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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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5일 (일) 08:57 판



정의

종실(宗實)스님은 한국 불교계 최초로 점자 불경을 발행하고 어린이와 청소년, 사회약자를 위해 평생을 바친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51 대전 출생
1971 견성암에서 자인(慈仁)스님을 은사로 출가
1976 수덕사에서 인곡(仁谷) 법장(法長)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79 범어사에서 비구니계 수지. 동학사 강원졸업
1980~1983 중앙승가대학교 입학 및 불교학과 졸업
1983 대전시 동구 가오동 자광사 개원, 어린이법회 운영, 5명에서 시작하여 70~80여 명으로 증원.

어린이불교학교 개최, 300~400여 명 교육

1984 조계종 불교사회문제 연구소 근무
1986 대전 맹학교 아나율 불교학생회 지도법사. 중앙승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졸업
1993 대전 법동 종합사회복지관 관장
1995 대한불교 조계종 연화사 창건 .대한불교 청소년연합회 대전지부장
1996~2002 ‘맑고 향기롭게’ 대전모임 본부장(6년)
1996~2004 대전광역시 청소년활동진흥센터 소장
2004 연화사 주지, 청소년 선도 공로 '신한국인상'
2018 대전 연화사 주지
문중 법기문중(法起)
상훈 총무원 포교특별상(1988), 신한국인상(1997), 대통령 표창(1998), 평송상(1995)
생활신조 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을 살자
저서 및 작품 『불교점자성전』 (1988)
수계제자 지민(智敏)·지명(智明)·윤서(允瑞)·득연(得燃)

활동 및 공헌

출가 계기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465
[맹아학교 행사]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466
['맑고 향기롭게' 행사]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467
[여름불교학교]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468
[신행회 기금마련 행사 때 은사스님을 모시고]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469
[어린이불교학교 수련대회 발우 공양 지도]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470
[여름불교학교]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471
[직지사 수련회]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472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종실(宗實)스님은 1951년 5월 13일 대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이며, 속명은 이수옥이다. 고모가 서울 도선사와 칠보사 등 절에 다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았는데, 고등학교 시절에는 우연히 비구 화봉 큰스님(임환경 스님의 제자)을 알게 되었다. 논산 관촉사에 주석하던 화봉스님은 당시 송광사에서 학생 법회를 하고 계셨는데 ‘인물 천 냥, 글 천 냥, 말 천 냥을 더해 삼천 냥’이라고 할 만큼 다재다능한 분으로 대단한 감화력을 지닌 분이었다. 그래서 송광사 학생회에는 출가를 꿈꾸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종실스님 또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생활하면서 법회에 가는 기쁨이 제일 컸다.

고3 때 담임선생님은 우연히 수업을 하시다가 “너희들 가운데 스님 되고 싶은 사람 있니?” 하고 물어보셨는데 학생들 가운데 손을 든 사람은 종실스님 한 사람뿐이었다. 친구들은 “청승 맞게 무슨 승려니? 수녀는 유니폼이라도 예쁘지.” 하며 놀렸지만, 선생님은 ‘내가 입시준비 때 절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데, 그때가 지금보다 행복했었다.’라며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셨다.

출가 결심

고등학교를 졸업한 종실스님은 비구니스님에 대해 점점 더 관심이 갔다. 길에서 비구니스님들을 만나면 가지고 있던 동전을 드리고는 조금밖에 시주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 후다닥 도망을 치고는 하였다.

하루는 오랜 생각 끝에 출가를 결심하고 큰스님을 찾아가 입산의 뜻을 밝혔는데, 큰스님께서 “중질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 그래도 하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집으로 돌아와 출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어느 날 어머니가 큰 오빠와 다툰 후 작은 집으로 가시는 일이 생겼다. 결혼 전 풍족한 가정의 무남독녀로 자랐던 어머니는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와서 딸을 고등학교까지 가르치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종실스님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머니를 찾아가자 어머니는 “삶이라는 것이 별 것도 아닌데…. 이제 졸업을 했으니 네 인생은 네가 알아서 살아라.”라고 말씀하셨다.

