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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 능인(能仁)스님 | |표제= 능인(能仁)스님 |
2022년 12월 24일 (토) 19:3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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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인(能仁)스님 | |
---|---|
법명 | 능인(能仁) |
법호 | 지암(智庵) |
속명 | 손순호 |
출생 | 1946.07.15. |
출가 | 1963년 |
입적 | |
사찰 | 석림사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산147 |
특이사항 | 중앙승가대학교 교수 |
목차
정의
지암(智庵) 능인(能仁)스님은 일본 불교대학 사회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일산노인종합복지관 관장을 한 후 수락산 석림사 주지로 있는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
1946 | 경북 영일 출생 |
1963 | 석림사에서 보각(寶覺)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65 | 석림사에서 석주(昔珠)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74 | 명성여자고등학교 졸업 |
1974~1984 | 석림사 총무 역임 |
1977 | 범어사에서 고암(古庵)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대한불교 조계종 중앙교육원 수료 |
1978 |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승가학과 졸업 |
1981 | 경국사 법보연구원에서 대교과 졸업 |
대한불교 청소년교화연합회 제1회 청소년 지도자자격 강습 수료 및 자격증 취득 | |
1986~1996 | 일본어학교 졸업, 일본 교토 정토종 불교대학 사회복지학과 졸업, 불교대학 사회학연구과 석사과정 수료, 동 대학 사회학연구과 박사과정 졸업 및 사회학 박사학위 취득 |
1997~1998 | 대한불교 조계종 자비사 자비동산 어린이집 원장 |
1997~2004 |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 매화종합사회복지관 자문위원 |
1998~2000 |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회복지연구소 소장 |
1999 | 중앙승가대학교 보육교사 교육원 실장 |
2000 |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 고양시 일산노인종합복지관장 취임 |
2000~2002 | 중앙승가대학교 사회복지학과장 |
2003~2004 | 고양시 덕양노인종합복지관 이전 신축 자문위원 |
2011 |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퇴임, 복지법인 연꽃마을 일산노인종합복지관 관장 퇴임 |
2022 | 수락산 석림사 주지, 전국비구니회 부회장, 불교환경연대 공동대표 |
문중 | 청해문중(靑海) |
수행지침 |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
생활신조 | 화안애어(和顔愛語) |
저서 및 작품 | 〈일본의 보육제도에 관한 연구〉(1996, 사회학 박사학위 논문) 외 다수 |
상훈 |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표창패 (1982) 외 다수 |
취미 | 여행 |
수계제자 | 기현(基玄)·우현(隅玄) |
활동 및 공헌
출생
지암(智庵) 능인(能仁)스님은 1946년 경북 영일군 의창면 용곡리 589번지(현재 포항시 흥해읍 용곡동)의 조용한 시골에서 아버지 손용도와 어머니 진주 강씨 강진분 사이의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며, 이름은 손순호이다. 부모님께서 밭에서 큰 무를 뽑아 치마에 싸서 집으로 가지고 오는 태몽을 꾸고 난 뒤 스님을 잉태하였다고 한다.
출가와 수계
스님은 어려서부터 고기로 만든 음식을 전혀 입에 대지 못해서 아버지한테 꾸중을 많이 들었다. 아버지는 고기를 안 먹으려면 아예 밥도 먹지 말라며 화를 내셨지만 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보다 못한 아버지께서 끝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나중에 절로 시집을 보내겠다고 엄포를 놓으셨다. 그러나 스님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런 일들이 인연이 되었는지 15세 되던 해, 우연한 기회에 이차돈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을 읽고 순교의 위대함에 많은 감명을 받아 출가의 발심을 내게 되었다.
1963년 4월 15일 석림사에서 보각스님을 은사로 출가하니, 이때 스님의 나이 18세였다. 2년 뒤인 1965년 3월 3일 석림사에서 석주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
늦게 중고등학교 공부 시작
스님은 어려서 편식을 많이 한 탓인지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서 건강한 몸으로 수행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건강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강원에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였다. 그러나 모든 일에 있어 진취적인 사고를 가지고 계셨던 은사스님의 권유로 나이 들어 중고등학교 공부를 시작하였다.
