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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57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의 역도 중 하나인 장수도에 속한 역으로, 오늘날의 경상북도 군위군 우보면에 위치해 있었음.

개설

고려전기 전국의 525개 역을 22개 역도(驛道)로 편성하는 과정에서, 우곡역(牛谷驛)은 상주도(尙州道)에 소속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세조대에 역제(驛制)를 41역도-543속역 체제로 개편할 때, 장수도(長水道)를 구성하는 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오늘날의 경상북도 군위군에 해당하는 의흥현(義興縣)에 위치하였으며, 갑오개혁 때까지 존속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역(驛)은 중앙 집권 체제를 유지하고, 중앙과 지방의 행정 명령 계통을 확립하기 위한 육상 교통 기관으로 설치되었다. 왕명(王命) 및 긴급한 군사 기밀의 전달, 사신의 왕래에 따른 영송지대(迎送支待) 등을 주로 담당하였으며, 그밖에 진상품이나 공부(貢賦)의 운송 및 왕래인(往來人)의 규찰 등을 맡아보았다. 우곡역도 이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고려시대부터 영남 지역에 설치되었다.

조직 및 역할

역참에는 역역(驛役)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역리(驛吏)와 역노비(驛奴婢) 등을 포함한 다양한 역민(驛民)이 편성되어 있었으며, 역의 재정에 충당하기 위해 역위전(驛位田) 또는 마전(馬田)이 지급되었다.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우곡역에는 역리 130명, 역노 10명, 역비 3명과 대마(大馬) 2필, 중마(中馬) 2필, 복마(卜馬) 10필 등 총 14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다. 찰방역(察訪驛)은 영천의 장수역(長水驛)이다.

변천

『고려사(高麗史)』 참역(站驛) 조에 따르면 우곡역은 고려시대 상주도에 소속된 25개 속역 가운데 하나로, 경상도 의흥에 위치해 있었다. 정확한 설치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고려의 역제가 22역도-525속역 체제로 정비된 1061년(고려 문종 15)에서 1136년(고려 인종 14) 사이에 상주도에 속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초에 전국적인 역도-역로 조직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안기도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우곡역은 안동의 안기역(安奇驛)‧오천역(瓮泉驛)‧일직신역(一直新驛), 임하의 금소역(琴召驛), 의성의 청로역(靑路驛)‧철파역(鐵破驛), 영해의 병곡역(柄谷驛)‧석보신역(石保新驛), 영덕의 남역(南驛)‧주등역(酒登驛), 예안의 예안신역(禮安新驛)‧용안역(龍安驛), 청송의 문거역(文居驛)‧화목역(和睦驛), 진보의 진보신역(眞寶新驛) 등과 함께 안기도(安奇道)에 속하였다. 그 뒤 세조 연간인 1460년(세조 3)에는 안기도‧장수도‧황산도의 일부 속역을 송라도(松羅道)로 편성함에 따라 송라도에 소속되었다. 이어 1462년(세조 8)에 각 도의 역참을 파하고 역로를 정비하여 찰방(察訪)역승(驛丞)을 둘 때는, 장수역‧청통역(淸通驛)‧청경역(淸景驛)‧화양역(華陽驛)‧압량역(押梁驛)모량역(毛良驛)아화역(阿火驛)의곡역(義谷驛)‧경역(鏡驛)‧잉보역(仍甫驛)‧사리역(沙里驛)‧조역(朝驛)‧구어역(仇於驛)‧노곡역(奴谷驛)‧인비역(仁庇驛) 등과 함께 장수도에 속하였다. 조선시대 전기의 역참 제도가 완비된 『경국대전(經國大典)』 체제에서도 우곡역은 여전히 장수도에 속하였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따르면, 우곡역은 의흥현 관아 남쪽 10리 지점에 위치하였다. 오늘날의 행정 구역으로는 경상북도 군위군 우보면 모산리 우곡마을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여지도서(輿地圖書)』
  • 『대동지지(大東地志)』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 오일순, 「고려시대 역제의 변동과 잡색역」,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 정요근, 「고려전기 역제의 정비와 22역도」, 『한국사론』45, 2001.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硏究」,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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