출가

스님은 어머니의 태도에 놀라고 서러워 두세 시간을 더 울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나를 대신 해서 죽어주는 것도 아니고, 아픈 것을 대신해줄 수도 없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멎었다. 굳게 출가를 결심한 스님은 3일 동안 사진과 앨범 등 주변을 정리하고 동학사로 향했다.

당시 동학사 강원은 지금의 안양 안흥사 회주이신 수현스님이 주지를 맡고 계셨는데, 종실스님이 찾아갔을 때는 마침 출타 중이셨다. 시자스님에게 출가하러 왔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비구니 암자를 소개해주었는데, 대한민국의 비구니사찰 이름이 다 적힌 듯 암자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이수옥은 법회에 다닌 경험으로 고무신과 비누 등 갖가지 살림살이를 준비해서 짊어지고 수덕사 견성암으로 떠났다.

마침내 스님은 1971년 수덕사 견성암에서 자인(慈仁)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처음에는 시자스님이 종실스님을 사숙님에게 보냈는데, 자인스님께서 ‘무조건 내 상좌를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시는 바람에 자인스님을 은사로 삭발을 하게 되었다. 종실스님은 육두문자를 잘 쓰고 거침이 없는 자인스님께 가지 않으려고 한 달 동안 버텼지만, 인연이 깊었는지 결국 사제의 연을 맺었다. 그 후 사형스님이 환속하는 바람에 자인스님의 맏상좌가 되었다.

동학사 강원 입학

출가 4년 후 1975년 종실스님은 동학사 강원에 입학했다. 당시 동학사에는 한 반에 25명 정도가 있었는데, 비구 호경(好鏡) 노스님이 강주를 맡고, 일초스님 일초(一超)스님이 사집을 가르쳤다. 스님은 동학사 강원에서 4년을 공부하는 동안 학비를 낼 형편이 안 되어 부전[1]을 살았다. 그런데 당시 동학사는 초파일, 백중, 동지 등 큰 행사가 있는 날이면 법문도 없이 불공만 드리고 마치 전쟁 치르듯 급하게 신도들에게 음식을 싸주고 끝내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스님은 기지를 발휘하여 과감히 개인의 독불공을 없애는 대신 불공 뒤에 법회를 열어 법문을 듣게 만들었다.

대전 자광사로 가다

1983년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한 종실스님은 슬슬 유학을 준비했다. 그러자 혹시라도 외국 유학길에 잘못될까 염려한 어른스님들은 편찮으신 은사스님을 시봉할 사람이 없다는 구실로 스님을 대전으로 불러 내렸다. 어쩔 수 없이 스님 약 시봉을 위해 내려간 스님은 처음에는 속인들이 사는 마을에 있는 자광사에서 지내는 게 어렵고 불편했지만 내려온 지 20여 일 만에 일대 사건을 저질러 버렸다. 그것은 바로 절에 오는 어린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쳐주겠다는 벽보를 써 붙인 것이다. 벽보를 보고 다섯 명의 아이들이 자광사를 찾아왔다.

스님은 아이들과 함께 일요일이면 산으로 들로 소풍을 가고 한문도 가르쳐주었다. 그러자 몇 달 사이에 아이들이 90여 명으로 늘어났고, 다들 자광사를 제집 드나들 듯하였다. 선방 수좌이신 은사스님은 상좌에게 약 시봉을 받으러 오셨다가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피해 수덕사 견성암으로 돌아가셨다. 당시 노스님들의 야단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누가 은사스님 약 시봉하랬지 애들을 불러들이라 했느냐.” 하시며 호된 꾸지람을 내리셨지만 스님의 생각은 확고했다. ‘남들은 다 영근 벼를 수확할지라도 나는 흔들림 없이 어린 모를 심겠다.’ 스님은 공터에 천막을 치고 어린이 여름불교학교를 열었는데 점차 참가자 수가 늘어 300~400명의 어린이들이 몰려와 현수막을 내다 붙일 필요도 없을 만큼 성황을 이루었다

