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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6일 (일) 09:42 판
도상(道常)스님 | |
---|---|
법명 | 도상(道常) |
법호 | 성욱 |
속명 | 오봉자(吳奉子) |
출생 | 1937.11.05. |
출가 | 1943년 |
입적 | |
사찰 | 북고사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520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도상(道常)스님은 청량암에서 출가하여 교학에 능하였고 대전에서 어린이 포교에 힘쓴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
1937 | 대전 출생 |
1943 | 청량암에서 관주(觀主)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50 | 백양사에서 만암(曼庵)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67 |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동학사 강원 졸업 |
1975~2004 | 대전 회전사, 무주 북고사에서 포교활동 |
1987~1997 | 동학사승가대학 총동문회 회장 |
1997~1999 | 대전 청림회 회장 |
2004~ | 북고사 주석 및 가람 수호 |
문중 | 백양사(白羊寺)문중 |
수계제자 | 현오·경담 |
활동 및 공헌
출가
성욱 도상(道常)스님은 1937년 11월 5일 전북 부안군 변산면 지서리에서 아버지 오말동과 어머니 김영순 사이의 2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해주이며, 이름은 오봉자이다. 스님은 1943년 어린나이에 진중한 불연에 닿아 청량암에서 관주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수학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여성들에 대한 차별을 보며 우리나라의 남존여비사상에 분심을 냈던 스님은 9세에 『초발심자경문』을 배우면서 발심하고 신심이 더욱더 돈독해졌다. 부처님 법으로 역류하는 자신의 삶을 관조하며 부처님 진리로 생을 살아갈 신심을 내었다.
스님이 젊었을 때는 비구니 강원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논산 정덕사에서 비구스님들과 함께 강원 생활을 했고, 다시 화엄사 금정암 강원으로 옮겨서 『치문』과 사집을 수료했다.
스님의 나이 18세부터 19세까지는 초기 정화시기로 서울 안국동 선학원에서 비구니 스님들이 일 년 동안 거주하면 서 대처승 정화를 하던 때였 다. 당시 스님은 용봉스님과 탄허스님께 계속 경전공부를 했다. 스님이 20세 되던 1956년 하동산 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고, 정화 후 제1강원으로 지정된 선암사로 강을 배우러 가서 사미니과를 마쳤다. 스님이 선암사에 있을 때 달마전에는 선객스님들이 계셨는데, 강사스님이 선객이라 선(禪)과 교(敎)를 같이 지도해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학사에서 경봉스님으로부터 수연스님과 함께 대교과를 수료하고 6회로 졸업했다.
탁월한 재능
옛날에는 한문의 문리를 터득하기 위해서 학인들에게 한시 짓기를 가르쳤는데, 스님은 항상 100점 만점에 100점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한시 실력을 보였다.
강사스님께 후한 점수를 주신 연유를 여쭈니 ‘자고로 없는 일인데 스님의 선지가 밝아서 점수를 더 주었다.’고 말씀하셨다. 스님은 강사스님께 선지에 능히 밝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칭찬과 상장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이에 안주하지 않고 스님은 문장실력을 키우고자 많은 책을 두루 섭렵했다. 스님이 『화엄경』 현담을 볼 때의 일이다. 『화엄경』 현담을 볼 때는 토가 없이 봐야 하는데, 그것이 너무 어려워 고민이 많았다.
어느 날 스님이 꿈을 꾸니 이상하게도 꿈에선 30장씩이나 보는데도 어렵지 않고 매끄럽게 글줄이 잘 나갔다. 이튿날 문강시간에 도상스님이 중강을 하던 중 한 대목이 틀렸다는 강사스님의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되어 뜻을 굽히지 않고 주장했다. 강사스님은 지적을 했던 대목을 다시 보시고 그제야 스님이 맞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후 스님은 더욱 자신감을 갖고 용기를 얻게 되었다.
용맹정진과 병마 극복
스님은 21세에 강고봉 스님께 강을 들으러 다니라는 명원스님의 권유로 진주 미륵암으로 갔다.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함께 간 명원스님은 건강이 악화되어 수행을 계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돌아갔다.
도상스님은 혼자라도 남아 수행 정진을 이루겠다는 일념을 세웠다. 그것이 기특했는지 조실스님께서 방을 비워주셨고, 스님은 금식을 단행하며 용맹장좌로 7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다라니 기도를 했다. 후에 이야기를 전해들은 모든 스님들이 '미쳤다'고 할 만큼 용맹정진을 했다.
어려운 형편의 강원에서 좁쌀죽과 보리밥으로 근근이 끼니를 이어온 데다 단식기도까지 이루니 스님의 체력은 한계에 다다랐다. 그렇지만 스님의 정신만은 더욱 혁혁하게 살아 그 광명을 발했다. '광겁장도(廣劫障道)에 수마막대(睡魔莫大)라 잠이 오는 경계가 큰 경계인데, 다라니 기도를 하고 나니 졸음이 와도 눈꺼풀이 내려오지 않았고, 몸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스님이 선암사에 살 때에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대중들과 같이 생활하면서도 지칠 줄 모르는 구도의 열정으로 밤 12시까지 공부했고, 대중들이 잠을 잘 때도 항시 깨어있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래서 스님은 선암사와 동학사에서도 『치문』과 사집까지 중강을 했다. 스님은 선암사에서 19세부터 21세까지 거주하고 동학사에서 5년 정도 살았다. 그리고 세등선원에서 안거를 성만하고, 29세에 해인사 감로계단에서 비구니계를 수계받았다.