10여 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 학생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스님은 부단히 노력하였다. 스님은 너무 무리한 나머지 뇌에 염증과 악성 빈혈이 생겨 차를 타고 통학하기도 힘든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은사스님의 지극한 배려로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자취를 하면서 1974년 2월 15일 명성여고를 졸업하였다.
동국대학교 입학
건강은 더욱 나빠져 새벽 예불은 물론 책장을 넘기는 일조차 힘이 들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스님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은사스님의 의지로 동국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강의만 겨우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으며, 강의 내용은 도반스님의 노트를 빌려서 정리했다. 그런데 아무리 아파도 결석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교실에서 공부하다가 죽으면 얼마나 행복하냐고 격려하는 은사스님의 정성 때문이었다.
건강상의 이유와 먼 통학거리 때문에 대학에 다니는 4년 동안 교양 강좌를 들어본 일이 없으며, 한 번도 공부다운 공부를 제대로 해본 일이 없어 졸업 사진을 찍으러 오라는 통지를 받았을 때 너무나 후회가 되어 마음이 착잡하기만 했다.
스님은 동국대학교 1학년 때부터 8년 동안 가산 지관스님에게 경전을 배웠는데, 그 중에는 재독(再讀)하는 스님도 있었고 처음 배우는 스님도 있었으며, 30여 명의 스님들이 1981년 경국사 법보연구원 대교과를 졸업했다.
어린이, 중학생, 고등학생, 청년법회 창립
스님은 매년 부처님 오신 날 저녁에 마을사람들이 석림사에서 주지스님 법문을 듣고 탑돌이 할 때 스님을 만나면 ‘성불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작고 간단한 인사법 하나를 일깨워주는 일을 몇 년 동안 계속하다 보니 아무리 사중이 어렵더라도 어린이 법회를 개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동국대학교를 졸업한 뒤 초등학생 100여 명을 모아 어린이 법회를 시작하였다. 그해 첫 졸업생을 중등부 법회의 자산으로 삼아서 교사들과 함께 마을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아이들을 법회에 보내달라고 부모님들에게 호소하고 설득하여 중학생 법회를 창립하였다. 뒤이어 중학생 졸업자가 기본이 되어 고등학생 법회가 만들어지고, 다시 고등학생 졸업자로 청년 법회가 창립하게 되었다.
스님은 초중고등학생들과 청년회의 지도 법사일을 맡아보면서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석림사에서 직접 장학금을 주기도 하고 외부 장학금도 받게 해주어 면학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 장학금 혜택을 받은 남학생 한 명이 후일 출가를 하여 중앙승가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는 것을 보고 그는 부처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뻤다고 한다.
인도성지순례
1977년 3월 15일 범어사에서 고암 큰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였고, 같은 해 11월 5일 대한불교 조계종 중앙교육원 (제8기)을 수료하였다.
1982년 은사스님의 자비로운 배려로 은사스님보다도 먼저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난생 처음 타보는 비행기는 신기하기만 했고, 스님은 그곳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성지마다 모여드는 선지식(먹을 것과 돈을 달라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스님의 작은 가슴으로는 도저히 포용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하루 한 끼를 먹어도 시장끼를 느끼지 못하고, 호텔에 돌아오면 지극한 마음으로 하늘에서 돈비가 내리게 해달라고 부처님 전에 기도를 드리곤 하였다.
인도 성지순례를 하는 동안 내내 스님은 ‘나는 출가해서 지금까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무엇을 했나?’ 하는 자책감이 들었고, 순례에서 돌아온 후 1년 동안 심각한 자기 회의에 빠져 많은 고민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절에 있는 동안은 와선으로 보내던 생활방식을 바꾸고 모든 것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마음으로 스님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대만 불광산사 불학원에서 공부
그리고 성지순례를 하면서 대만 불광산사에서 수행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던 터에 선배스님의 도움으로 1984년 불광산사로 가게 되었다. 불광산사 불학원(우리의 강원)에서 2년간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강의를 들으며 저녁에는 비구니스님이 가르치는 중국어를 배웠고 서투른 중국어로 매일 일기를 쓰는 숙제를 했다. 일기는 어학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중국어를 가르쳐주신 스님은 아주 친절한 분이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불광산사에는 그동안 스님이 알고 싶어 했던 모든 것이 있었다. 첫째로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치 현대불교를 지향하는 불교의식을 접할 수 있었고, 두 번째로 수많은 국제행사를 통해 성운대사의 전문 인재양성과 자기 책임을 철저히 수행하는 스님들을 볼 수 있었으며, 세 번째로 사원경제의 현실화를 통한 세계적인 불광산사의 발전상을 보았던 것이다.
