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번군(入番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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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상병으로서 당번이 되어 근무처에 있는 군인.

개설

조선시대 군인들은 대체로 번상제의 형태로 군역(軍役)을 수행하였다. 조선전기에는 친군위(親軍衛), 별시위(別侍衛), 갑사(甲士), 충찬위(忠贊衛), 충순위(忠順衛), 정병(正兵), 취라치(吹螺赤), 파적위(破敵衛), 장용위(壯勇衛), 팽배(彭排), 대졸(隊卒), 수군(水軍), 조졸(漕卒) 등 대부분의 군인들이 번상의 형태로 서울에 올라와 돌아가며 군역을 수행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장번(長番)인 훈련도감 군인을 제외한 각 군영의 군인이 번상제 형태로 군역을 수행하였다. 이와 같이 번상병(番上兵)으로서 당번이 되어 근무처에서 번(番)을 서는 군인을 입번군이라 하였다.

내용 및 특징

번상병들은 번을 서는 차례에 따라 번상하였는데, 상번(上番)하기 전달 25일에 각도징번관문(各道徵番關文)을 병조(兵曹)에서 순영(巡營)에 내리면, 순영은 병영(兵營)으로, 병영은 각 지방에 전달하여 군인들의 상번을 지시하였다. 각 지방에서는 색리(色吏)를 정하여 번상병들을 인솔하였고, 이들은 계수읍(界首邑)에서 우후(虞候)의 중간 점고를 받고 서울로 올라와 주인(主人) 집을 정해 숙박을 하면서 근무에 임하였다. 번상병들은 일단 군장을 점고 받고, 5일가량 근무처로 배속 받기를 기다리는 대기 생활을 하는데, 이들을 도방군(到防軍)이라 하였다. 도방군은 아직 일정한 근무처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종 역(役)에 불려 다녔다.

번상병들은 5일 간의 도방군 생활을 마친 후 분군(分軍)에 의하여 각 근무처로 배속되었다. 번상병들을 분군할 때에는 삼사(三司) 즉, 병조·도총부(都摠府)·위장소(衛將所)가 함께 모여 역(役)의 힘든 정도를 살펴서 지난번에 쉬운 곳[歇役]에서 근무한 사람은 힘든 곳[苦役]으로, 또 힘든 곳에서 근무한 사람은 쉬운 곳으로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고역은 전옥서(典獄署)·포도청(捕盜廳)·산직(山直)·전루전(傳漏典)·연사(涓司) 등 5·6처이고, 나머지는 대개 헐역으로 인식되었다(『광해군일기』 4년 1월 11일). 그러나 부유한 군인들은 분군을 담당하는 관리들에게 헐처(歇處)로 보내 줄 것을 청탁함으로써 가난한 군인들이 계속 고역에서 근무해야 하는 등의 부정이 빈번하였다. 분군을 마친 군인들은 궁성 각 문의 파수(把守), 도성 내외의 순찰, 도성 4대문 밖 경수소(警守所) 근무 등을 비롯한 각 근무처에서 입번군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변천

선조대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급료병을 양성하면서, 중앙군은 번상병과 급료병으로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조선후기 훈련도감을 제외한 다른 군영의 경우 재정적 요인으로 인하여 여전히 번상병제를 채택하여 군액을 유지하고자 한 것이었다.

참고문헌

  • 육군사관학교 한국군사연구실 편, 『한국 군제사: 근세 조선 전기편』, 육군본부, 1968.
  • 김종수, 「17세기 군역제의 추이와 개혁론」, 『한국사론』 22,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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