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홍스님(仁弘, 1908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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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 인홍(仁弘)스님 | |표제= 인홍(仁弘)스님 |
2022년 12월 24일 (토) 20:1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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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홍(仁弘)스님 | |
---|---|
법명 | 인홍(仁弘) |
법호 | 원허(圓虛) |
속명 | 이동이(李同伊) |
출생 | 1908.05.05. |
출가 | 1941년 |
입적 | 1997.04.18. (세수90세, 법랍57세) |
사찰 | 석남사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1064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인홍스님은 한국불교 근현대 역사의 중심에 있던 수행자로서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해서 한국불교 청정승가 확립에 헌신했으며, 봉암사 결사정신을 철저히 실천하여 수많은 제자와 후학을 양성했다.
생애
연도 | 내용 |
---|---|
1908 | 경북 영일 출생 |
1941 | 평창 오대산 상원사에서 정자(淨慈)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42 | 상원사에서 한암(漢岩)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45 | 서울 안국동 선학원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47~1953 | 월정사, 묘관음사, 대승사, 성주사 등 제방 선원에서 안거 성만 |
1951 | 경남 창원 성주사 선원 선원장 취임 및 사임 |
1952 | 양산 내원사 조계암 하안거 성만. 부산 범어사 원효암 동안거 성만 |
1953 | 강원도 정선 정암사 동안거 성만 |
1954 | 경북 봉화 홍제사 주지 취임 한국불교 승단 정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제2회임시 종회시 종회의원 |
1955 | 대구 동화사에서 초대 비구니총림 설립준비위원회 총무 |
1956 | 대한불교 조계종 종회의원 역임 |
1957~1977 | 울주 석남사 주지 역임 (20년간) |
1962 | 선림회(禪林會)를 조직하여 사답(寺畓) 8,942평 매입 |
1968 | 대한불교 비구니 우담바라회 재단이사장 |
1973 | 삼층 석가사리탑 건립 |
1976 | 대웅전, 극락전 중창. 정수선원 심검당 및 요사 9동 신축 불사 |
1986 | 대한불교 조계종 단일구족계단 비구니 증사 (별소계단 2회, 존증아사리 6회 니화상(尼和尙)) |
1987 | 전국비구니회 총재 추대 |
1990~1993 | 울주 석남사 심검당에서 3년 결사 |
1997.4.18. | 울주 석남사에서 입적(세수 90세, 법랍 57세) |
문 중 | 법기문중(法起) |
수행지침 | 세간에 영화롭고 욕되는 일들 알고 보니 거품이요, 몽환이로다. 오늘날 법문 듣고 모두 잊으니 천지가 내 것이요, 광명뿐일세. |
상 훈 | 조계종 종정 효봉화상으로부터 사찰수호 공로상 수상(1964) 외 다수 |
수계제자 |
묘경(妙慶)· 진관(眞觀)· 철마(鐵馬)· 묘영(妙英)· 정화(正華)· 법희(法希)· 백졸(百拙)· 법용(法通)· 불필(不必)· 도문(道門)· 원광(圓光)· 혜주(慧珠)· 법상(法常)·법운(法雲)· 삼인(三印)· 도연(道淵)· 현욱(玄旭)· 정심(正心)· 명훈(明薰)· 도욱(道旭)· 정각(正覺)· 현학(玄學)· 현지(玄智)· 정기(正機)· 무진(無盡)· 대법(大法)· 수덕(修德) |
활동과 공헌
출가인연
원허당(圓虛堂) 인홍(仁弘)스님은 1908년 경북 영일군 대송면 동촌리에서 아버지 이종순과 어머니 하수이 사이의 3남 3녀 중 2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월성이며, 이름은 이동이(李同伊), 또는 이귀동(李貴同)으로 불렸다. 어머니가 투구와 갑옷을 갖춘 늠름한 장군이 백마를 타고 방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는데, 일생을 출가 장부로 살았던 선사의 행적을 예견한 태몽이었다.
구도
스님은 1941년 9월 출가 입산의 서원을 세우고 해인사에 참배했으나 참다운 법연을 얻지 못해 강원도 오대산 적멸보궁을 참배하고 상원사에서 한암 큰스님을 친견하고나서야 비로소 막혔던 가슴이 확 트였다고 한다. 스님은 선지식을 만난 그때의 감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세간에 영화롭고 욕(辱)되는 일들 알고 보니 거품이요, 몽환(夢幻)이로다.