한국 최초 점자 불경을 만들다

1985년 가을 어느 날 맹인학교 자원봉사자 법우가 찾아와 시각장애인들이 스님을 보고 싶어 하니 학교를 방문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학교의 이름은 대명공립맹학교라고 하는데, 마침 자광사에서 그리 멀지 않았으며 유치부에서 고등부까지 130여 명의 맹인학생이 공부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맹인 학생들을 처음 만났던 날 종실스님은 몹시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였다. 한 학생이 불만에 찬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스님, 불교는 신흥종교입니까? 종교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한번은 제가 어느 절에 찾아갔는데 큰스님께 가라고 해서 가면 이번에는 작은 스님한테 가라고 하고, 작은 스님한테 가면 다시 큰 스님한테 가라고 해서 그날 저는 큰 스님과 작은 스님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가다가 그냥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한 시각장애인의 항변에 종실스님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해 가을 대명공립맹학교 학생 5명과 함께 법회를 시작했다. 법회 이름은 ‘아나율 법회’로 정했다. 아나율은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한 명으로 부처님의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수마와 싸우며 혹독하게 수행 정진하던 중 시력을 잃은 맹인수행자였다. 피나는 수행 후 아나율은 육신으로 얻을 수 없는 심안(心眼)이 열려 천안제일(天眼第一) 제자가 된 분이다.

1986년 12월 16일 정식으로 아나율 법회 불교반이 탄생했다. 그런데 막상 법회를 해나가다 보니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어려움이 생각보다 컸다. 고심하던 끝에 종실스님은 점자불경을 만들기로 다짐하고 학생들에게 꼭 점자불경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길로 탁발에 나선 스님은 다행히 화주가 잘 되어 출판 비용보다 더 많은 기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1년 여의 노력 끝에 마침내 『관음경』, 『천수경』 등 여러 대승경전을 담은 600쪽 짜리 7권으로 된 점자불경이 태어났다.

“출판기념 법회를 여는데 전국에서 500여 명 정도의 맹인들이 모였어요. 자원봉사자들의 손을 잡고 곳곳에서 구름처럼 몰려드는데, 마치 심청전의 한 장면 같았지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점자 불경을 기다려왔는지 짐작하고도 남았어요.” 일반 불교경전은 한 권으로 만들면 되지만 점자책은 부피가 커서 일곱 권에 나눠서 담아야 했다. 무거운 점자불경을 들고 가는 맹인들의 모습이 무척 숭고하게 느껴졌다고 스님은 회고했다. 점자 불경 발행을 계기로 서울에 해광맹불자회, 대광맹불자회가 생겨났다.

맹인불자 학생들에게 공연할 기회를 마련하다

‘아나율 불교반’은 당시 맹학교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을 해냈다. 종실스님은 학생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 맹인학생들로 하여금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다. 1980년 스님은 다시 화주를 하여 300만원을 모아 가톨릭회관을 빌려 ‘빛 있는 밤’ 발표회를 열었다. 이 발표회는 시각장애인들이 춤, 노래, 연극을 공연하는 자리였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당시 불교계로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피나는 노력을 거듭했던 학생들, 그들을 지도하느라 목이 쉬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선생님, 그리고 객석을 가득 메운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 되어 감동으로 차올랐던 소중한 자리였다.

그러나 2004년 맹학교의 ‘아나율반’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예전에는 교장 선생님이 비록 가톨릭 신자였지만 열린 마음으로 자유로운 종교 활동의 장을 마련해주었는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새 교장선생님은 맹학교 학생들에게 찬송가 경연대회에 참여하게 하면서 더 이상 ‘아나율 법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대전 연화사 창건과 청소년 자원봉사센터 운영

종실스님은 1995년 11월 1일 대전시 중구 문화동에 연화사를 창건하고 이듬해 ‘연꽃어린이집’을 개원했고, 같은 해 4월에는 대전광역시로부터 청소년 자원봉사센터 운영을 위탁받았다. 스님은 센터를 운영하면서 매년 자체적으로 2,000만원의 운영비를 부담했는데, 이러한 사례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였다. 나중에 대전시에서도 그 사실을 알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대전 청소년 자원봉사센터는 이후 활발한 국제교류 활동을 벌여 청소년활동진흥센터로 명칭을 바꾸어 1996년 3월부터 2007년 2월말까지 센터장을 맡아 기관의 초석을 닦았다.

