히려 부처님을 시봉할 사람이 없는 열악한 사찰에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쉼 없이 수행 정진하여 도를 이루어 성불하리라는 굳은 신심이 솟구쳤다. 그래서 유선사에 뿌리를 내리고 기도를 시작하였다. 절 밖 출입이나 사람들과의 만남을 일절 금하고 오로지 기도에만 정진하던 어느 날 사시 마지 공양을 올릴 때였다.
“성수는 천하가 병이 드니 약사여래를 조불(造佛)하라.”
비몽사몽 중에 그러한 음성을 듣고 성수스님은 깜짝 놀랐다.
일설에 따르면 두승산 유선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래 그 옛날 신라시대부터 오랫동안 약사 도량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약사 도량의 전통을 잇고자 스님은 석불입상 부처님 13자, 좌대 5자, 그렇게 총 18자의 약사 부처님을 조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난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유선사가 자리한 두승산은 호남의 삼신산 가운데 한 곳으로 불릴 만큼 명산이지만 해발 444고지로 가파른 경사에 고갯길이 구불구불한데다가 협소하여 통행하기가 매우 불편하여 도저히 부처님을 모시기가 어려웠다.
불사인연기도(佛事因緣祈禱)를 하면서 스님은 헬리콥터를 이용해서라도 부처님 모시기를 원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방법을 찾다가 어쩔 수 없어서 청와대 대통령 앞으로 공문을 보냈고 국방부장관, 육군총장을 비롯하여 각 기관에까지 공문을 띄웠으나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때 누군가가 “미군 사령관에게 공문을 띄워보세요!” 하고 권유하였다. 권유대로 공문을 보냈더니 지역 군수의 소견서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스님은 군수를 만나러 가던 도중에 심한 어지럼증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해가 저문 저녁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이었다. 병원 원장이 안타까운 눈길로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님! 스님, 3~4개월밖에 사실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스님은 자리에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아, 내가 벌써 죽었을 목숨인데 부처님께서 약사 부처님을 모시라는 뜻으로 살려주셨구나!’
스님은 불과 몇 달 동안이라도 약사 부처님을 꼭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져 곧바로 병원에서 나와 유선사로 돌아왔다. 스님은 머잖아 죽게 된다는 의사의 경고마저 잊은 채 밤새도록 기도 정진을 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 무렵에 김재택 씨라는 신도가 스님이 기도하는 법당에 찾아와 스님의 안색을 보고 걱정하였다.
“스님, 어디 편찮으세요?”
그리고 스님의 건강 얘기를 듣고 나서 그분은 불쑥 제안을 하였다.
“유선사 길 불사를 시작하시지요.”
그때부터 스님은 생명의 애착 번뇌를 다 내려놓고 필설로 다 말할 수 없는 사연 많은 유선사 도로 불사를 시작하였다. 높은 산중에 있는 유선사는 늘 식수와 전기 문제로 심한 고충을 겪었다. 4킬로미터가 넘는 비탈진 산길을 내려가 마을에서 지게 들통으로 물을 길어와 다기를 올려야 했다. 부처님의 가피와 신도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전기승압 공사를 마치고 나자 밤이면 멀리서도 별처럼 빛나는 유선사의 외등 불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도로 불사를 원만히 성취해낸 스님은 석불약사부처님, 대웅전, 범종각, 요사채 등 400평 남짓한 도량 불사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100억 원대가 넘게 드는 불사를 20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쳐 마침내 이뤄내었다. 신도들은 물론 산행을 하는 등산객도 마치 극락정토나 다름없는 두승산 정상의 유선사에서 참배하면, 부처님 도량에서 풍겨 나오는 신비로운 힘을 받아 지친 일상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을 찾을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가피를 얻는다고 한다.
약사도량으로 유명한 유선사
유선사에서는 정신장애인, 노인, 어린이 등을 포함하여 30여 명의 대중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특히 어린이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자비의 선재원’을 운영하고 있다.