타이페이에 있는 한국 홍법원 법산스님의 부지도교수인 문화 대학 양백의 교수를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던 중 스님은 사회복지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자 양백의 교수는 사회복지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일본 교토에 있는 정토종에서 운영하는 불교대학으로 가는 게 좋겠다는 조언과 함께 유학할 수 있는 인연을 맺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멀지않아 추천서를 써준 양백의 교수의 배려 덕분에 스님은 3개월 만에 일본 비자를 받아 1986년 3월 29일 대만에서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일본 비자 받기가 어려울 때였는데 불교대학의 총무 차장인 니시나(仁科) 선생이 보증인이 되어주어 쉽게 갈 수 있었다.
일본 교토 유학
스님은 일본에 도착하여 처음 1년간은 교토 일본어학교에서 어학을 배웠다. 그리고 1987년 4월 불교대학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학사편입을 하였고, 1989년 3월 14일 졸업하였다. 일본에서의 유학생활은 재미있고 참으로 많은 것을 섭렵할 수 있었다.
스님은 교토에 도착해서 귀국할 때까지 10년 간 불교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였다. 처음 4년 간은 대만 불광산사와 불교대학의 결연으로 무료로 지낼 수 있었고(불광산사에서 살다 갔기 때문임), 나머지 6년간은 홍윤식 박사와 불교대학의 학장이었던 미즈다니(水谷)선생의 협조로 저렴한 기숙사비를 내며 살았다. 뿐만 아니라 불교대학의 모든 유학생들까지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저렴한 기숙사비는 유학생들에게는 장학금 혜택과도 같았으며, 그 덕분에 스님은 처음엔 3년 목표를 세우고 갔지만 10년 동안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 선배 스님들이 터를 잘 가꾸어 놓아 후배들은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되는 아주 편안한 대학 생활이었다며, 그 점에 대해 지금도 항상 고마워하고 있다.
모리나가 노선사
특히 스님이 잊지 못하는 것은 매주 일요일마다 용안사(龍安寺) 경내에 있는 대주원(大珠院)에서 9년 간 모리나가(盛永宗興) 노사(老師)의 선학(禪學) 강의를 들은 일이다. 그곳에서 스님은 대학에서는 접할 수 없는 여러 계층의 일본인들과 교류를 하였다. 그리고 한 달에 두 번씩 강의가 끝난 후에 노선사와의 좌담시간에 떡과 말차를 대접받으면서 일본의 다도를 배우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모리나가 노선사는 임제종에서 운영하는 화원대학(花園大學)의 학장(총장)을 두 임기나 역임하면서 국제선학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지금의 화원대학을 발전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또 교토에 유학을 와 있는 한국스님들에게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준 분이기도 하다.
정월에 세배를 드리러 가면 모리나가 큰스님은 학인스님들에게 메밀국수며 우동을 대접하며 함께 드셨다. 스님이 한국에도 정월에 귀밝기 술을 마시는 전통풍습이 있다고 말씀드리자 큰스님께서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 자리에 참석한 개개인 모두에게 법주를 따라주셨다. 그만큼 자상하기 그지없는 분이었다.
“나는 매주 일요일마다 모리나가 큰스님을 뵙고 선 강의를 들을 때마다 한국에 계신 석주 큰스님을 뵙는 것 같았으며, 내 유학생활 중 매 주마다 재충전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요일이 몹시 기다려졌습니다.”