대전 법동종합사회복지관 관장으로 취임

스님은 또한 1993년 대전 법동종합사회복지관 관장으로 취임하여 복지관을 고아원이나 양로원으로만 생각하는 기존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법정스님, 경산스님, 강화에서 도예를 하는 설봉스님 등 유명 인사를 초청하여 특강을 여는 등 예전에 어린이 법회를 운영할 때만큼이나 열정적으로 복지관을 운영하였다. 스님의 이와 같은 노력으로 1997년 신한국인상, 1998년 대통령 표창, 2004년 신한국인상 등 수차례 표창을 받았다.

종실스님은 1996년 법동종합사회복지관 관장직을 후배스님에게 물려주었고, 2006년에는 연꽃어린이집의 재정이 어려워져서 폐원을 시켰다. 하지만 스님의 어린이 사랑은 끝이 없다. 요즘은 매주 월요일마다 파남초등학교 4학년을 대상으로 예절과 다도, 명상을 지도하고 있는데, 가장 인기 있는 학교동아리가 되었다. 또한 어린이들을 위한 방과후 공부방을 준비하고 있으며, 요즘은 졸업생을 위주로 법회를 열고 있다.

‘청소년과 함께 하는 스님’, ‘미래 불자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종실스님은 현재 연화사 주지를 맡고 있으며, 오늘도 부처님 전법을 실현하기 위해 수행 정진하고 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지민(智敏)·지명(智明)·윤서(允瑞)·득연(得燃)스님 등이 있다.

참고문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종실(宗實)스님 본항목 종실스님(宗實, 1953~) 宗實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종실스님(宗實,_1951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종실(宗實)스님 성혜문중(性慧) ~의 일원이다
종실(宗實)스님 자인(慈仁)스님 ~의 수계제자이다
종실(宗實)스님 예산 수덕사 견성암 ~에서 출가하다
종실(宗實)스님 법장(法長)스님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종실(宗實)스님 공주 동학사 ~에서 수학하다 강원
종실(宗實)스님 중앙승가대학교 ~에서 학위를 취득하다 불교학과, 사회복지학과
종실(宗實)스님 대전 연화사(문화동) ~을(를) 설립(건립)하다 자광사어린이법회
종실(宗實)스님 대전 연화사(문화동) ~에서 책을 발간하다 『점자불교성전』
종실(宗實)스님 대전맹학교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아나율법회 지도법사
종실(宗實)스님 법동종합사회복지관(대전)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관장
종실(宗實)스님 대한불교청소년연합회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대전지부장
종실(宗實)스님 맑고향기롭게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대전모임 본부장
종실(宗實)스님 청소년활동진흥센터 ~에서 국제교류 활동 하다
종실(宗實)스님 대통령표창 ~을(를) 수상하다
종실(宗實)스님 신한국인상 ~을(를) 수상하다
종실(宗實)스님 대전 연화사(문화동)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

