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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10 기준 최신판



전통 별자리인 28수(宿) 가운데 23번째 별자리[宿].

개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28수가 방위에 따라 네 가지 신령한 동물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고 여겼다. 여귀성(輿鬼星) 또는 귀성(鬼星)은 그중에서 남방 주작(朱雀)에 속하는 일곱 별자리 중에서 둘째 별자리로서 주작의 눈에 해당한다. ‘여귀(輿鬼)’라는 이름은 네 별이 상여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붙었다. 서양 별자리로는 게자리에 해당하는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및 특징

밤하늘에는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붙박이별[恒星]들과 그 붙박이별을 배경으로 늘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해와 달, 그리고 오행성 등의 태양계 천체들이 있다. 이들 태양계 천체들은 밤하늘에서 주로 황도(黃道)를 따라 운행한다. 그래서 태양계 천체들의 위치를 기술할 때 황도 주위에 별자리들을 정해두고 그 별자리들에 대한 상대 위치로 기술하면 편리하다. 이와 같은 동기로 서양 천문학에서는 황도 12궁을 지정하였고, 중국에서는 28수를 지정하였다.

중국 천문학에서는 왜 28개의 별자리를 정하였는지에 대해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그중 유력한 설은, 달의 운행 주기인 항성월을 기준으로 했다는 설이다. 1항성월은 약 27.32일이기 때문에, 황도 주변에 27개나 28개의 별자리를 정해두면 매일 변하는 달의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천문학에서는 28수를 이루는 28개의 별자리들은 각 계절별로 7개씩 나누었다. 그리고 이들은 신령한 동물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고 보았다. 주로 봄과 초여름 밤에 보이는 각(角)·항(亢)·저(氐)·방(房)·심(心)·미(尾)·기(箕)는 청룡(靑龍)의 모습을 이루고 있고, 여름과 가을철에 보이는 두(斗)·우(牛)·여(女)·허(虛)·위(危)·실(室)·벽(壁)은 현무(玄武)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가을과 겨울에 보이는 규(奎)·누(婁)·위(胃)·묘(昴)·필(畢)·자(觜)·삼(參)은 백호(白虎)의 모습을 이루고 있고, 겨울에 보이는 정(井)·귀(鬼)·유(柳)·성(星)·장(張)·익(翼)·진(軫)은 주작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대에는 여귀성을 여귀라고 불렀는데, 여귀는 상여라는 뜻이다. 여귀성의 모양이 네모꼴인 것은 상여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귀성의 네모꼴 안에 들어 있는 적시기(積尸氣)라는 천체는 쌓여 있는 시체라는 뜻으로 상여라는 의미와 서로 통한다. 이 적시기는 귀성의 보관부좌(輔官附座)이다. 적시기의 기(氣)는 낱별이 아니라 희뿌옇게 보이는 천체, 즉 퍼진 천체라는 의미인데, 이 천체는 프레세페 성단이다. 단원자(丹元子)의 『보천가(步天歌)』에는 “네 별이 책처럼 네모지니 마치 나무 궤짝 같다.” 하고 표현하였다.

조선시대의 천문학자들은 별점을 칠 때 일반적으로 『천문류초(天文類抄)』를 참고하였다. 이 『천문류초』의 원전은 송(宋)나라의 정초(鄭樵)가 편찬한 『통지(通志)』「천문략(天文略)」이다.

『통지』「천문략」에서는 여귀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귀성은 황도의 길목에 있으며, 사망과 질병을 주관한다. 장형(張衡)이 이르기를 ‘여귀성은 제사를 주관하며, 하늘의 눈[天目]이다. 또한 시력을 주관하니 간악한 음모를 환하게 감찰하는 것을 주관한다. 동북성은 말을 모으는 것[積馬], 동남성은 군사를 모으는 것[積兵], 서남성은 옷감을 모으는 것[積布帛], 서북성은 금과 옥을 모으는 것[積金玉]을 주관하며, 그 천변에 따라서 점을 친다. 중앙의 한 별은 적시(積尸) 또는 적시기라고 부르는데 기운[氣]으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사망과 상사(喪事)·제사를 주관하니, 일설에는 작두[鈇鑕]이며 목 베어 주살함을 주관한다고 한다. 여귀성이 밝고 크면 곡식이 영글고, 밝지 않으면 사람들이 흩어지며, 동요하며 빛이 위로 올라가면 세금이 무거워지고 요역(徭役)이 많아진다. 별이 이동하면 사람들이 근심하고, 법령(法令)이 급해진다. 여귀성은 별자리의 의미가 불길한 데다가 황도 근처라서 해·달·오행성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천문학자들이 주의를 기울여 관측하는 별자리였다.’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귀성’, ‘여귀’, ‘여귀성’ 등으로 표현되었다. ‘귀성’으로 표현된 예를 들면, 달이 귀성의 남쪽으로 반 척(尺)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태종실록』 1년 12월 19일). 조선시대에 사용된 각도 단위는 1척(尺)이 대략 현재의 1~2도 정도로 알려져 있다. ‘여귀’라고 표현된 사례는, 화성이 여귀로 들어갔는데, 화성이 적시와 더불어 서북쪽에 1척 정도 간격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태종실록』 10년 3월 6일). 여기서 적시는 적시기를 뜻하며, 적시성(積屍星)이라고 표현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밤에 금성이 귀성에 들어가서, 적시성과 더불어 서로 침범하였다는 기록을 들 수 있다(『명종실록』 8년 4월 19일). ‘여귀성’이라고 표현된 사례로는 밤에 토성이 역행하여 여귀성으로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다(『명종실록』 18년 12월 9일). 여기서 토성과 같은 외행성의 역행은 잘 알려진 천체 현상인데, 역행은 며칠 동안 서서히 발생한다는 사실에 유의해서 번역해야 한다. 여귀성을 ‘귀수’라고 표현한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혜성의 좌표를 입수도(入宿度)로 표시할 때 귀수의 수도(宿度) 안에 보였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영조실록』 45년 8월 13일). 여기서, 수도라는 것은 어떤 수거성(宿距星)과 이웃한 수거성 사이의 적경 간격을 말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 『통지(通志)』 「천문략(天文略)」
  • 『송사(宋史)』 「천문지(天文志)」
  • 『보천가(步天歌)』
  • 『천문류초(天文類抄)』
  • 안상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우리 별자리』, 현암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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