일본 불교대학 사회학연구과 박사 학위 취득
스님은 1991년 4월 20일 부처님의 근본이념을 실천 수행하여 조국과 세계의 불국토 건설에 이바지함과 아울러 육화(六和)정신에 입각하여 회원상호 간의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재일코리아 유학생 승가회를 창립하고 2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1992년에는 일본 불교대학 사회학연구과 박사 과정에 입학하였고, 1996년 동 대학 박사과정을 졸업함과 동시에 사회학박사 학위 (사회복지학 전공)를 취득하였다.
석주 큰스님으로부터 법호를 받다
그리고 그해 1월 석주 큰스님으로부터 ‘지암(智庵)’이란 법호를 수여받았는데, 큰스님께서는 법호와 함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내려주셨다.
요지일체법, 자성무소법, 즉견노사나(了智一切法, 自性無所法, 卽見盧舍那)
강단에 핀 사회복지의 꿈
스님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중앙승가대학교 사회복지학과(가족복지론, 아동복지론, 불교사회복지론, 장애인복지론, 학교사회사업),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불교사회복지학과(아동복지론, 사회복지실천론),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불교학부(자아와 명상), 1997년 중앙승가대학교 보육교사교육원(보육시설의 운영관리),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사회복지법인 능인선원 법사대학원(불교사회복지론) 등에서 시간강사를 역임하였다. 그리고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자비사 자비동산 어린이집 시설장, 1997년부터 2007년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 매화종합사회복지관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회복지연구소 소장과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사회복지학과 학과장을 역임했고, 2000년 4월 20일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 고양시 일산노인 종합복지관 초대관장으로 취임했으며, 2005년 12월 안산시 부국종합사회복지관 자문위원에 위촉되었고, 2011년 중앙승가대학교 사회복지학과(인간행동과 사회환경, 가족복지론, 사 회복지실천론, 아동복지론) 교수이자 비구니 수행관 관장, 고양시 일산노인종합복지관 관장을 퇴임했다
2022년 현재 수락산 석림사 주지로 있으며 수계제자로는 기현(基玄)·우현(隅玄)스님이 있다.
석림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조선 중기에 박태보(朴泰輔)가 김시습(金時習)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 1796년(정조 20)에는 유담(裕淡)스님이 화주가 되어 삼소각(三笑閣)을 중수하였다. 1950년 6·25로 인하여 모든 건물이 불타버렸으며, 그 뒤 1956년에 비구니 상인(相仁)스님이 와서 대방(大房) 등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현존하는 당우로는 대방을 중심으로 하여 요사채 2동과 칠성각·독성각 등이 있다. 다른 사찰과는 달리 대방이 법당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내부에는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하여 후불탱화·신중탱화 등을 봉안하고 있다. 대방 앞에는 1969년에 상인스님이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하여 건립한 탑이 있으며, 그밖에 특기할 만한 문화재는 전하고 있지 않다.
- 내용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석림사(石林寺))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8407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159-169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58
- 법보신문,‘수락산 석림사 주지 능인 스님’(2016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4619
- 경기매일, 의정부시-대한불교조계종 석림사, 협약 체결 (2018년) http://www.kgmaeil.net/news/articleView.html?idxno=127434
- 경인매일, 의정부시, 석림사 국공립어린이집 전환 추진에 관한 협약 체결 (2018년) http://www.k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141056
- 불영TV, 전국비구니 제 12대 집행부 임원 임명 (2019년) http://www.bytv.kr/news/articleView.html?idxno=2329
- 불교신문, 자비장학회, 광동학원에 장학금 전달 (2021년)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799
- 시사경제신문, 석림사, 의정부시 장암동에 쌀 1,600kg 기탁(2022년) http://www.sisa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88945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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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인(能仁)스님 | 본항목 | 능인스님(能仁, 1946~) | 能仁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능인스님(能仁,_1946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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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인(能仁)스님 | 청해문중(靑海) | ~의 일원이다 | |
능인(能仁)스님 | 보각(寶覺)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 | |
능인(能仁)스님 | 의정부 석림사 | ~에서 출가하다 | |
능인(能仁)스님 | 석주(昔珠)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
능인(能仁)스님 | 고암(古庵)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비구니계 |
능인(能仁)스님 | 의정부 석림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주지 |
지도
- 석림사 :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산14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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