한국 비구니 인명사전 데이터 아카이브로 가기

지도

  • 연화사 : 대전광역시 중구 문화동 583-7



주석

  1. 불전(佛殿)을 돌보고 각종 의식(儀式)을 담당하는 소임


다른 비구니 스님

각림스님(覺棽, 1927년생) 묘관스님(妙觀, 1936년생) 선경스님(禪敬, 1904년생) 일광스님(一光, 1899년생) 지형스님(志炯, 1947년생)
각심스님(覺心, 1936년생) 묘관스님(妙觀, 1948년생) 선광스님(善光, 1949년생) 일선스님(一禪, 1952년생) 지호스님(智毫, 1956년생)
경도스님(敬道, 1941년생) 묘광스님(妙硄, 1946년생) 선재스님(善財, 1956년생) 일연스님(一衍, 1947년생) 지환스님(知幻, 1261년생)
경륜스님(暻輪, 1953년생) 묘길스님(妙吉, 1900년생) 선주스님(禪周, 1938년생) 일엽스님(一葉, 1896년생) 지환스님(智環, 1936년생)
경문스님(京門, 1963년생) 묘담스님(妙湛, 1776년생) 선진스님(善眞, 1961년생) 일조스님(日照, 1910년생) 지훈스님(志訓, 1947년생)
경법스님(敬法, 1922년생) 묘순스님(妙洵, 1946년생) 선행스님(善行, 1934년생) 일지스님(逸智, 1944년생) 진관스님(眞觀, 1928년생)
경순스님(景順, 1925년생) 묘엄스님(妙嚴, 1931년생) 선혜스님(善慧, 1911년생) 일초스님(一超, 1943년생) 진오스님(眞悟, 1904년생)
경신스님(敬信, 1947년생) 묘운스님(妙雲, 1921년생) 설오스님(說吾, 1958년생) 일현스님(一玄, 1952년생) 진우스님(眞愚, 1934년생)
경원스님(庚圓, 1960년생) 묘전스님(妙全, 1938년생) 설호스님(雪皓, 1933년생) 일홍스님(一弘, 1939년생) 진우스님(眞愚, 1949년생)
경주스님(敬柱, 1935년생) 묘정스님(妙精, 1943년생) 성경스님(晟鏡, 1941년생) 일효스님(一曉, 1934년생) 창법스님(昌法, 1918년생)
경준스님(敬俊, 1933년생) 묘정스님(妙靜, 1949년생) 성관스님(性觀, 1940년생) 자광스님(慈光, 1936년생) 창수스님(昌守, 1842년생)
경훤스님(敬昍, 1946년생) 묘찬스님(妙璨, 1926년생) 성관스님(成觀, 1951년생) 자득스님(慈得, 1945년생) 창호스님(彰浩, 1889년생)
경희스님(慶喜, 1931년생) 묘희스님(妙喜, 1937년생) 성덕스님(盛德, 1942년생) 자민스님(慈珉, 1939년생) 천일스님(天日, 1912년생)
계수스님(桂修, 1946년생) 무구스님(無垢, 1959년생) 성륜스님(性輪, 1918년생) 자산스님(慈山, 1933년생) 청룡스님(靑龍, 1925년생)
계전스님(戒田, 1889년생) 무진스님(無盡, 1954년생) 성림스님(成林, 1916년생) 자원스님(慈元, 1937년생) 쾌민스님(快敏, 1916년생)
계주스님(季珠, 1914년생) 문수스님(紋秀, 1939년생) 성문스님(性文, 1893년생) 자윤스님(慈允, 1928년생) 쾌유스님(快愈, 1907년생)
계환스님(戒環, 1953년생) 백졸스님(百拙, 1936년생) 성법스님(性法, 1929년생) 자은스님(慈恩, 1943년생) 탁연스님(卓然, 1949년생)
관월스님(觀月, 1904년생) 범조스님(梵早, 1941년생) 성수스님(性樹, 1948년생) 자현스님(慈賢, 1896년생) 탄형스님(呑炯, 1948년생)
관정스님(觀晶, 1937년생) 법공스님(法空, 1471년생) 성연스님(性蓮, 1920년생) 장일스님(長一, 1916년생) 태경스님(泰鏡, 1930년생)
관주스님(觀柱, 1922년생) 법공스님(法空, 1937년생) 성연스님(聖蓮, 1928년생) 재근스님(在根, 1940년생) 태구스님(泰具, 1920년생)
광옥스님(光玉, 1943년생) 법농스님(法農, 1962년생) 성우스님(惺牛, 1918년생) 재문스님(載文, 1943년생) 하경스님(荷景, 1937년생)