오랜 불사로 새롭게 태어난 유선사는 예로부터 약사 도량으로 명성이 자자했으며 실제로 병을 앓던 많은 사람들이 영험을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아픈 사람이나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유선사에 머물며 기도를 하고 있다.
갈 곳 없는 사람이나 아픈 환자가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자신의 오장육부를 기증해서라도 고쳐주리라는 대자대비의 원력으로 살고 있는 스님은 틈날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줄 것은 정확히 줘야 하지만 받을 것은 일절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받을 것을 생각하면 모든 분별심이 일어나서 항상 원망하는 마음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원망이 생기면 일체가 나에게 장애로 돌아오니 언제나 줄 것만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스님은 현생에서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그 누구라도 부처님 돈을 가지고 공부를 하면 어느 생에서라도 반드시 불제자가 되리라고 믿기에 장학사업을 벌이면서 타 종교인들과도 격의 없이 지내왔다. 그러다 보니 유선사 불사에 천주교 신자들도 시주를 많이 하였다고 한다. 종교 간의 장벽을 뛰어넘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셈이다.
수계제자
2004년 성수스님은 유선사에서 수행 정진 중이다. 수계제자로 성하·덕하·선우·선각·선명·선묵·선효·선엽스님 등이 있다. 이밖에도 스님은 여러 비구, 비구니스님에게 부처님 제자의 인연을 지어주었다.
정읍 유선사
유선사(遊仙寺)는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남복리 산 52번지 두승산 정상에 자리한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유선사(遊仙寺)는 “하늘을 노닐며 바다를 희롱한다(遊天戱海)”는 말이 있다. 평야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두승산(斗升山)의 정상에 오르면, 하늘과 바다를 함께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산중사찰이 계곡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면 유선사는 산 정상 부근에 자리잡고 있어, 범상치 않은 지리적 위치를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날씨가 흐리거나 비라도 내리는 날엔 구름 속으로 홀연히 절의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아, 이름처럼 신선이 노니는 곳인 듯 신비로움에 감싸인다. 맑은 날 ‘평야를 품고 서해바다를 안고 있다’는 두승산에 오르면, 그야말로 산 아래 평야지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동진강과 연결된 서해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을 맛볼 수 있다.예로부터 신선의 세계에 올라 수행정진하려는 이들이 즐겨 찾았다는 두승산 유선사. 이곳 대웅전 뒷동산에는 하늘에 천제(天祭)를 올리고 기우제를 지낸 칠성대(七星臺)가 있어 그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 내용출처(유선사) :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10942&cid=42856&categoryId=42856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597~604.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73.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83, 389
- 정읍신문, 두승산유선사,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법회 (2001년) http://www.jnewsk.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96
- 불교신문, 두송산 정상서 울리는 부처님 화음 (2002년)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4122&replyAll=&reply_sc_order_by=I
- 새전북신문, [한국문화 오디세이] 5. 정읍 두승산 유선사의 호랑이 (2011년)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5564
- 전북도민일보, 정읍 고부이야기 ‘두승산 유선사’와 ‘유선사지’ (2016년) https://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1869
- 불교신문, [승보공양 특별기획] “아파보니 알겠더라구요…승려복지의 절실함을” (2020년)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6971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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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스님(性樹)스님 | 본항목 | 성수스님(性樹, 1948~ ) | 性樹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성수스님(性樹,_1948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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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性樹)스님 | 삼현문중(三賢) | ~의 일원이다 | |
성수(性樹)스님 | 지관(智觀)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 | |
성수(性樹)스님 | 공주 동학사 미타암 | ~에서 출가하다 | |
성수(性樹)스님 | 자운(慈雲)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비구니계 |
성수(性樹)스님 | 정읍 유선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주지 |
성수(性樹)스님 | 정읍 유선사 | ~을(를) 중창하다 | |
성수(性樹)스님 | 안거 | ~을(를) 성만하다 | 합천 해인사 삼선암, 평창 월정사 지장암 |
지도
- 유선사 :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남복리 2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