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內宴)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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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내연 |
한글표제 | 내연 |
한자표제 | 內宴 |
관련어 | 내진연(內進宴), 내진작(內進爵), 내진찬(內進饌), 외연(外宴), 중궁양로연(中宮養老宴), 중궁진연(中宮進宴), 중궁회례연(中宮會禮宴) |
분야 | 문화/예술/정재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김종수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내연(內宴)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단종실록』 2년 5월 28일 |
왕대비·왕비·왕세자빈·명부(命婦) 등 여성이 참석한 궁중연향 또는 왕실 가족과 친·인척이 참석한 궁중연향.
개설
외연(外宴)과 내연(內宴)은 연향 참석자에 따른 구별이며, 회례연(會禮宴)·양로연(養老宴)·진연(進宴) 등은 설행 목적에 따른 구분이다.
내회례연에는 왕비와 왕세자빈 및 명부 등이 참석하고, 왕비가 주관하는 내양로연에는 사대부의 부인에서 천인(賤人)의 부인에 이르기까지 신분의 구별 없이 여성 노인들이 참석하였다. 내진연에는 왕대비·왕비·왕세자빈·공주·명부 등의 여성 외에 왕·왕세자·종친(宗親)·의빈(儀賓)·척신(戚臣) 등 왕실 가족과 친·인척도 참석하였다.
내용 및 변천
남성이 참석하는 연향이 외연이므로, 이와 대비되는 내연은 왕대비와 왕비 및 명부 등 여성이 참석하는 연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연의 경우, 내진연에는 여성 외에 왕·왕세자·종친·의빈·척신 등의 남성도 참석하므로 이것만으로는 외연·내연의 개념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우선 남녀가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고 피하는 것을 ‘내외한다’고 표현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내(內)와 외(外)는 분명 여성과 남성을 뜻한다. 내회례연에 왕비‧왕세자빈‧명부 등이, 내양로연에는 다양한 신분의 노파가 참여했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회례연과 양로연의 경우에 내연은 여성이 참석한 연향이라 정의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내회례연과 내양로연이라는 용어보다는 중궁전 즉 왕비가 주도한 연회라는 의미에서 ‘중궁회례연’과 ‘중궁양로연’이라는 용어가 주로 쓰였다.
한편 1454년(단종 2)에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은 “신이 나라 경비로 연향을 올리게 되면 이는 신 등이 도리어 빈객이 되는 것이니, 자비(自費)로 성의를 표시할 수 있게 하소서. 의정부 관원들은 외신(外臣)이므로 나라 경비로 해도 무방합니다.”라고 하였다(『단종실록』 2년 5월 28일). 여기서 ‘외’는 왕실과 혈연관계로 연결되지 않은 자, ‘내’는 친·인척을 뜻한다. 이는 내진연에 여성들 외에 왕과 왕세자, 종친, 의빈 등 왕실 가족과 친·인척이 참석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외진연의 주빈은 항상 왕이지만, 내진연의 경우 왕대비 또는 왕비일 수 있고, 왕 혹은 왕과 왕비일 수도 있다. 왕은 외진연에는 일국의 통치자로서 참석하지만, 내진연에는 왕대비의 아들로서 또는 왕자나 공주의 아버지로서 참석하였다.
왕대비가 주빈인 내연으로는, 1868년(고종 5) 12월 헌종의 모후인 신정왕후(神貞王后)의 환갑 경축 내진작(內進爵), 1873년(고종 10) 4월의 신정왕후 모림(母臨) 40년 경축 내진작, 1877년(고종 14) 12월의 신정왕후 칠순 경축 내진찬(內進饌), 1887년(고종 24) 1월의 신정왕후 팔순 경축 내진찬 등을 들 수 있다.
왕비가 주빈인 내연으로는 숙종의 즉위 30주년을 경축하기 위해 1706년(숙종 32) 8월 28일에 베푼 중궁진연을 들 수 있다. 물론 하루 전인 27일에는 외진연을 베풀었다. 원래 1703년(숙종 29)에 경축 진연을 베풀려 했는데, 흉년과 기상 이변 등으로 인해 3년이나 지난 1706년에야 진연을 베풀게 되었다.
왕이 주빈인 내연으로는 순조의 즉위 30주년과 보령 40세를 경축하기 위해 베푼 1829년(순조 29) 2월 12일의 내진찬을 들 수 있다. 사흘 전인 9일에는 외진찬을 베풀었다. 2월 9일의 외진찬과 2월 12일의 내진찬은 두 경우 모두 주빈이 왕임에도 불구하고 외연과 내연으로 구분되는 이유는, 외진찬에는 왕세자와 문무백관이 참석하고 내진찬에는 왕세자·왕세자빈·좌명부·우명부·왕자·종친·척신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2월 12일의 내진찬에 순조비인 순원왕후(純元王后)가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1828년 8월에 모친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왕과 왕비가 주빈인 내연으로는 순원왕후의 40세를 경축하여 1828년(순조 28) 2월 12일에 왕과 왕비에게 올린 내진작을 들 수 있다.
특징
연향은 술과 음식을 즐기고 기쁨을 같이 나누면서 구성원 간의 유대를 돈독히 하는 자리이다. 특히 궁중연향은 마음을 흥겹게 하는 악(樂)과 행실을 절제하는 예(禮)를 바탕으로 진행되어 조화롭고 품격 있는 행사가 되도록 하였다.
조선은 남녀의 구분이 분명한 사회였던 만큼, 여성이 참석하는 내연에는 여악(女樂)이 음악 연주와 춤을 담당하였다. 여악만으로 부족한 경우 장님 악공인 관현맹인이 이를 보충할 뿐, 남성 악공들은 참여하지 못하였다. 이처럼 여악이 내연의 음악 연주와 춤을 모두 담당하는 전통은 영조대까지 고수되었다. 그 뒤 1795년(정조 19) 혜경궁의 회갑 경축 연향 이후에는 남성 악공들이 내연에서 음악 연주를 담당하고 여악은 춤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남성 악공들 앞에는 주렴이나 휘장을 둘러쳐서 왕비나 왕세자빈 및 명부를 볼 수 없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 『고종무진진찬의궤(高宗戊辰進饌儀軌)』
- 『고종계유진작의궤(高宗癸酉進爵儀軌)』
- 『진찬의궤(進饌儀軌)』
- 김종수, 『조선시대 궁중연향과 여악연구』, 민속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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