광우스님(光雨, 1926년생) 법능스님(法能, 1932년생) 성원스님(性源, 1918년생) 재현스님(在玄, 1946년생) 해성스님(海成, 1958년생)
광호스님(光毫, 1915년생) 법륜스님(法倫, 1948년생) 성월스님(性月, 1947년생) 재호스님(宰毫, 1938년생) 해운스님(海雲, 1920년생)
금룡스님(金龍, 1892년생) 법성스님(法性, 1914년생) 성일스님(性一, 1944년생) 재홍스님(在洪, 1931년생) 해주스님(海住, 1951년생)
긍탄스님(亘坦, 1885년생) 법성스님(法惺, 1938년생) 성주스님(性主, 1825년생) 적조스님(寂照, 1942년생) 행원스님(行願, 1927년생)
뇌묵스님(雷默, 1919년생) 법성스님(法性, 1940년생) 성주스님(性住, 1938년생) 정관스님(靜觀, 1945년생) 허경스님(虛鏡, 1440년생)
능인스님(能忍, 1944년생) 법용스님(法涌, 1936년생) 성주스님(性珠, 1946년생) 정덕스님(正德, 1933년생) 현각스님(玄覺, 1935년생)
능인스님(能仁, 1946년생) 법운스님(法雲, 1927년생) 성지스님(聖智, 1926년생) 정률스님(廷律, 1963년생) 현묵스님(炫默, 1932년생)
대각스님(大覺, 1914년생) 법운스님(法雲, 1937년생) 성진스님(性眞, 1896년생) 정명스님(淨明, 1940년생) 현성스님(賢星, 1945년생)
대영스님(大英, 1903년생) 법인스님(法印, 1930년생) 성총스님(聖叢, 1944년생) 정명스님(正明, 1954년생) 현수스님(賢秀, 1943년생)
대우스님(大愚, 1949년생) 법일스님(法一, 1904년생) 성타스님(性陀, 1934년생) 정목스님(正牧, 1960년생) 현정스님(玄定, 1948년생)
대은스님(大恩, 1852년생) 법전스님(法田, 1927년생) 성탄스님(性坦, 1911년생) 정묘스님(靜妙, 1941년생) 현진스님(玄眞, 1934년생)
대행스님(大行, 1927년생) 법전스님(法典, 1945년생) 성현스님(聖賢, 1927년생) 정성스님(定星, 1940년생) 현진스님(玄眞, 1937년생)
대현스님(大玄, 1916년생) 법종스님(法宗, 1945년생) 세등스님(世燈, 1926년생) 정수스님(貞守, 1939년생) 현찬스님(賢讚, 1934년생)
대현스님(大玄, 1957년생) 법진스님(法眞, 1942년생) 소림스님(昭林, 1937년생) 정수스님(淨洙, 1941년생) 현행스님(賢行, 1928년생)
덕수스님(德修, 1922년생) 법천스님(法泉, 1944년생) 수옥스님(守玉, 1902년생) 정심스님(定心, 1918년생) 혜경스님(慧鏡, 1924년생)
덕운스님(德雲, 1942년생) 법형스님(法衡, 1921년생) 수인스님(守仁, 1779년생) 정심스님(正心, 1925년생) 혜광스님(慧光, 1940년생)
도광스님(度光, 1952년생) 법홍스님(法弘, 1943년생) 수인스님(守仁, 1899년생) 정안스님(正眼, 1950년생) 혜근스님(慧根, 1935년생)
도문스님(道門, 1942년생) 법희스님(法喜, 1887년생) 수진스님(守珍, 1916년생) 정안스님(淨岸, 1951년생) 혜돈스님(慧頓, 1949년생)
도상스님(道常, 1937년생) 법희스님(法希, 1930년생) 수진스님(修眞, 1950년생) 정운스님(淨雲, 1954년생) 혜등스님(慧燈, 1946년생)
도성스님(道成, 1922년생) 법희스님(法熺, 1952년생) 수현스님(修賢, 1940년생) 정원스님(正圓, 1939년생) 혜명스님(慧明, 1917년생)
도연스님(道鍊, 1911년생) 보각스님(普覺, 1904년생) 수현스님(修賢, 1941년생) 정인스님(正忍, 1946년생) 혜문스님(慧門, 1930년생)
도원스님(道圓, 1904년생) 보각스님(寶覺, 1938년생) 수환스님(修還, 1950년생) 정일스님(淨日, 1934년생) 혜소스님(慧沼, 1931년생)
도준스님(道準, 1900년생) 보명스님(寶明, 1946년생) 순희스님(順姬, 1917년생) 정행스님(淨行, 1902년생) 혜안스님(慧眼, 1912년생)
