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복연(飮福宴)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음복연 |
한글표제 | 음복연 |
한자표제 | 飮福宴 |
상위어 | 가례(嘉禮), 연례(宴禮), 연향(宴享) |
관련어 | 음복(飮福), 음복례(飮福禮) |
분야 | 문화/예술/음악 |
유형 | 의식·행사 |
집필자 | 송지원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음복연(飮福宴)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조실록』 4년 1월 16일, 『명종실록』 10년 3월 26일 |
제사에 올렸던 술과 제물(祭物)을 여럿이 나누기 위해 설행(設行)하는 연향.
개설
종묘제나 사직제, 원구제, 문소전제향, 회맹제(會盟祭), 부묘의(祔廟儀) 등의 제사 의례 후에 연속적으로 거행하는 연향으로 오례 중 가례(嘉禮)에 속한다. 음복연(飮福宴)은 선행 의례로서 ‘음복(飮福)’을 해야 할 이유가 있는 특정 의례가 연행된 후라야 비로소 설행되므로, 독립적으로 연행되는 의례가 아니라는 점에서 여타 의례와 차별화된다. 음복연은 ‘신의 은혜를 멈추지 않는다[不留神惠]’는 의미로 행해진 가례에 속하는 의례이다.
연원 및 변천
음복연에서 ‘음복’이란 ‘복을 마시고 먹는다’는 의미가 있다. 신명(神明)이 이미 흠향(歆饗)한 제물을 다시 받아 마시고 먹는 행위는 복을 받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음복하는 행위는 제사 의례에 포함된 음복례에서도 이루어지지만 제사 의례를 모두 마친 후 별도로 연향의 성격을 갖는 음복연을 통해 그 의미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음복연은 제사를 통해 내린 신의 은혜를 연향으로 이어 가져오는 것이므로 왕을 비롯해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제사 지낸 술, 즉 복주(福酒)를 마시는 절차가 그 핵심을 이루어 여타 목적으로 행해지는 일반 연례(宴禮)와 차이가 있다.
조선조에 ‘음복연’이라는 이름으로 의례를 행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전기의 일로서 종실과 대신을 불러 광연루에 음복연의 자리를 마련하였다는 기사가 1411년(태종 11)에 보인다. 그러나 『세종실록』 「오례」에는 음복연의 의주(儀註)가 빠져있고 『세조실록』에 세조대에 시행한 음복연 의주가 기록되어 있어(『세조실록』 4년 1월 16일)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음복연 의주의 가장 이른 기록 내용은 세조대의 것부터 확인할 수 있다. 『국조오례의』에 수록된 음복연 의주의 틀은 이때 마련된 것으로 보이며 양자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음이 확인된다.
음복연은 선행 의례를 행한 당일에 베풀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하루 혹은 이틀 후에 하기도 했으며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 며칠 뒤로 미루어 행하기도 했다. 일식이나 극심한 흉년 등의 천재지변이 있을 때에는 생략하기도 했다. 음복연의 설행은 음복례와 중복된다는 혐의가 있어 생략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기도 했으며 한편으로는 음복연이 단순히 ‘먹고 즐기는’ 사사로운 연회가 아니고 법제에 실려있는 일이므로 폐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논의와 엇갈리기도 했다(『명종실록』 10년 3월 26일). 이러한 논의는 결국 17세기 후반 이후에는 더 이상 설행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절차 및 내용
음복연에서는 왕과 왕세자가 주인공이 되고 그 외 종친과 의빈이 시연(侍宴)을 하고, 문·무관 2품 이상과 승지가 참여한다. 선행 의례가 제사일 경우 제향관(祭享官)이 참여한다. 제사를 마치고 돌아온 왕은 이를 경하하는 하의(賀儀)를 행한 후 잠시 쉬었다가 음복연을 행한다.
의례의 절차는 여러 준비 과정을 거친 후 초엄(初嚴)-이엄(二嚴)-삼엄(三嚴)의 단계를 통해 예를 행할 준비가 다 되었음을 왕에게 알리고 전(殿) 안팎의 문이 열린다. 고취(鼓吹) 악대가 연주하는 음악에 맞추어 의장(儀仗)이 선도하는 가운데 왕은 여(輿)를 타고 움직인다. 왕이 전의 문으로 들어가려 할 즈음이 되면 협률랑(協律郞)의 신호에 맞추어 헌가(軒架) 악대가 음악을 연주하고, 왕이 도착하여 어좌(御座)에 오를 즈음이면 향로(香爐)의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각각의 자리에 있던 참예자는 왕에게 배례(拜禮)한다. 배례는 ‘국궁(鞠躬)-사배(四拜)-흥(興)-평신(平身)’의 사배례(四拜禮)를 행한다.
이후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사옹원제조에 의해 술그릇을 올리는 절차인 진주기(進酒器)로 의례가 시작된다. 그 뒤 진찬안(進饌案)-진화(進花)-진선(進膳)-진복주(進福酒)-1작(爵)-2작-진탕(進湯)-3작-진탕-4작부터 9작-진대선(進大膳)-환어(還御)의 순에 맞추어 의례가 진행된다. 이때 왕 이하 사람들이 제사 지낸 술, 즉 복주를 마시는 절차는 음복연의 핵심을 이룬다. 이러한 각 절차마다 모두 음악이, 혹은 악무(樂舞)가 연행되어 연향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악무의 연행은 외연(外宴)과 내연(內宴)일 때 다소 차이가 있다.
외연으로 음복연이 이루어지는 경우 초무(初舞), 아박무(牙拍舞), 향발무(響鈸舞), 무고(舞鼓), 광수무(廣袖舞), 처용무(處容舞) 등이 많이 연행된다. 내연의 경우 음악 연주는 맹인의 연주자가 담당하고 춤은 여령(女伶)이 추는데, 헌선도(獻仙桃), 수연장(壽延長), 오양선(五羊仙), 포구락(抛毬樂), 연화대(蓮花臺), 몽금척(夢金尺), 봉래의(鳳來儀), 아박무, 향발무, 무고, 처용무, 첨수무 등의 정재가 연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정재는 위로부터 낙점하여 아홉 잔의 절차에 골라 쓰기 때문에 각 연향 때마다 순서의 차이는 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동일한 춤에 다른 음악을 연주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 『국조보감(國朝寶鑑)』
- 『예기(禮記)』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춘관통고(春官通考)』
- 송지원, 「조선시대 음복연의 의례와 음악」, 『공연문화연구』 16, 2008.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