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덕(中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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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부터 조선전기까지 승과에 합격한 뒤 2년 이상 수행한 승려에게 내려 준 승계.

개설

조선시대에 선시(選試) 즉 승과(僧科)에 합격한 승려는 대선(大選)의 승계(僧階)를 받았는데, 대선에서 승차(陞差)하면 중덕이 되었다.

담당 직무

중덕은 사찰의 주지(住持)가 될 수 있었고(『성종실록』 9년 8월 4일), 흥천사(興天寺)흥덕사(興德寺)에 각각 설치된 선종도회소(禪宗都會所)교종도회소(敎宗都會所)의 장무(掌務)로 임명되기도 하였다(『세종실록』 7년 1월 25일). 또한 선시의 감독 및 합격자 선발에 참여하기도 하였다(『세종실록』 6년 3월 27일).

내용과 변천

중덕은 고려후기에 승계가 변화하는 가운데 대선(大選)과 함께 새로 등장한 승계로,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사용되었다. 고려시대 말기를 거치면서 ‘대선-중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승계가 정비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선시에 합격하면 대선이 되었는데, 중덕으로 승차하면 사찰의 주지가 될 수 있었다. 중덕에게 허용된 노비는 처음에는 7구(口)이다가(『태종실록』 14년 윤9월 27일) 나중에 10구로 늘었으며, 품질(品秩)은 6품(品)에 준하였다(『성종실록』 8년 1월 20일). 이조에서 왕의 비답(批答)을 받은 뒤 대간(臺諫)서경(署經)을 거쳐야 중덕의 승계를 받을 수 있었다(『성종실록』 8년 3월 4일). 대선에서 중덕을 거친 다음, 선종의 경우에는 ‘선사(禪師)-대선사(大禪師)-도대선사(都大禪師)’의 순으로 승차하였고, 교종은 ‘대덕(大德)-대사(大師)-도대사(都大師)’의 순서로 승차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에는 중덕에 관한 기록이 등장하지 않는다. 1566년(명종 21)에 선교양종(禪敎兩宗)과 승과가 혁파됨에 따라 더 이상 선시 합격자를 배출하지 못하게 되면서 중덕의 승계도 점차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용재총화(悀齋叢話)』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上·下
  • 김용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신구문화사, 2010.
  • 허흥식, 『고려불교사연구』, 일조각, 1997.
  • 원영만, 「고려시대 승관제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 최재복, 「조선초기 왕실불교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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