도헌스님(度憲, 1939년생) 보명스님(寶明, 1954년생) 신전스님(信典, 1934년생) 정화스님(淨華, 1922년생) 혜안스님(慧眼, 1923년생)
도훈스님(道勳, 1933년생) 보문스님(普門, 1938년생) 연호스님(蓮湖, 1930년생) 정화스님(貞和, 1923년생) 혜옥스님(慧玉, 1901년생)
동근스님(東根, 1951년생) 보선스님(普善, 1946년생) 영수스님(暎修, 1941년생) 종수스님(宗秀, 1922년생) 혜운스님(慧雲, 1911년생)
동성스님(東城, 1913년생) 보영스님(普暎, 1937년생) 영운스님(靈雲, 1946년생) 종수스님(鍾修, 1922년생) 혜원스님(慧圓, 851년생)
동현스님(東玄, 1945년생) 보원스님(普願, 1944년생) 영원스님(盈圓, 1949년생) 종식스님(宗植, 1944년생) 혜은스님(慧隱, 1937년생)
동희스님(東熙, 1945년생) 보인스님(寶仁, 1924년생) 영춘스님(永春, 1894년생) 종실스님(宗實, 1951년생) 혜일스님(慧日, 1919년생)
만선스님(萬善, 1883년생) 보현스님(普賢, 1934년생) 예순스님(禮順, 1587년생) 지광스님(志光, 1934년생) 혜일스님(慧日, 1947년생)
만선스님(萬善, 1906년생) 보화스님(普和, 1933년생) 운달스님(雲達, 1942년생) 지명스님(智明, 1921년생) 혜전스님(慧田, 1929년생)
만선스님(萬善, 996년생) 본각스님(本覺, 1952년생) 원오스님(圓悟, 1933년생) 지문스님(志門, 1958년생) 혜종스님(慧宗, 1930년생)
만성스님(萬性, 1897년생) 본공스님(本空, 1907년생) 원표스님(圓表, 1951년생) 지성스님(志性, 1939년생) 혜주스님(慧珠, 1925년생)
명길스님(明吉, 1931년생)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년생) 월혜스님(月慧, 1895년생) 지순스님(芝順, 1913년생) 혜준스님(慧俊, 1935년생)
명륜스님(明倫, 1937년생) 불필스님(不必, 1937년생) 육년스님(六年, 1906년생) 지연스님(知衍, 1947년생) 혜춘스님(慧春, 1919년생)
명성스님(眀星, 1931년생) 상근스님(祥根, 1872년생) 육문스님(六文, 1946년생) 지오스님(智悟, 1955년생) 혜해스님(慧海, 1921년생)
명수스님(明洙, 1925년생) 상덕스님(常德, 1951년생) 윤호스님(輪浩, 1907년생) 지우스님(至牛, 1935년생) 회선스님(會善, 1926년생)
명심스님(明心, 1947년생) 상덕스님(常德, 1952년생) 은영스님(恩榮, 1910년생) 지원스님(知元, 1931년생) 효성스님(曉星, 1898년생)
명안스님(明岸, 1941년생) 상덕스님(尙悳, 1925년생) 응민스님(應旼, 1923년생) 지원스님(智圓, 1938년생) 효성스님(曉惺, 1927년생)
명오스님(明悟, 1916년생) 상락스님(常樂, 1928년생) 인성스님(仁成, 1901년생) 지원스님(智願, 1942년생) 효성스님(曉星, 1948년생)
명완스님(明完, 1937년생) 상륜스님(相侖, 1929년생) 인완스님(仁完, 1930년생) 지인스님(智因, 1937년생) 효천스님(曉天, 1941년생)
명주스님(明珠, 1904년생) 상원스님(相源, 1939년생) 인정스님(仁貞, 1899년생) 지행스님(智行, 1941년생) 효탄스님(曉呑, 1955년생)
명철스님(明哲, 1939년생) 상조스님(常照, 1951년생) 인허스님(印虛, 1911년생) 지향스님(智向, 1941년생) 희선스님(喜善, 1929년생)
묘각스님(妙覺, 1928년생) 상훈스님(常熏, 1944년생) 인홍스님(仁弘, 1908년생) 지현스님(智玄, 1916년생) 희원스님(喜圓, 1951년생)
묘각스님(妙覺, 1942년생) 서용스님(瑞庸, 1948년생) 인화스님(忍和, 1912년생) 지현스님(智賢, 1933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