오늘날 법문 듣고 모두 잊으니 천지가 내 것이요, 광명뿐일세.
인홍스님은 세상사를 몽환으로 보는 무상을 철두철미하게 깨닫고 그 몽환으로부터 벗어나는 생사 해탈의길을 찾았다. 스님은 곧 월정사 지장암에 주석하셨던 대비구니 정자(淨慈) 노스님께 은사의 예를 올리고 출가하였으며, 이듬해 한암 큰스님을 모시고 사미니계를 수지했다. 1943년에는 강릉포교당에서 금강산 유점사의 일운(一雲)율사로부터 보살대계(菩薩大戒)를 수지하고, 1945년에는 서울 안국동 선학원에서 동산율사께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그 후 수덕사 만공(滿空)회상에서 3하안거를 마치고, 1947년 오대산 한암(漢岩)회상에서 2하안거를 성만했다. 어느 날 큰 구두를 얻어 신고 천지를 활보하는 꿈을 꾼 다음에 꿈에서와 같이 사불산 대승사, 희양산 봉암사, 창원 성주사 등지에서 자운(慈雲), 성철(性徹), 향곡(香谷), 보문 스님 등의 선지식을 친견했다.
인가
1949년에는 월내 묘관음사(기장군 월내)에서 동안거 중, 성철 큰스님과 법연을 얻게 된다. 인홍스님은 수행 중의 경계에 대하여 인가를 얻고자 했다. 그러나 성철 큰스님은 동정일여와 몽중일여와 숙면일여를 얻어서 오매일여가 되어야 비로소 수행의 경지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3분단의 법문을 설했다. 인홍스님은 이 때의 인연으로 선지식에 대한 믿음이 일생의 스승으로서 성철 큰스님을 모시는 기연이 되었다. 성철 큰스님은 다시 '공부인은 실제로 오매일여를 넘어서서 내외가 명철한 구경의 묘각을 얻어야 비로소 견성이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목숨을 돌보지 않고 노력정진 해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셨다.
인홍스님은 '출가자는 부처님 정법대로 살아야 하고, 부처님이 제정하신 계율은 수행자의 생명이다.'라는 성철 큰스님의 숭고한 구도자의 정신 앞에 참스승을 만났다는 환희심을 느끼고 도를 구하는 길에 생명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한다. 인홍스님은 그때의 심경을 다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해동(海東)에 천고(千古)의 밝은 달은
강남(江南)의 만리천(萬里天)을 비추고 있네
저 맑은 달빛은 본래 피차(彼此)가 없는 것을
참선자(參禪者)는 분별망상(分別妄想) 떠나는 길 뿐
강풍(江風)은 만고(萬古)에 불고 있고
명월(明月)은 천추(千秋)에 변함이 없네
만고천추에 주인공이여
명월과 강풍 너밖에 누고?
정법수호 대중결사
인홍스님이 경남 창원의 성주사에 있을 때 처음으로 정법수호의 회상에 동참했다. 40여 명의 대중스님이 모여서 성철 큰스님의 공주규약(共住規約)을 실천한 대중 결사였다.
이것은 성철 큰스님을 모시고 묘엄, 불필스님과 함께하였으며, 1947년 성철 큰스님의 문경 봉암사 결사정신이기도 했다.
승려들의 삶이 세속보다 더 어지러웠던 당시로서는 일대혁신이었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라는 성철 큰스님의 한마디가 현실에 적용되는 과정 그 자체가 인홍스님을 고무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인홍스님은 세속화된 일본식 불교를 개혁하는 가운데에서 일생의 수행좌표를 확립했으며 비구니에게도 출가정신의 숭고함을 유감없이 가르쳤다.
결사정신에 근원을 둔 이러한 출가정신의 확립은 1951년 성주사와 1954년 홍제사에서 유감없이 발휘하여 세속화된 승단 정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불교정화 운동
인홍스님은 1954년 11월 제2회 임시종회에서 위의 스님들과 함께 비구니 종회의원으로 선출되어 비구스님들과 함께 전국승려대회 준비 등 모든 어려운 일을 도맡았다. 인홍스님은 1955년 불교정화가 끝난 뒤 비구니 중앙간부로서 총무부장을 맡았다.
