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라치(吹螺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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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군대에서 소라를 불던 취타수(吹打手).

내용

취라군(吹螺軍), 혹은 취각인(吹角人)이라고도 한다. 이들이 부는 소라를 나(螺)·나각(螺角)이라 하였는데, 소라의 뾰족한 끝에 구멍을 뚫고 취구(吹口)를 만들어 끼운 다음 김을 불어 넣어 소리를 냈다. 고려 때는 취라치를 취각군(吹角軍)·취라군(吹螺軍)으로 구분하여 법가의장(法駕儀仗)에는 교방악관(敎坊樂官)을 비롯, 안국기(安國伎)·고창기(高昌伎)·천축기(天竺伎)·연악기(宴樂伎)와 취각군 20명이 가전(駕前)에, 취라군 24명이 가후(駕後)에 따랐다. 조선시대에는 취라치의 정원을 640명으로 정하고 이들을 5번(番)으로 나누어 4개월씩 근무케 하여 항상 100여 명의 취라치가 현역으로 근무하였다. 이들은 매년 4월, 7월, 10월에 나각을 부는 솜씨에 따라 선발되었으며 일정한 임기를 마치면 종5품에서 거관(去官)하고, 계속 근무하기를 원하면 정3품을 한계로 올려 주었다. 조선후기에 취라치들은 오영문(五營門)이나 각 감영(監營), 병영(兵營)의 군대행렬에서 대취타를 연주하였다. 한말 군대해산 후 군영의 취라치들은 없어졌으나, 민간의 광고악대와 사찰의 의식에는 취라치가 등장하기도 했다.

용례

兵曹啓 吹螺赤 最是軍中前卒 只試吹角 深爲不可 今後試取之時 依舊甲士例 試以騎步射 中一才者乃取(『세종실록』 16년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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