수행과 생활
스님의 연세 39세 되던 해에 대전에 회전선원을 창건했다. 학구열이 유달리 강했던 스님은 불사와 은사스님의 시봉 때문에 더 많은 공부를 하지 못하게 되자 '행주좌와 어묵동정' 이라는 구절을 떠올리며 팔위의(八威儀) 내에서 불사하며 공부하리라 결심했다. 이후 대전의 회전선원을 불사 창건주인 신도들에게 위임해놓고, 1998년에 무주 북고사의 주지를 맡았다.
다음 생에는 도솔천 내원궁에 태어나고 싶다는 도상스님은 이를 위하여 금생에 부지런히 정진한다는 원력을 세웠다. 평소에도 『초발심자경문』에 나오는 '위타위기수미선(爲他爲己雖微善)이나 개시윤회생사인(皆是輪廻生死因)' 이라는 글을 마음에 새기고, '금생(今生)에 미명심(未明心)하면 적수(滴水)도 야난소(也難消)니라.'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다음 생에 더욱 어렵나니)라는 대목을 염두에 두면서 정진하고 있다.
또한 내생에 만약 지옥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스님이 되겠다는 원력을 가지고, 거룩한 부처님의 법을 신봉하며 일말의 후회 없는 정진을 이루고 있다.
포교와 후학에 대한 당부
스님은 중강을 했지만 강사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널리 보배로운 부처님의 말씀을 설하겠다는 포교의 원력을 세웠다. 간절한 포교의 염원을 담아 1995년 대전 회전선원에 불도유치원을 세워 어린이 포교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주위에 있는 타종교 유치원의 영향으로 운영상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선견한 스님은 침을 배운 적이 있는 데, 건강이 좋지 않은 신도들이나 스님들에게 침을 놓아주면서 교화를 하기도 한다. 스님은 후학들에게 내외전을 가리지 말고 부지런히 익혀 열심히 정진하여 불법의 동량이 되어 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2004년 세수 68세, 법랍 54세인 도상스님은 북고사 주지로 수행 정진 중이다.
수계제자로는 현오·경담스님이 있다.
무주 북고사
무주읍에서 북쪽으로 2㎞ 지점에 있는 향로산(香爐山) 기슭에 위치한 북고사(北固寺)는 고려 말경에 경월사(慶月寺)로 설립되었다고 전하지만, 창건 연혁에 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북고(北固)’라는 명칭은 조선 초기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일설에 따르면, 향로산 주변 지형을 살핀 무학대사가 ‘고을의 남쪽에는 적상산이 있어 튼튼하지만, 북쪽에 있는 향로산은 산세가 너무 허약하다’고 하면서 절에다 탑을 세워 비보(裨補)할 것을 고을 수령에게 제안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서 절의 명칭을 ‘북고’로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북고사에 관한 기록은 18세기 이후에 간행된 각종 읍지에 ‘부(俯)로부터 북쪽으로 5리 거리에 있다’고 하여 향로산의 사찰 가운데에 북고사가 등장하고 있어 조선시대에도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1898년(광무 2) 조병유(趙秉瑜)가 간행한 『적성지(赤誠誌)』 사찰조(寺刹條)에 따르면, ‘북고사는 향로산에 있으며, 무주부로부터 북쪽으로 5리 떨어진 곳에 있다. 옛 이름은 경월사(慶月寺)로 약 700년 된 고찰이다’라고 기록되었다. 이로써 보면, 고려조에 창건된 절로 생각되지만, 다른 사찰들의 기록과 마찬가지로 이 기록을 신뢰하기가 어렵다.이후 1831년(순조 31)에는 신중탱화(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7호)를, 1899년(광무 3)에는 칠성탱화를 봉안하는 등의 불사가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 30본사 체제에서는 보석사(寶石寺)의 말사로 그 격을 유지하면서 1928년 극락전에 후불탱화와 산신탱화를 봉안했다.
북고사의 주불전은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으로 뒤쪽에 산왕당과 칠성각이 배치되었고, 서편에 석탑과 요사를 시설하였다. 극락전·산왕당·칠성각 3동은 모두 1976년에 관주스님에 의해 중건된 것이다. 이후 도상스님과 관주스님이 주지를 번갈아 맡으면서 불사를 일으켜, 1978년에 불전을 보수하고 1993년에 극락전을 중수하였다. 1994년에는 극락전을 해체하면서 남은 목재를 이용해 요사를 짓고 진입도로를 보수하였으며, 1996년에는 도상스님이 미륵불을 조성·봉안하여 가람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1993년에 중수된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 형식의 건물로,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칠성각, 지장전, 요사, 산왕당은 모두 맞배지붕 건물로, 규모는 칠성각, 지장전, 요사가 모두 3칸이고, 산왕당만이 1칸이다.
북고사 극락전의 본존불(本尊佛)로 모시고 있는 아미타여래좌불은 1657년(효종 8) 덕유산 운수암(雲岫菴)에서 조성된 목불(木佛)로, 언제 북고사로 옮겨왔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이 불상은 2000년 11월 17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3호로 지정되었다.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74138)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108~112.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83.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74138)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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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상(道常)스님 | 본항목 | 도상스님(道常, 1937~) | 道常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도상스님(道常,_1937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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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상(道常)스님 | 백양사문중(白羊寺) | ~의 일원이다 | |
도상(道常)스님 | 관주(觀主)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 | |
도상(道常)스님 | 청량암 | ~에서 출가하다 | |
도상(道常)스님 | 만암(曼庵)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
도상(道常)스님 | 석암(昔岩)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비구니계 |
도상(道常)스님 | 무주 북고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주지 |
도상(道常)스님 | 대전 회전선원 | ~을(를) 창건하다 |
지도
- 북고사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520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