불교정화운동이 끝난 뒤에 대구 동화사를 전국비구니총림으로 개설하려고 도량을 인수했으며, 초대 동화사 주지는 비구니 성문스님이셨다. 비구니스님들은 전국비구니총림을 개설하려는 의욕에 불탔으나 비구스님들 중에는 비구니가 동화사를 맡은 것에 불만을 가진 분도 많았다. 결국은 비구니의 힘으로 동화사를 지키기는 어려웠고, 비구니는 비구니들대로 마음을 맞추어 나가기도 힘든 상황에서 '사람 노릇하면 공부 못한다.'는 성철 큰스님의 가르침에 분연히 자리를 털고 나왔다고 회고했다.
원적
인홍스님은 처음 출가할 때에 세상을 몽환으로 보고 생사해탈의 길에 올랐고, 일생을 비구니 승가의 출가정신을 확립시키는 데에 열정을 다 바쳤다. 그리고 1997년 4월 18일 석남사에서 자신의 행적을 다음과 같이 한 편의 열반송을 남기고 세수 90세, 법랍 57세로 열반에 드셨다.
삼세 불조 가신 길을 나도 가야지
미수생애 사바의 길 환몽이 아님 없도다.
일엽편주처럼 두둥실 떠가는 곳
공중에 둥근 달 밝을 뿐이네.
제자 법희스님은 인홍스님의 다음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고 있다고 한다.
“중은 신발과 같이 살아야 한다 하셨습니다. 발은 신체의 가장 아래에 위치해 있습니다. 신발은 그 발을 보호하지요. 눈에 잘 띄지 않는 일이라도 의미가 있을 터이니 마음을 다하라는 뜻일 수 있겠습니다. 불평하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똥을 밟아도, 언 땅을 걸어도 신발은 아무 말 하지 않습니다. 묵묵히 걷는 발을 조용히 받치고 있을 뿐입니다.”
인홍스님 일대기
인홍스님 일대기를 정리한 『길 찾아 길 떠나다』라는 책이 2007년 출간되었다. 저자 박원자씨는 인홍스님을 '가야산 호랑이'라고 불리는 성철 스님과 비교하여 '가지산 호랑이'로 불릴 정도로 오직 '생사해탈'을 위해 수행한 엄격한 수행자였다고 정리했다.
참고문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년, p495~517)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년, p359)
- 법보신문 2017.01.03일자(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6002)
- 박원자 저, 『길 찾아 길 떠나다』(인홍스님 일대기), 김영사 (2007년)
- [사진] 킬리만자로를 꿈꾸며(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pih1188/222196833843)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
인홍(仁弘)스님 | 본항목 | 인홍스님(仁弘) 1908 ~ 1997 | 仁弘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인홍스님(仁弘,_1908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
인홍(仁弘)스님 | 법기문중(法起) | ~의 일원이다 | |
인홍(仁弘)스님 | 정자(淨慈)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 | |
인홍(仁弘)스님 | 평창 상원사 | ~에서 출가하다 | |
인홍(仁弘)스님 | 한암(漢岩)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
인홍(仁弘)스님 | 동산(東山)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비구니계 |
인홍(仁弘)스님 | 마산 성주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선원 |
인홍(仁弘)스님 | 한국불교정화운동 | ~ 에 참여(기여)하다 | |
인홍(仁弘)스님 | 전국비구니회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동화사비구니총림총무(초대) |
인홍(仁弘)스님 | 대한불교조계종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중앙종회의원 |
인홍(仁弘)스님 | 울주 석남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주지 |
인홍(仁弘)스님 | 선림회(禪林會) | ~을(를) 설립(건립)하다 | |
인홍(仁弘)스님 | 대한불교비구니우담바라회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재단이사장 |
인홍(仁弘)스님 | 구족계단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비구니 증사(별소계단 2회 존증아사리, 6회 니화상(尼和尙)) |
인홍(仁弘)스님 | 전국비구니회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총재 |
인홍(仁弘)스님 | 석남사 심검당 | ~에서 3년 결사하다 | |
인홍(仁弘)스님 | 울주 석남사 | ~에서 입적하다 | |
인홍(仁弘)스님 | 안거 | ~을(를) 성만하다 | 평창 월정사, 문경 대승사, 문경 봉암사, 창원 성주사, 기장 묘관음사, 양산 내원사 조계암, 부산 범어사 원효암, 정선 정암사 등 |
지도
- 석남사 :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1064
주석
다른 비구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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