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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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왕이 타던 지붕이 없는 가마.

개설

왕이 사용하는 지붕 없는 가마를 지칭하는 말로 소여(小輿) 또는 평교자(平轎子)라고도 부른다. 왕실의 가마를 지칭하는 말로는 연(輦)과 여(輿)가 있는데, 연은 지붕이 있는 가마, 여는 지붕이 없는 가마이다. 궁궐 안에서는 여를 탔으며, 정전 바깥으로 나갈 때에는 지붕이 있는 가마인 연을 이용했다. 행차할 때는 연을 타더라도 여가 항상 따랐으며, 목적지에 도착한 후 종묘 안이나 능소 안 등에서 이동할 때에는 여를 이용했다. 왕비와 세자·세자빈도 책봉되면 가마와 의장을 갖추게 되지만, 이들의 가마는 연뿐이었다.

연원 및 변천

여의 명칭이 처음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것은 『세종실록』「오례」의 노부(鹵簿) 항목인데, 이때는 소여(小輿)로 기록되어 있다. 여나 소여는 왕의 지붕 없는 작은 가마라는 의미로 일관되게 쓰였다. 중종대에는 말을 타기 어려운 세자를 위해 소여를 타게 한 기록이 있는데(『중종실록』 23년 9월 28일), 세자는 연과 여의 구분이 없으므로 이때의 소여는 왕이 타는 것과 같은 가마채에 앉는 자리를 설치한 작은 가마인 것으로 추정된다. 중종대에는 기우제를 지낼 때에 소여를 사용하여 풍운뇌우단(風雲雷雨壇)까지 이동해서 백성들을 재난에서 구하고자 하는 염원과 정성을 드러내 보였다(『중종실록』 36년 5월 6일).

형태

여의 모양은 『세종실록』「오례」에는 “적색(赤色)의 바탕에 주홍(硃紅)으로써 칠하고, 그림은 황금을 사용한다. 제도는 모두 소연(小輦)과 같은데, 다만 덮개 형태인 옥형(屋形)이 없는 점이 다르다.”고 하였다. 소연의 제도를 참조하면, 좌우에 기다란 들채가 있는데, 양쪽 끝에 황금으로 칠한 용머리 모양의 장식인 용두(龍頭)를 만들어 이를 덮어씌운다. 들채 아래에는 받침대가 있고, 들채 위에는 판자(板子)를 깔고, 4개의 기둥을 그 위에 세운다. 기둥에는 황금으로 구름 속의 용 즉, 운룡(雲龍)을 그리는데, 용 한 마리는 위로 올라가고, 한 마리는 아래로 내려온다. 그 전면(前面)은 비워 둔다. 따로 붉게 칠한 교의를 만들어, 황금으로 구름 속의 용을 그리고, 판자 가운데에 설치하여 왕의 의자로 한다. 앉는 곳에는 수놓은 녹색 비단을 사용한 좌자(座子)를 설치한다. 조선후기 의궤 반차도에 그려진 소여 또는 평교자의 경우에는 좌자가 붉은 비단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 김지영, 「조선후기 국왕 행차에 대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5.
  • 정연식, 「조선시대 탈것에 대한 규제」, 『역사와 현실』27,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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