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의(元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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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례(冠禮)를 치를 때 입는 옷.

내용

관례는 통과의례(通過儀禮)의 하나로 남자가 성년이 되었음을 알리는 의식이다. 보통 15~20세에 치르게 되지만, 조혼이나 상(喪)을 당하면 훨씬 이전에 치르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원복(元服)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예식에 입는 옷은 의(衣)와 관(冠)이 함께하고 관례란 말 그대로 관이 의미하는 바가 크므로 왕세자 등과 관련하여서는 원복으로 표기하는 것이 타당하다. 조선 왕실에서는 원자의 나이가 8세 정도 되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책봉(冊封)과 관련하여 관례의 시행 시기에 대해 논의된 바가 많다.

그러나 1520년(중종 15) 3월의 기록과 같이 관례는 성인(成人)의 일을 책임지는 예(禮)이므로, 중국에서도 ‘제(帝)가 원복(元服)을 입었다.’고 하여 원자의 나이가 어리니 나이 차기를 기다려 관례를 치러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중종실록』 15년 3월 6일). 당(唐)의 『개원례(開元禮)』 중에 황제(皇帝)의 가원복의(加元服儀)가 있는데, 이것 역시 관례와 같은 의식으로서 책봉 전에 의식을 치를 경우 공정흑개책(空頂黑紒幘)과 강사포(絳紗袍)를 입었고 책봉 후에 관례를 치를 경우는 칠장복(七章服)을 입고 머리에는 책(幘)을 썼는데, 사위(嗣位)할 때 복색도 마땅히 이 예(例)를 방조(傍照)하여 구장곤복(九章袞服)을 입고 머리에 책을 쓰고 다음에 세 번 관을 갈아 씌우는 의식인 삼가(三加)에 따른 치포관(緇布冠), 피변관(皮弁冠), 작변관(爵弁冠)을 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오례의(五禮儀)』에 세자가 시복 차림으로 관례에 나간다고 하였는데 1727년(영조 3) 9월 밀풍군(密豐君)이탄(李坦)의 관례를 보면 왕세자가 아청색(鴉靑色) 직령(直領)을 입고 조대(絛帶)를 띠고 나오면 빈(賓)이 왕세자의 자리 앞으로 나아가 동쪽을 향하여 서서 축복(祝福)하는 말을 한다. 초가(初加)에 왕세자가 곤룡포(袞龍袍)로 갈아입고 나오면 빈이 왕세자의 연석(筵席) 앞으로 나아가 동쪽을 향하여 서서 축복하는 말을 한 후 꿇어앉아 관(冠)을 올리고 일어나서 다시 위차로 돌아와 동쪽을 향하여 선다. 다음 재가에 왕세자가 강사포를 입고 나오면 빈이 축복의 말을 한 뒤 꿇어앉아 관을 올린다.

삼가에는 왕세자가 면복(冕服)을 입고 나와서 남쪽을 향하여 앉으면 빈이 예주를 받아 왕세자의 연석 앞으로 가 북쪽을 향하여 서서 축복하는 말을 한다. 그다음 꿇어앉아 예주를 올리면 왕세자가 규(圭)를 꽂고 예주를 받아 제사지내고 나서 예주를 맛본다(『영조실록』 3년 9월 9일). 밀풍군이탄의 경우는 왕세자 책봉 전에 관례를 치르는 경우이며, 이와는 달리 헌종 때의 세자 이돈(李焞)은 이미 왕세자로 책봉된 뒤 관례를 치르는 경우이다. 당시 이돈이 착용했던 시복이 바로 용포인데, 초가의 옷이 맞지 않아 동자 때의 차림인 아청색 단령(團領)에 머리를 쌍동계(雙童髻)로 한 후, 공정책(空頂幘)을 쓰고 옥잠 차림으로 나아갔다. 그러므로 초가에 익선관(翼善冠)에 용포(龍袍)를, 재가(再加)에는 원유관(遠遊冠)에 강사포를, 삼가에는 평천관(平天冠)을 가하게 되었다.

용례

令月吉日 始加元服 棄爾幼志 愼其成德 壽考維祺 以介景福(『영조실록』 3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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